“저는 홀로 삼수를 해서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에 진학해서도 아르바이트와 학업, 인턴까지 병행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여전히 비정규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앞에 자괴감이 듭니다. 제가 그저 욕심이 많은 것일까요? 대한민국의 경제는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왜 제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제가 경쟁사회에서 밀려난 부적합한 인간처럼 느껴져서 힘듭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저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서 중학교 때부터 혼자 살았어요. 중학교 때는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렇게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절에 들어와서 지금 나이가 일흔이 되도록 장가도 못 가고 혼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질문자의 말대로라면 저는 전생에 무슨 죄를 많이 지어서 이렇게 살까요? (웃음)
저는 고등학교만 졸업했는데, 그래도 질문자는 대학까지 나왔잖아요. 또 대학을 다닐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르바이트도 하고 돈을 벌면서 대학을 다니지 누가 돈을 대줍니까. 전 세계 대학생 중 소수 10% 정도만 부모가 학비를 대줍니다. 한국은 과잉 학벌사회이다 보니 대학생 중 절반 정도가 부모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전 세계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대다수가 자기가 돈을 벌어서 대학을 다닙니다.
인도에 가보면 중학교 때부터 자기가 돈을 벌어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저도 중학생 때부터 제가 돈을 벌어서 학교를 다녔어요. 장학금도 받고, 아르바이트도 해서 학교를 다녔는데,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오히려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너네는 부모가 다 지원해줘서 다녔지? 나는 어릴 때부터 자립해서 살았어’ 하면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왜 그걸 억울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하면 자괴감이 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기업에 입사를 시켜준다고 해도 안 들어갈 것 같아요. 괜히 대기업에 들어가서 위축되고 눈치 보면서 살 필요가 뭐가 있어요? 몇 군데 회사에 지원서를 넣어보고 안 되면 현실에 맞는 일을 찾아서 하면 됩니다. 내가 있는 곳이 계약직이면 어떻고, 임시직이면 어때요? 한 회사에 30년을 다니나, 1년마다 회사를 옮겨서 30군데 다니나, 30년 동안 일하는 건 마찬가지예요. 저 같으면 1년마다 회사를 옮기면서 30군데를 다닐 것 같아요. 그렇게 회사를 옮기면서 다니는 게 경험도 훨씬 더 많이 쌓을 수 있는 길입니다. 무엇 때문에 한 곳에 잡혀 있으려고 해요?
질문자한테 30년 동안 한 곳에만 여행을 가서 매번 그곳만 보고 오라고 하면 지겹다고 말하지 않겠어요? 질문자도 여행을 할 때는 장소를 바꿔가며 여기저기를 다니고 싶잖아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 하고만 30년 동안 같이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알아서 떠나 주면 이 사람도 만나보고, 저 사람도 만나보고,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도 상대방이 떠나면 울고불고 난리입니다. 사람이 떠나 주면 다른 사람을 만나볼 기회가 생겨서 좋은 측면도 있는데, 그걸 보지 못하는 겁니다.
이것은 결국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관점의 문제입니다. 제가 제3세계에 가서 활동하면 가끔 ‘도인’ 소리를 들을 때가 있어요. 인도네시아, 스리랑카와 같은 곳에 가서 마을 개발을 할 때 마을 사람들을 만나자마자 저는 우선 어떻게 사는지 물어봅니다. 경작하는 땅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봤을 때 ‘1헥타르’라고 하면 저는 그가 어떤 형편에 놓인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1헥타르는 3천 평입니다. 논으로 계산하면 15마지기예요. 제가 어릴 때 마을 사람들을 떠올리면 그 정도의 논을 갖고 있으면 마을에서 중간층 정도 되는 자영업자입니다. 집에 머슴을 둘 형편도 안 되고, 그렇다고 남의 논을 부치는 소작하는 사람도 아니고, 자기가 농사지어서 먹고사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가 ‘중학교에는 아들 한 명 정도만 보낼 수 있는 형편이겠네’ 하고 말하면, 그 사람이 놀라면서 ‘그걸 어떻게 압니까?’ 하고 되물어요.
제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요? 모두 어릴 때 경험 때문에 알 수 있는 거예요. 제3세계는 제가 어릴 때 자란 시골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마을에서 같이 자란 친구들을 떠올려 보면 금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요.
당시 시골에서 어느 정도의 형편이 되면 아이를 중학교까지 보낼 수 있고, 어느 정도의 형편이 되면 고등학교까지 보낼 수 있고, 어느 정도의 형편이 되면 대학교까지 보낼 수 있는지, 늘 옆에서 보고 자랐기 때문에 생활 수준을 보면 금방 짐작이 가능합니다. 또 시골에서는 여자 아이들의 대부분이 초등학교까지만 나오고, 가끔가다가 중학교까지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또 부엌에 들어가 보면 옛날 시골에서 아궁이에 불을 떼듯이 불을 때고 있습니다. 둘러보면서 제가 ‘늘 숙여서 일하려면 허리가 아프니까 여기는 높여야겠네요’, ‘이렇게 되면 연기가 너무 많이 나서 일하기가 어렵겠네요’ 하고 부엌을 개선해야 하는 점들을 알려줍니다. 그러면 자기 남편은 30년 동안 같이 살아도 몰라주는데 스님은 부엌 모습만 보고도 바로 알아주니까 놀랍니다.
이런 걸 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나온다고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어릴 때 가난한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런 걸 알 수 있는 거예요. 또 밭에 나가서 풀 베고 같이 모내기를 하면 스님은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다고 칭찬하기 일수입니다. 그러면 제가 농담으로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가난한 집에 태어난 덕분에 조기교육을 잘 받아서 그렇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부잣집에 태어나면 이런 교육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장난감도 내 손으로 만들어야 했어요. 그렇게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살았으니까 대학교 다니는 이상의 경험치가 쌓인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왜 꼭 대학교에 가서 지식을 배우는 것만 공부라고 생각을 해요?
사람들은 대개 전생에 복을 많이 지으면 부잣집에 태어나거나 높은 지위에 올라간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전생에 복을 많이 지으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경험을 많이 쌓게 해 줍니다. (웃음)
전생에 죄를 지어서 가난하게 태어났다거나 전생에 복을 지어서 부자로 태어났다는 건 모두 다 지배질서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치관입니다. 이제는 이런 생각을 뒤집어야 합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검은 것이 아름답다.’
이런 말이 있듯이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일을 하고 조기교육을 잘 받아서 경험이 많고 아는 게 많다’ 이렇게 관점을 뒤집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학교 교육을 많이 받아서 아는 게 많다고 하지만 제가 같이 살아보면 생활에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유학을 해서 알게 된 게 아닙니다.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알게 된 겁니다.
힘이 들면 시간이 길어집니다. 힘들게 1년을 살면 10년 산 것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겸손해지고, 반성도 하게 되고, 남의 심정도 알게 됩니다. 질문자도 지금 아주 좋은 경험을 했는데, 오히려 안 좋은 일을 당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러니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일용직이라도 일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잖아요.
또 요즘 같은 세상에 왜 꼭 한 곳에 붙어서 일하려고 해요? 다들 정규직이 되려고 난리인데 스님 같으면 정규직을 하라고 해도 안 할 것 같아요. 뭣 때문에 한 곳에 얽매여서 살려고 해요? 요즘 같이 인터넷이 발달된 시대에 여기에서도 조금 일해보고, 저기에서도 조금 일해보면,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어서 좋잖아요. 세 군데, 네 군데 걸쳐서 자유롭게 일하면서 사는 게 좋지, 왜 한 곳에 목매달고 살려고 해요? 그러다가 한 곳에 오래 머물게 되면, 또 그때 가서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 생각해보면 되죠.
옛날 같으면 결혼 안 하고는 못 사니까 결혼에 목매달았습니다. 결혼을 못하면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다고 했죠. 그런데 요즘 결혼에 목 매달 이유가 뭐가 있어요? 살다가 좋은 사람이 있으면 같이 살면 되고, 없으면 혼자 살면 되죠. 꼭 같이 살겠다고 정할 필요도 없고, 꼭 혼자 살겠다고 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꼭 결혼을 해야겠다고 정하니까 못하면 괴로운 거예요. 또 안 하겠다고 정하니까 부모가 결혼하라고 하면 괴롭죠. 그걸 왜 정해서 괴롭게 살아요? 그냥 놔두고 인연이 되는대로 살아가면 되죠.
이렇게 관점을 조금 바꾸면 질문자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질문자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면 그건 기득권층이 만들어 낸 지배질서에 세뇌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세뇌가 된 가치관에 따라 자기를 열등하게 인식하고, 스스로를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데서 괴로움이 일어나는 거예요.
질문자는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내가 돈 벌어서 대학을 가고, 내가 직장을 구해야 하는 거예요. 그걸 부모가 대신해 주는 게 비정상입니다. 질문자는 마치 대단한 일을 겪은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대단한 일도 아니고 불행한 일도 아니에요. 또, 스스로 많이 모자란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모자란 것도 전혀 없습니다. 잘난 것도 없고, 모자란 것도 없습니다. 과거에 그런 과정을 겪었다면 굉장한 경험을 한 거예요. 나중에 인생을 사는데 그런 경험들이 다 유용하게 쓰입니다. 결론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사회의 통념에 너무 사로잡힌 채 거기에 부합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며 많이 괴로워했습니다. 108배 정진을 하고 행복학교를 다니면서 제 관점을 바꾸는 데 조금 더 집중을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제 인생 경험을 많이 쌓아간다고 생각하고, 제게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