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2:8~14, 그리스도의 신부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여러분, 밖에는 꽃도 피고 새들이 노래하고, 어떤 나무들이 일찍이 열매를 맺고, 어떤 나무들은 꽃을 피워 그 향기가 가득한 데도, 방 안에만 갇혀 있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신부되신 교회를 초청하시기를, “일어나서 함께 가자!” 하십니다.
저희 교회에서도 앞으로는 봄이면 꽃구경도 가면 좋겠습니다. 다들 일이 바빠서, 그리고 시골인지라 어디든지 꽃구경인데, 무슨? 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지난 주 수요일에 목사님들과 운동을 했습니다. 석탄일이라 좀 늦게 까지 운동을 했습니다. 일부 목사님들이 가시고, 몇 분이서 남아서 라면을 끓여먹자 하셔서, 집사님 한 분이 함께 운동을 하시는데, 낙동강 둔치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여 라면을 끓여 먹였습니다. 비빔면과 짬뽕면을 끓여 먹었는데, 라면도 맛이 있었지만 함께 나누는 대화 속에서 행복을 느꼈습니다. 마치 그 날은 아침부터 구미사랑의 교회에서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앰프를 설치하고, 우리가 운동이 끝날 무렵 시작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같이 운동하시는 가촌교회 목사님께서, 5월 28일에 여기 춤세권센터에서 오후예배 겸 교회야유회를 오신다고 담당자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다들 이렇게 교회들 마다 5월이 되면 체육대회니, 야유회를 합니다. 저희 교회에도 함께 이런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여전도회에서 5월 중에 계획을 세우셔서, 주일 오후예배 때, 잠깐이라도 나갔으면 싶습니다. 그것도 힘들면, 춤세권센터에 가서 고기라도 꾸어 먹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교회를 향하여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신부인 교회가 ‘바쁘다’, ‘일없다’, ‘가기 싫다’ 하면 이 얼마나 부당한 일이겠습니까?
첫째,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찾아 오셨습니다.
8절,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목소리로 말할 때에, 그가 그의 신부인 교회를 찾아오시는 모습을 노래합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지배 아래서 고통 가운데 있는 동안,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대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온전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성탄절에 이 땅에 아기 예수님의 모습으로 오시기 전에도, 그리스도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심지어 그렇게도 대망했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설령 그리스도께서 오셨음을 안다 할지라도, 그들이 누리고 향유했던 권력과 이익 때문에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를 죽임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을 누리는 편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9절,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 구나”.
그리스도는 이렇게 이 세상의 기준과 죄악의 틈 사이로라도 그의 신부인 교회와 영적인 교제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육신의 세계만 바라볼 때, 이렇게 가까이 찾아와 계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계속해서 그의 신부인 교회를 찾아오십니다.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너무나도 부분적입니다. 심지어 신부인 교회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의 교제의 기쁨을 잘 모릅니다.
고전 13:9~12,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여러분을 찾아오신 그리스도와 날마다 24시간 교제하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엡 6:18).
둘째,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서 함께 가자’ 하십니다.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10, 13)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그 사랑 때문에,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교회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지금도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세워 가십니다. 그리고 “일어나 함께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왜 함께 가야 합니까?
11~13, “겨울도 지났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 구나”.
사람들은 봄을 노래합니다. 꽃이 피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지금은 꽃이 피고 노래를 부를 때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은 사랑을 나눌 때입니다.
새들은 짝짓기를 하고, 꽃들도 암술과 수술이 번식과 열매를 맺기 위해서 벌들을 유혹합니다. 모든 만물이 사랑을 나눌 이런 시기에,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교회를 찾아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길 원하십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3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➊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천국에 함께 가자!”로 해석.
➋주님과의 교제가 멀어진 신자를 찾아오시고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주님의 모습.
➌그리스도의 초림의 결과 교회의 축복된 구원운동을 보여준다고 해석.
어떤 해석을 따르든지 간에,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부된 교회를 초청하시기를 “일어나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리스도와의 교제입니다. 지금까지 따랐던 세상의 기준을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과 함께 갔습니다.
시 45:10~11,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11.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셋째, 네 얼굴을 보게 하고, 네 소리를 듣게 하라.
14절,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찾아 오셔서, “일어나 함께 가자!” 했을 때, 그의 신부된 교회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목소리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비둘기 같이 반응합니다.
교회는 바위 틈 낭떠러지에 자기 집에 숨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로 하여금 밖으로 나와서, 그 얼굴을 보고, 그를 보고, 그 사랑스런 모습을 즐거워하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사랑의 힘’은 얼마나 위대합니까?
사랑은 꽃을 피워내고, 향기를 토해냅니다.
사랑은 새들이 노래하며 짝짓기를 하게하고, 새 생명을 낳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사랑은 그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그 부드러운 소리를 듣습니다.
수많은 생명들을 꽃피우게 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와의 친교는 제자들의 숫자가 늘어나, 교회를 부흥케 합니다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