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당반도가 마주 보이는 갖바위 앞바다에서
이른 아침을보냈다. 잔잔한 파도와 망둥어
낙시를 서두르는 성급한 사람들…
제 성질을 못이겨 허공위로 튀어오르는 전어들…
길고도 긴 영산강 하구언 둑을 건너 삼호에
들어설 무렵 제법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그 빗줄기 속에 2번 국도를 계속 달려 강진땅에
들어섰다.
어느덧 빗줄기는 안개로 바뀌고 … 덕분에 처음
달려본 강진땅이 포근하게 안겨왔다. 이곳의 녹음은
녹색이 아니라 고운 연두빛이다.
강렬한 황토와 고운 연두빛 대지, 그리고
자욱한 안개와 간간히 내리는 비… 이윽고
이른 시간이라 차 한대 다니지 않은 소로길로
접어들었다.
산기슭을 끼고 있는 잔잔한 평야 지대를 십분
정도 달렸을 때…백련사가 나타나고 …그리고
구강포 앞바다가 보였다.
" 이곳이 귤동 마을 맞나요? 다산초당이 있는…”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 비를 피해 서있는 노인에게
묻자,노인은 반갑게 웃음으로 대답한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어 졌지만 얕은 담벼락과
간간히보이는 대나무 숲, 집집마다 한두그루
자리잡고 있는 감나무와 동백나무들로 인해
내마음은 정겹기만하다.
가난하지만 정갈한 남도의 집들…혹 내 삶의
방향도 이런 것이 아닐까?…마을에 있는 다산
슈퍼에서 우산을 하나 샀다. 완만한 산을 조금
올라가자 별장식으로 만든 한옥 집들이 여기저기
눈에띈다. “외부인 출입금지”란 간판을 큼지막하게
걸어놓고 자리잡고 있는 저들이 오히려 나보다 더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다산에 오를수록 안개가 자욱하다… 사방은 온통
굵은 대나무와 해송과 동백나무 뿐… 빗소리는 후두둑
거리는데 나에게 떨어지는 빗방울은 없다.주저없이
우산을 접었다.
이제 한창 날이 밝아 올 시간인데도 자욱한 안개와
무성한 대나무 숲으로 인해 다산은 연한 어둠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다만 긴 대나무를 반으로
잘라 “졸졸”흐르는 수로를 곳곳에 만들어 놓아,
흐르는 땀을 씻을 수 있어서 숲의 상쾌함을 느낄수
있었다.
길이 더욱 급해지기 전에 윤단 선생의 묘소가
보였다. 선생은 다산의 외가쪽 친척이 되고 정약용
선생을 이곳으로 모신분으로 알려져있다.
그 분 묘소 양쪽에 자리 잡고 있는 동자석은 몇몇
답사기 덕분에 꽤 유명해진듯 싶다. 왼쪽에 있는
동자석은 얼마나많은 사람들이 코를 문질렀던지
지금은 아예 흔적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가파른 길을 조금 더 올라가자 이윽고 다산 초당이
보였다. 울창한 동백과 활엽수와 관목에 둘러 쌓여있는
세채의 집과 대나무에 구멍을 뚫어 흐르는물줄기를
끌어와 폭포를 만들고 , 그 물이 모여 만든 작은 연못
그리고 천일각이라는 70년대에 만든 정자가 하나 보였다.
천일각에 서자 비로소 강진만 구강포 바다와 드넓은
갈대밭과 조그만 섬하나 그리고 바다건너 칠량땅까지
한눈에 들어왔다...그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람들의 감탄사가 이윽고 여기 저기에서 터져나온다...
그 천일각이 자리 잡고 있는 비스듬한 바위에
다산은 자리잡고 앉아 무수한 갈대 숲 뒤에 보이는
강진만 구강포 앞바다를 바라보며 흑산도에 유배한 둘째형
정약전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아마 두사람은 1801년 귀양길에
나주에서 작별한 이후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강포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은 세상의
모든 그리움이 절절히 쌓인 곳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세상의 모든 근심을 한순간에 훌훌 털어
버리는곳인지도 모른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다산에 올랐던 사람들은
오던길로 내려가고, 나는 다산 정약용이 백련사 혜장
스님을 만나러 다니곤 하던 숲속 오솔길로 들어섰다.
만덕산 칠부 능선을 끼고 구강포 앞바다와 바다건너
칠량 땅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오솔길은 시작부터
온통 대나무였다.
대나무 가지 사이로 잔잔히 비추어지는 햇살과
향나무 그리고 진한 동백잎들… 백련사에 가까이
갈수록 길은 좁아져가고, 앞을 가로막는 칡덩쿨을
우산대로 내리치며 길을 이었다.
태백산맥에서 지리산…조계산에서 이어저 내려온
산이어서인가.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웅장함과
규모는 제법이었다. 백련사에 가까이 갈수록 동백은
가득하고, 그 꽃 만큼이나 붉은 열매들이 열려있었다.
이곳 강진 백련사의 동백은 고창 선운사의 것보다
더욱 운치가 있다고들 한다. 목백일홍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백련사에서 만덕산 완만한 산줄기가 빗어낸
숲들과 마을과 강진 구강포 바다…그리고 한때는
바다갈대로 가득했을 …지금은 간척되어진 벌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곳 백련사 만덕산 산 기슭에서
우연히 어떤 글 조각을 떠올렸다…
“ 산이여… 그대 그 깊은 품속에 ,나의 영혼을
데려가 솔바람에 씻기우는 꽃잎이 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