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안에 있는 자유
고린도후서 3:12-18
예수의 세계는 자유의 세계입니다.
죄와 사망의 굴레로부터 탈출해야 얻는
영혼의 자유는
예수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새벽마다 1시간여
성경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유튜브 치유 기도를 하고 글을 씁니다.
매주 4, 5회 밖으로 나가는 전도와
전도 후기 작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몇 년간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꼼짝없이 묶여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제대로 휴가를 가져본 적도 없습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감당해야 할 사명 때문이지요.
그리고 한편으론 말씀과 기도와 전도로
예수님께 집중할 때
세상 걱정과 근심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무거운 짐을 벗고
예수 안에서 자유를 누립니다.
어차피 세상 것은 잠깐이고
예수님만이 영원하시기 때문에
영원을 소망하며 새 힘을 공급받아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된 자유는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예수의 이름만이 영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인류 역사의 시작이요,
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영원 영원합니다.
오늘 본문이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돌 비석에 새겨진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영원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영생의 소망을 갖고 삽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에게 소망이 있답니다.
무슨 소망이 있답니까?
구원의 소망입니다.
부활의 소망입니다.
천국의 소망입니다.
구원과 부활과 천국의 소망은
새 언약의 불변성과 절대성에 근거하는
소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복음을
담대히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은 어디를 가시든지
예수 구원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길 원합니다.
'담대히'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르레시아'라고 합니다.
이것은 '솔직함'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복음을
솔직하게 증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천국 복음을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외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곳에 놀라운 구원의 기적이 있습니다.
저는 전도를 하면서
솔직하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솔직하게 제 치유 간증을 하고,
솔직하게 천국과 지옥의 실재를 말합니다.
솔직하게 전도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심지어 스님들 앞에서도
솔직하게 지옥의 실재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분들에게 예수 믿어 천국에 가시라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특히 학생들에게도 천국 복음을 전했습니다.
서울 대학에 가서도, 고려 대학에 가서도,
연세 대학에 가서도
이 지역에 있는 경희 대학, 수원 대학,
한신 대학, 오산 대학 등 각 대학에 가서도
솔직하게 예수 천국을 전했습니다.
놀랍게도 학생들이 얼마나
구원의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지요.
그러니까 제게 전도의 기쁨이
차고 흘러넘칩니다.
이 기쁨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 중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이 자유의 기폭제가 됩니다.
요즘 우리 교회 어린이들이
전도에 관심을 갖고 있답니다.
특히 놀이터에 가면
전도할 아이가 없나 하고
자꾸 관찰을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눈치를 챘습니까?
그런데 왜 그럴까요?
이 아이들이 예배 시간에 전도에 관한
설교 말씀을 들으며
왜 전도를 해야 하는지, 전도가
얼마나 귀한 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아이들은
이런 은혜 가운데 잘 자라서
우리보다 더 유능한 전도자가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아이들을
얼마나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겠습니까?
몇 년 후 우리 교회가 신도시에 들어가면
이 아이들의 전도로
학생회가 크게 부흥할 것도 믿습니다.
그리고 내 자녀가 복음을 전하는
아이들이 되면
올바로 자라서 올바른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이
열정적인 전도자라고 하는데
우리 자녀들도 전도하는 대통령까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면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파르레시아’
‘담대히’ ‘솔직하게’의 은혜가
충만하길 바랍니다.
누구라도 솔직하다면
예수 구원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솔직하다면 사람들 앞에서
천국과 지옥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며,
구원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어떻게 됩니까?
이것이 누가복음 9:26,
예수님의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바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정말 이 말씀이 믿어진다면
우리는 불신자들 앞에서 솔직하게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부끄러움이 없이
전파해야 합니다.
가끔 이진규 원로 목사님과
김금숙 사모님이 우리 교회에 오셔서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그분들은 이미 우리 교회에 등록을
하셨습니다.
단지 강원도 문막에 살고 계셔서
매 주일 오시질 못하시고
온라인 실시간 예배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오실 때마다 예배를 드리신 후
함께 노방 전도를 나가십니다.
이분들과 함께 할 때는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요.
일전에는 오산 물향기 수목원에 가서
두 부부가 함께 전도를 했습니다.
숲도 좋아 기분도 상쾌하더군요.
이게 바로 지상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도 언젠가는 예배 후
저와 함께 전도를 나가신다면
신앙생활이 얼마나 행복할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매주 그렇게 하시는
남자 집사님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에 많은 전도 헌신자가
들어오길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절대로 전도를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스스로 전도에 동참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분이 저와 함께 전도하여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갈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전도는 맛을 본 사람만이
그 맛이 얼마나 달콤한지를 알게 됩니다.
오늘은 전도에 대해
좀 더 강하게 말씀을 드리는 것 같습니다.
자꾸 전도하자고 하면 당신이나 잘하면 되지
뭘 그렇게 남에게 강조하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한국 교회를
전도하게 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당 우리 교회 이찬수 목사님도
전도 설교 외에는
많은 부분 개혁적인 내용으로
한국 교회를 향해 뼈아프게 외치고 있더군요.
전도에 관한 내용도 외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쉽게도 오늘날 그리스도인 중에서
예수님과 천국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오직 자기중심의
쉬운 신앙생활에 젖어 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도 그런 사람들을
부끄러워하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고
예수님의 엄중한 말씀입니다.
결국 전도를 싫어하는 것은
예수님을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그리스도인의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입니다.
대개 전도를 안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두 가지 어려움 때문입니다.
첫째는 전도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전도를 해도
교회 부흥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 수평 이동 성장은
두 가지가 쉽습니다.
첫째는 이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쉽습니다.
둘째는 굳이 노력을 안 해도
교회 건물이 크고 교인들이 많으면
저절로 사람들이 자기 교회로
오기 때문에 쉽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전도하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전도해야 합니다.
교회 부흥이 쉽게 안 되어도 전도해야 합니다.
사실 한 사람이 예수를 믿으려면
적어도 7, 8회의 전도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국 교회가 불신자 전도에 전념하면
지금도 충분히 교회가
부흥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패배 의식에 젖어
너도나도 전도에 손을 놓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실제로 전도를 해보면
전도를 안 받아본 사람들이
대다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들이 어디로 갑니까?
불타는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때문입니까?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않는 우리때문입니다.
정말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지금 많은 그리스도인은
자기 구원 하나로 안심하며
만족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목회자들도 이미 믿는 성도들만 대상으로
설교하고 기도하며
성경 공부를 시키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하고 있다고 여기지 말고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제가 여러 교회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했습니다만
모든 교회가 이런 상태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담임 목사님들은
전도를 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목회자나 성도나 부끄러움이 없이
솔직하게 복음을 전하길 원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미 예수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지 말고
교회 밖에서 예수님을 알아야 할
사람들에게 말씀을 외치길 바랍니다.
본문 13-15절입니다.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사람들이 언제 얼굴에 수건을 씁니까?
치과 치료를 받을 때 수건을 덮습니다.
그리고 죽었을 때 수건을 덮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누가 수건을 썼다고 말씀합니까?
모세가 썼다고 합니다.
모세가 왜 수건을 썼습니까?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
그 이유를 읽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다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십계명 두 돌 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 십계명을 받았을 때
그의 얼굴에서는 신비한 광채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빛이 반짝이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자기를 신으로 섬길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얼굴에서 비치는 빛을
못 보게 하려고 수건을 덮어쓴 것입니다.
이처럼 모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율법의 대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수건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율법의 수건을 덮어쓴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 대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응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화제어를 만들어 낸 사람이 있습니다.
이화 여자 대학교수를 지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입니다.
지금 그분은 천국에 가셨지요.
하나님께서 딸의 불치병을
고쳐 주신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누가 그를 향해 이렇게 물었습니다.
"교수님은 너무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 속으로
곧바로 들어가지 못 하는 것은 아닙니까?"
이 질문은 많은 지식으로 인해
예수가 잘 믿어지지 않는 고통이 없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물음에 의미 있는 대답을 했습니다.
“지금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과거에는 세속적 삶의 가치에 대해 고민했다면
지금은 영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고민의 차원이 달라진 것입니다. ...
과거 내 책상에 사전이 있던 자리에는
지금 성경책이 놓여 있습니다.
얼마 전 출간한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에는
내 절실한 기도와 처절한 심정에서 나온
시들이 담겨 있습니다.
기독교에로의 회심 이후
내가 뭔가 주님의 사역을 한 게 있다면
그 시편들을 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어령 박사는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아오다가
예수님이 주신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아마 그분을 통해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도 내가 받은 구원의 복음을
적극적으로 증언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본문 16-18절입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런 찬송이 있지요.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주 말씀하시길 죄 사슬 끊겼네.
우리 자유 얻었네. 할렐루야.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그런데 이 자유가 어디에서 옵니까?
주의 영으로부터 옵니다.
바로 성령님이 주의 영이십니다.
성령은 진리를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는 예수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26에 말씀합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리고 요한복음 8:32에 말씀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한 번 따라 합시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이제 우리는 모세가 썼던
율법의 수건을 벗어 버리고
참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내 안에 율법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사는 성도는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은
점점 더 높은 단계의 영광으로
진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의 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같이
완전한 영광의 형체를
얻게 될 것입니다(빌 3:21).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그리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런 자유를 얻습니다.
물질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질병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세상 성공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육신의 쾌락으로부터 자유입니다.
그리고 점쟁이의 점괘로부터도 자유합니다.
사람들이 왜 점을 보고,
무당 굿을 하고, 산신제를 지냅니까?
마귀에게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귀신과 조상의 노여움을 사서
큰일 날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결코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예수 십자가 보혈로 모든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살다가
자유 가운데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고린도후서 5:17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자기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은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나는 예수 중독자가 되어야 하겠다.
...우리는 예수의 중독자가 되어
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죽자.
우리의 전 생활과 생명을 주님 위해 살면
주 같이 부활 되는 주의 종이니
주만 위해 일하는 자가 되고
나의 일 되지 않게 하자.“
설교 성시를 묵상하시겠습니다.
<자유>
자유를 꿈꾸는 내 영혼
또한 날마다 행복
오직 예수로 내 인생 정점에 올라
자유의 날개를 활짝 편다
오르고 또 오르면
내님 예수가 계신 그곳
때마다 자유의 은총
넘치는 사랑으로 즐거워하리
그래서 진리의 숲속에서 거하고
그래서 성령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