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봉을 앞두고

[주오돈]

수리봉을 앞두고

구월 넷째 일요일 아침 일찍 마산역 광장으로 나갔다. 이틀째 연이어 역 광장으로 출두한 셈인데 어제는 집에서 필요한 찬거리 시장을 보려고 길을 나서 용무를 마친 뒤 곧장 집으로 복귀했다. 현관에 짐을 부려 놓고 다시 길을 나서 수산교 근처 낙동강 강가를 거닐다가 돌아왔다. 날이 바뀐 일요일 마산역 행차는 광장 모퉁이에서 출발하는 진동 방면 농어촌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번개시장 들머리에서 김밥을 마련해 의림사로 가는 74번 버스를 탔다. 어시장과 댓거리를 거치면서 나이 든 분들이 더러 탔다. 이른 사간이라 새벽 장터 물건을 내다 팔거나 생필품을 마련해 가는 길인 듯했다. 진동 환승장을 둘러 진북면 소재지 지산에서 예곡을 거쳐 요양병원 앞을 지났다. 개울 건너 인곡 전원마을은 외지에서 들어온 이들이 그림 같은 집을 지어 노후를 보냈다.

저만치 의림사가 보인 길가에는 부도 탑이 세 기 세워져 있었다. 빗돌로 새겨 남긴 사료가 없어 사리로 안치된 입적 고승이 누군지 알 길 없었다. 부도와 얼마간 비켜 길 건너편에는 당간을 내걸었던 지주가 한 쌍 남아 있었다. 돌로 세운 지주이니 석 당간 지주로 불리는데 의림사가 전란을 겪으면서 쇠퇴기를 맞은 적 있지만 한때 암자를 여럿 거느린 무척 큰 사찰이었음을 방증했다.

부도 탑과 석 당간 지주에서 가까운 산기슭에는 사회복지법인 요양원이 있었다. 아까 개울을 건너기 전에는 도시 근교에서 규모가 큰 요양병원이었고 거기는 요양원이었다. 스쳐 지나며 듣기로 시설이나 운영 면에서 꽤 좋은 평을 받는 요양원이다. 일요일임에도 요양보호사 셋이 출근길 버스를 타고 왔다. 상냥하고 밝은 모습의 아주머니들은 기사한테 인사를 깍듯이 하고 내렸다.

버스가 의림사 일주문에 바싹 다가갔을 때 나를 내려준 기사는 승객이 아무도 없는 빈 차를 돌려 나갔다. 나는 차피안교를 건너 계단을 디뎌 의림사 경내로 들었다. 종무소 추녀에 걸린 풍경은 파란 하늘이 배경이 되어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불 때만 종이 흔들리기에 쇳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법당 뜰에서 손을 모으고 염불당 앞의 석탑과 잎이 넓은 파초를 둘러봤다.

삼성각 주변 산언덕에는 선홍색 꽃무릇이 피었다가 저무는 때였다. 수형이 아름답고 높이 자란 도 지정 기념물 모과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열매는 노랗게 물들어갔다. 법당과 요사채 추녀 끝 높다랗게 달린 범종은 치올려보고 수리봉으로 가는 등산로로 들었다. 풀이 무성한 여름에는 산행객이 다니질 않아 등산로가 묵혀졌다가 성묘객이 다녀간 이후 희미하게 드러나는 곳이었다.

등산로 길섶 산소는 아직 벌초를 마치지 않아 수풀을 조심스럽게 헤쳐서 소나무와 활엽수가 섞인 혼효림 산기슭으로 올랐다. 아까 들머리에서는 며느리밥풀꽃을 몇 가닥 보았는데 산마루로 오르니 개체수는 적어도 쑥부쟁이꽃이 피었다. 잎줄기와 꽃송이가 방아풀을 닮은 산박하꽃은 연한 보라색이었다. 산박하는 흔했는데 방아풀이 그렇듯 한여름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 듯했다.

잘록한 고갯마루에서 산등선을 따라 수리봉으로 오르니 등산로는 묵혀져 개척 산행이다시피 숲을 헤쳐 갔다. 낙엽이 진 겨울이면 산마루 좌우 골짜기가 드러날 텐데 나뭇잎이 가려 발아래 풍경을 볼 수 없었다. 산등선을 한참 올라 가파른 암반 지대가 드러나 수리봉이 가까운 듯했다. 십여 년 전 수리봉을 한 차례 오르다가 고소 공포로 다리가 후들거려 혼쭐났던 적이 떠올랐다.

바위 아래서 배낭의 김밥을 꺼내 먹으며 한동안 묵상에 잠겼다. 곰곰 생각해 보니 수리봉을 넘어 부재로 가는 임도를 걷기는 무리였다. 방향을 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 산등선을 따라 아까 올랐던 산기슭으로 내려가니 그새 산소에는 자손이 찾아와 벌초를 마치고 떠난 흔적이 보였다. 해우소에서 이어진 뜰에는 부모를 따라왔을 아이들이 뛰놀고 법당에서는 독경 소리가 들려왔다. 23.09.24

[새신발]

예전 함께 갔었던 사찰이구나.
법당 앞 이국적인 파초가 멋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