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짧으니까 쓰죠.구분을 지을때 그 나라가 활에대한 사회와 병영의 문화적 거리가 단절되지 않은 나라일수록 총과 활의 혼성 배치는 근대까지 계속 이어져왔음을 증명하는 사례가 있습니다.조선과 투르크가 특히 그렇죠.조선은 그렇다 쳐도 투르크는 근대말까지도 유럽에 군사사절을 파견하기도 하고 유럽식 군제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있지만 궁수를 폐지하진 않았습니다.
궁수의 집단운용을 말씀하셨는데 그방면은 오히려 총사들로 구성된 집단이 동시사격이란 집단운용에 있어서 훨씬 정확하고 쉽게 운용할수 있습니다.사람의 힘으로 잡아당기는 활은 집단 운용에 있어서도 총보다 훈련기간이 훨씬 깁니다.방아쇠로 구령에 따라 발사하는 것과 당기고 있다가 튕겨쏘는것엔 분명히 현격한 차이가 나죠.물론 16세기 이후에도 활을 포기하지 않은 몽골이나 영국 조선같이 활과 친숙한 나라는 문제가 안되겠지만 활과친하지 않은 나라들에 대해선 여전히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조총이나 머스켓 같은 총들의 경우 그 시대에는 평균 10발 정도 쐈다고 합니다 활 훈련을 받을때 처음 1달 동안은 시위당기는 법의 훈련을 받은 후 사대에 올라서고 이후 보통 1달후면 140m를 쉽게 날린다고 합니다 구한말 당시 샌즈라는 미국인의 말에 의하면 자기는 조선의 활을 당기기 힘들어했는데(다른 활에 비해서라는 걸로 보아 서양활을 당긴 경험은 있는 것 같습니다)조선인들은 아주 쉽게 당기고 100~300야드까지 잘 맞췄다고 하는데(실제로 구한말 영상을 보니 당기자 마자 활을 쏘더군요)근력의 차이가 엄청났다기 보다는 당기는 법을 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활은 총과 달리 동작의 숙련이 아닌(물론 당기는 동작은 기본적으로 숙련해야 겠죠) 탄도에 대한 감의 숙련이 중요해서 그렇겠지요. 어느 정도 힘으로 어느 각도로 쏘면 어디까지 나간다 바람이 불면 어떻게 탄도를 수정한다 이 감각을 체득하는건 단순히 구령에 맞추어 동작을 숙력한후에 눈에 보이는 대열을 향해 방아쇠를 누른다 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총의 장점이 기본적인 안전교육과 각 동작의 숙련만 있다면 단지 눈에 보이는 방향을 향해 방아쇠만 당기면 된다이고 이 정도는 누구든지 해 낼수 있습니다.(그게 명중 하냐 안하냐는 별개 문제죠 어짜피 집중운용 이니까요) 여기서 중요한건 대열을 유지하며 동시에 사격을
해야 함 이지만 이건 소부대 지휘자가 항상 옆에서 구령을 붙여주고 대열을 이탈하기 힘들게 하는 압박감만 주면 됩니다. 이건 대열을 유지해야 하는 모든 냉병기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문제이고 초기 머스킷이나 어큐버스로 무장한 대열도 이전의 냉병기와 마찬가지로 대열이 누가 먼저 무너지냐의 대결이니까요. 단지 총이 활보다 짧은 거리상에서 적과 마주본 상태에서 동료의 죽음을 보면서도 대열을 유지 하고 사격을 하니 힘들지 않을까가 아니라 그 시대 모든 병과가 그 두려움을 안고서 대열을 유지 했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런건 사기, 지휘관에 대한 충성심, 대열 이탈이 힘든 분위기 조성 등으로 해결하는거죠.
흠 근데 문제는 그 화살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 것 같은데요 서양의 경우는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장전 같은 경우 여진족이나 일본애들이 어떻게 어떻게해서 쳐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아기살의 경우는 그럴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치지 못해서 맞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물론 역시 활과 총중 누가 좋냐고 비교하면 당연히 총이 좋지만 후장식 단발 소총이 나오기 전까지는 활과 같이 사용하는게(물론 총포수 숫자가 더 많고 궁수는 어느정도 보조역활만)낳을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일단 연사력과 유효사거리도 있지만 꼭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적의 돌격을 어느정도 저지시키는 역활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전상용님/ 여기서 아기살 이야기가 나오는것도 좀 우습지만 화살을 쳐낸다는게 사수가 한명인 상황이면 어찌 어찌 방어자의 실력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의 투사병기 체제라는게 집단운용을 전제로 사용되는 건데 한발 쳐낸다고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죠. 솔직히 쳐낸다는거 자체가 별 의미 없습니다. 궁병의 대규모 운용의 난제가 바로 궁병들 개개인의 실력이 평균적으로 비슷해야 한다는 점이거든요.(기준치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모두 이 기준을 통과해서 비슷한 곳에 탄착 가능한 수준) 궁수들을 이렇게 일정 수준 이상으로 모두 훈련 시키기 힘들다는게 난제니까요. 그렇지 않고 중구난방의 실력이라면 위협은 커녕 화살낭비
네 그런 장점 때문에 저도 화승총 시대에도 화승총이 주력이 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선의 입장에서는 바로 활을 버릴수 없다고 생각됩니다(그리고 조선 각궁을 롱보우와 비교해가면서 설명하는 것도 그렇고요)또 자쿠워리어님 비노체님 다른 것은 다 저도 맞다고 생각하지만 총의 경우도 위력을 유지하면서 계속 발사하기 힘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일단 총신에 열이 심하게 나서 정확률이 가면 갈수록 떨어지고 심지어는 그 열기가 사람의 집중력을 흐리게 해서 일본에서는 오줌 같은 것으로 식히게 했다고 하더군요 또 어느 책에서는 화약 찌꺼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데 이것은 확인해 봐야겠고
유럽전장에서의 총 문제인데 왜 자꾸 각궁을 꺼내시나요. 지적하신 총의 문제점은 예 확실히 그런 문제가 있었고 지금도 그 문제는 존재합니다. 연사에 따른 총열의 과열 문제는 고르지 못한 총열 밀도에 의해서 한쪽으로 지나치게 팽창하여 휘기, 총강 내부지름의 변화로 인한 문제 등 이 있겠죠. 이런 문제는 현대에 이르러선 저정도의 문제가 발생할 요지가 있는 지원화기의 경우엔 총열을 바꿔준다로 해결 합니다. 나머지 총기는 그정도 까지 가지는 않는다 이구요. 총열의 오염문제 역시 과거에도 존재했고 오늘에도 존재하죠. 이건 화약이란 물건이 본질적으로 완전연소를 안하다라는데 기원 합니다. 과거 무연화약이 없던 흑색화약 시대엔
이 경향이 더욱 강했죠. 불완전 연소후의 찌꺼기들(탄소)이 총강내부에 들러붙어 있기도 하고 아예 탄자의 원료인 납이 총강에 들러 붙는 경우도 있었습니다.(요센 자켓을 입히거나 수지등을 코팅하여 이런 문제는 없음) 이런 문제는 평시 교육을 잘 시켜서 쓰고 나면 꼭 청소를 하는 습관을 기르면 해결됩니다. 과거 월남전에서의 m16이 사전 교육이 잘안되서 오염된 총기로 인한 잼 트러블이나 제대로 발사가 안되고 약실내부에서 폭발하는 문제가 있었죠. (구조적 개선과 더블어 병사들의 교육으로 해결함)
이 문제는 전투지속시간이 얼마나 오래가냐에 영향을 받습니다. 시간이 길면 길수록 총열의 과열도 총열의 오염도 심해지겠지만 단위 제대의 총기가 전반적으로 이런 경향하에 사격이 불가능해 지는 시점보다는 전투 종결시간이 빨랐을것 같네요. 활의 경운 팔이 피곤해서 당기는거 자체가 힘들어지죠.(중간에 쉴수 있는 시간이 없다면) 활의 경우 인력으로 당기는데 한계가 존재하는데 이 횟수가 그렇게 많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한 30~40발 정도) 뭐 이시대의 전장 환경상 활을 쏠수 없을 정도로 활을 쏜다던가 총이 제대로 발사 안될 정도로 발사한다던가 하는 일은 드믈었겠죠.
네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 비노체님(비노치라고 하셨던가요?)제가 각궁 얘기를 꺼내는 것은 가끔 이런 총과 활에 대한 논쟁이 나올때 유럽에서만 끝나지 않고 조선쪽 얘기도 많이 나오거든요 뭐 솔직히 조선군도 결국 조총병 위주로 가는 것을 보면 확실히 총이 활을 대체하는 것은 맡습니다 활도 분명 질사법 같은 집단 대형을 이뤄서 쏘는 방법도 있지만(질사법,근사법,절사법을 보면 총포수 집단 운용과 비슷하더군요)그게 한계가 있으니 조선 후기에 조총 위주로 변하니까요 그런데도 왜 궁수가 남아있어냐 이것을 보면 아직 완전히 없애기는 무리가 있었기 떄문이라고 생각하기 떄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첫댓글 짧으니까 쓰죠.구분을 지을때 그 나라가 활에대한 사회와 병영의 문화적 거리가 단절되지 않은 나라일수록 총과 활의 혼성 배치는 근대까지 계속 이어져왔음을 증명하는 사례가 있습니다.조선과 투르크가 특히 그렇죠.조선은 그렇다 쳐도 투르크는 근대말까지도 유럽에 군사사절을 파견하기도 하고 유럽식 군제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있지만 궁수를 폐지하진 않았습니다.
궁수의 집단운용을 말씀하셨는데 그방면은 오히려 총사들로 구성된 집단이 동시사격이란 집단운용에 있어서 훨씬 정확하고 쉽게 운용할수 있습니다.사람의 힘으로 잡아당기는 활은 집단 운용에 있어서도 총보다 훈련기간이 훨씬 깁니다.방아쇠로 구령에 따라 발사하는 것과 당기고 있다가 튕겨쏘는것엔 분명히 현격한 차이가 나죠.물론 16세기 이후에도 활을 포기하지 않은 몽골이나 영국 조선같이 활과 친숙한 나라는 문제가 안되겠지만 활과친하지 않은 나라들에 대해선 여전히 문제가 있습니다.
활 10발 쏘는 거랑 총 10발 쏘는거랑 드는 힘의 차이가 아닐까요. 총은 언제나 최소한 어느 정도의 정확도가 보장되지만 활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틀리고 몇발쏘면 힘들어서리...(양궁 한 몇대만 쏴봐요 다음날 팔아파 뒤져여..)
그러고보니 조선 궁수가 힘딸려서 40발 이상 쏘기 힘들다는 소리를 어디서 들은것 같기도...
일단 조총이나 머스켓 같은 총들의 경우 그 시대에는 평균 10발 정도 쐈다고 합니다 활 훈련을 받을때 처음 1달 동안은 시위당기는 법의 훈련을 받은 후 사대에 올라서고 이후 보통 1달후면 140m를 쉽게 날린다고 합니다 구한말 당시 샌즈라는 미국인의 말에 의하면 자기는 조선의 활을 당기기 힘들어했는데(다른 활에 비해서라는 걸로 보아 서양활을 당긴 경험은 있는 것 같습니다)조선인들은 아주 쉽게 당기고 100~300야드까지 잘 맞췄다고 하는데(실제로 구한말 영상을 보니 당기자 마자 활을 쏘더군요)근력의 차이가 엄청났다기 보다는 당기는 법을 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전통 국궁을 배워볼라고 합니다 전에 송무궁이라고 활 만드는 곳에 가서 국궁을 배우는 곳을 알게되서요
학교 양국부에 놀러가서 한 20대 쏴봤는데 엄청 아프더군요ㅡㅡ; 당기는 거 보다 당기면서 조준하는게 진짜 아프더라구요... 물런 10m앞에 있는 목표물 쏘는 것도 힘들고요 ㅡㅡ;;
활은 총과 달리 동작의 숙련이 아닌(물론 당기는 동작은 기본적으로 숙련해야 겠죠) 탄도에 대한 감의 숙련이 중요해서 그렇겠지요. 어느 정도 힘으로 어느 각도로 쏘면 어디까지 나간다 바람이 불면 어떻게 탄도를 수정한다 이 감각을 체득하는건 단순히 구령에 맞추어 동작을 숙력한후에 눈에 보이는 대열을 향해 방아쇠를 누른다 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총의 장점이 기본적인 안전교육과 각 동작의 숙련만 있다면 단지 눈에 보이는 방향을 향해 방아쇠만 당기면 된다이고 이 정도는 누구든지 해 낼수 있습니다.(그게 명중 하냐 안하냐는 별개 문제죠 어짜피 집중운용 이니까요) 여기서 중요한건 대열을 유지하며 동시에 사격을
그렇지요.. 활을 쏜다는게 쉬운일이 아닙니다.위에분중에 양궁당겼더니 손가락 아프다고 한분 말처럼 쏘다보면 엄지손가락이 굉자히 아픈데다가..활이란게 참 어려운 물건입니다.
해야 함 이지만 이건 소부대 지휘자가 항상 옆에서 구령을 붙여주고 대열을 이탈하기 힘들게 하는 압박감만 주면 됩니다. 이건 대열을 유지해야 하는 모든 냉병기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문제이고 초기 머스킷이나 어큐버스로 무장한 대열도 이전의 냉병기와 마찬가지로 대열이 누가 먼저 무너지냐의 대결이니까요. 단지 총이 활보다 짧은 거리상에서 적과 마주본 상태에서 동료의 죽음을 보면서도 대열을 유지 하고 사격을 하니 힘들지 않을까가 아니라 그 시대 모든 병과가 그 두려움을 안고서 대열을 유지 했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런건 사기, 지휘관에 대한 충성심, 대열 이탈이 힘든 분위기 조성 등으로 해결하는거죠.
근데 국궁 이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스포츠는 아니더군요. 초기에 돈이 워낙 많이 들어가서...
쿼.. 파운드 높은 카본활로 대체해서 사고 화살도 순수죽시 말고 인조품 사서 쏴도 그럭저럭 쓸만하던데.. 화살은 개당 2500원 이상이고. 활은 이상하리 만치 가격이 높던데..
전에 들어보니 입회비만 10만 원이라나...
흠 근데 문제는 그 화살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 것 같은데요 서양의 경우는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장전 같은 경우 여진족이나 일본애들이 어떻게 어떻게해서 쳐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아기살의 경우는 그럴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치지 못해서 맞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물론 역시 활과 총중 누가 좋냐고 비교하면 당연히 총이 좋지만 후장식 단발 소총이 나오기 전까지는 활과 같이 사용하는게(물론 총포수 숫자가 더 많고 궁수는 어느정도 보조역활만)낳을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일단 연사력과 유효사거리도 있지만 꼭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적의 돌격을 어느정도 저지시키는 역활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전상용님/ 여기서 아기살 이야기가 나오는것도 좀 우습지만 화살을 쳐낸다는게 사수가 한명인 상황이면 어찌 어찌 방어자의 실력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의 투사병기 체제라는게 집단운용을 전제로 사용되는 건데 한발 쳐낸다고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죠. 솔직히 쳐낸다는거 자체가 별 의미 없습니다. 궁병의 대규모 운용의 난제가 바로 궁병들 개개인의 실력이 평균적으로 비슷해야 한다는 점이거든요.(기준치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모두 이 기준을 통과해서 비슷한 곳에 탄착 가능한 수준) 궁수들을 이렇게 일정 수준 이상으로 모두 훈련 시키기 힘들다는게 난제니까요. 그렇지 않고 중구난방의 실력이라면 위협은 커녕 화살낭비
나 다름없죠. 아큐버스, 머시킷의 경우엔 총 자체의 성능상 특출나게 뛰어날 수도 없을 뿐더러 전혀 엉뚱한 곳을 향해 쏘지 않는한 활과 같은 문제는 발생 할수 없죠. 총의 메리트는 일정 훈련만 소화하면 일정수준 이상의 부대를 뚝딱 뚝딱 뽑아내는게 가능하다라는 점입니다.
네 그런 장점 때문에 저도 화승총 시대에도 화승총이 주력이 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선의 입장에서는 바로 활을 버릴수 없다고 생각됩니다(그리고 조선 각궁을 롱보우와 비교해가면서 설명하는 것도 그렇고요)또 자쿠워리어님 비노체님 다른 것은 다 저도 맞다고 생각하지만 총의 경우도 위력을 유지하면서 계속 발사하기 힘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일단 총신에 열이 심하게 나서 정확률이 가면 갈수록 떨어지고 심지어는 그 열기가 사람의 집중력을 흐리게 해서 일본에서는 오줌 같은 것으로 식히게 했다고 하더군요 또 어느 책에서는 화약 찌꺼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데 이것은 확인해 봐야겠고
유럽전장에서의 총 문제인데 왜 자꾸 각궁을 꺼내시나요. 지적하신 총의 문제점은 예 확실히 그런 문제가 있었고 지금도 그 문제는 존재합니다. 연사에 따른 총열의 과열 문제는 고르지 못한 총열 밀도에 의해서 한쪽으로 지나치게 팽창하여 휘기, 총강 내부지름의 변화로 인한 문제 등 이 있겠죠. 이런 문제는 현대에 이르러선 저정도의 문제가 발생할 요지가 있는 지원화기의 경우엔 총열을 바꿔준다로 해결 합니다. 나머지 총기는 그정도 까지 가지는 않는다 이구요. 총열의 오염문제 역시 과거에도 존재했고 오늘에도 존재하죠. 이건 화약이란 물건이 본질적으로 완전연소를 안하다라는데 기원 합니다. 과거 무연화약이 없던 흑색화약 시대엔
이 경향이 더욱 강했죠. 불완전 연소후의 찌꺼기들(탄소)이 총강내부에 들러붙어 있기도 하고 아예 탄자의 원료인 납이 총강에 들러 붙는 경우도 있었습니다.(요센 자켓을 입히거나 수지등을 코팅하여 이런 문제는 없음) 이런 문제는 평시 교육을 잘 시켜서 쓰고 나면 꼭 청소를 하는 습관을 기르면 해결됩니다. 과거 월남전에서의 m16이 사전 교육이 잘안되서 오염된 총기로 인한 잼 트러블이나 제대로 발사가 안되고 약실내부에서 폭발하는 문제가 있었죠. (구조적 개선과 더블어 병사들의 교육으로 해결함)
이 문제는 전투지속시간이 얼마나 오래가냐에 영향을 받습니다. 시간이 길면 길수록 총열의 과열도 총열의 오염도 심해지겠지만 단위 제대의 총기가 전반적으로 이런 경향하에 사격이 불가능해 지는 시점보다는 전투 종결시간이 빨랐을것 같네요. 활의 경운 팔이 피곤해서 당기는거 자체가 힘들어지죠.(중간에 쉴수 있는 시간이 없다면) 활의 경우 인력으로 당기는데 한계가 존재하는데 이 횟수가 그렇게 많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한 30~40발 정도) 뭐 이시대의 전장 환경상 활을 쏠수 없을 정도로 활을 쏜다던가 총이 제대로 발사 안될 정도로 발사한다던가 하는 일은 드믈었겠죠.
아 조선의 경우엔 화약의 수급이란 문제가 있었겠네요. 화약이 비싼 물건이다 보니 뭐 이건 서양에서도 칠레초석이나 공중질소 고정법이 발견 되기 이전엔 마찬가지 였지만요. 이건 서양국가 들과 조선의 군비 지출규모적인 문제겠죠.
네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 비노체님(비노치라고 하셨던가요?)제가 각궁 얘기를 꺼내는 것은 가끔 이런 총과 활에 대한 논쟁이 나올때 유럽에서만 끝나지 않고 조선쪽 얘기도 많이 나오거든요 뭐 솔직히 조선군도 결국 조총병 위주로 가는 것을 보면 확실히 총이 활을 대체하는 것은 맡습니다 활도 분명 질사법 같은 집단 대형을 이뤄서 쏘는 방법도 있지만(질사법,근사법,절사법을 보면 총포수 집단 운용과 비슷하더군요)그게 한계가 있으니 조선 후기에 조총 위주로 변하니까요 그런데도 왜 궁수가 남아있어냐 이것을 보면 아직 완전히 없애기는 무리가 있었기 떄문이라고 생각하기 떄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