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3가 주변에서는 많은 추억이 있다.
물론 예전에는 '서울극장'이 있어서 가끔 심심하면 극장구경을 즐겼다.
그리고 또한 고궁으로 가고 싶으면 비원등으로 가기도 하고 ,3가 지하철 역쪽으로 가면
반딧불이라는 '서점'이 있어서 그서점에서 실 큰 책을 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을 구입하여
집으로 가지고 오기도하고........
특히 서점이라면 광화문의 지하에 있는 '교보문고'서점을 즐겨 찾곤 하였다.
거기 서점에 가면 맨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
야~~!!
저 수 많은 장서(藏 書)......
눈이 휘 둥굴려진다.
역시 서울은 대단한 곳이다. 저러한 책을 접할수가 있으니
실큰 책을 고르기전에 지금까지 몰랐던 책을 찾아보고 시간을 보내고 책을 구입하여
책을사고 보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는 시간이 많이 간다.
나는 이러한 추억들은 직장 퇴직 후의 나의 시간을 보내는 추억들이다.
직장에 있을때 또 다른 나의 모습들을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종로3가 역 주변에 대형빌딩도 있지만. 공무원 고시학원도' 주변에 있다. 종로3가에서 바로
북쪽의 출구에서 조금 올라가면 '행정고시학원'이 있었고, 또 다른 북쪽 출구를 통해서 가다
보면 '종로구청'으로 가는 골목길이 있다. 물론 음식점들도 즐비하다.
졸로구청을 못 가서 '대명행정고시학원'이 있다.
이 학원에서 줄곳 야간에 학원을 다니면서 '행정법,그리고 행정학 ,헌법'등을 공부하면서
승진시험을 준비하였던 학원이다. 물론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도 어렵게 이러한 책들을
줄기차게 공부하였던 터라 그렇게 어렵지는 않지만 ,
공무원 내부승진 시험이라 .....!
다 똑같은 머리에 실력도 비슷하고 서로 똑 같은 위치에서 어떤 사람은 '승진'(昇進)시험으로
승진이 되고 어떤 사람은 떨어져야 하는 두 갈레의 시비의 쌍곡선에서 울고 웃어야 한다.
그것도 모자라 ,이미 한국통신대학교 행정학과에 적을 두고 공부를 하고 있었던 시기이며
행정학과 그리고 사회과학에 어느 정도 공부는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한계급을 올라가야 또 다음단계에서 승진을 할수 있기 때문에 공무원의 승진시험은
한 마디로 박이 터진다. 어떤 사람은 승진을 해서 상사가 되고 어떤사람은 그 밑에서
결재판이나 들고 다니면서 굽신 거리면서 결재를 받어야하는 위치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서 그 추운 겨울에도 직장을 마치고 종로3가에 있는 학원을 찾아 다니며 저녁 10시가
되어야 강의가 끝나고 집으로 귀가를 하다보면 11시가 넘어서기가 일수이었다.
승진시험을 앞두고 약 6개월전부터 근 1년전부터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시험이란 ?
경쟁자와 경쟁을 해야한다.
한 문제가지고 싸워야 하며 ,0.01 가지고도 차이가나면 승진에 탈락이 되기도한다.
0.01이란 공직을 근무하는 동안 '근무평정'에서 표창, 가점, 근무평정점수등에서 차이가
날수 있는 점수들이다.
그러니 한 문제의 당락은 큰 점수의 비중을 차지한다.
한마디로 승진하면 '피'가 마른다. 그래서 승진하면 학연, 지연, 금력 , 등 오만가지 방법이
동원되었다.
이러한 공직의 어려운 고비를 거쳐 헤쳐나오기 까지 어려운 추억이 곧 승진의 시험이
유독 많이 생각이 나기도 한다.
특히 이곳 종로3가역의 주변에 있는 '대명고시학원' '행정고시학원'에서 어려운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하였고 도시행정의 첨단인 나의 직장에서 '도시행정론' 지방자치론등을 공부하면서
직장을 마칠수 있었던 추억도 힘도 들었지만 오늘날의 나를 있게큼 하여준 버팀목이 되기도
하는것 같다.
끝으로 가장(家長)이란 ?
가정을 지키기위하여 고통의 반과 공기의 반을 혼합으로 마시면서 그 수많은 시련속에서
공직의 정년을 마쳤던 같다. 그래도 공직의 보람은 내 삶의 최고의 가치있는 보람이다.
영월의 '청영포'가 있는서강-단종의 한이 서린곳
첫댓글 만장봉님 학구파이세요.
그 행정고시학원과
공평빌딩은 없어지고
새로운 빌딩이 생겼어유.
그 근처에 있었던
이문설렁탕도 유명한
곳이었지유.
공직자로서 추억도
부럽습니다.
저는 육군 중위 때
국가에서 주는 월급을
받은 후 나랏돈을 월급
으로 받아보지 못했습
니다.
만장봉님이 부럽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행복한 낙향 시간이 되
시기 바랍니다.
건강이 제일입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
오 이문설렁탕!
자주 갔었어요 ㅎ
법도리님 ...........
감사합니다 심심하니 그간의 추억을 그려보았습니다
참 노력은 많이 하였던 것 같습니다.
법도리님도 젊었을때에는 한가락을 하였을 것 같습니다
육군중위 .....
@거리두기 학원에 다닐때 먹어본기억이 남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은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젊은날의 낭만이 깃든 추억의 거리입니다.
지금도 가끔 지나면서
오랜세월 되돌려 보곤 합니다
삶의 보람이자 최고의 가치로 꼽으며
천직으로 여겼을 님의 공직생활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지나다니면선 보면은 크나큰 빌딩이 들어섰더군요
참 잊기 힘든 지나간 추억입니다
공부도 하고 승진도 하니 ,내삶이 즐겁지요
봉급도 올라가고 ,직장에서 대우가 달라짐니다 ..ㅎㅎ
네
차분하게 잘 읽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오신 흔적이 구석구석 보입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래가 공부를 좋아하니, 힘은 들어도 .....
즐거웠습니다
종로에 학원들이 많았고 지금도 곳곳에 학원들이..
저도 광화문,무교동, 종로 그 언저리에서 학창시절, 젊은시절을
보냈지요. 님이 열심히 살아오신 흔적들이
남아있는 곳, 지금은 많이 변했더군요.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대학에 들어갈때에도 종로에 있는 입시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직장에 들어가서는 승진공부를 하고,평생공부만 한것같습니다
평생을 누구한의 빽으로 살지를 않았고 시험으로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열심으로 잘 살아 오셨네요
에효...가장의 무게...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
감사합니다
한번도 흔들림이 없는 가장의 책임과 의무 ...
굳건히 지켰습니다
전 한양 추억은 전무하니
그저 청영포나 구경하고 갑니다
아 단종의 한이여~
영월의 단종의 애사 .....
한많은 단종의 유배지였지요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더군요
감사합니다
잔잔하게 써 내려가신 만장봉님의 지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이란 곳을 처음 가 보았습니다.
그 전에는 영화를 볼 때, 대한뉴스나 영화의 장면에서
그리고 제가 읽는 소년 잡지 <소년 세계>와 <새 소년> 화보에서만 보았던
서울의 거리.
실제로 보고선 무척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 빌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다기에
마치 재크의 콩나무 줄기처럼 하늘까지 닿아 있을 줄 알았거든요.
당시에야 마천루란 어휘가 있는 줄도 몰랐지만
알고 난 뒤의 표현으로는 마천루처럼......
높아야 겨우 7-8층 몇개.
대부분 4-5층이나 2-3층.
에게......
제가 살던 이 나라의 남쪽 끝 군소재지, <고흥>엔
당시에 2층 건물이 정자 두 곳을 제외하면
단 하나도 없었지만 그 촌 계집아이는
간도 크게..... 거기에 눈까지 높아서
서울을 보고 참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상상 속의 서울의 거리는 더 넓고,
더 근사했으니까요.
호남선의 야간무임승차로 올라가서 고향으로 낙향할때까지
한시도 소홀한 인생을 산적이 없습니다
항상 긴장을 하고 ,책을 잡아야하고
서울에 가서 원없이 공부를 하였다고 자부하여 봅니다
감사합니다
승진시험.
우리 교사들은 승진시험이 없습니다.
한때, 잠깐 교감승진 시험이 있긴 했지만
부작용이 많아 한시적으로 끝났습니다.
승진에 뜻을 둔 교사들이 아이들 공부는 뒷전.
시험 준비에 매달리고,
방학이면 만장봉님께서 말씀하신 그곳의 학원에
교감 승진 관련하여 수강하러 올라갈 뿐 아니라
심지어 병을 핑계로 휴직을 하고 올라가기도 했으니까
그 부작용이 무척 컸지요.
우리 교사들의 승진은 <벽지 근무 점수>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연구 점수-수업연구 대회나 경연대회 수상, 그리고
대학원 학위와 논문과 저서.
근평,
그리고 벽지점수입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연구점수가 만점에 가까우면
승진대상자에게 근평은 알아서 줍니다.
그래서 근무지 점수(벽지 점수)가 그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저는 대학원 학위 취득 점수가 승진 점수에 가산되지 않았을 때
이미 학위 취득을 하였습니다.
가산점에 대학원 학위 점수가 포함되자 승진을 꿈 꾼 교사들이
너나 없이 대학원에 진학하였지요.
그리고 제겐 일반교사들이 따기 힘든 두 권의 저서도 있습니다.
사실은
잠시 계약제교사를 하면서 교직의 승진이라든가?
여타 많이 궁금했는데 , 종이등불님의 자세한 설명에 이제는
많이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라도에서 벽지점수를 얻은 분들이 많이 승진을 하더군요
그리고
대학원을 많이 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였튼 2권의 저서도 있고 대단하십니다
선배들이 안타까워했지요.
벽지에 보내 주겠다-오래 전에 서로 벽지에 가지 않으려고 해서
벽지 점수를 승진 점수에 포함시키자
그야말로 벽지는 신의 자식들만 갈 수 있는 곳으로 변했답니다.
더군다나 밀양에는 출퇴근 가능한 벽지가 제법 있었는데
자가용만 있으면 벽지라고도 할 수 없지요.
30분 거리니까요.
벽지만 2년 근무하면 근평은 자동으로 줄 테고....
하셨지만 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평교사로 남고 싶었으니까요.
외려 벽지 점수는 없지만 벽지와 진배 없는 작은 시골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전 승진에 작은 뜻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평교사로서의 제 한 평생을
저는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제가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 시절의 공무원 승진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하였튼 대단하십니다
학교는 승진이 그렇게 중요시 되는 직장이 아님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교무주임이나, 연구주임은 참 많은 일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도 공직을 끝나고 초등학교에서 참 좋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공직보다 더 고생을 많이 하는것 같더군요
월급도 더주고 ..ㅎㅎ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역시 실업계의 학교를 나오신분들이 대단하더군요
먼 이국에서 성공적인 삶이 아주 멋이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을하여서 성공을 하신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