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사 황토곰숲길
근래 주변에서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흔하게 본다.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서 가까운 반송공원으로 오르면 맨발로 걷는 이들이 간간이 보였다. 용지호수 공원에도 여러 갈래 오솔길이 있는데 맨발로 걷는 이들을 봤다. 용지문화공원의 꽤 넓은 잔디밭 바깥 둘레에 황토를 깐 산책길이 생겨 인근 주민들로부터 호응이 좋다고 들었다. 학교 운동장은 어디서나 흙이라 맨발 걷기에 알맞다.
나는 연전 거제로 건너가 교직 말년을 마무리 짓고 왔다. 거기는 조선소 배후 지역 면 단위였지만 학생 수가 많은 학교였다. 현지에 숙소를 정해 머물며 누구보다 일찍 새벽이다시피 출근했다. 매일 아침 제일 먼저 교정에 들어서면 야간 당직을 선 안 씨 노인은 국기를 게양해 놓고 맨발로 운동장을 걸었다. 그분이 일흔이 넘긴 나이에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맨발 걷기인 듯했다.
대전 대덕에 계족산 황톳길이 있다. 몇 해 전 초등 동기들이 그곳으로 가을 소풍을 떠났는데 나는 못 가 아쉬움이 남았다. 그 황톳길은 맥키스 컴프니 조옹래 회장이 꽤 많은 사재를 출연 외부에서 실어다 나른 다량의 황토를 등산로에 깔아 매년 보수를 거듭한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한국 관광 100선’에 들었고 여행 전문기자들이 뽑은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 33선’에도 들었다.
함안 출신 조웅래는 대전에서 기업을 경영하면서 황톳길로 유명해진 인사다. KBS ‘생로병사의 비밀’의 프로그램에서도 맨발 걷기 장소로 추천 소개되었다는 계족산 황톳길은 연간 100만 명 이상 다녀가는 대전 대표 관광지가 되었다. 얼마 전 중앙 일간지에 암 환자가 맨발 걷기로 건강을 회복했다는 기사를 봤고 그와 유사한 사례들은 흔히 접한다. 가히 맨발 걷기 열풍이 일고 있다.
창원에서 알려진 고찰로 불모산이 품은 성주사가 있다. 예전에는 불모산 정상도 거뜬히 올랐으나 요즘은 멀리서 바라만 보는 정도다. 대신 산허리로 둘레 숲길이 조성되어 마음만 내키면 무념무상 걸을 수 있다. 나는 봄에는 다른 산자락을 누비며 산나물을 채집하느라 찾을 겨를이 나질 않아도 여름은 더러 찾아갔다. 지난여름에도 영지버섯을 찾아내고 계곡물에서 더위를 식히곤 했다.
성주사에는 템플 스테이 숙소에서 성주교를 건너면 최근 황토곰숲길이 조성되어 여러 사람이 찾아 즐겨 걸었다, 예전부터 생긴 숲속 나들이 길의 일부에 황토를 깔아 맨발로 걸을 수 있도록 했다. 앞서 소개한 대전 계족산에 견줄 정도는 못 되어도 시민들의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는 황톳길이다. 나는 어디로든 나서기만 하면 넉넉히 걷기에 굳이 황톳길이나 맨발이 아니어도 좋았다.
구월 넷째 월요일이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에 문득 성주사 황톳길이 생각났다. 이른 시간에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서 성주사로 향했다. 집 근처 정류소에서 151번 버스를 타고 안민터널 사거리에 내렸다. 천선동 원주민이 떠나기 전 동신제를 지냈던 수문당 당산나무 앞을 지나니 남천 상류 냇바닥에는 달뿌리풀 이삭이 나왔다. 억새나 갈대를 닮았기도 했으나 약간 차이가 났다.
제2 안민터널 공사 현장 성주사 수원지에서 산문으로 들어 템플 스테이 숙소를 지나 성주교를 건넜다. 황토곰숲길을 걷고 나와 발을 씻으려는 한 사내를 만났다. 나는 등산화를 신은 채 시야에 들어온 지점까지 황톳길을 쳐다만 보고 숲속 나들이 길을 걸었다. 길섶엔 조경 관상용으로 심어둔 녹차는 파릇한 잎이 드러났다. 활엽수가 삭은 나무에 붙은 운지버섯이 보여 몇 줌 따 모았다.
안민고개에서 시루봉 가는 북향 산등선 숲을 두어 시간 걷고 아까 황토곰숲길 들머리로 내려서니 단체 조끼를 입은 여성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담당 공무원과 함께 성산구 통장 협의회에서 환경정화 캠페인을 나왔더랬다. 맞은편에는 지역구 국회의원도 수행원을 데리고 다가와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불모산동으로 가면서 길섶에 핀 쑥부쟁이꽃 무더기를 봤다. 23.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