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의 시
선율 없이도 이미 노래였던 詩 시인과 노래꾼은 하나였더라
비디오 천국에 누가 시를 소비하나 그럼 결국 시는 사라지나?… 아니다
윤문성을 회복함으로써 살아남을 것이다
윤극영의 시는 그냥 읽어도 음악이다 그것들은 과거의 시이자 미래의 시다
노래는 시의 '오래된 미래'이므로
‘시인공화국 풍경들’을 오늘로 마친다. 이번 차례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인공화국 시민의 이름이 윤극영(1903~1988)이라는 것을 의아스러워 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동요 ‘반달’의 작사자이자 작곡자로 널리 알려진 윤극영은 사실 문학인의 이미지보다 음악인의 이미지가 더 짙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마지막 차례에 시민 윤극영을 일종의 대표단수로 내세움으로써, 시인공화국의 미래를 암시하고 싶었다
우리가 문학이라고 부르는 텍스트 세계에는 운문과 산문이라는 두 형식과 서정, 극, 서사라는 세 장르가 서로 가로지르며 존재한다. 서정, 극, 서사 세 장르는 유럽 문학에서 나온 개념이어서 동아시아 문학 전통에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편의상 이 거친 틀을 가져다 쓰기로 하자.
요즘 사람들에게 익숙한 대표적 문학 장르는 시, 소설, 희곡 따위다. 그러면 서정, 극, 서사라는 고전 장르와 시, 소설, 희곡이라는 현대 장르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대뜸, 서정이 시에 해당하고 극이 희곡이고 서사가 소설과 대응한다고 답하고 싶어진다.
일리가 있다. 확실히, 고전 장르로서의 서정, 서사, 극은 각각 현대 장르로서의 시, 소설, 희곡과 깊숙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서정과 시, 서사와 소설 따위가 고스란히 겹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이 서로 어긋나게 된 사정은 장르를 가로지르는 글의 형식(곧 운문이냐 산문이냐)에서 빚어졌다. 시는 대체로 운문의 동의어이고, 문학사 전반을 통해 운문은 산문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실로, 시는 문학사의 몸통이었다.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알려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나 영문학과 불문학의 맨 앞 자리에 놓인 ‘베어울프’와 ‘롤랑의 노래’는 이야기를 실은 서사 장르에 속하지만, 소설은 아니다. 그것들은 운문으로 된 서사, 곧 서사시다. 중세의 영웅 전설이나 연애이야기를 담은 발라드도 짧은 서사시였다.
그 시절에 이야기를 운문에 담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이 글자가 아니라 입을 통해 전달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구전되기 위해서는, 기억하기 편한 운문 형식이라야 했다. 인쇄술의 보급과 함께 책이 널리 퍼진 뒤에야, 서사 문학은 운문의 외투를 벗어버렸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소설이라고 부르는 장르다. 그러나 그 뒤에도 서정과 극은 여전히 운문에 의존했다. 산문 희곡이 예사가 된 것은 한 세기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최후까지 운문에 충실했던 장르는 서정, 곧 서정시였다.
그런데 지난 한 세기 동안 서정시에마저 산문성이 깊이 스며들었다. 그것은 현대인에게 시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읽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그리고 서정시의 산문적 해리(解離)는 문학의 전반적 위기 맨 앞 자리에 시를 밀어 앉히는 결과를 낳았다. 이야기의 재미와는 무관한 활자 더미에 운율마저 없다면, 이 비디오 천국에서 누가 시를 소비하겠는가?
그러면 시는 결국 사라질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시는 운문성을 회복함으로써 살아남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힘센 운문성은 선율에서 주어진다. 그것은 시가 노래로서 살아남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시가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시는 본디 노래였으니 말이다. 까마득한 태고까지 올라갈 것도 없이, 중세의 사계를 이리저리 떠돌며 삶의 희로애락, 사랑의 황홀과 아픔 따위를 노래했던 음유시인들은 시인이면서 가객이었다.
그러니 시인과 노래꾼은 본디 하나였다. 셰익스피어를 흔히 ‘에이번의 시인(Bard of Avon)’(에이번은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온-에이번을 가리킨다)이라고 부르지만, 그 때의 시인 곧 ‘바드(bard)’는 본디 악기를 들고 다니는 음유시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 전통에서도 시는 흔히 시가(詩歌)로 불렸다. 시는 곧 노래였다. 그리고 미래의 시 역시 노래일 것이다.
사실은 지금도 이미, 가장 힘센 시인들은 노래 작사자들이다.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인은 누구일까? 서정주라고 답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박목월이라고 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중등학교 교과서에 그 작품들이 실려 있어서 한국인 대부분이 의무적으로 친숙해져야 했던 시인들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이들보다 한결 더 깊고 넓게 한국인의 정서를 빚어낸 시인들은 강소천이나 이원수, 윤석중 같은 동시작가들이다. 이들의 동시들은 동요로 작곡돼 어린이들에게 끊임없이 불리고 있다. 강소천의 ‘태극기’ ‘꼬마 눈사람’ ‘산토끼’ ‘종이 접기’, 윤석중의 ‘어린이날 노래’ ‘우산’ ‘기찻길 옆’ ‘나란히 나란히’, 이원수의 ‘고향의 봄’ 같은 시들은, 선율에 실려, 한국인이면 누구나 외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이 가운데 한 이름을 이 마지막 차례에 내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상 동요 작사자로서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윤극영이라기보다 강소천이나 윤석중 같은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문자를 다루는 사람이었을 뿐, 선율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문자와 음악을 동시에 주무르며 한국인의 정서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는 김민기가 있다. ‘아침이슬’ ‘상록수’ ‘늙은 군인의 노래’를 비롯해 그가 만든 노래들은 웬만한 동요 이상으로 한국인에게 사랑 받고 있다. 그가 만든 노래극 ‘공장의 불빛’은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한 줄기 불빛이었다. 김민기는 시인 겸 작곡가를 넘어서, 스스로 무대를 밟는 노래꾼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그는 ‘시인공화국 풍경들’의 마지막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김민기 대신 윤극영을 골랐다. 윤극영은, 정치적 감수성을 제외하면, 김민기의 원형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가수였고 작곡가였고 시인이었고 극단 경영자였다. 김민기가 노래극이나 록뮤지컬이라는 이름으로 실현한 무대예술을 윤극영은 이미 1920년대에 창가극(唱歌劇)이라는 이름으로 이뤄냈다.
스스로 문자인(文字人)이었으면서 남의 시에 선율을 붙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들의 공통점이다. 고은이나 김지하의 텍스트들이 김민기의 선율에 힘입어 유명해졌듯, 적잖은 시인들과 동시작가들의 텍스트들이 윤극영의 선율에 기대어 한국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위에서 윤석중의 이름으로 거론한 동요들은 죄다 윤극영의 작품이다.
음악인으로서 만든 노래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스스로 가사를 붙인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이들은 닮았다. 김민기라는 이름이 대뜸 ‘아침이슬’이나 ‘상록수’를 연상시키듯, 윤극영이라는 이름은 대뜸 ‘반달’이나 ‘고기잡이’ ‘설날’ 같은 노래를 연상시킨다. 그렇다. 윤극영은 다른 무엇에 앞서 ‘반달’의 작곡자이자 작사자다.
내가 김민기 대신 윤극영을 내세운 것은, 그가 김민기보다 반세기 연장의 선배여서가 아니라, 노래 ‘반달’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그 점에서는 신중현이나 조용필처럼 영향력 있는 대중 예술가도 윤극영에게 비길 수 없다.
1924년에 발표된 ‘반달’은 한국 최초의 본격 동요라 할 만하다. 더불어 이 동요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 가운데 하나로 꼽힐 것이다. ‘아침이슬’을 모르는 한국인은 있겠지만,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으로 시작하는 ‘반달’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윤극영이 1962년 ‘사상계’에 연재한 회고록에 따르면, ‘반달’은 시집 간 맏누이의 부고를 듣고 처연한 마음이 돼 만든 노래다. 그 직전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백(李白)의 시에서 착상을 했다고 한다. 1973년 한국일보에 연재한 회고록에서는 시상(詩想)과 악상(樂想)의 실마리로 ‘나라 잃은 슬픔’이 보태졌다.
나라 잃은 슬픔이 실마리였든 아니었든, 노래 ‘반달’은 그 뒤 사사로운 슬픔보다는 망국민의 비애라는 공적 맥락 속에서 불려졌다. 2절의 마지막 구절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에서 한 가닥 희망이 암시되기는 하지만, 노래의 전반적 정조가 매우 을씨년스럽다.
사실 ‘반달’의 이런 정조는 윤극영 작품으로선 예외적인 것이다. 윤극영은 1백50여 편의 동시를 써 그 가운데 반 가량에 스스로 곡을 붙였고, 남의 동시에 선율을 붙인 작품의 양도 그 이상 되지만, 그의 손에서 나온 동시, 동요들은 대개 한 점의 그늘 없이 밝고 맑다. 윤극영의 문학과 음악은 2004년에 출간된 두 권의 두툼한 ‘윤극영 전집’에 묶였다. 제1권의 앞부분에 동시를 모았는데, 아이들 세계를 들여다보는 시선이 넉넉히 섬세하고 정겹다.
이 작품들은 또 거기 붙여진 선율을 모른 채 그냥 읽어도 자연스러운 호흡과 실팍진 리듬이 느껴질 만큼 음악에 밀착돼 있다. 그것들은 선율이 붙여지기도 전에 이미 노래였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과거의 시일뿐만 아니라, 미래의 시이기도 하다. 노래는 시의 ‘오래된 미래’이므로.
▲ 설날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셔요
우리 집 뒤뜰에는 널을 놓고서
상 들이고 잣 까고 호도 까면서
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기가
나는 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
우리 우리 내 동생 울지 않아요
이집 저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글: 고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