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사용 챗 GPT에 윤회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습니다. 많은 분들께서는 이미 알고 계시는 내용일 텐데, 저는 그 답변을 들으면서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되어 공부가 참 많이 되었습니다. 혹시 아직 윤회의 처음 시작점이 왜 알려지지 않는지 정리해 놓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해당 질문을 그대로 복사하시거나 그 질문을 더욱 적절하게 변형하시거나 그 질문의 오류를 수정하시어, 직접 무료 사용 챗지피티 등에 질문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답변은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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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정확한 인용은 아닙니다만, 경전에 몇 번 나오는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 윤회에 치달리는 중생에게 ... 윤회의 처음 시작점은 알려지지 않는다.”는 취지의 경문이 있습니다. 왜 중생에게는 윤회의 처음은 알려지지 않습니까?
왜 그런지 적절한 비유가 있으면 비유도 하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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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 윤회에 치달리는 중생에게 윤회의 처음 시작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과학은 어떠합니까? 과학이 고도로 발달하면 윤회의 시작을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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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과학에서 어떤 물질로부터 생명이 기원했다는 말이, (예를 들어 탄소가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다 등의 말에서처럼) 동물이나 사람과 같은 종(種)도 물질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뜻하나요? 즉, 과학은 동물이나 사람도 어떤 물질에서 기원했다고 보는 입장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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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예를 들어 과학이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 되었을 때, 가끔 공상 과학 소설 등에 나오는 것처럼, 인공 로봇이 사람처럼 진화하거나 인공 로봇이 불교에서 말하는 다시 태어남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자면 불교는 아마 이렇게 물을 것 같습니다.
1) 인공 로봇은 볼 때 (눈을 예로 들면) 업에서 생긴 ‘눈의 감성물질’과, 형색이 조건이 되어 일어난 ‘눈의 알음알이’가 있습니까?
2) (눈과 형색과 눈의 알음알이가 화합한) 감각접촉(觸)이 있습니까?
3)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이 있습니까?
4) 뒤이어지는 ‘갈애 – 취착 – 존재’ 등의 과정이 있습니까?
5) 그래서 다음 생에 태어남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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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챗지피티가 “과학 문명이 초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인공 지능 로봇이 ‘업, 식-명색, 갈애-취착’의 조건을 형성할 이론상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대답한다면 이 질문을 해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 사회라도 윤회의 조건이 되는 업 등을 충족시킬 수 없다고 대답한다면 이 질문을 안 하시고 넘어가시면 되겠습니다.)
질문: 그럼, 극도로 발달한 그 인공지능 로봇이 ‘업, 알음알이(識), 갈애’ 등의 조건을 충족하여 다음 생에 태어남이 있다면, (이런 가정을 한다면) 그것은 ‘화생, 태생, 난생, 습생’ 중의 하나로 중생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이론상의, 상상의)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말하기가 어렵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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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윤회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질문 드겠습니다. 예전에 어떤 이들은, ‘아라한분들은 돌아가시면(반열반에 드시면) 흙이나 돌이나 바위나 식물이 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불교에서 볼 때 이 주장은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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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경전에서 궁금한 것도 질문해 보았습니다.)
질문: 비구니 거처 경(S47:10)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7.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며 머문다.
그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면 몸을 대상으로 하여(kay-ārammaṇa) 몸에 열기가 생기거나 정신적으로 태만해지거나 밖으로 마음이 흩어진다. 그러면 그는 청정한 믿음을 고취하는 표상으로 마음을 향하게 해야 한다.
그가 청정한 믿음을 고취하는 표상으로 마음을 향하면 환희가 생긴다. 환희가 생기면 희열이 생긴다. 마음에 희열이 있는 자의 몸은 고요하다. 몸이 고요한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그는 이렇게 숙고한다. ‘내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마음을 향하게 한 그 목적이 이제 성취되었다. 이제 나는 거두어들이리라.’라고. 그래서 그는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고찰을 하지 않는다. 그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고찰을 하지 않고 안으로 마음 챙기면서 나는 행복하다.’라고 꿰뚫어 안다.”
1. 왜 “몸에 열기가 생기거나 정신적으로 태만해지거나 밖으로 마음이 흩어진다.”고 하셨는지요?
2. “그러면 그는 청정한 믿음을 고취하는 표상으로 마음을 향하게 해야 한다.”에서 ‘청정한 믿음을 고취하는 표상’이란 무엇인가요? 불, 법, 승 삼보에 관한 공덕 등도 해당하나요?
3. “마음에 희열이 있는 자의 몸은 고요하다.”에서 ‘몸이 고요하다’를 우리말 ‘몸이 경안하다’로 옮기기도 했나요? 그리고 여기서 몸은 ‘몸과 마음’할 때의 그 몸인가요? 아니면 다른 몸인가요, 예를 들어 ‘정신적 무더기’ 같은 그런 것인가요?
4.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에서 지금 그는 원래의 명상 주제 말고 ‘청정한 믿음을 고취하는 표상’으로 삼매에 든 것인가요?
4-1. “그는 이렇게 숙고한다.”에서 삼매(초선)에 들어 있으면서도 숙고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참고로 4, 4-1 질문에서, 제가 듣는 무료 사용 챗지피티에서는, 청정한 믿음을 고취하는 표상이 아니라, 원래의 명상 주제로 삼매에 든다고 답변했고, 삼매 속에서 숙고한 것이 아니라고 답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