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개나무 생재(生材)
구월 넷째 화요일이다. 가을 들머리 연일 흐리고 비가 잦다가 그치는가 싶더니 아직 그렇지 않다. 어제 이어 오늘까지 흐린 하늘에 성근 빗방울이 듣기도 하는 날씨다. 주중 화요일 이른 아침 서북산 기슭으로 난 임도를 따라 걸으려고 마산역 광장 농어촌버스 출발지로 향했다. 광장으로 오르는 노점은 주말이 아님에도 추석을 앞둔 때라 몇몇 상인이 과일과 푸성귀를 펼쳐 팔았다.
번개시장 들머리에서 김밥을 한 줄 마련해 서북동으로 가는 73번 버스를 탔다. 지나간 봄날엔 산나물을 채집하느라 서북산 감재나 여항산 미산령을 더러 넘었다. 여름은 영지버섯을 따는 산행이라 활엽수림 가운데도 참나무 군락지를 찾아가야 해서 행선지가 용제봉이나 불모산으로 바뀌었다. 이제 가을이 되어 제철에 피어난 야생화를 완상하면서 또 다른 채집 거리가 하나 기다렸다.
정한 시각 출발한 버스는 합성동 삼성병원을 둘러 어시장과 댓거리를 거쳤다. 동전터널을 빠져나간 근교의 논에는 벼들이 익어 고개를 숙여 추수를 앞둔 때였다. 잠시 진동 환승장에 들렀다가 진북면 소재지 지산을 거쳐 덕곡천을 따라가며 이목과 금산에서 학동을 지났다. 영동 종점에 이르니 지인이 주말을 보내는 별장의 텃밭은 싱그러운 채소와 함께 정성 들여 가꾼 꽃이 보였다.
서북동 종점까지 타고 간 승객은 나 혼자였다. 서북산 임도로 오르는 좁은 길로 들어선 묵정밭에는 누렁 호박이 배꼽을 드러낸 형제처럼 나란히 누워 있었다. 풀숲에 가려져 보이진 않아도 살이 채워지는 애호박 늦둥이 동생도 있을 듯했다. 산에서 흘러내린 물길에는 습지를 좋아하는 물봉선과 고마리가 꽃을 피웠다. 용추계곡은 사람들 발길이 잦아 개체수 줄어가는 물봉선꽃이다.
서북산 동쪽 산기슭에 자리한 종파가 다른 두 암자로 가는 길목에서 임도를 향해 올랐다. 봄날에 삼지닥나무에서 노란 방울꽃이 피던 길섶은 선홍색 싸리꽃과 이삭여뀌와 물봉선꽃이 반겨주었다. 산비탈 밀양 박씨네 선산을 지날 즈음 흐린 하늘에 성근 빗방울이 들었으나 양이 적어 배낭에 넣어간 우산은 꺼내지 않고 맞으며 걸었다. 산허리 T자 갈림길에서 감재 방향으로 나아갔다.
임도 길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나 야생 밤톨은 멧돼지 녀석이 시식한 흔적이 보였다. 작은 꽃잎이 혓바닥을 닮아 설상화로 분류되는 참취꽃이 군데군데 피었다. 금산마을로 내려서는 남향 산자락 편백림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감재로 올라서니 서북산 정상과 봉화산으로 간다는 이정표가 나왔다. 고갯마루를 넘어 버드내 방향으로 내려서니 좌촌에서 시작된 여항산 둘레길이 나타났다.
평소 음용하는 찻물은 산야에서 구한 건재를 달여 마시는데 감재 헛개나무도 들어간다. 여름 숲에서 찾아 말린 영지버섯이나 가을의 단풍마나 산수유 열매들도 내가 손수 마련한 것들이다. 근교 산자락에서 약용으로 삼는 나무에는 헛개와 두릅이나 음나무가 있다. 서북산 감재 북향 고갯마루는 절로 자란 헛개나무가 있어 마련하러 갔다. 헛개는 열매도 쓰긴 하나 나는 건재를 쓴다.
배낭에 넣어간 작은 톱으로 헛개나무 잔가지 세 가닥 잘라 놓았다. 두어 달 말라 건재가 되었을 때 작게 토막 내 옮겨갈 생각이다. 여항산 둘레길에서 법륜사 방향으로 가니 근년에 일부 구간은 임도가 개설되어 걷기가 수월했는데 자연석 더미에 배낭을 벗어두고 김밥을 꺼내 먹었다. 건너편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으로는 구름이 휩싸여 천천히 움직여 동영상을 보는 듯했다.
해발 고도가 제법 되는 서북산 북향 기슭의 약수터 산장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보갑사로 가면서 길섶에 피어난 분홍색 며느리밥풀꽃과 뚝갈이 피운 하얀 꽃 덤불을 만났다. 보갑사를 지나자 상별내로 가는 아스팔트 포장길에서 버드내로 내려가 가야 읍내로 나가 군내버스를 탔다. 가야에서 마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합성동에 내려 창원으로 가는 버스를 한 번 갈아타 집으로 왔다. 23.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