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우리아버님을 저 하늘나라로 보내드린것이...
저에게는 둘도없는 자상한 시아버님이셨고, 우리딸래미한테는 세상에서 젤루좋은 할아버지였던 세상살면서 가장 중요한것이 사람이라고 늘 여러사람을 배려하며 사셨기에 아버님보내던날 그리 사람들이 많았었나봅니다.
장례식장에서 장지 또 장지에서 아버님 모셔놓은 보문사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아버님을 끝까지 따라오시더군요.
보름전 오후 학원마치고 딸래미 보육원에서 데려오는데 신랑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버님이 쓰러지셨다고. 첨엔 장난하는줄 알고 ' 아버님 우리 보고싶으셔서 그러시는거 아냐' 그러며 맞받아쳤답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아버님처럼 건강관리 철저하게 하시고( 운동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시고,1년에 꼬박꼬박 종합검진받으시고, 한달에 한번 서울대학병원 다니시고, 어머니께서 삼시세끼 영양고려하며 정성으로 차리시고- 하옇든 저희가 보며 울아버님은 100세도 문제없다)
하셨는데 쓰러지셨다하니 첨엔 가벼운 현기증정도일꺼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녁10시가 되기 조금전에 큰아주버님한테 전화가 오더군요
아버님이 10시를 넘기시기 힘들것 같다고.
그리고 10시30분쯤 운명하셨다고 전화가왔습니다.
가는내내 이건 현실이 아닐꺼다를 주문처럼 외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딸래미는 비행기를 탔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너무 즐거워하고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만나러 간다고 들떠있더군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병원장례식장에 도착했습니다
살면서 지금까지 우연찮게도 장례식장엔 한번도 가보지 않은 저였기에 그 장례식장이라는 글자만으로도 충분히 공포가 되어 다가왔습니다.
맞이하기 싫었던 두려움과 슬픔이 아버님 영정사진을 뵈면서 한꺼번에 터져나왔습니다
여전히 인자하게 웃고계신 아버님과 이제야 막내가 왔다고 신랑과 저를 붙들고 통곡하시는 어머님...
저희때문에 입관식을 미루셨다고 마지막 아버님모습 뵙고 인사해야지
우리아버님 너무나 평온하게 누워계셨습니다. 다만 창백하실뿐이고..., 너무 우니 도와주시는 분께서 그러십니다 ' 이제 편안하게 보내드리세요. 가족분들이 너무 슬퍼하시면 이승떠나시기가 힘드십니다' 울지 않으려해도 막무가내로 터져나오는 울음은 어떻게도 막아지지 않았습니다.
주위에선 아버님이 끝까지 자식들 배려하고 깨끗하게 가셨다고 합니다
저녁늦게 돌아가신건 자식들 힘들까봐 3일장 짧게 끝내라고, 외상하나 없이 평온하게 고통없이 돌아가신건 깨끗한모습을 자식들에게 남겨주셨다고.
아버님장지에서 땅을밟으며 땅지기들이 부르는노래에 인생의 허망함을 또한번느끼고, 삶과 죽음이 이렇게 종이한장 차이인것을 실감했습니다.
아버님을 눕혀드린 그곳에 호랑나비 한마리가 정신없이 날아다니더이다, 사람은 죽으면 나비가 된다더니 아버님이 나비가 되셨나보다구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삼오재날 다시찾은 아버님 산소주위를 그 호랑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었지요
아버님 보문사에 모셔놓고 첫제사를 지낸다음 저의 가족은 홀로되신 어머니를 남겨두고 다시 생활을 찾아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산사람은 살아진다고, 아버님 돌아가시고는 밥도못먹고 잠도 못잘것 같았는데 밥도 목구멍으로 잘넘기고, 잠도 잘자는 우리가 가끔 죄스러워질 따름입니다.
우리아버님 저희 일본으로 보내놓으시고(물론 회사때문에 왔지만) 그토록 아끼시는 하나밖에없는 손녀가 보고싶다고 저에게 매일 사진찍어 홈피에 올리라고. 매일 매일 새로운 사진이 올라왔나 컴퓨터를 자주 들여다보셨다고 합니다.
손녀딸 사진보시려고 컴맹이셨던 아버님 둘째 아주버님께 오래도록 컴퓨터를 배우셨었지요
집안에 하나뿐인 딸래미.
보물같은 손녀 낳아주었다고 병원에 축하하러 오셨다가 어머님몰래 제 베개밑에 봉투도 넣어두시고, 집안에 잔치나 모임있을때마다 우리딸래미 안고' 요놈이 내 보물이고 보석이야 , 우리 막내가 큰일해냈어'하며 딸낳은저를 치켜올려주곤 하셨는데 ....
아들들 생일은 챙기시지 않아도 며느리들 생일엔 항상 '축하한다. 맛있는것도 사먹고, 영화도 보고그러려무나'그러시며 과하게 용돈도 챙겨주시고.
설날아침 세배드리면 ' 자 우리 며느리들 세뱃돈줘야지' 하시며 항상 빳빳한 신권이 든 봉투내미시며 부부간에도 예의는 지켜야 한다며 부부맞절을 시키시던 아버님.
가끔 어머니몰래 용돈주시며 ' 혜주옷도 사주고 너도 좀 사입고 ' 신랑만 넘 챙기지 말라하시던 인자하시던 우리아버님
세상에 이런시아버님은 어디에도 없다고 자부하던 저였답니다
가끔 문안전화 드리면 ' 항상 건강이 최우선이니까 건강조심하고, 밥잘먹고 다니고 잘지내다가 오너라' 하시던 아버님이 음성이 기억나네요
우리아버님 연세 고작 65세랍니다.
평생 열심히 일하시다가 밑에서 일해오던분에게 신의를 지키시겠다며 가게 넘겨주시고(65세가 되면 가게를 물려주시겠다고 하셨답니다), 어머니가 그토록 원하시던 넓은 아파트에서 신혼처럼 사신지 겨우 두달되었습니다.
넓은집 청소하는 어머니가 안쓰럽다고 평생 하지 않으시던 청소에. 매일 손잡고 공원에 운동가셨다고 하더라구요.
제2의 신혼을 살고 있다고 어머니께서 정말 기뻐하셨는데...
무엇이 급해서 그리 허망하게 가셨는지 ...
가시는날도 아침부터 컴퓨터 틀고 제홈피에 오셔서 우리딸 새로운사진이 올려져있으니 집안일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부르시며 " 이거봐 혜주사진 새로 올라왔다" 하시며 기뻐하셨다고합니다.
그러다 정오쯤 화초에 물주시다가 소파에 앉으신모습이 넘 기운없어보여 어머님께서 왜그러시냐고 하니 손에 힘이 없다고 하신말씀이 마지막 말씀이 되어버렸답니다.
사인은 뇌출혈.
세상에 아침다르고 저녁다르다는 말도 있지만 멀쩡하시던 아버님이 소파에 앉으셔서 정신을 잃으신게 마지막이 될줄은 정말 몰랐다고, 구급차불러 병원에 가니 의사가 아드님 같이 오셨냐구 그러더랍니다.
어머니는 아버님이 잠깐 기절하신줄 알았는데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답니다.
세상에 이런 황당한 경우도 있나 믿어지지않아 중환자실 들어가신 아버님 붙드시고는 '일어나봐요, 눈떠봐요 ' 그러셨다니......
그렇게 허망하지만 깨끗한 모습으로 그날 밤에 돌아가셨답니다
장례가 모두 끝나고 시댁으로 갔습니다.
7월말쯤 입주하신 새아파트인지라 딸래미가 낯설었나봅니다. 일본에 있느라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으니까요
' 여기가 아니잖아 '그러며 화를내고 저녁되도 아버님이 보이지 않으니 " 할머니 깜깜해졌는데 왜 할아버지가 안오지?" 질문을 해서 우리어머님가슴을 또한번 후벼파버렸습니다.
주말에 찾아뵈면 항상 아버님께선 산악회모임으로 저녁어스름해질때 돌아오시곤 하셨으니 딸래미는 항상 저녁이 되면 할아버지가 온다고 생각한모양입니다.
우리어머니 우리딸래미 붙들고 '할아버지 이제 저기 하늘나라 가셔서 이젠못봐' 그러시며 우시는데 정말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좋은 곳에서 편하게 계실꺼에요..저도 시아버지 보낸지 2녕되었네요..다음달이면 3주기네요 일본은 1주기 그다음이 3주기더라고요..정말 친정아빠보다 더 좋아했느데..항상 저만 위해서 20년을 외식을 싫어하시는 분이 저를 위해 일주일에도 몇번씩 외식하고 제가 낮잠 자면 집밖에서 기다리시고 제 잠 깨운다고,,,그립다,,
저도 우리동생 한국으로 보내고 빈집에 혼자 있으려니 눈물만 나와서 이곳에 들어와 마음이나 달래 보려 했더니 또 내 눈에서 눈물이 나오게 하네요. 엄마와 함께 있을때 항상 화를 내고 투정도 부리고 했는데 이번에 엄마가 오시면 잘 해 드려야겠다고다짐합니다. 혜주맘님 힘 내세요.
첫댓글 제 아버지 돌아가신게 생각나네요. 뇌출혈로가셨는데 68세에. 저도 임종 못지켰습니다. 쓰러지셨을때 내가가서 저왔어요 했을때 의식없던분이 눈을뜨려했던걸 압니다. 손가락도 조금 움직였구요. 그런데 의사들은 반사 신경이라네여.그잘난 자격증 시험때메 일본으로돌아온 사이에 맘놓고 가셨나봐요. 울고싶은만큼 우세요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게 이렇게 가슴아픈일인줄은 정말 몰랐답니다. 지금도 아버님의 목소리며, 아버님의 유난히 여성스러웠던 손동작등 작은거 하나까지 자꾸 생각나서 가슴아프답니다.
글일고제가 다우네요..어제밤꿈이그렇고,아침에켭을하나깻는데..이글을읽의려고그랬나봅니다..저도저를 키워주신할머니임종못보고,지금까지 가슴이아파온답니다..멀리있어서 임종못지켜드렷군요..시간이 약이될거에요..힘내세요.
부모 멀리 떨어져서 일본에 살고 있으니 남일 같지가 안네요^^;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릴께요.
왜 하늘은 소중한 분들은 그리 일찍 데려가시는지 모르겠네여...이글을 읽으니 맘이 아려옵니다...
좋은 곳에서 편하게 계실꺼에요..저도 시아버지 보낸지 2녕되었네요..다음달이면 3주기네요 일본은 1주기 그다음이 3주기더라고요..정말 친정아빠보다 더 좋아했느데..항상 저만 위해서 20년을 외식을 싫어하시는 분이 저를 위해 일주일에도 몇번씩 외식하고 제가 낮잠 자면 집밖에서 기다리시고 제 잠 깨운다고,,,그립다,,
글을 읽으며 한참을 울었네요.. 아버님께선 좋은 곳으로 가셨을꺼예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우리동생 한국으로 보내고 빈집에 혼자 있으려니 눈물만 나와서 이곳에 들어와 마음이나 달래 보려 했더니 또 내 눈에서 눈물이 나오게 하네요. 엄마와 함께 있을때 항상 화를 내고 투정도 부리고 했는데 이번에 엄마가 오시면 잘 해 드려야겠다고다짐합니다. 혜주맘님 힘 내세요.
정말 너무 멋진 시아버지셨네요...저두 글 읽으며 혼자서 눈물 흘리고 있네요..아~ 외국에 산다는게 참 사람 맘 아프게 할때가 많네요..저두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릴께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혜주맘님 아버님과 가족을 위해서 묵주기도 20단 바쳐드릴께요.. 그래도 아버님은 행복하고 편안하게 저 세상으로 가셨을거에요...
모두 감사드려요. 오늘도 어머니한테 전화드렸는데 감기까지 걸리셔서 죽도 드시기 힘드시다고 하네요. 위로두분 형님들이 모두 잘해드리고있지만 아무것도 못하는 저는 가슴만 탑니다
아~엄마 아빠 생각난다...절 울리시네요...
저두 아침에 읽고 눈물흘렸어요. 사람이 겪는 스트레스중에 가장 큰게 반려자가 먼저 세상을 등진거라네요. 혜주맘님도 이렇게 가슴이 아프신데, 시어머님도 빨리 건강해지셔야 될텐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휴..가슴아파요..ㅠ.ㅠ
좋은 곳에 가셨을거에요.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눈물이 그렁그렁.. 가슴이 많이 아프시겠어요.. 어떤 위로를 해 드려야 하는건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눈물나요~ 효부시네여.....힘내세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좋은 곳으로 편안한 곳으로 가셨을테니까 얼른 기운차리시라는 말씀밖엔....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