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례 할머니는 심한 기관지 천식환자셨다.
할머니는 기관지 천식이 오래된데다 폐 때문에 심장까지 많이 나빠지셔서 심부전을 같이 앓고 계셨으니, 기관지 천식에 심장 천식까지 동시에 가지고 계신 셈이었다.
게다가 얼마전에 얻은 뇌경색의 후유증에. 고혈압, 그리고 업친데 덥친 격으로 얼마전에는 대상포진까지 앓으셔서 정말 한사람이 감당 하기에는 너무 지독한 병들을 한꺼번에 지고 그야말로 병마와 사투를 벌이는 분이셨다.
분례 할머니는 임동이라는 동네에 사셨다, 예전에 안동댐이 수몰되기전에 그 인근에 사시다가 살던 집이 수몰되면서 임동 어디엔가에 옮겨 사셨는데, 이런 할머니가 병원에 나오시는날은 거꾸로 상태가 좋은 날이었다,
할머니는 안동댐의 영향으로 안동지역의 습도가 높아지고, 아침저녘으로 안개가 끼는 일이 많아지면서 점점 천식이 악화되셨다, 그래서 할머니는 날이 따뜻한 늦봄에서 초여름이 되면 증상이 좀 나아지시고, 가을과 겨울에는 악화를 반복하셨는데 그래서 할머니가 차를타고 병원에 나오시는 때는 꼭 이즈음이었다,
상태가 안좋으면 늘 벽에 기대 앉아서 숨을 쌕쌕 거리며 몰아쉬시고, 그야말로 한 발짝도 밖에 나가시지 못했기 때문에 병원에 오시는것을 엄두도 내지 못하신다고 했다, 의사입장에서는 그런 할머니께 늘 입원치료와 대학병원 전원을 간곡히 말씀 드리지만 할머니 입장에서는 그것이 여의치 않으셨다.
할머니는 아들이 삼형제나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가끔 할머니 약을 대신 타가시는 이웃 할머니 말씀으로는 그 아들 삼형제가 할머니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들들은 할머니를 한번도 찾지 않는다고도 했고, 할머니는 호적상 아들이 셋이나 있어서 생활보호 대상자나 의료보호 대상자로 지정도 받지 못한다고도 했다.
요사이 이런일들이 많다,
자식이라기에는 차라리 짐승만도 못한 자식들이 버젓이 살아 있어서, 노인들이 그야말로 길거리에서 밥을 얻어먹고 살아 가시는 분들이 허다하다, 이분들은 기초수급자처럼 무료 시설에도 못 들어가고, 나라에서 주는 보조금도 한 푼도 없다, 그래서 그냥 아들딸 하나없어 가만히 있어도 밥을 주고 재워주는 시설에 계신 분들보다, 짐승같은 불효자식들이 줄줄이 있는 노인들은 오히려 무료급식을 드시기 한시간 전부터 국수 한 그릇에 줄을 서야한다,
분례 할머니가 그랬다,
할머니는 병원비를 받지 않아도 안오신다, 아니 못 오신다, 그나마 동네분들이 할머니 먹을 거리나 땔감을 나눠주셔서 생계는 어떻게 꾸려가시지만 할머니는 늦봄에서 여름철이 아니면 그나마 나물을 뜯어다 파는 일도, 남의 집 일도 하실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히 인근에 있는 작은 사찰에서 할머니를 조금씩 보살펴 드리고 있는 눈치였다, 일전에 할머니가 응급차를 타고 종합병원에 실려가셔서 한 달을 입원 하셨을 때 그곳 사찰에 다니시는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할머니 치료비를 마련해 드렸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할머니께서도 몸이 좀 나을 때는 그곳 절집에 가셔서 주방일을 조금씩 도와드리면서 절밥으로 끼니를 해결하신다는 이야기도 들렸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병원에 오시면 의자에 앉기전에 의사인 내게 늘 “ 성불하이소” 라는 인사를 하시면서 두손을 모아 합장을 하시곤 했다,
그렇게 자리에 앉으신 할머니의 눈에는 뭐라고 설명 할 수 없는 간절한 신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뭐랄까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듯 할머니는 만나는 인연들에게 “성불”을 기원하면서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시는 것이 아주 중요한 듯했다,
그런 할머니와 내가 마주 앉으면 묘한 풍경이 연출된다. 할머니 손목에는 작은 염주처럼 생긴 나무 팔걸이가 양손에 걸려 있고, 내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는 묵주 반지가 끼어 있었다, 더구나 할머니가 거친 숨으로 연신 “성불”을 외시며 합장하는 내 등 뒤쪽으로는 고모 수녀님이 주신 아기 예수님의 작은 고상이 놓여 있었다.
나는 때로 이 묘한 부조화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작은 감사를 느끼곤 했다.
그런 분례 할머니가 초파일을 일주일 앞두고 이웃 할머니와 함께 병원에 오셨는데 이것은 증상이 좀 나아서 움직일 만하다는 뜻이다. 할머니는 나중에 증세가 악화 될 때 드시기 위해 이럴때 약을 많이 타가신다, 지금은 증상이 아쁘지 않는데도 베로텍 스프레이라는 기관지 응급 확장제와 이뇨제,강심제등의 심장약을 그야말로 듬뿍 타가서 집에 모아두시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할머니는 이틀동안 두 번이나 연달아 오셔서 두달치 약을 타가셨다, 그럴때는 의료보험공단에 환자가 약을 분실했다는 허위아닌 허위 소견을 붙여서 두달치 씩 약을 드리곤 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그날따라 왠지 생기가 넘쳐 보이셨다. 할머니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지 물어보자 며칠있으면 “부처님 오신날”이라서 그렇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나중에 당신이 돌아가시면 절에서 49제를 지내 줄 거라고, 그래서 돌아가시더라도 꼭 하늘에 오색 연등이 넘실거리는 초파일에 돌아 가실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보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얼굴이 꼭 애기처럼 발갛게 흥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지금은 부처님 오신날 절에서 쓸 나물을 다듬으며 당분간 절에서 계시는데, 그게 그렇게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시면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원장님요, 초파일에 우리절에 한번 오시요, 내 절 밥 맛있게 비벼 드릴테니 꼭 한번 놀러오시오”
사실 일부러 사찰음식을 돈주고도 사먹는데 부처님 오신 날 절밥 한 그릇이야 얼마나 맛나고 좋겠는가? 그래서 내심으로는 정말 시간을 내서 꼭 할머니가 나물을 다듬으셨다는 그 사찰에 절밥을 먹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할머니께 그 사찰의 이름과 위치까지 자세하게 챙겨 두었었다.
그러나 나는 할머니에게 절밥을 얻어 먹으러 가겠노라는 약속을 지켜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시간이 흘러 이웃 할머니께서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오셨는데 이번에는 분례 할머니 약을 같이 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으셨다, “ 할머니 분례 할머니 약은 안타가셔도 되요?” 내 말에 할머니가 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 그 할마이. 초파일 날 저녘답에 휙 가버렸어. 절 사람들이 밤에 연등행렬 나갔다가 와보니 부처처럼 벽에 기댄 채로 그냥 가버렸댔어, 그 할마이 원대로 된기야. 뭐가 씌기는 씌었는지 맨날 초파일에 죽었으먼 해 샀더니 진짜 그래 가버렸어,,”
분례 할머니가 정말 그렇게 가셨다고 했다.
오색 연등이 하늘에 붉을 밝히는 그 날 분례 할머니가 원대로 가셨다고 했다, 20대에 남의집 재취로와서 평생을 일만하고 고생하신 분례 할머니가 처음으로 원대로 이루신 셈이었다, 종일 북적대던 절에서 사람하나 없이 조용 할 때 그 많은 연등불이 밤 하늘을 환하게 밝힐 때 분례 할머니가 그렇게 소원대로 떠나셨다고 했다.
남은 자에 대한 원망도 떠난자에 대한 그리움도 없이 부처님 손을 잡고 그렇게 훨훨 이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첫댓글 아미타불님 부디 할머니 손 꼭 잡고 가 주세요...나무 아미타불_()_
극락왕생하시여 연등불처럼 어두운곳에 환희 밝혀주시기를....
박경철씨는 안철수와 함께 제가 꽤 괜챦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인데, 글마다 감동이 묻어나네요. 분례 할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