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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에서 벌어진 문화재 약탈사건
실크로드는 동양과 서양의 무역이 이루어졌던 통상로였을뿐만 아니라 그 두 문명을 이어주는 소통의 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광활한 사막과 7천미터급에 이르는 거대한 산맥은 누구에게나 쉽게 그 길을 열어주지는 못했다. 돈황은 서양 문명으로 향하는 여러개의 실크로드가 합쳐지는 접점에 위치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중국의 신강성에 속해있는 중국 영토가 분명하긴 하지만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옛날부터 이민족이 교대로 들어와 살고 있기 때문에 완벽한 중국의 영향권이라 할 수는 없는 문화적 배경을 하고 있다. 결국 돈황은 그 위치 때문에라도 종교나 인종 등 모든 분야에서 교류가 이루어지는 사막의 수도였기에 서유기의 모델이 되었던 삼장법사나 탐험가 마르코 폴로 역시도 돈황을 거쳐 가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돈황의 동남쪽 20여킬로 조금 밑도는 곳엔 부처님을 모신 크고 작은 벌집 같은 동굴이 이층 삼층으로 수없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곳이 바로 천불동이라 불리는 곳이며 이 책의 주요 무대가 되는 돈황 막고굴이다. 이 책 <돈황 이야기>는 그 막고굴에 숨겨져 있던 경전 수만권을 놓고 벌어지는 서양 열강과 일본의 쟁탈전을 그린 일종의 리포트인 셈이다. 이 책의 저자 마쓰오카 유즈루가 소설가였기 때문에 소설의 형식을 차용했다고 하지만 몇 군데를 빼고는 생생했던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해주려 하고 있다. 이야기는 '나'라는 사람이 우연히 작은 박물관을 방문해 그 수집품을 바라보면서 시작된다. 너덜너덜한 경전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박물관의 주인은 그것이 돈황의 막고굴에서 나온 중국의 국보급 문화재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관심을 보이는 '나'에게 돈황이 문화침략의 옛 전쟁터였음을 알려주는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19세기말 부터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돈황의 석굴 즉 천불동에는 금빛과 푸른 빛이 도는 찬란한 불상들이 여러점 있고 실제 그 주변을 오가던 선교사들이 수집한 발굴품들이 알려지면서 돈황에서도 20세기가 되면서부터 드디어 유럽 열강의 고대 문화 발굴 경쟁이 시작되기 시작한다. 1907년 영국의 스타인은 돈황에 도착한다. 이전까지 많은 탐험가들이 거쳐갔지만 이렇다할 소득을 올리진 못했지만 스타인은 현장이 중국에서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갔던 것처럼 자신 역시도 많은 경전이나 고고학 참고물품을 자신의 나라로 가져감으로서 후대에까지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려 하는 욕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모래속에 묻혀 있던 석굴사원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두루마리가 들어있는 비밀의 문이 있다는 사실이 들려온다. 그는 비서인 중국인 장효원을 대동하고 사원의 주지인 왕도사라는 사람을 만난다.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인물이 바로 왕도사이다.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던 석굴사원을 재건했고 발견된 경전을 관리했던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는 왕도사가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문맹으로 묘사되고 있다. 어쨌든 왕도사는 발견된 경전들을 지역의 관리에게 보고했지만 그저 폐지같은 두루마기였기에 그냥 두라는 명령을 받는다. 결국 그는 사원을 계속해서 번창시키기 위해 기부금을 모으려 여기저기 다니는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스타인의 방문은 서유기의 삼장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비밀의 문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몰랐지만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아는 그에게 자국인 장효원을 앞세운 스타인의 유혹은 치밀해 보이기만 했다. 수없는 밀고 당기기 끝에 결국 비밀의 문은 열리고 대형 마제은 4개와 수천권의 경전은 교환되기에 이른다.
이듬해 방문한 프랑스의 펠리오는 스타인의 소득을 넘어선다. 그는 북경에서 중국학을 공부했기에 한문을 하나도 모르는 스타인과 비교해 좋은 물건을 고글수 있는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 그는 스타인은 들어가보지 못한 비밀의 문 안에 들어가 20일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15,000권의 두루마리를 모두 훑어보는 초인적인 힘을 보여준다. 촛불을 켜고 산더미 같은 두루마기 옆에서 경전을 살피고 있는 펠리오의 사진속 모습은 너무나 진지해 보이기만 하다. 그는 자신이 직접 골라낸 5천여부의 경전을 들고 북경으로 개선한다. 왕도사 역시 엄청난 양의 마제은을 챙긴다. 그러나 북경에서 펠리오가 돈황에서 획득한 유물들의 전시회가 열리고 그 존재가 알려지면서 왕도사는 졸지에 국보를 팔아먹은 역적으로 몰린다. 남은 1만여권의 경전과 함께 왕도사는 북경으로 압송되기에 이르지만 사건은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최초 돈황을 출발할때 1만여권이던 경전이 막상 북경에 도착해서는 6천여권 밖엔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중간중간 관리들이 빼먹고 지역의 관리들에게 바쳐졌으며 단두대에서 사라질뻔 했던 왕도사 역시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경전을 바쳐 사형수를 대신 북경으로 보내게 된다. 어쩌면 이 대목은 나라의 국보를 빼앗길 수 밖에 없었던 중국인의 습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왕도사는 다시 돈황으로 돌아가고 세번째 탐험대를 맞이한다. 바로 이 책의 저자 마쓰오카 유즈루의 나라이기도 한 일본 탐험대이다. 하지만 그 부분에서 만큼은 앞의 영국이나 프랑스 탐험대와 달리 그 여정이 자세히 묘사된다. 사막을 건너고 산맥을 넘는 그 여정을 자세히 묘사한 것이 아마도 자국인을 보다 돋보이게 하려한 저자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그는 다치바나라는 이제 겨우 스물을 갓넘겼으며 실제 불제자이기도 했기에 왕도사와의 협상에 있어 보다 유리할 수 있었다. 특히 왕도사를 윽박질러 그가 숨겨놓은 경전들을 획득하는 장면들은 작가에 의해 과도하게 포장되어 있지 않나 싶기까지 하다.
세차례에 걸친 동서양의 탐험대들은 돈황 막고굴의 국보를 모두 강탈해간 셈이다. 작가가 책 속에서 그것을 유물약탈사건이라 부른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다만 그 시선이 일본인의 관점이라는 점에서 출발했기에 세 탐험대를 보는 시각이 조금은 다르게 표현되었을 뿐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 모두를 겪은 왕도사의 시선이 눈길을 끈다. 그 진귀한 보물들을 발굴한 것이 자신이고 관리조차도 그것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 그것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려 하는 서양의 삼장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라는 그의 해석이 어쩌면 재미있기 까지하다.
책을 읽으며 우리의 상황이 그와 다르지 않음을 느낄수 있었다. 우리 역시 많은 문화재가 국외로 유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물은 단순히 오래된 물건 만은 아닐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E.H.카의 말을 빌리자면 "현재를 거울삼아 과거를 통찰하고,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그것은 다시말해 역사란 생물처럼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존재이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화두이며 미래를 향해 진보해 나가는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믿음일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유물은 그것을 증명해 주는 우리 자신의 또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문화재 반환운동 역시도 보다 체계적이고 범국민적으로 벌어져야만 할 것이다. 파르테논신전 방문객들에게 일일히 유인물을 나눠주며 영국이 약탈해간 문화재 반환운동을 적극 펼쳤고 마침내 꿈을 이뤄낸 유명 영화배우출신 멜리나 메르쿠리 그리스 문화부 장관의 일생에서 볼 수 있듯 진정한 노력만이 뜻을 이뤄낼 수 있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만이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는 직지심경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들이 따뜻한 우리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돈황 이야기
사실 난 말하기 챙피하지만 역사에 굉장히 무지하다. 텔레비젼에 사극이 방영되면 채널을 돌렸으며, 어느 시대인지 조차 감별하기 쉽지 않아 우연히 명성황후나 주몽 등을 보면서도 어느 시대 이야기냐고 주변사람에게 묻다가 창피를 당하기 일쑤였다.
요즘에는 더이상 안되겠다는 생각에 역사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있는데, 딱딱한 지루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역사에 요즘엔 차츰 재미를 붙이고 있다.
돈황 이야기?? 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중국의 황제 이름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열강에 유린당한중국의 실크로드인 돈황 막도굴에 관한 이야기이다.
처음에 화자인 "노인"의 입장에서 풀어나가는 돈황에 관한 이야기는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아라비안나이트 동화를 들려주는 듯하다. 주지 스님은 쓰레기 더미라로 생각되는 고문서를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라는 꼬임에 넘어가 스타인, 펠리오, 다치바나에게 고문서를 넘기고 만다. 어찌보면 소설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야기가 실제로 펼처져 서구 열강에 유린당한 문물을 생각하니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주지스님의 바보스러움에 답답했다.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찌보면 이것은 근본적으로 중국 정부와 국민들의 무지 속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도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많은 문물이 빼앗기고, 현재는 독도라는 영토 분쟁까지도 벌어지고 있다. 문화재와 문물을 지키는 것은 국민들의 역사의식과 자주의식 속에 있는 것이다.
몇년전 유럽여행을 갔을 때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을 방문을 했었다. 그때 그 곳에 전시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문물들이 제국주의 시대 침략에 의해 약탈해 온것이라는 말을 듣도 망연자실했다. 실제로 이탈리아에 갔을 때 잘려나간 동상의 일부가 영국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자국민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실크로드라는 이름은 어찌보면 동양의 문물의 서양에 알려지는 문화교류의 길로 알려졌지만, 약탈과 침략에 의해 유린당한 길일지도 모른다. 비단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그리고 우리나라 한국의 문제이다.
동서양의 구분이 사라진 요즘 시대라고 하지만, 한번쯤 주체의식을 갖고 우리의 문화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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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말기 명사산 기슭 천불동의 도교 사원 주지 왕원록이 아편을 피우려고 불을 당기자 연기가 벽으로 빨려 들어가 부수어보니 대량의 경문이 쌓여있던 동굴이 눈 앞에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돈황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 첫 걸음이다.
돈황, 20세기 초부터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실크로드의 중국측 첫 관문이었다. 돈황의 벽화들은 휘황찬란하고 기세가 당당하다고 하는데 돈황 동굴 속에 고이 쌓여있던 경문들에 대한 소문을 들은 영국인 스타인이 탐험대를 이끌고 왕도사를 만나러 왔다. 그리고 헐값으로 서화와 문서들을 가져가고 뒤이어 프랑스인 펠리오 역시 대량으로 서화와 문서들을 헐값에 들고가 서양에 소개하게 된다. 스타인과 펠리오의 의해서 돈황의 막고굴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렇게 돈황의 소중한 보물들은 서양으로 빠져나가게 되었다.
이 책은 돈황의 귀중한 유물들이 스타인, 펠리오 그리고 일본인 다치바나의 탐험으로 중국이 아닌 다른 곳에 자리잡게 되는 그 이야기가 사실과 픽션이 뒤섞여 펼쳐져 있다. 저자가 일본인이다 보니 그 입장으로 전개되는 책이다.
유물에 대한 무지로인해 헐값으로 국외로 반출된 돈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보물 역시 우리의 자리에서가 아닌 타국에서 그 존재를 지켜봐야 하는 아픔이 있기에 더욱 이 이야기가 관심이 가져졌다.
오타니 미션의 성과물이 상당수 우리나라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된다. 돈황의 이야기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 역시 그 이야기 속에 서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으며 왕도사의 어리석음이 빚은 결과물치고는 중국에게는 뼈 아픈 돈황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유물의 귀중함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관심도 가져야 겠으며 외국에서 타향살이 하고 있는 우리의 보물들에게 고국을 찾아 들어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인이 왕도사에게서 헐값으로 가져간 돈황의 문서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스타인이 죽은지 수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자료가 정리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또한 돈황의 유물 중 최고로 치는 세계 최초의 인쇄 서적인 금강경이 대영 박물관 스타인 컬렉션에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 있는 돌아오지 못 하고 있는 우리의 외규장각 문서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자기 나라의 보물을 자기 나라가 지켜내지 못 하는 그 아픔에 아릿함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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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이야기는 항상 재미있다. 그것이 단순히 여행과 관련된 내용이건 이 책 <돈황이야기>(연암서가.2008년) 처럼 문화재 약탈에 대한 이야기건 간에 그렇다. 그것은 NHK 다큐멘터리 ‘실크로드’ 때문일 것이다. 기타로의 음악과 함께 보여 지는 사막과 오아시스, 낙타를 몰고 가는 대상의 무리, 사막에 묻힌 고대의 도시와 찬란한 유물을 통해 그곳은 우리에게 많이 익숙해져 있다. 그곳의 중심은 바로 돈황이다.
그 지역이 서구에 알려지게 된 것은 불과 한 세기가 지났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외진 곳이었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지구상에서 지도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곳은 남극과 타클라마칸 사막 지역이었다. 그 지역은 청나라의 영토였지만, 나라의 힘이 약화된 상태에서 서구 열강의 힘을 다투고 있는 지역이었다. 바로 그곳에 지리를 탐사한다는 것과 불교유적을 조사한다는 목적으로 각국의 탐험대가 활동을 시작한다. 말은 탐험대이고 불교 유적 조사대였지만, 그들은 유물사냥꾼이었다. 이 책은 그 유물 사냥꾼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독자들에게 100년 전의 실크로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오렐 스타인이다. 헝가리 출신의 영국인으로 그의 탐험은 실크로드뿐만 아니라 티베트 등 중앙아시아 전역에 걸쳐있다. 그리고 그는 돈황 천불동의 장경동에서 발견된 많은 고문서를 최초로 서양으로 반출한 사람이다. 그의 컬렉션은 영국박물관이 있다.
두 번째 사람은 폴 펠리오다. 불과 30세에 불과한 나이에 탐험대를 이끌 정도로 여러 분야에 걸친 지식과 아울러 중국어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말을 알고 있었던 그에게 탐험대장의 자리를 아주 적절했다. 펠리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유명한 사진을 통해서 전세계에 알려졌다. 이 책 157쪽에 있는 사진으로 고문서가 꽉차있는 조그만 서고에서 촛불을 켜놓고 문서를 읽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에서 보는 문서의 양은 엄청나다.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이미 스타인이 문서를 한차례 반출한 후였지만 남아 있는 문서만도 대단한 양으로 보인다. 스타인과 달리 펠리오는 한문을 읽을 수 있었기에 문서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20일 동안 거의 1만 5천 권의 한문으로 된 두루마리를 읽어봤다고 한다. 그가 읽고 프랑스로 가져간 책 중에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사람은 오타니 탐험대의 다치바나로 그도 역시 돈황 천불동에서 많은 문서를 반출해간다. 이 책의 저자가 일본인(마쓰오카 유즈루)이다 보니, 일본 탐험대를 종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선교단이란 의미로 ‘오타니 미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우물 약탈자들인 것은 확실하다.
위에서 소개한 세 사람이 반출해간 실크로드 유물을 3대 걸작이라고 말한다. 그 중 오타니 컬렉션의 좋은 유물들이 우리나라 중앙박물관에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얼마 전 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에서 보니 실크로드 유적지 중의 하나인 베제클릭에서 가져온 벽화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벽화는 포를 뜨듯이 벽을 도려낸 것이다. 벽화를 도려낸 그 벽의 모습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안 보더라도 알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상처로 남아있을 것이다. 실크로드 탐험대는 이런 잔인한 문화 약탈을 일삼았던 것이다. 스타인,펠리오, 다치바나를 이 책에서는 ‘문화침략의 신사’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피터 홉커크는 자신의 책 <실크로드의 악마들>에서 이들을 악마라고 표현하고 있다.
지금 영국과 프랑스, 한국 등에 소장되어 있는 실크로드 유물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하고 생각해본다. 돈을 주고 샀기에 자신들의 소유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문화가치의 보편성을 외치며 유물들의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 유물의 가지고 있는 당사자이기에 현재 이 유물에 대한 국제적인 동향이 궁금하다.
이 책의 부제는 ‘실크로드와 돈황학 입문서의 고전’이라고 적혀있다, 돈황 천불동에서 나온 그 수많은 문서는 하나의 학문을 탄생시켰을 만큼 방대했다. 그 학문이 바로 ‘돈황학’이다. 100년 전에 그곳에서 벌어졌던 그 잔인한 약탈의 결과로 하나의 학문이 생겨났다고 하니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