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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보하기 전국에서 제일 좋은 밀양강 삼문동 둔치 강변공원(1)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4472?svc=cafeapp
이 글은 (1) (2) (3)편으로 작성되었으며, 전국으로 홍보합니다. 모두 250 장 정도의 아름다운 밀양강 삼문동 둔치(강이나 못 따위의 가장자리) 주변의 사진이 있습니다.
※"고수부지"는 일본어이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둔치"로 사용해야 합니다.
물의 도시, 수변(水邊) 공원의 도시, 밀양 !
밀양강 삼문동 둔치 강변공원은 전국에서 제일 좋다.
●밀양강(응천凝川)에 둘러싸인 100만 평의 밀양시 "삼문동(三門洞)"
※위의 위성지도에서 타원형 섬이 삼문동이며, 그 북쪽인 12시 방향에 밀양시청, 북동쪽인 2시 방향에 영남루, 남쪽인 5시 방향에 경부선 KTX밀양역이 있다
"밀양강 삼문동 둔치 강변공원"은 둘레가 타원형이고, 평평하며, 강을 따라 5.5km를 시원하고 아늑하고, 그 강변에 산책길과 자전거길이 평행하게 있다.
KTX 밀양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10분 이내인 용두교 건너 밀양여자중학교 정문 앞에서 하차하면 바로 "밀양강 삼문동 둔치 강변공원"이다.
답답한 도심에서 탈출하여, 조용하게 산보하면서 "밀양강 삼문동 둘레 강변공원길"을 산책하면 멋진 하루를 여행할 수 있다.
1. 밀양강 삼문동 둔치 강변공원은 100만 평의 원형의 섬(島)인 삼문동(三門洞)을 따라 밀양강이 흐르고, 강물이 매우 깨끗하다.
2. 섬을 한 바퀴(5,200m) 돌면 건강에 매우 좋다.
3. 강바람은 매연이 없고 매우 깨끗하다
4. 주변 공기도 매우 깨끗하다.
5. 가장 아름답다
6. 주변에 영남루와 용두목 등 풍광이 좋다
7. 24시간 치안이 가장 안전하다
8. 가장 조용하다
9. 가장 아늑하다
10. 교통이 가장 편리하다
11. 경부선의 KTX와 일반 열차가 매우 편리하다
12. 新대구 - 부산(구포)간 고속도로가 편리하다
13. 울산 - 밀양간 고속도로가 편리하다
14. 주변에 숙박 시설이 좋다
15.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선사시대의 "한국의 암각화조각공원"이 있다.
16. 넓은 잔디공원 둔치가 있다.
17. 밀양시 삼문동(三門洞)은 밀양강(일명 응천 凝川)으로 둘러싸인 섬(島)으로서, 제1밀양교, 제2밀양교, 용두교(龍頭橋), 밀주교(密州橋), 나노교(Nano橋) 등 아름다운 대형 교량이 무려 5개나 있고, 또 6번째 교량을 건설하고 있다.
밤이 되면 모든 교량의 난관과 교각에 형형색색의 조명이 날이 샐 때까지 빛나며, 그 아름다운 빛은 강물에 반사되어 장관을 이룬다.
※밀주교(密州橋)의 "밀주(密州)"란, 고려시대에 밀양이 최대의 영역을 가졌을 때의 밀양의 명칭이며, 그 당시는 지금의 밀양시와 서쪽의 창녕군과 ㆍ북쪽인 경북의 청도군이 모두 밀주(密州)의 영역이었다.
18. 시원한 밀양강 야외수영장이 있다
19. 아름다운 경부선 밀양강철교가 있다. 이 철교는 "경부선 한강철교" 다음으로 두번째로 길며, "구(舊) 밀양강철교"의 둥근 교각은 일제가 밀양읍성을 파괴하여, 성돌로 만들었다. 일본제국(日本帝國)의 괴뢰국(傀儡國)인 만주국(滿州國)과 식민지 조선(朝鮮)을 효율적으로 침탈하기 위한 병참선으로 경부선과 경의선을 부설했음에도 불구하고, 교각의 토목공학적 가치와 식민지 역사성, 식민지 침탈 병참선의 역사적 흔적 등을 보존하여, 다시는 이 땅을 일본제국주의자로부터 병탄당하지 않게 하는 교훈으로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 보존하려는 밀양의 항토사학자 등의 강력한 요청으로 철거하지 않고 남아있다.
20. 자연 경승지(景勝地) 용두목(龍頭項:용의 머리와 모가지)이 옆에 있다.
21. 아름다운 밀양강 살여울 징검다리가 있다. 봄이 오면 살여울 징검다리 주변의 버들강아지와 능수버들이 밀양강에 제일 먼저 희망의 봄소식을 전해준다.
22.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문동 송림과 이재금 시인의 시비(詩碑)가 있다
23. 무봉산(舞鳳山, 일명 아동산)에는 무봉대(舞鳳臺)가 보인다. 무봉산(일명 아동산 衙東山)의 유래는 영남루 앞을 흐르는 전국 최고의 수질인 밀양강(일종의 사행천인 일명 응천 凝川)에 황새(봉황새 = 봉새)가 은어(銀魚) 등의 물고기를 잡아먹고 울창한 무봉산의 송림에 하얗게 앉아 있어 유래되었다. 즉, 황새가 송림에 날고 드는 모습이 춤추는 모습과 같이 보여 무봉(舞鳳)이라 했다
24. 천년고찰 무봉사(舞鳳寺)가 밀양강 위에 있다.
25. 밀양읍성이 바로 앞에 있다
26. 국보 영남루가 있다
27. 아름다운 밀양강 야외공연장이 있다.
이 공연장에서는 밀양의 큰 축제가 많이 열린다
28. 아랑각이 있다.
29. 아름다운 제1 밀양교(密陽橋)아래 뱃놀이 오리배 선착장이 있다
30. 밀양강 삼문동 둔치의 넓은 무료 주차장이 있다.
31. 아름다운 장미공원이 있다.
32. 봄에는 제방과 둔치에 핏빛 아름다운 연산홍과 샛노란 유채꽃과 개나리ㆍ하얀 쌀밥같은 이팝이 만발한다.
33. 이른 봄에는 5km의 벗꽃길 터널이 장관을 이룬다.
34. 전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넓은 강변파크골프장이 있다.
35. 아름다운 제2밀양교(密陽橋)가 강변의 아름다운 풍경속에 있다.
36. 밀양강 수중보의 아름다운 낮은 강물폭포가 하얀 물보라를 일어키며 폭포수 소리가 주변을 진동하면 복잡한 세상사를 잊어버려 좋다.
37. 밀양강에 백조가 날아든다.
38. 아름답게 설계된 나노교(Nano橋)가 있다.
39. 넓은 풋살(축구) 경기장이 있다.
40. 가을에는 넓은 코스모스 화원이 장관을 이룬다.
41. 강건너 멀리 밀양의 남산인 종남산(終南山)이 보인다
42. 밀주교(密州橋)가 마암산(馬岩山) 층암(層巖)과 함께 아름답게 놓여 있다
43. 그림같은 밀양강 하중도(河中島)가 있다.
44. 경승지(景勝地) 용두목(龍頭項)이 있다
45. 멀리 산성산(山城山 일명 일자봉一字峰)과 밀양 고대읍락국가시대(古代邑落國家時代)의 산성인 자씨산성(慈氏山城) 터가 보인다.
46. 《제2 밀양교》를 건너 200m만 가면, 왼쪽에 1970년대 ~ 1980년대에 우리 나라 3대(大) 최초ㆍ최대 "벼 육종(育種) 시험장"인 100,000평이 넘는 영남작물시험장이 있다. 1970년대 초~1980년대에 우리 3000만 국민(이 당시에는 3000만 명이었음)이 보릿고개에 굶주릴 때 밀양의 영남작물시험장, 수원의 수원작물시험장, 익산(당시는 이리)의 호남작물시험장이 필리핀 국제미작(米作)연구소와 합작으로 통일벼 등 수십 종의 벼품종을 육종ㆍ개량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시험장이 밀양의 영남작물시험장이다. 지금은 명칭이 국립식량과학원 남부작물부로 바뀌어서 여러 밭작물까지 품종을 과학적으로 개량하고 있다. 밀양에 영남작물시험장이 설치된 이유는 지명인 밀양(密陽:햇빛이 빽빽하게 드는 지역)인 것과 같이,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는 벼의 특성에 가장 알맞은 지형(반半분지형)을 갖춘 지역이기 때문이다. 관선(官選) 군수시절에는 밀양군수의 직급이 4급일 때, 영남작물시험장의 장장(場長)은 2급 ~ 3급이었을만큼 직급과 명성이 높았다.
47. 밀양강 건너 사포(沙浦)에는 고려시대에 밀양 사람들이 몽고에 대항하여 자주독립을 외치며 "경주 판관(判官) 엄수안"과 "금주(김해) 방어사(防禦使) 김훤"이 이끄는 몽고군의 허수아비가 된 고려 관군과 싸웠던 밀양인의 기개가 살아있는 역사적인 유적지인 "사포(沙浦) 병구지(兵區地:옛날 들빼기 들판과 동암 새마을과 강변 들판, 다부티골짜기 등)" 터가 있다.
※판관(判官)이나 방어사(防禦使)는 고려시대 관직의 이름으로, 쉽게 설명하면 군령권(軍令權)을 가진 요즘의 시장이나 군수 정도의 지방관(地方官)의 직위이다.
48. 밀양강 본류와 삼문동 밀양강 맞은편인 사포 동암마을의 강변 사이에 있던 밤섬(율도 栗島)은 조선시대 유림(儒林)의 영수(領袖:우두머리)였던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농사짓던 밭이 있었고, 밀양의 고지도(古地圖)에는 빠짐없이 그려져 있었는데, 1990년대에 밀양강 직강(直江) 공사로 없어졌다.
49. 삼문동 송림과 붙은 제방 바로 너머에는 우리 나라의 최초의 공설운동장인 수백 년 송림에 둘러싸인 옛 밀양공설운동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밀양아랑제 등 밀양의 대형 축제를 수십 년간 개최했고, 지금도 밀양시민의 최고의 체육시설로 각광받고 있고, 특히 금년에 운동장 트랙에 맨발걷기 황톳길을 만들어 시민들의 건강증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밀양시에 따르면 밀양강변 둔치에도 750m의 맨발걷기 황톳길을 금년 년말에 조성할 것이라 한다.
50. 밀양강 삼문동 둔치 산책로를 따라 종가시나무가 10m 간격으로 2,500m 정도 심어져 있어, 겨울에도 푸른 빛이 강물과 함께 더해진다.
○종가시나무는 긴 타원형의 잎 가장자리에 가시처럼 생긴 것이 돋아있고, 손가락 반 마디 길이의 종 모양의 열매가 열리는 상록수이다.
51. 나노교를 건너 직진하면 조선시대 유림의 영수(領袖: 우두머리) 점필재 김종직 선생을 향사하는 예림서원이 있다.
●조선시대 성리학(性理學)의 영수(領袖) 문충공 점필재 김종직 선생 생애(1)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4445?svc=cafeapp
●조선시대 성리학(性理學)의 영수(領袖) 문충공 점필재 김종직 선생 생애(2)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4444?svc=cafeapp
●조선시대 성리학(性理學)의 영수(領袖) 문충공 점필재 김종직 선생 생애(3)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4443?svc=cafeapp
52. 봄이 되면 이 섬(삼문동)의 주민들이 벚꽃축제를 벌이고, 가을이 되면 코스모스축제를 벌입니다.
밀양에는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이 많습니다.
국민 여러분 !
밀양으로 오십시오.
잠시 쉬어가셔도 좋습니다.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드셔도 좋습니다.
환영합니다.
삼문동 사랑채아파트 앞 안개 분수(噴水)공원
가을에 하얀 꽃이 피었다. 꽃 이름을 모르겠다.
여름에는 시원한 안개 분수대에서 물이 뿜어나온다.
넓은 코스모스 화원 단지
나노교(Nano橋)와 "밀양강 삼문동 둔치 강변공원"의 산책로와 자전거길
●나노교(Nano橋)의 명칭은 나노산업단지와 위치적으로 관련이 없고, 사포(전사포리前沙浦里와 후사포리後沙浦里) 방면과 연결되므로 사포교(沙浦橋)라 해야 맞다
●카카오맵으로 위 3개의 공단 면적을 계산한 결과 실재 면적보다 적게 계산되었다.
● 30여 년 전에 밀양에서 제일 먼저 조성한 사포공업단지는 실재로는 120,000평 정도가 된다.
● 2007년에 조성한 사포일반산업단지는 실재 면적이 250,000평이다.
● 현재 조성 중에 있는 나노산업단지는 500,000평이다.
멀리 밀양의 명산인 종남산(終南山)ㆍ우령산(牛齡山)이 보인다
밀주교(密州橋)와 마암산(馬岩山)
《밀주교》를 건너면
《신대구-부산고속도로》와, 《창원》, 《김해》를 지나 《남해고속도로》로 이어진다
왼쪽은 산보길, 오른쪽은 자전거길
e편한세상 삼문아파트와 "아리나호텔ㆍ결혼예식장ㆍ대중사우나"
밀주교(密州橋)와 마암산(馬岩山)
※밀주(密州)란, 고려시대에 밀양이 최대의 영역을 가졌을 때의 밀양의 명칭이며, 그 당시는 지금의 밀양시와 서쪽의 창녕군과 ㆍ북쪽인 경북의 청도군이 모두 밀주(密州)의 영역이었다.
●밀양강의 하중도(河中島)
●밀양강의 발원지는
(1)멀리 대구 비슬산(琵瑟山)에서 발원한 경북 청도천
(2)경주ㆍ울주의 경계의 문복산(文福山)과 경주 단석산(斷石山)
(3)운문산(雲門山) 북쪽에서 발원하여 운문댐을 지나온 동창천(東倉川)
(4)재악산(載岳山) 동쪽에서 발원하여 울주ㆍ양산의 배내골과 밀양댐을 지나온 단장천(丹場川)
(5)가지산(迦智山)ㆍ얼음골ㆍ재악산(載岳山) 북쪽ㆍ운문산과 억산(億山)의 남쪽ㆍ구만산(九萬山)ㆍ정각산(鼎角山 일명 正覺山)ㆍ구만계곡의 지류가 흘러온 동천(東川)이다.
이러한 강물이 흘러온 산과 그 유역(流域)이 모두 개발이 덜된 농업지역이고, 인적이 드물어 밀양강은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이 북적이는 강원도의 강물보다 깨끗하다.
※강변 공원길을 걸어면서 밀양강물이 흘러온 수백 리 발원지와 그 유역을 더듬어본다.
마암산과 밀주교
●전국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밀양강과 마암산(馬岩山)
●왼쪽(상남면 禮林마을 쪽)이 말의 꼬리
●중간(馬岩마을 뒷산)이 말의 몸통
●오른쪽 끝(밀주교에 가려진 부분으로 전사포리 馬岩마을 북쪽 끝)이 말의 머리에 해당한다
●말의 머리는 흡사 말이 머리를 밀양강 물에 쳐박고 물을 마시는 형상이다
●그러나 그 유명한 말 머리 바위는 밀양강 직강(直江) 공사로 없어졌다. 문화재인 마암(말의 머리 바위)이 없어진 것은 매우 안타깝다. 마암의 바로 위에 있었던 밀양의 역사적인 지명인 밤섬 즉, 율도(栗島 ,일명 율림 栗林)도 직강 공사로 사라졌다. 토건(土建) 제일주의로 인해 역사성이 큰 지명과 지형은 뒷전으로 밀려 사라져 매우 안타깝다.
하중도(河中島)
잔디 공원, 유한강변아파트
멀리 가곡동과 산성산(山城山 : 왼쪽)ㆍ자씨산(慈氏山: 오른쪽)
가곡동 부전아파트ㆍ산성산
●마암산과 밀주교
●마암산(馬岩山)의 북쪽 끝에는 마암산에 뿌리를 둔 거대한 바위가 말(馬)의 머리 형상을 하고서, 밀양강의 강물 속에 머리를 쳐박고서 물을 마시는 형상을 하고 있어, 밀양시 상남면의 예림리까지 뻗은 말의 꼬리와 함께 산 전체가 거대한 절벽(層岩)으로 되어 있는 경승지로서 유명하여 마암(馬岩)이란 지명이 유래했다. 밀양의 고지도(古地圖)와 지리지(地理誌)에는 빠짐없이 馬岩이 그려지고 기록되어 있다.
즉, 馬岩이란 조그마한 마을로서의 馬岩보다, 거대한 암벽의 산과 말의 머리 형상으로 인해서 역사성이 있는 지명이 馬岩 또는 馬岩山이다.
밀주교(密州橋)
※밀주(密州)란, 고려시대에 밀양이 최대의 영역을 가졌을 때의 밀양의 명칭이며, 그 당시는 지금의 밀양시와 서쪽의 창녕군과 ㆍ북쪽인 경북의 청도군이 모두 밀주(密州)의 영역이었다.
하중도(河中島)
잔디 공원
잔디 공원과 유한강변 아파트
2023년에 서남쪽(8시 방향)에 5번째인 대형 《나노교 Nano橋》를 건설했고, 서쪽(9시 방향)에 6번째 대형 교량을 건설 중에 있다.
밀주교
하중도ㆍ마암산ㆍ밀주교, 밀양강 삼문동 둔치 강변공원 산책길
용두목(왼쪽)과 산성산(오른쪽), 부전아파트
삼문대우아파트ㆍ밀양강과 용두교(龍頭橋)ㆍ용두목
용두교ㆍ밀양강ㆍ용두목
보도와 자전거길, 멀리 삼문 대우아파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선사시대의 "한국의 암각화조각공원"이다.
한국의 암각화조각공원
밀양강 삼문동 둔치 조각공원의 암각화는 중국 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區:내이멍꾸) 북쪽에 있는 인산(銀山)산맥의 우란치부에서 발굴된 4000년 전의 암각화와 흑룡강성(黑龍江省 헤이룽장성)의 암각화, 국내의 울산 반구대와 대곡리ㆍ경북의 여러 지역ㆍ전남 등 여러 지역의 암각화를 본떠서 만들었다.
●멀리 긴늪삼거리 뒷쪽의 비학산(飛鶴山)
●비학산은 가지산에서 남쪽으로 운문령ㆍ운문산ㆍ억산ㆍ구만산ㆍ종지산ㆍ오치ㆍ백암산ㆍ도덕령ㆍ천지(天池 일명 도둑못재, "고려시대 孝心의 亂" 때 효심 농민군이 웅거(雄據)했던 곳)ㆍ낙하산ㆍ보두산으로 뻗어내린 운문지맥 남쪽의 마지막 산이다.
용두목과 산성산
울산의 반구대ㆍ대곡리까지 가지 않아도 그곳의 여러 암각화를 밀양에서 볼 수 있다
용두교 교각의 아름다운 그림 디자인
밀양 용두교 아래에 새긴 조선시대 유림의 종장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시(詩) "영남루 아래에서 돛단배를 띄우다"
嶺南樓下泛舟
영남루하범주
영남루 아래서 배를 띄우다.
김종직(金宗直)
檻外澄江百頃雲
함외징강백경운
난간밖의 맑은 강 만 이랑의 구름 아래
(난간밖에는 맑은 강, 구름 아래는 넓은 들판이로구나)
※영남루 대청마루에 서서, 삼문동과 멀리 상남쪽 들판을 바라보며 읊은 것으로 보임.
畵船橫渡皺生紋
화선횡도추생문
그림배가 횡단하니 주름살 무늬 생기누나
(그림같은 배가 강을 건너니, 물결이 이는구나)
※영남루 대청마루에서 응천을 내려다보니까, 돛단배가 강을 건너며 물결이 이는 것이 보인다.
晩來半醉撑篙看
만래반취탱고간
저물녘에 반쯤 취해 상앗대를 버티고 보니
(저물녘에 반쯤 취해, 상앗대로 배를 저어가며 쳐다보니)
※話者가 직접 배를 저어가는 형국임.
兩岸靑山更十分
양안청산갱십분
양쪽 언덕 푸른 산이 십분 더 분명하구려
(강 양쪽의 푸른 산은 푸르름이 더하구나)
※배를 저어가며, 양쪽을 쳐다보니 푸른 산이 더욱 푸르구나.
●(주1)도재국 :
파란 글은 본인(도재국)이 번역해 본 것임.
●(주2)도재국 :
○문맥으로 보아서는 1ㆍ2행은 영남루 대청마루에서 바로 아래와 멀리 앞을 쳐다보며 읊은 것임.
○3ㆍ4행은 직접 배를 저어면서 읊은 것임.
●(주3)도재국 :
이 시(詩)를 용두교 교각보다는 영남루 바로 아래의 제1 밀양교 교각에 적었으면 더욱 좋겠다.
마암산(왼쪽), 멀리 팔봉산(八峰山)
경부선 밀양강철교
경부선 밀양강철교, 멀리 낮게 보이는 산이 정각산(正覺山, 일명 정각산 鼎角山)
추화산 남봉(南峰)
산성산(山城山, 일명 일자봉 一字峰)과 용두목
※산성산의 산명은 바로 남쪽의 자씨산성(慈氏山城)에서 유래되었다
"경부선 밀양강철교"와 밀양강 야외수영장
영남루 대청마루에 올라서면 산성산에서 제일 먼저 아침해가 떠오른다.
"밀양강 야외수영장"
용두목
전국에서 제일 큰 밀양강 야외수영장
●밀양의 전(前) 민선 3선 이상조 시장의 삼문 조각공원 조성기(記)와 밀양강 삼문동 둔치의 공원 조성의 알려지지 않은 내력
※사진을 밝게 찍어려해도 빛이 강해서 시커멓다
●민선 3선을 한 이상조 전 밀양시장의 여러 업적 중에서 최고의 업적이 해마다 홍수가 나면 뻘밭으로 변하는 밀양강 삼문동 둔치를 공원으로 만든 것이다.
●내(도재국)가 밀양읍사무소에 근무할 1970년대 중반에는 넓은 밀양강 삼문동 둔치에는 모두 땅콩과 노지 고추ㆍ토마도ㆍ옥수수 등을 재배했다.
●그후에 하우스시설재배 풋고추와 토마도가 소득이 높아, 둔치 전부가 풋고추와 토마도 재배지로 바뀌었다.
●1970년대에는 밀주교~삼문동 송림~영남루 앞~"옛 삼문동 변전소"가 있던 지금의 "제2 밀양교" 바로 아래까지만 제방이 있었다.
●나머지 삼문동 구간과 맞은편인 부북면 감천리~제대리~전사포리 구간인 밀양강 양쪽은 제방이 없어, 홍수가 나면 밀양강 양쪽 유역은 물바다가 되었다.
●삼문동의 제방이 없는 강변의 풋고추와 토마도 하우스 시설 재배단지에도 거의 해마다 홍수 피해로 고추밭과 토마도밭이 허리 정도 높이로 강물에 잠겨, 농사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도재국)는 해마다 홍수가 나면 물에 잠겨 뻘밭이 된 고추하우스밭과 토마도밭에 목이 긴 장화를 신고, 고추와 토마도 피해 면적을 조사하여, 그 당시 전국 최고의 을류농지세를 납부하던 밀양 농민의 세금 감경에 노력했다.
※그 당시 농지세는 벼 생산량 가액에 부과하는 갑류(甲類)농지세와 밭농작물 생산량 가액에 부과하는 을류(乙類)농지세가 있었다.
●그후 토마도밭도 전부 풋고추 시설재배단지로 작목 전환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삼문동의 구(舊) 시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전체 면적이 시설하우스 고추재배 단지였다.
●삼문동에서 시작한 시설하우스 고추재배가 인근의 광활한 상남들판과 부북들판 등 밀양 전역으로 재배 단지가 퍼져나가, 밀양이 전국 풋고추 재배 면적의 50%를 점유하였고, 밀양 풋고추의 명성이 높았다.
●밀양강 삼문동 둔치를 포함한 삼문동은 시설하우스 풋고추 재배단지의 전국적인 효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이 당시 고추하우스 시설재배를 하는 농가의 을류농지세 부담액이 평균 200,000 원 정도였고, 1977년경에 을류농지세를 최고로 납부한 농가는 삼문동 거주의 최 모(某) 어르신으로 납부액이 무려 1,300,000원 정도였다. 그 당시 8급 공무원 월급이 30,000원 정도의 40배가 넘었으니까, 지금의 8급 공무원 월급과 비교하면, 농민들이 얼마나 많은 을류농지세를 부담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당시에 전국적으로 을류농지세 부담이 높아 민원이 청와대까지 폭주했고, 감사원에서 을류농지세의 주(主) 세원(稅源)인 밀양의 풋고추 재배지와 충청도 금산의 인삼 재배지와 제주도의 감귤 재배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면서 1998년?경에 감사원 암행감사원이 갑자기 밀양읍사무소에 근무하던 나에게 직접 들러 말하기를
●"저는 감사원 암행감사반원입니다. 제가 밀양읍사무소에 출장온 것을 읍장(邑長) 등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선생님이 을류농지세 담당자이니까, 밀양지역의 을류농지세인 풋고추 세금에 관한 농민들의 반응과 을류농지세법의 법률적 개선 방안을 솔직하게 적어주세요. 선생님이 적어내는 진술서는 앞으로 을류농지세 세금 감면에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며, 선생님에게는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과도한 을류농지세 세금을 못 낮추는 이유는 제주도 밀감과 충청도의 인삼 세금을 없애면 도정(道政)이 안 돌아갈 정도로 을류농지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였다.
●감사원 암행반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단숨에 농민들의 과중한 세부담과 을류농지세 기초공제액 문제를 집중적으로 A4용지 규격의 갱지에 볼펜으로 무려 5장을 적어서 그 분에게 주었고, 그 분은 모두 읽어보더니, 무릎을 치면서 나에게 말하기를 "맞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하고, 고맙다 하면서, 밀양읍사무소를 떠났다. 그 때가 1978년? 경의 초가을이었고, 그러한 자료를 근거로 그해 12.31자로 농지세법 중 을류농지세 기초공제액이 변경, 대폭 인상되어 농가 평균 200,000원 정도를 납부하던 세액이 1/10로 낮아져서 20,000원 정도 되었다.
●이로 인해 결국은 농민들에게 가렴주구나 마찬가지였던 을류농지세 제도가 폐지되었고, 잇따라 갑류농지세 제도도 폐지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 대통령 직속의 감사원의 권위는 하늘을 찔렀다. 감사원 암행감사반원이 지방에 나타났다 하면 시장ㆍ군수ㆍ구청장 등이 벌벌 떨 정도였다
●그 당시에 을류농지세부담이 너무 높아 해마다 여러 번 밀양강 삼문동 둔치의 고추하우스 시설재배지에 고추 작황조사를 나갈 때마다 농민들은 세금이 비싸다고 나에게 온갖 항의를 하였고, 농민들을 아무리 설득시키려 해도 잘못된 (을류)농지세법을 이해해 주지 않았다.
●1979?.1.1부로 인사발령이 나서, 나는 세무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이동했고, 그해 여름에 을류농지세 세법 개정 후인 첫해에 농가 평균 200,000원 정도를 납부하던 을류농지세액이 1/10로 낮아져서 20,000원 정도 되었고, 세금납부 농가도 1/10로 줄었다.
●1978?.12.31부로 농지세 세법 개정으로 1979년?에 을류농지세 기초공제액의 대폭 인상으로 을류농지세를 예년보다 1/10로 감경 납부했거나, 아예 납부 대상이 안된 사람들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도재국이가 세무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발령나서, 우리 농민들 을류농지세 세금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속이 시원하다"
●농민들은 내가 감사원 암행감사반원에게 농민들의 과중한 을류농지세(稅) 부담을 줄이기 위한 암행 출장조사 때에, 내가 적어준 농민들에게 세금을 낮춰주어야 한다는 진술서 등을 근거로 해서 1978?.12.31부로 농지세법이 변경되어 세금이 거의 없다시피한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농민들은 내가 세무부서를 떠났기에 즉, 내가 과도하게 세금을 매겼고, 내가 세무부서를 떠나서 세금이 거의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 동안 잘못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넓은 삼문동의 제방 안쪽은 신(新) 시가지가 되었고, 바깥쪽은 지금과 같이 아름다운 강변공원이 되었고, 그 농민분들 일부는 하늘의 아름다운 별이 되셨고, 일부는 만나면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내가 이런 글을 적어면 "도재국이는 자기 자랑한다"하는 사람이 몇몇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결코 내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고, 지나간 사실을 적는 것이고, 이 또한 밀양강 삼문동 둔치의 홍수 때마다 뻘밭으로 변하는 농지가 지금의 전국 최고의 아름다운 강변공원으로 변한 지난 역사의 발자취를 적는 것일 뿐이다.
●이렇듯 50년 전의 밀양강 삼문동 둔치의 고추하우스 시설재배 농민과의 깊은 인연을 요즘 나이 70이 넘어 강변 공원길을 산책하면서 그 깊은 추억을 소환해보곤 한다.
●그후 밀양읍이 밀양시가 되고, 이러한 밀양강의 넓은 삼문동 둔치의 고추하우스 시설재배단지를 철거하고 이상조 전 밀양시장이 지금의 삼문동 둔치를 전국에서 가장 넓은 강변 공원 중의 하나인 , 가장 아름다운 시민의 휴식 공간인 강변 공원으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삼문동 송림
밀양시민들의 최고의 힐링 숲이다
가슴이 확 트이는 시원하고 넓은 밀양강 야외수영장
밀양 부북면 오례마을 출신 이재금 시비(詩碑)
도래재
언양 땅 넘어가면 석남고개
밀양 땅 넘어오면 도래재고개
일흔일곱 굽이굽이 소쩍새 울어
실안개 피는 자락 눈물 맺힌다
돌아서서 가신 님 돌아오는 고개
●도래재(일명 회령 回嶺)는 밀양시 단장면 원구천마을과 밀양 얼음골 입구인 산내면 남명리 내촌마을 사이에 있는 일흔일곱 굽이굽이의 높은 고개이다.
○고개의 동쪽에는 해발 1189m의 재악산(載嶽山 소위 천황산), 서쪽에는 해발 800m의 정승령(政丞嶺)과 밀양 최고의 오지마을인 정승동(政丞洞)이 있다. 정승동의 지명 유래는 고려 (高麗)김용(金鏞) 정승이 공민왕을 시해하려다 미수에 거치고, 상장군(上將軍:고려시대 무관의 최고위 직위)에 끌려 정승동까지 와서 21일간 유폐되었다가, 끌방재를 넘어 계림부(경주)로 끌려가 참형을 당하고, 머리는 개경(開京 개성)으로 보내져 저자거리에 내걸렸다는 내용이 고려사(高麗史)에 기록되어 있다.
○도래재(일명 回嶺)는 옛날에는 밀양시 산내면의 남명ㆍ삼양마을 사람들과 울산의 언양 사람들ㆍ경북 청도 사람들이 밀양장에 오갈 때와 또 운문사ㆍ표충사ㆍ통도사의 스님들이 오갈 때 넘어다니던 험준한 고갯길이다.
○지금은 지방도로가 잘 개설되었고, 밀양시에서 도래재 자연휴양시설(숙박시설)을 지어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보릿고개 시절(1960~1970년대 초)에는 굽이굽이 일흔일곱 굽이의 도래재를 넘나들며 한많은 사연들이 얽혀 있는 고개이며, 이재금 시인은 이 고개를 넘나들며 지은 애틋한 사랑의 시(詩)가 유명한 도래재이다.
※이재금 시인은 도재국의 밀양중학교 동기인 이재학(부산시청에서 서기관으로 정년퇴직)의 형님이 되시며, 도재국이 1970년대 초에 부북면사무소에 근무할 때 고향 사포마을에서 면사무소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할 때, 이재금 시인은 밀양의 세종중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자전거로 고향 오례마을에서 사포마을과 마암마을을 지나 출퇴근하셨다. 매일 아침마다 서로 반대방향으로 출퇴근하였기에, 거의 아침마다 마주쳤다. 선생님은 매우 검소하시고 인자하셨다. 선생님의 자전거 안장에는 항상 도시락이 매어져 있었다.
밀양강 살여울 징검다리
소나무 거리 숲
대우ㆍ청구아파트 옆 제방길과 둔치길(오른쪽)
삼문송림
전국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밀양강과 징검다리
아름다운 "밀양강 살여울 징검다리"는 전임 엄용수 밀양시장(국회의원 역임 : 밀양ㆍ창녕ㆍ의령ㆍ함안 지역구)이 있을 때 만들었다. 작으마한 징검다리이지만 "100만 평의 수변도시(水邊都市) 밀양을 상징하는 삼문동"과 "30만 평의 밀양강변 유원지와 하우스시설재배 농사를 짓는 암새들"을 이어주는 큰 역할을 하는 밀양강에서 가장 멋지고 서정적인 정취를 묻어나게 하는 징검다리이다. 엄용수 전임 시장이 이 징검다리를 만든 발상은 "밀양시민이 밀양강을 더욱 친밀하게 받아들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라고, 본다. 작은 징검다리이지만 큰 교량 못지않은 훌륭한 효과를 나타낸다고 보여진다.
봄이 오면 살여울 징검다리 주변의 버들강아지와 능수버들이 밀양강에 제일 먼저 희망의 봄소식을 전해준다.
무봉산 일명 아동산
밀양읍성의 망루 역할을 하는 무봉대(舞鳳臺)
치유의 숲ㆍ힐링의 숲ㆍ홍수때 방수(防水) 역할을 하는 삼문동 송림(三門洞 松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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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이나 방어사는 고려시대 관직의 이름으로, 쉽게 설명하면 군령권(軍令權)을 가진 요즘의 시장이나 군수 정도의 직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