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정치'의 주역도 사람이다. 한나라당의 디지털 정치에 대한 엉터리 연구에 목숨거는 모습을 지켜보기 너무 힘들다.
-시놉시스도 없고 영화배우도 없고, 독고다이로는 해봤자 뻔하고-
1. 영화 [범죄의 재구성]엔 일을 만들려 할 때 공식이 전부 있다. 이거 피하고 해볼려는 것은, 지독하게 사악한 양반관념놀음 타령일 것. 일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따위 엉터리 헛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정말 끈질기다. 대학가 좌파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답은 듣지도 않는다. 디지털정치 운운하는 분은 제발 룸사롱을 즐기는 스타일에서 나온 사고임이 분명히 나온다. 그 분이 '룸싸롱'을 즐겨 가야만 우파정치는 이득을 본다. 그 분이 룸싸롱을 안가는 것은 대한민국의 술시장과 우파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평론가 모씨 처럼 '닭짓'이라고 평하며, 어린이라고 조롱하는 것은 지나칠 수 있다. 젊은 척 새로운 감각을 과시하되, 룸싸롱 가는 사람들 수준으로 독자를 제한하거나, 젊지 않은 사람들 만 가지고 수술시키려(사기치려)는 자태가 너무 지나치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은 일을 만들 때, '시놉시스'와 '영화배우'를 기본으로 친다. 뭐, 디지탈 정치를 타고 우파는 못 탔다, 이러한 소리를 하는 한 할아버지 정당이란 판단을 피해갈 수 없다. 노사모들의 대부분은 주사파 학생운동경력자다. 그들에겐 '사회과학서적'과 '(행위)주체'가 있었던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인터넷'이나 '전화'나 '삐삐'나 하나의 통신도구일 뿐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책임감을 불어넣는 이데올로기 개발에서, 계속 발전과 새로움이 있도록 대학가 인문사회학이 외길로 가는 것이 투자되었고,
노골적으로 말하자. 시놉시스도 없고 영화배우도 없다. 우파 인터넷은 '독고다이'들로 우글거린다. 좌파는 시놉시스도 있고 영화배우도 있어서 팀플레이가 된다. 이 판단에서 몇자 피해가지 않는다. '독고다이'들로 우글거린다는 말을, '입만 살았다'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을 뒤져본 사람이라면 헷갈리기 어려운 판단을 헷갈린다.
2. 디지탈 정치 뿐만 아니라 우파의 모든 정치적 공간에서 침체의 핵심 이유 : 시놉시스도 없고 영화배우도 없고, 독고다이로는 해봤자 뻔하고.
시놉시스를 갖추도록 대학가에서 인문사회학의 모든 에너지가 외방향으로 쏠리게 되었다. 이것을 허락하는 데에 헌법에 주어진 국민의
권리를 뺐긴다는 측면은, 기성세대 우파엔 관심이 없다. 시놉시스 만들기의 경쟁체제가 갖추어져서, 더 나은 연구가 되도록 한 것과, 유교적 가부장으로 오랫동안 독점한 상황은 게임이 안된다.
대학가에 인문사회학을 갖추면 조선조 타령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이번에 디지탈 정치 에 대해서 발언하는 정치와 연관하여 발언하길 즐기며, 대중 앞에는 한마디도 못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철저하게 대중화된 문화운동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은 조선조 차원이 아니다. 양반정신을 갖고서는 대중성을 외치지 못한다. 조선조 타령을 입에 물고 다니는 이들이 지독하고 사악한 주자학적 명분론이 읽혀진다.
대학가에 우파 인문학이 씨가 마르도록 멸종 상태가 이르르자, 1987년 이전의 국정교과서 시놉시스 기반의 우파 담론의 경쟁력이 형편없음에도 검증할 방법이 그냥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세대 단절 효과로 기성세대 층이 갈수록 얇아지는-구세대들의 자연사-것이 문제이지만, 구세대의 주도권을 위해서 1987년 이전의 국정교과서 시놉시스 는 깨지면 안된다. 극소수의 수준있는 젊은 세대를 제외한 이들에, 외계어가 되어 버리는 사실도 무사 통과다.
시놉시스가 대중화되어서, 어떠한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주체의 자각이 있다. 어떠한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는 문화상황이 있어야, 그렇
게 자각하는 인간이 만들어진다. 즉, 모든 것을 사려 있게 판단하도록 주체가 자기의식속에 성숙하는 게 아니라, 문화운동으로 주체를 길를 수 있다. 제물론에 나온 나비 이야기처럼 문화와 자기의 경계가 깨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놉시스의 대중화 자체를 이해 못한다.
시놉시스가 대중화되어서 어떠한 사회분위기를 휘어잡지 못하니, 늘 독고다이 밖에 없다. 그렇다. 오래된 보수 담론의 권력화의 안정성에는 일회적 소비성의 독고다이들이 괜찮을 수 있다.
그러면, 약간의 판매량을 가지는 우파서적은 뭐냐고 그럴 수 있다. 그것은 젊은 수준높은 지식인 중에 보수주의자들에게나 상관있는 이야기이다. 대중들의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고, 대중들의 분위기에 휘말리게 된다. 싸무라이 문화를 좋아하는 지독한 일본식 유교 숭배자는, 그거 대중들 하나 제 맘대로 못하냐 하지만, 똥밭에 밥알 하나 들어가면 그 밥은 똥이지 밥이 아닌 것이다.
3. 시놉시스도 없고 영화배우도 없고, 과거 우파 정치의 포퓰리즘 논리를 떠받드는 구세대식의 감성구조에 입각하여, 조신하게 권력구조에 안주만 한다면, 원로 정치인 늙어죽을 때까지야 문제가 없을 것??
시놉시스가 있고 영화배우가 있다면, 그렇다면 구세대 감성구조에 입각해서 밥벌어 먹고 사는 원로 정치인의 설자리가 없다. 결국, 원로 정치인이 대학가에서 인문사회학을 육성할만큼 실질적 업그레이드를 하지 못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디지탈 공간에서 '독고다이'들이 쫙 몰려 있으면, 그거 배경으로 권력화를 업었다고 구세대끼리 농담하실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그 독고다이들이 시놉시스 갖고 영화배우 갖고 집단적으로 설치는 것보다, 정말 별 볼일 없음이 분명하다. 몇 안되는 판매량의 우파서적을 내는 곳을 대다수가 읽지 않은 채, 머리는 좌파에 배운 지식쪼가리로 가득차고, 좌파에 줄 설 수 없어서 나온 감성에 입각된 좌파 모방만 가득할 뿐이다.
원희룡의원이 나쁜 것은 원희룡의원 발언이 예외없이 좌파 코드라는 점 때문이 아니다. 결국, 원희룡의원이 무슨 이유 때문에 한나라당에 들어오게 되었던가? 결국, 어느 시스템이 한나라당에 좌파 코드를 수혈하게 했는가 말이다.
4. 한나라당은 국졸 중졸 고졸이 많은 구세대랑 대화하는 버릇을 너무 너무 즐긴다. 1980년대 후반에 대학가가 속으로는 북한문서 떠받들고, 외부적으로는 '주체'타령했던 학생운동인간들로 가득찼음은 뻔할 뻔자 사실이다. 조선조 타령을 즐기면 국졸 중졸 고졸의 구세대들은 좋아하겠다. 그런데, 대학가에서 지식컨텐츠로 쨉도 안되는 양과 질을 보이는 우파가 얼마나 한심하게 보이는지 아는가? 대졸 젊은 세대와 무늬만의 소통성 빼고는 제대로 주장하지 못한다. 한나라당이 젊은 세대와 접근한다고 한다면, 우파 권력 강화를 위해서 대학가 인문사회학을 좌파에 떠넘긴 상황에서 졸렬하고 조악한 우파 지식의 질을 보고 자란 이들이다. 이들이 학문의 길을 안 간다고, 학문은 실용적이지 않다고 외면하면 안된다. 그들이 선택할 때 판단하는 '기분'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근대화정치에 살아남기 위해서 배운 지식은 간단하고도 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이 시대 젊은 이들에겐 한참 둘러가야 보일 일이다. 그들이 둘러갈 시간동안까지 우파정당이 기다리면, 우파정당은 숨이 넘어간 이후일 것이다.
우파 기성세대들의 일상적 체험을 구제하려고 하는 시도를 자주 하려 해도, 우파 기성세대는 군인정신을 사수하기 위해서, 나의 시도를 독고다이로 되도록 만든다. 결국, 우파 기성세대는 기성세대의 논리를 유교적이지 않다는 수식 속에, 초고강도 유교적 예의구조를 무의식적으로 깔고서 젊은 세대가 잘 봐주기를 기대한다. 우파 기성세대는 간단하게 말해서, 매스미디어의 지식의 홍수 시대에 라디오나 신문이 겨우 있던 때의 사고관을 젊은 대중들이 가지길 강요한다.
우파 기성세대는 우파 기성세대의 권력을 사수하기 위해서, 진지한 대안을 수용할 의사가 완벽하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5. 시놉시스도 없고, 시놉시스가 없으니 영화배우도 없고, 영화배우도 없으니 독고다이 뿐이고, 독고다이로 해서 외딴 목소리로 그럴싸 하다는 판정밖에 더 날까요? 그게, 사회를 바꾼다구요?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가능하나, 지금은 유효성을 완벽하게 잃어버린 '문'으로 혁명한다는 가치관 속에서만 가능할 뿐. 고고학적 연구속에나 드러날 과거의 문제가 원형 그대로 반복될 것이란, 우파의 기대를 제재할 대학가의 젊은 지식인이 전멸했다는 것은, 슬픈 일.
결국, 공부하길 싫어하는 이들의 말이 말을 복제하는 정보 속에서, 진중권이는 우파 사이트에서 슨상님 대접을 계속 받게 될 것이다.
진중권이의 숭고와 시물라크르란 책을 재미있다고 하는 20대 초반의 얼라를 보라.
숭고와 시물라크르가 재미있다? 이것은 굉장한 엽기다. 그러나, 지식정보가 대중화된 효과로 어리버리 철부지부터가 지식체계의 대중화를 받아들이게 되는 상황에서의 진중권이 모습을 보라.
시놉시스도 없고 영화배우도 없고 독고다이만 갖고 뭘 어쩐다고?...... 디지탈 정치 시대의 대중들의 감성연구를 하지 않으니, 1960년대적 군중정치를 디지탈 정치란 이름으로 우겨박는 것이지.
[한나라당 디지탈 정치 추진 주체님들은 제발 룸싸롱 가세요. 룸싸롱 안간다는 약속은 안 지키는 게 모두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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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적 대안. 한나라당 디지탈 정치 추진 위원에 대해서, 디지탈 정치에 대해서 나온 책 독후감 쓰게 하기 운동 시키면 어떨까요?
***. 무슨 일을 추진할 때, 시놉시스와 영화배우가 있어야 된다는 주장이 노사모들의 기반이 맞나 아닌가, 학생운동권을 연구해본 분들이 답해주세요. 디지탈정치라고 나선 이들이 그 놈이 그 놈인데, 뭐가 다르다고....... 학생운동권 공부 안하면서 디지탈 정치 운운하며 혼란시킬 분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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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가 모두에게 열람되지 않으면 '독고다이'일 뿐입니다. 할아버지 시대에 첨단 문물에 쫓겨 가듯한 상황은 젊은 세대에는 없습니다. 시놉시스가 각자에게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되도록 젊은 세대에 우파 학문이 씨가 마르니, 영화 배우의 참여가 빈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25억명?? 그런 구라를 인터넷 공간에서 일반인 들하고 입씨름 하면서 해보시죠.
우파 정당은 검증이 안된 구세대 구라빨을 끼고 도는 문화를 빨리 청산해야 합니다. 독고다이끼리 서로 물고 물리도록 하는 시스템에서, 그러한 저질 구라빨에 복종하라는 식이 가능하겠죠. 누구를 위해서 독고다이끼리 물고 물리는 인터넷 공간이 되어야 합니까?
첫댓글 님이 말하는 시놉시스가 대체 머요? 시놉시스는 줄거리라는 영어 아닌가요? 도대체 먼말인지...원....
저도 이해는 잘 못하지만, "논리를 만들고 주장을 할 때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교육, 전투법(좌익들과 싸울 수 있게), 작전, 갖가지 수단 등을 동원하고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로 해석됩니다. 맞는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