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달빛은 교교히 흐르고
이게 욕탕인가, 궁전인가? 이런 시설은 언감생심, 상상해본 적도 없었고, 꿈을 꿔본 적도 없었다. 기가 질려 말이 안 나왔다. 잘나갔던 수안보 온천이나 부곡온천은 왜 그렇게 작았다는 생각이 들까. 들어서자마자 온갖 기분 좋은 향이 욕탕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국자에서 보글보글 설탕 끓는 그 내음, 달고나 향도 났었고, 오색찬란한 생화들이 뿜어내는 향기 또한 넘실댔다.
달고나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구석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손바닥에 땀을 닦았지 그리곤 비장한 마음으로 바늘을 들었고, 얄팍하게 난 달고나 홈을 살살 팔 때의 그 긴장감, 침을 꼴딱꼴딱 넘기면서 한 땀 한 땀 파고 들 때의 감미로운 향은, 덤벙대던 내겐 고문이었다. 은은한 향기들이, 냇물이 퍼져 누나 손등을 간질이듯 죄 없는 내 코를 간질여주었다. 코와 눈이 친해서 그럴까, 코가 행복하니 눈이 저절로 감겨왔다.
얼마 만에 해보는 목욕인가. 후천교 냇가에서 물놀이 하며 놀던 때가 떠올랐다. 한때 수북이 쌓여있었던, 그 보드랍고 반짝이던 모래사장이 하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누룽지 긁듯이 박박 긁어 다 써버린 모래는 언제쯤 복원이 될까. 몇 백 년이 지나도 원상회복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가슴이 쓰렸다. 후손들은 모를 거다. 황금 같은 모래가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가를. LA 산타모니카 해변 보다 더 아름다운 냇가였는데. 참으로 아깝기 그지없다.
상주 토종 촌닭이 로마 황제 급 욕탕에서 몸을 씻다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젊은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한마디로 고난의 역정이었다. 후회가 가슴을 때린다. 살아생전 내가 해놓은 일이 뭐였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허무해진다. 허무가 허탈을 부르고, 허탈이 헛웃음으로 번져 나왔다. 한다고 한 일들이 모두 실패작 같았다. 뭐 하나 반듯하게 이룬 것이 없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눈물이 나려고 했다. 일상에 행복은 잠시였지만 슬픔은 두고두고 오래 갔다. 존재의 상실감은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었다. 환생을 한다고는 하지만, 한 번 맛본 인생으로 충분했다. 인생살이 고달픔에 다시는 태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나마나, ‘이렇게 죽는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겉으론 표를 내지는 않았다. 이런 호강도 못해보고 죽는 이도 많은데, 토종 촌닭은 그래도 선택된 대상이 아닌가. 죽을 때 죽을 값이라도 목욕재계는 해야 했다. 잠시 감상에 젖었지만 여인네 앞에서는 내색하기가 싫었다. “안 그래도 찝찝해 죽겠는데, 말씀 고맙소이다.”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었다. ‘선녀탕에 몸을 담그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구나!’ 갑자기 뭐나 된 것처럼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준마가 생기니 종을 두고 싶은 마음이랄까. 어디선가 “네이, 여기 대령했사옵니다!”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런 환청에,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발동한 것인지, 정말 한 소리 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 끝. 2021.1.21.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