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전에 먼저 알아 두어야 할것은 바로 신라라는 국명의 의미이다. 신라는 옛부터 영어로 SINRO,SILA,SARO,SINO등의 이름으로 번역이 된다,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것은 바로 실크의 주 생산국이 신라였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대륙에서 아라비아로 잇는 무역의 길이 바로 실크로드 ,신라에서 유래하였다는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고대 국제무역시 한반도 신라에서 시작하여 아라비아로 가는것이 빠를까 ? 아니면 대륙 중원 신라에서 가는것이 빠를까를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이는 독자의 판단에 맏긴다.
지금도 중국의 운송업체의 이름중에 혹은 중국을 일컫는 이른중에 Sino라는 단어가 나온다 예를 들어 Sino-America라 함은 중미관계를 뜻한다.바로 이 이름의 유래는 신라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또 한가지 ,나침반이라는 것이 있다 인류가 발명한 발명품중에 전무후무한 것이다. 이 나침반의 원명은 신라침반(新羅針盤) 이며 자음접변현상에 의해 나침반으로 불린다는 것 필이 알아 두어야 한다.
이미 이러한 사실은 아라비아고문서,국외학자에 의해서 증명된바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래와 같다.
경주(慶州)는 신라국의 서울이었다고 하는 곳으로 여자들은 을야(乙夜:밤11시)까지 비단을 짜고, 명절 때는(한가위) 비단을 짜는 경쟁 및 시합까지 벌어지는 풍습이 있었다고 조선의 역사는 쓰고 있다.
경주(慶州)를 다른 이름으로 진한(辰韓), 서라벌(徐羅伐), 신라(新羅), 계림(鷄林), 동경(東京)으로도 불렀다. 진한의 진(辰)은 역리의 진(辰:東)괘의 뜻과 같고, 서라벌은 신야(新野), 동야(東野)와 같다. 신라(新羅) 역시 사로(斯盧)와 함께 동국(東國), 신주(新州), 서지 (曙地)로써 동광(東光)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계림 역시 동트는 아침에 닭이 우는 지역의 뜻으로 시림(始林)의 지역인 동방(東方)을 지적하는 상징성의 지명이다. 경주를 서라벌이라하여 서울이란 뜻을 지니게 된 것도 동국(東國)과 동주(東州)의 중심에 동경(東京)이 있었다는 뜻이다.
신라와 서라벌, 계림의 의미와 동일한 뜻을 지닌 것이 동경(東京)이다. 단지 경(京)과 벌(伐:野)이란 글자를 첨가하여 국지적인 의미도 갖게 했을 뿐인 것이다.
전성기에는 인구가 백만을 넘었고, 숯만으로 밥을 지었으며 초가집은 없었다고 하며. 더하여 국제시장을 포함한 대형시장이 3곳이나 있었다. 시장(市場) 업무를 관리 감독하는 관청까지 있었던 곳이 신라의 서울(서라벌)이자 동경(東京)의 상황이었다고 역사서는 분명하게 쓰고 있다.
정사서속의 신라와 東京은 반도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화려 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의 ‘군자의 나라’였다. 나라의 풍속은 질박했고 옷은 흰 색깔을 숭상했다. 흰색을 숭상했던 나라는 은(殷)나라였고 조선이었으며 흰색은 밝음과 순수로 상징되는 태양 빛(陽:光)과 인(仁)의 상징이기도 하다.
정월 보름날에는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태양신(太陽)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까지 있었던 곳이 신라 이며 경주였다. 예의지국으로는 강릉이고 군자의 나라는 신라이자 동국의 서라벌 동경이었으며 이곳이 경주(慶州)라는 글자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후 고려조에서 도명을 지을때 경주는 상주(尙州)와 함께 경상도를 만들었다. 상주도 곧 동경(東京)이며 경주 였다. 상주를 역사서에 낙양(洛陽)이라고 쓰고 있으며 낙원(洛源), 낙서(洛西), 낙동(洛東),이 있었다고 쓰여져 있는곳을 눈여겨 볼필요가 있다.
낙양은 동주(東州:새벌,시림), 신읍으로 신야(新野)와 신안(新安)과도 통하는 서라벌(徐羅伐) 이었던 것이다.또한 안동(安東)과 복주(福州)이기도 했다. 낙양은 동주(東州:새벌,시림), 신읍으로 신야(新野)와 신안(新安)과도 통하는 서라벌(徐羅伐) 이었던 것이다.또한 안동(安東)과 복주(福州)이기도 했다.
고려사와 신라의 동경이자 경주(慶州)는 동국의 경주(京州)로써 현재의 ‘하남성 낙양(洛陽)’ 지역을 말하는 것이며, 더불어 신안(新安), 낙령(洛寧), 여주(汝州), 남양(南陽), 신야(新野), 맹현(孟縣)이란 지방은 동국의 신라 주변국이자 관할 지역이 되는 것이다.
대륙의 중원이자 조선의 강역이 있었고, 대도시로써 군자지국(君子之國)이 동경이자 경주(慶州)였기 때문에 경주(동경, 낙양)를 시조의 본향으로 하는 성씨가 무려 20여 성씨나 된 것이다.
경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중 사씨(史氏)와 설씨(薛氏)는 돌궐족이자 대륙 서북방의 흉노의 성씨다. 따라서 한반도 경북 경주가 돌궐과 흉노의 시원지나 귀화의 중흥지가 아닌 이상 돌궐 종족들의 시조 본관 지역이 반도 경주로 정해 질 수는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경주를 본관으로 하는 사(史), 석(昔), 설(薛)씨들은 모두 대륙 중원의 북방과 서북방의 출신들인 호족(胡族)의 성씨들이고, 황(黃) 씨는 중원의 상징이며, 봉씨(鳳氏)는 동이 제국의 동방 군주 소호 금천씨를 뜻하는 성씨들이다.
중원 황제와 동이군주를 상징하는 성씨들의 고향이자, 대륙 서북방과 북방 호족의 성씨들과 서로 어울려 살면서 번영을 누렸던 신라(新羅:東國)의 서라벌(東京:경주)고려의 동경이었던 곳은 지금의 하남성 낙양(洛陽)이었던 것이다.
이곳은 채륜이 종이를 최초로 만들었다고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비단 생산국이자 비단의 도시였고, 서역인과 남방인을 위한 국제시장도 있었으며 외 국인 전용 거주 지역이 낙수(洛水:洛河) 지역에 있었다고 하는 곳이기도 하 다.
우리가 배운 한반도 경주에 백만호가 있을만한 도시면적과 인구가 되었을 수 있는가? * 송준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9-11 16:28) |
첫댓글 정말 재밌고 유익한 자료였습니다^^
그럼 경주에 있는 무덤은 다뭐고 유적은 다뭐냐......
국명이 신라가 된건 어느정도 뒤이고, 원래 처음 국명은 서나벌 이었지요. 이건 완전히 고대한국어라고 할수 있는데, 경주의 지명인 서라벌과 국명이 같다고 봐도 무방할듯합니다. 대구를 달구벌이라 하고 등등 우리가 아는 것은 벌 = 벌판, 넓은 땅, 나라 등의 의미죠. 서라가 무엇인지가 중요한데... 신라라는 국명으로 정식화할때 사로 서로 서라 등등의 단어들이 공존했습니다. 이는 고유어를 한자로 빌려 썼기에 여러가지 표기상의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고... 화랑세기등에 보면 신라라는 국명을 쓰는 시기에 신라스스로 神國이라는 단어를 썼던걸로 보입니다.(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듯) 한가지 가정한다면 서라 = 신 이 아닐까
생각해 볼수 있겠습니다. 지금 용어로 유치하자면 이것도 가능하겠네요. 서로... 여섯 마을 촌장이 결의해서 첫 왕을 추대한것이니 서로 힘을 합했다고 볼수 있고, 서로 뭉쳤다는 의미에서 서로+벌. 또한, 여섯의 음과도 비슷하군요.
신라가 아라비아와 무역하고 한건 통일신라 이후에나 나오는 예기겠지요. 장보고때 전후일테니까요. 그리고, 삼국사기에도 확실하게 나오지만, 신라인은 조선의 유민이자, 진한 사람들이죠. 원래 있던 마한이 그들을 받아들여서 동북땅을 내줘서 살게했는데, 여기서 여섯부락이 뭉쳐서 왕을 추대해 나라를 세운후 힘을 키워서 마한변두리에 거주하던 비슷한처지의 번한 유민들도 흡수하고, 결국은 마한을 굴복시켜서 커진나라죠. 신라는 진한의 후손이라고 할수도 있고, 번한의 유민을 흡수했으니 번한의 후손이라고도 할수 있겠지만 지리적으로 마한이 있던땅에 와서 마한을 흡수했으니 후에 마한 = 신라 등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된거라고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