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데뷔 70주년을 맞은 반야월 선생
1938년‘불효자는 웁니다’로 가요계 입문, 후일 작사가로
반야월 선생의 데뷔곡은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로 시작 하는 ‘불효자는 웁니다’이다.
올 92세(1917년생)인 선생을 작사가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많은 작품수를 발표한 작 사가, 가장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사가, 노래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작사가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양강처녀’, ‘울고 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고개’등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이렇게 4,500여개에 이르는 곡을 만들었다.
그러나 선생은 작사가가 아닌 가 수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1937년 양복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박창오(본명) 는 전국 가요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38년 ‘불 효자는 웁니다’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노래를 부른 가수로 나와 있는 [진방남]은 선생의 예명이다.
노래 속 사연도 가슴을 울린다.
반야월 선생 의 한 측근은 스포츠칸과의 전화통화에서 “선생님이 일본으로 건너가 데뷔 곡을 녹음할 때, 모친별세라는 전보를 받아 어머니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비보에 목 놓아 우는 바람에 목이 쉬어 노래를 할 수 없게 됐고, 그 다음날 에야 퉁퉁 부은 얼굴로 녹음을 마칠 수 있었다”고 확인했다.
이 노래를 들 은 많은 이들 역시 선생의 목소리에 감정이입이 되어 눈물을 쏟았고 그 감정은 오늘로 이어졌다.그리고 세대를 뛰어넘는 명곡이 됐다.하지만 노래 인생 70주년을 축하하는 박수소리를 쉽게 들을 수 없으니 안타깝다. < 강석봉·박은경기자 >
울고 넘는 박달재
작사 반야월 / 작곡 김교성 / 노래 박재홍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울고넘는 박달재 / 박재홍
울고넘는 박달재 /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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