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남 재두루米 햅쌀
추석 연휴를 앞둔 구월 넷째 수요일이다. 이른 아침밥을 해결하고 산책 차림으로 들녘 산책을 나섰다. 달력에 빨간색이 칠해지지 않은 시월 초순 월요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내일부터 추석 연휴에 들면 개천절까지 엿새 동안 휴무가 이어진다. 자연학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연중무휴 등교인지라 이 기간에도 교외로 산행이나 산책을 나서거나 도서관에서 지낼 예정이다.
엘리베이터를 나서 아파트단지 이웃 동 꽃대감 꽃밭으로 가니 친구와 밀양댁 안 씨 할머니는 내려와 있지 않았다. 내 일과가 너무 일러 꽃밭을 가꾸는 두 분 모습은 볼 수 없어도 선홍색으로 핀 맨드라미는 밤새 횃불을 들고 꽃밭을 지켜주었다. 아파트단지 바깥으로 나가 정류소에서 동정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 창원역을 출발해 낙동강 강가 신전으로 가는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버스는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사무소 앞에서 주남삼거리를 거쳤다. 지난겨울 지역민들이 환경단체의 갑질 횡포로 못 살겠다는 문구를 내건 현수막들은 아직 몇 개 보였다. 주남저수지를 찾는 겨울 철새를 보호한답시고 지역민의 재산권 행사를 침해하는 환경단체 등살로 못 살겠다는 구호들이 이색적이었다. 방송이나 신문 기삿거리가 될 듯한데 여태 나오지 않았다.
가월마을에서 주남저수지를 지난 판신만을에서 내렸다. 동녘 하늘에는 아침 해가 솟아 옅은 구름에 가려 있었다. 가끔 낙동강 강가로 나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차창 밖으로 봤던 들녘 마을을 아침나절 도보 여정 기점으로 삼았다. 주남저수지 수문과 연결된 주천강은 동판저수지 수문에서 나온 물길과 합류해 들판을 가로질러 진영으로 흘러가 낙동강 유등배수장으로 갔다.
내가 사는 생활권에서 웬만한 산과 들은 다 누벼 발자국을 남겨 찍어 지도를 그려내라 해도 그려낼 정도 된다. 오늘 산책 코스는 택한 주천강 강둑은 주남마을 근처까지 여러 차례 들러도 그 하류는 먼발치서 바라만 봐 이번에 현지답사를 나서게 되었다. 이삭이 팬 벼들이 알곡으로 여물어 고개를 숙여 수확을 앞둔 때였다. 농로를 겸한 주천강 강둑을 따라 진영 방향으로 내려갔다.
길섶은 버리진 유휴지였는데 부지런한 농부 손길이 닿은 콩이 잘 자라 꼬투리가 여물었다. 둑에서 바라보인 넓은 들판 경계 아득한 곳 진영 신도시 높다란 아파트단지가 드러났다. 주천강은 저수지 수문을 빠져나온 고인 물이라 녹조가 끼어 맑지 않아도 오염수는 아닌 듯했다. 둑길 언저리는 갈대가 꽃이 피어 어지러이 헝클어져 있었다. 왜가리 한 마리가 먹잇감을 찾아 날아다녔다.
행정구역이 진영읍 좌곤리와 인접한 남포마을이 나왔다. 남쪽 물가 포(浦) 자가 붙은 마을이라 가술 남쪽 주천강의 마을이라는 뜻이었다. 둑길과 나란히 형성된 마을에는 창고를 겸한 공장도 보였다. 어느 집 뜰에는 봉숭아는 꽃이 저물고 꽃범의꼬리꽃은 한창이었다. 들녘으로 내려서 농로 따라 걸으니 채소 육묘장을 지나자 내년도 볍씨 보급 품종으로 삼을 채종장이 나오기도 했다.
들녘에는 남포에 이어 포자 돌림 마을로 고등포가 나왔는데 저만치 들녘에 소규모 초등학교가 보였다. 익어가는 벼가 고개 숙인 사방 탁 트인 들녘 한복판에 서고 보니 가을이 내려앉는 중심에 서 있는 듯했다. 들녘에서 찻길로 나가니 주남마을이었다. 주천강 물길 주남마을에서 판신마을로 건너는 지점에 놓인 내력을 알 수 없는 자연석 돌다리를 지나 주남저수지 배수문으로 갔다.
주남저수지 둑에는 키보다 높이 자란 물억새는 은빛 이삭이 나와 햇빛에 눈이 부셨다. 여름 철새는 떠나고 겨울 철새는 아직 내려오지 않은 때였다. 재두루미 쉼터로 가려다 마음을 거두고 탐조 전망대로 향해 걸어 시내로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들녘에서 남긴 사진을 지기들에서 보내면서 주남 재두루米를 들판 통째로 안겨드리니 풍성하고 넉넉한 추석을 쇠십사고 안부를 전했다. 23.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