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은 시원~ 마을길은 소박~
남에서 북으로 걷는 경기도 삼남길의 두 번째 코스는 제9길인 진위고을길이다.
원균장균묘에서 시작해 '흰치고개'를 넘으면 진위면을 지나 오산시로 접어드는 길.
경기도 삼남길의 평택 구간을 마무리 짓는 코스다.

↑ 경기도 삼남길 제9길인 진위고을길은 숲길, 논길 등을 지나며 평택에서 오산으로 향한다. 진위고을길은 평택시 도일동에 위치한 원균장군묘에서 시작한다. 이곳을 찾아가려면 서정리 전철역에서 7-3, 7-4, 7-7번 버스를 타고 내리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3대의 버스가 있지만 자주 운행하지 않아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편. 그럴 경우 택시를 이용하면 약 6천원 정도 나온다. 내리 정류장 옆에는 제10길 소사원길의 시작을 알리는 삼남길 안내판이 세워져있다. 제9길을 서울 방면으로 걸으려면 안내판 뒤편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오르면 된다. 단, 걷기를 시작함에 앞서 진위고을길은 코스 도중 식사를 할만한 곳이 자주 없으므로 시작지점 도로변에 있는 '금강루'라는 식당을 이용하는 방법도 고려할만하다.

↑ 모내기가 끝난 논의 풍경. 걷기에서 만나는 논은 사계절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혼자도 부담 없는 덕암산 숲길
걷기를 시작해 도로를 조금 오르면 왼편에 저수지가 보인다. 왼쪽으로 길을 잡고 저수지를 지나면 넓게 자리를 잡은 원균장군묘가 있다. 묘소 외에는 딱히 둘러볼 것이 없지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묘 터 옆에 자리 잡은 마을은 우물이 남아있고 집집마다 텃밭을 가꾸는 등 아기자기한 풍경을 선사한다. 마을길을 걷다 삼남길 표식을 따라 좌측 흙길로 접어들면, 이내 오른쪽 숲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경기도 삼남길이 지난 5월말 개통식을 가지고 길을 열었지만, 아직 이정표 작업 등이 진행되지 않아 표식을 잘 찾아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들어선 숲은 덕암산 자락이다. 덕암산은 200m가 되지 않는 낮은 산으로 소나무를 비롯한 식생이 우거져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진위고을길을 걷기 시작하며 나온 화두는 '아직 여성이 혼자 걷기 여행을 즐기기엔 무섭다'는 말이었다. 우리나라는 치안이 좋은 국가 중 하나라고 하지만, 제주 올레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비롯해 인명사고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남자라도 인적이 드문 길을 걷다 사람을 만나면 깜짝 놀라며 괜히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데, 여자 혼자 다니는 일이 무섭다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 면에서 덕암산 숲길은 괜찮은 편이다. 진위고을길이 기존의 등산로 중 하나를 택해 연결되어 있어 왕래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홀로 걷기 여행을 함에 있어 생기는 두려움을 없앨 방법을 찾으면 좋겠지만, 이곳처럼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길을 알리는 일도 중요한 것 같다.
덕암산 숲길은 가파르게 오르는 구간이 거의 없이 유순한 곡선을 그리며 길이 이어져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다만 등산로 갈림길이 많으므로 삼남길 표식을 자주 확인하며 걸어야한다. 그런데 이 구간을 걸으며 황당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갈림길에 있어야할 표식이 보이지 않는 장소가 여럿 있었던 것. 여름철이라 수풀이 우거져 가려진 경우도 아니고, 가지에 매달아놓은 표식이 아예 사라져있다. 길을 이은 손성일씨의 안내로 길을 가다보니 삼남길 표식이 달린 나뭇가지가 꺾여 다른 장소에 버려진 것을 발견했다. 강풍 등의 자연재해로 꺾인 것이 아닌, 사람의 소행으로 짐작되니 무슨 심보로 이런 악의적인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평소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 등산로 구간이니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게 싫은 지역민의 소행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러 길을 헤매게 만들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무엇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단 말인가? 경기도 삼남길은 각 시 지자체에 허가를 받고 경기문화재단, 코오롱스포츠 등이 협찬하여 만들었다. 역사적인 삼남대로의 의미를 담으며 걷기를 원하는 사람이 걸을 수 있도록 만든 모두의 길에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되겠다. 얼른 이정표 작업이 진행되어 편한 마음으로 걸으러 온 사람들이 길을 잃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새가 지저귀고 산들바람이 간간히 불어주는 기분 좋은 숲길을 40분 정도 걸으면 '대백치'에 이른다. 도로 위를 지나는 구름다리가 나오는 곳이 대백치인데, 아래로 지나는 도로가 삼남로를 포장한 317번 지방도다. 이 지역의 삼남로는 서울로 향하며 대백치와 소백치를 지나는데, 두 고개를 합쳐 '흰치고개'라고 불렀단다. 산에 숲이 없던 시절에 멀리서 보면 하얗게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크기에 따라 대와 소로 나누었다는 설명이다.

↑ 덕암산 숲길은 기존 등산로 중 일부를 삼남길로 연결해 혼자 걷는 일에 관한 위험부담이 적은 편이다. 진위고을을 지나 오산으로 향한다
대백치를 지나자마자 덕암산을 빠져나오며 약수터가 있는 흔치휴게소가 나온다. 덕암산과 부락산의 경계에 자리 잡은 쉼터로, 이곳에서 부락산 산보나 부락산 둘레길 걷기를 시작할 수도 있다. 삼남길을 이어가는 코스는 덕암산을 빠져나와 잠시 부락산 둘레길과 겹치는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된다. 금세 나오는 터골휴게소를 지나 작은 개천을 만나면 오른쪽으로 길을 잡고 산자락을 완전히 벗어난다. 잠시 땡볕을 맞으며 도로를 이리저리 건너도록 길이 이어졌다. 소백치로 가기 위함이다. 삼남길 표식을 따라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넌 후, 도로 옆 인도를 잠시 걸으면 작은 터널이 나온다. 그 곳이 소백치로, 터널을 지나기 전에 오른쪽 숲에서 표식을 찾아 들어선 후 터널 위를 통과하면 진위고을로 향하는 길이 이어진다.
이곳을 지나면서 문득 떠오른 궁금증은 왜 삼남로가 평택을 지났냐는 의문이었다. 알고 있는 상식으로 평택은 근대에 들어 산업화가 진행되며 현재의 규모로 커졌고, 조선시대에는 장터가 형성된 안성의 규모가 더 컸다. 그렇다면 응당 조선시대 주요도로였던 삼남로는 안성을 지났을 법한데, 왜 평택으로 길이 난 것일까? 이에 관한 것은 평택의 연혁을 보며 유추할 수 있다. 지금은 진위면이 평택시에 속해 있지만, 고려시대부터 평택과 진위는 급이 같은 현이었다. 두 현은 시대에 따라 충청도에 속했다가 경기도로 이속되는 역사를 겪었으며, 각각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근대에 들어 진위군이 평택군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즉, 애초에 안성은 충청도로 가는 길목으로 지목받지 못했고, 충청도와 경기도를 오가던 진위와 평택이 남쪽으로 가는 길로 결정된 것 같다. 하긴 조선시대의 양반문화를 떠올리면 그럴 법도 하다. 삼남로는 정부 관리나 선비들이 지나다녔을 길인데, 장터로 인해 '장돌뱅이'들이 몰려다닐 안성으로 큰 길을 냈을 리 없겠다.
소백치를 지난 후의 숲길은 덕암산 숲길과 달리 인적이 드물고 고요하다. 등산로가 없는 마을 뒤 야산 같은 곳인데, 그로 인해 여름철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다리 등을 베일 우려가 있다. 그래도 햇빛을 피할 수 있고 간간히 바람이 불어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다. 30분 정도 숲길을 걸으면 묘지를 여럿 지나며 평지로 접어든다. 집 옆의 나무문을 비껴 빠져나온 후 도로를 만나면 사막의 오아시스 역할을 해줄 편의점이 걷기꾼들을 반긴다.
이후 길은 횡단보도를 건너 진위향교로 향한다. 도로와 논길을 오가며 이어지는데, 도중에 수령 120년의 느티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정자가 있어 시원한 정취를 자아낸다. 차도와 논길을 지나다 너른 하천(진위천)을 하나 건너면 바로 앞에 진위향교가 나타난다. 진위향교는 조선 초기에 창건된 유서 깊은 향교다. 일반적으로 지방 향교들이 굳건히 문을 걸어잠그고 있는 것과 달리 진위향교는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가장 안쪽의 대성전은 문이 잠겨있지만 산등성이에 제법 넓게 자리 잡은 향교 내부에는 오래된 나무와 건물들이 운치를 자아내 잠시 쉬어갈만 하다.

↑ 덕암산을 빠져나와 잠시 부락산 둘레길을 걷는 구간. 진위향교 다음 순서는 마을을 지나며 이 지역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던 진위현청의 터인 진위면사무소다. 지금은 현대식 건물로 바뀌어 역사적 현장의 감흥은 받을 수 없는 점이 아쉽지만, 발전된 면소재지에는 마트, 식당 등이 많아 진위고을길에서 걷는 도중 필요한 여러 가지를 해결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진위초등학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길을 꺾으면 텃밭을 가꾸는 농촌 풍경을 지닌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 끝까지 이동해 작은 산길을 넘으면 배밭 풍경을 볼 수 있는 가곡1리를 지난다. 원균장군묘에서부터 가곡1리까지의 거리는 약 13km. 충분히 걸었다 싶은 사람들은 가곡1리 버스정류장에서 걷기를 끝내도 무방하다. 다만 가곡1리에는 배차가 자주 없는 마을버스만 다녀 대중교통 이용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다면 길을 더 이어가는 것이 낫다.
가곡1리에서 길을 더 걸으면 가곡3리로 가게 되며 아파트 단지를 지나 콘크리트 포장이 된 논길을 지난다. 왼편으로 롯데제과 건물이 보이는데, 그 근처까지 이르면 큰 도로인 경기대로를 만난다. 이 도로변의 정류장에는 오산, 수원 방면으로 가는 버스가 자주 있으므로 탈출이 용이하다. 이곳까지 약 15km로 진위고을길의 마지막 지점인 맑음터공원까지는 약 2km가 남는다. 경기도 삼남길 전구간 완주를 목표로 삼는 사람은 끝까지 걷는 것이 좋고, 맑음터공원에서의 대중교통이 썩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 경기대로에서 걷기를 마치는 방법도 좋다. ⓜ

↑ 진위향교 입구에 마련된 경기도 삼남길 스탬프. 진위고을길에는 원균장군묘와 진위향교, 맑음터공원 3곳에 스탬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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