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하나님은 위로와 시련이라는 두 방법으로 성도들을 양육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은 제2차 유다 귀환민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에스라에게 몹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음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방인들과 통혼으로 말미암아 백성들 사이에 가증한 우상 숭배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은 에스라와 그 일행에게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4절). 그들은 팔레스틴에 거주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의 신앙이 식어지고 있다는 소문은 이미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하여 귀환한 것이었습니다(7:1-10). 그러나 팔레스틴 거주 이스라엘 자손들의 신앙은 식어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타락한 지경에 이르러 있었던 것입닙니다. 이는 에스라와 그 일행에게 있어서 참으로 큰 시련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시련이 언제 닥쳤습니까? 성경은 '이 일 후에'라고 강조합니다. 즉 포로지로부터 고국으로 무사히 귀환하여 하나님께 즐겁게 예배드린 후에 시련이 닥쳐왔다는 것입니다(7:11-27 ; 8:21-26). 이 때는 레프시아 왕의 큰 호의를 입고 귀환하여 그 기쁨과 성전 재건의 희망에 찬송을 부른 후입니다. 하나님께 기쁘게 예물을 드린 후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성도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원리를 깨닫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위로와 땅의 시련이라는 두가지 섭리로 우리를 양육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에스라와 그 일행은 몇 개월 동안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램을 구속하셨음이라" (사 52 9) 는 이사야의 예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그 위로는 마냥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걱정, 근심, 상심할 만한 문제가 주어졌습니다. 전날 스룹바벨 일행들도 같은 상황을 만났었습니다. 기쁘게 성전 재건을 하다가 대적들의 훼방이라는 시련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4장) . 또한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들이라는 선언을 들으신 후에 사단의 시험이라는 큰 시련을 겪으셨습니다(마 3:16-4:11). 바울도 살아서 천국을 구경하는 큰 은혜를 받은 후, 몸에 난치병을 얻는 시련을 당했습니다(고후 12:1-7).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무슨 까닭으로 위로와 시련이라는 두 섭리로 성도를 양육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온전하게 믿고, 겸손한 자녀가 되게끔 만드시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위로와 영광만 계속 받으면 교만한 사람으로 타락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시련만 계속 받으면 상심과 절망에 빠져 일어서지 못하게 됩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위로와 시련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성도들을 양육하시는 것입니다. 즉 성도들을 자신의 한계를 자신에게 의뢰하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시키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늘의 위로를 받을 때, 자고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시련이 닥쳐와도 상심치 않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신앙의 사람들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