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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첫 번째 설교(3)
행 13:13-23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 설 교 >
사울과 다윗
행 13장 21~23절 / 박상훈목사
사람이 기르는 가축들 가운데서 가장 지저분한 짐승은 돼지일 것입니다. 돼지는 그저 꿀꿀거리면서 더러운 것도 다 먹어치웁니다. 여러분, 돼지가 왜 그렇게 지저분한 짐승이 되었겠습니까? 그리고 돼지는 왜 입만 열면 "꿀꿀"거리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이렇게 재미있게 해석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모든 짐승을 만드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앞으로 사람과 가까이 지낼 가축들을 다 모아 놓으시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장차 너희들이 무엇을 먹고 살지 스스로 결정을 하라!"
그러자 제일 먼저 덩치가 가장 큰 소가 나서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풀이라도 좋으니까 그저 한평생 동안 실컷 먹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소의 간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 다음 개가 나서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람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어도 좋으니까 그저 사람들과 늘 가까이서만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개의 소원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개는 지금도 사람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지내는 짐승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돼지가 나설 차례였습니다. 돼지가 가만히 지켜보니까 하나님이 소의 간청도 들어주시고, 또 개의 간청을 들어주시는 것을 보고서 자신의 소원도 하나님께서 흔쾌히 들어주실 것이라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생각을 담대히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달콤한 꿀을 평생토록 먹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돼지가 그렇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돼지는 딱 한 번 아무도 모르게 꿀을 훔쳐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꿀맛이 너무 좋았던 것입니다. 돼지의 소원을 들으신 하나님은 돼지를 괘씸하게 생각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놈! 감히 짐승의 주제에 사람도 제대로 먹기 힘든 꿀만 먹고 살겠다니, 그것이 말이나 되는 이야기냐? 너는 이제부터 일평생 동안 지저분한 것만 먹고 살아라!"
그래서 돼지는 그 뒤로 더러운 것만 먹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돼지는 한 번 훔쳐먹었던 꿀맛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입만 벌리면 "꿀꿀!"거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누군가가 꾸며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자기의 주제를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제넘은 행동을 하기 때문에 낭패를 당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두 사람이 나옵니다. 사울과 다윗입니다. 이 두 사람은 똑같이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똑같이 사십 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울이 주제넘은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사울의 집도 쇠하여졌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자기의 위치를 잘 지켰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한없이 축복하셨습니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다윗의 집도 하나님의 축복 속에 점점 강성해져 나갔습니다.
우리는 사울처럼 되지 말고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의 집도 다윗의 집처럼 하나님의 축복 속에 점점 강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 우리가 하는 생업, 그리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도 하나님의 축복 속에 더욱더 강성해지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사울의 삶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왜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셨습니까?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나라를 다스려야 되니까 하나님의 신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계속해서 못된 짓을 하니까 하나님의 신이 사울을 떠나버렸습니다. 삼상16:14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요즘 말로 하면 성령이 떠나버리고 더러운 귀신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울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못된 짓을 했었습니까? 한 마디로 자기의 주제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주제넘은 짓을 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3장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사울 왕이 사무엘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선지자님, 좀 오셔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말로 하면 예배인도를 부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늦게 나타났습니다. 사울의 마음은 급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의 마음 속에 주제넘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사무엘만 선택받은 사람이냐? 나도 선택받은 사람이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꼭 사무엘만 집전해야 될 이유가 무엇이냐? 까짓 것 나라고 못할 소냐?"
그래서 선지자 대신에 자기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사무엘이 뒤에 와서 그것을 보고서 사울을 질책했습니다.
"왕이여, 왕이 망령된 짓을 행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짓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일을 왕이 행했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날이 길지 못할 것입니다."
사울은 선지자의 고유한 직분을 무시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왕이라고 선지자 사무엘 대신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주제넘은 짓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행동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목사가 하는 일이 시원찮게 생각이 되십니까? 여러분만 못하게 생각이 되십니까? 그래도 성직을 무시하시면 안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젊은 목사님이 부임을 하셨습니다. 그 교회에 어떤 장로님이 계셨는데 아주 깐깐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목사님이 목회하시는데 사사건건 간섭을 했습니다.
"목사님, 설교를 왜 그렇게 하십니까? 심방은 이렇게 하셔야지요."
물론 장로님은 목사님이 목회를 잘 하시도록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었겠지요. 그런데 목사님은 괴로운 것입니다. 3년을 잘 참으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생각에 목회는 고사하고 자기 명대로도 제대로 못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는 가운데 결단을 내렸습니다.
"젊은 내가 꼭 이런 모욕을 받아가면서까지 여기에 붙어있어야 되나? 차라리 나가서 작은 교회라도 개척을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겠는가?"
목사님은 이런 생각을 하고서 사표를 썼습니다. 그리고 나서 장로님을 찾아갔습니다. 그 장로님의 직업은 의사였습니다. 때마침 장로님이 하얀 가운을 입으시고 수술준비를 다하고서 수술실로 막 들어가려고 하는 찰나였습니다. 목사님을 본 장로님은 깜짝 놀라 물으셨습니다.
"아니, 목사님. 어쩐 일이십니까?"
"예, 장로님. 안녕하셨습니까? 보아하니 장로님 무척 바쁘신 것 같은데 제가 여기 서서 딱 5분간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 그러시지요."
그리고 나서부터 목사님은 그 동안 벼루었던 말들을 쏟아놓기 시작했습니다. 다짜고짜 마구 시비를 걸었습니다.
"장로님, 제가 보니까 지금 흰 가운을 입고 수술실로 들어가시려고 하는 것 같은데 수술하시다가 피라도 튀어서 흰 가운에 묻게 되면 그 가운이 얼마나 더럽혀지겠습니까? 그러니 내 생각에는 붉은 색 가운이나 검정 색 가운을 입어야 맞지, 흰 가운을 입고 가시면 안될 것 같습니다. 당장 간호원에게 이야기해서 가운 바꿔 입으세요! 그리고 이 핀 셋트는 무엇입니까? 한 두 개만 가지고 들어가셔야 일의 능률이 오르지, 이렇게 많이 가지고 가시는 것은 낭비 아닙니까? 그러니 한 두 개만 골라서 갖고 들어가세요!"
목사님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 있던 장로님은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왜 그러세요? 뭐 못 드실 거라도 드셨습니까?"
그제야 목사님은 자신의 속셈을 이야기했습니다.
"장로님, 제가 이런 말씀 드리니까 속상하시지요? 수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이래라, 저래라하고 이야기 하니까 기분 나쁘시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장로님 때문에 그 동안 속 많이 상했습니다. 물론 장로님이 제가 목회를 잘할 수 있도록 하는 의도에서 그렇게 말씀하신 줄은 알지만, 목회는 목사인 제가 하는데 자꾸 장로님이 배놓아라, 감놓아라 하시니까 제가 소신껏 목회를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하는 가운데 오늘 부로 사표를 쓰려고 합니다."
장로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목사님, 여기 잠깐만 앉아 계십시오. 제가 수술을 끝내고 금방 나올테니 그때 다시 이야기합시다."
장로님이 수술을 다 끝내시고 나왔습니다.
"목사님, 그 동안 저 때문에 속상하셨다니까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목사님이 목회를 잘하시도록 옆에서 조언을 한다고 한 것이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한 것 같군요. 제가 이제부터 목사님이 목회하시는데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목사님도 제 병원에 오셔서 제가 수술하는데 간섭하지 않기로 합시다."
그래서 그 장로님은 그 뒤로는 목사님이 목회하는데 일체 간섭하지 않고, 그저 뒤에서 목사님이 목회를 잘하실 수 있도록 기도로서 뒷바라지를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사가 하는 것이 여러분의 생각에 좀 시원치 않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만 못하게 생각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시면 더 잘할 것처럼 생각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따금씩 보면 장로의 신분으로서 신학교에 들어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자기의 생각에 자신이 목사가 되면 더 잘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해보면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장로를 맡고 있을 때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면서 살지만, 목사는 그렇지 못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야 되는 것이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러했습니다만, 신학교 1∼2학년 때가 되면 조금 배운 것을 가지고 마치 자기가 세상의 진리를 혼자서 다 터득한 것처럼 기고만장해집니다. 그리고는 그 알량한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자기 교회 목사들을 사정없이 비판합니다.
"저것을 설교라고 하나? 저것을 행정이라고 하나? 기도는 또 왜 저렇게 하나?"
자기가 하면 더 잘할 것 같으니까요. 옛말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또 반풍수가 집안을 망친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면 잘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시집가서 아기를 낳아 길러보아야 부모의 심정을 비로소 아는 것입니다.
사울은 주제넘는 짓을 했습니다. 자기가 왕이라고 선지자의 직분을 무시하고, 임의대로 자기가 선지자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의 마음이 몹시도 아팠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그런 행동을 기뻐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또 사무엘상 15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과 아말렉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사탄의 세력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말렉의 모든 남녀노소들,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까지 다 죽여라! 그리고 모든 짐승들도 남겨놓지 말고 다 진멸시켜라!"
사무엘은 분명히 사울 왕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어떻게 했습니까? 짐승들 가운데 좋은 것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그것을 알고서 사울을 책망했습니다. 그때 사울이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사울은 변명했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선지자님, 저는 사실 다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내게 나아와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싸움에서 큰 승리를 얻었으니까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저것은 내가 먹으려고 남겨 놓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백성들의 말에 따라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살려 놓은 것입니다."
그는 떳떳하지 못하게 백성들의 이름을 팔면서 변명했습니다. 선지자의 말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않고 사람의 말로 들은 것입니다. 그는 선지자의 말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때 사무엘이 우리가 잘 아는 말을 했습니다.
"왕이여,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줄을 왜 왕이 알지 못하십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순종이지 제사가 아닙니다."
이따금씩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이 말은 제가 하는 것이 아니고 교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지금 교회 여론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이렇게 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저것은 저렇게 고치셔야 됩니다."
지금 그 사람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지요.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들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장로쯤 되고, 권사쯤 되고, 구역장쯤 되면 설령 교인들이 그런 말을 하더라도 바르게 고쳐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세요! 목사님이 강단에서 이단 사상을 전파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지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다. 순종이 제일입니다!"
그렇게 깨우쳐 주셔야 마땅할 것입니다.
사울은 성직을 무시했습니다. 선지자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주제넘게 자기가 사무엘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또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않고 사람의 말로 듣고,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리면서 불순종의 죄를 짓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그를 떠나버리셨습니다. 그때로부터 악한 신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사울처럼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다윗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왜 하나님이 다윗을 귀하게 쓰셨습니까? 다윗이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습니까? 존스합킨스 대학을 졸업했습니까? 스텐포드 대학을 나왔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는 목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속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귀하게 쓰신 것은 그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삼상16:13의 말씀을 보십시다.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요즘 말로 하면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군대에 나갈 수도 없는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들은 골리앗 때문에 벌벌 떨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 바라보며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
"너는 덩치가 크니까 물맷돌 하나만 있으면 충분해! 너 같은 것은 백발백중이야!"
그러면서 다윗은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담대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옛날 엘리야가 성령이 충만할 때는 바알 선지자 수백 명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령이 충만하지 못해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는 이세벨 한 여인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급기야는 도망치기까지 했습니다.
또 다윗이 성령으로 충만할 때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다윗은 시18:1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습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심으로 말미암아 사울의 집이 점점 쇠하여졌습니다. 다윗의 집이 점점 강성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다윗은 명실공히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수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 성에 들어올 때 어린 아이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기뻐했습니다. 그만큼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주 지극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다윗의 마음은 아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는 백향목으로 지은 궁전에 살고 있었고, 하나님의 법궤는 휘장 속에 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이 전쟁에서 너무나도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그가 성전 짓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아들 솔로몬 시대에 조금도 어려움 없이 성전을 짓도록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수많은 금은동철을 준비했습니다. 또 나봇의 타작마당을 사서 준비해 놓았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도 많이 준비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그 마음을 보시고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축복하셨습니다.
"다윗아, 네가 나를 위해서 성전을 지을 마음이 있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러니 내가 너를 위하여 너의 집을 세우리라."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집을 강성케 하셨습니다. 다윗의 등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도록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물론 다윗에게도 죄가 있었습니다. 그는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또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래도 다윗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왕인데 그까짓 여자 하나를 건드렸다고 무엇이 그렇게 잘못이야? 아니 군인들이 전쟁터에 나가서 얼마든지 죽을 수 있지, 그까짓 부하 하나 죽었다고 무엇이 그리 잘못이야?"
사울처럼 변명에 급급하고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에게 와서 그의 잘못을 책망할 때 그는 처절하게 회개했습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온전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죄를 짖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다 똑같으니까요.
"아니 목사가 저럴 수가 있나? 아니 장로가 저럴 수가 있나? 권사가 그럴 수 있나?"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 이상도 아니고 사람 이하도 아닙니다. 문제는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회개하느냐, 회개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울처럼 변명하지 아니하고,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울은 자기의 주제를 넘는 일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성직을 무시했습니다. 선지자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그리고도 잘못을 회개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습니다. 잘못이 있을 때 그것을 철저하게 회개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귀하게 쓰셨습니다. 다윗을 존귀케 하셨습니다. 다윗의 집을 축복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다윗의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처럼 키우자
행 13장 21~23절 / 임덕순목사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이새의 아들 다윗을 보시고 마음에 쏙 들어 하시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참 좋으셨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같은 사람이 생각하기에도 세상에 사람이 그렇게 많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기가 참 어렵기 때문입니다. 큰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님들은 회사 일을 사장인 자기처럼 알아서 해 줄 헌신적이고 똑똑한 인재를 그렇게 마음을 써서 찾지만 찾기가 힘들답니다. 우리 한가람 청년들은 그런 사장님 마음을 이해하고 직장생활을 하면 금방 길이 열릴 텐데, 누가 그 사실을 마음 깊이 깨달을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총각 처녀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느라고 애씁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금새 마음이 편해지고 무엇이든지 다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잠깐만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일생을 함께 하려고 결혼 하자고 프러포즈를 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갈망은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그런 갈망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애타게 찾으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4:23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창 18장을 보면, 하나님이 소돔 성을 심판하려 하실 때, 그 성에서 의인 열 명만 찾는다면 그 성을 사라겠다고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하 16:9에는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본문에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그런 사람을 일부러 찾으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어떤 사람이기에 하나님이 다윗을 만나고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시고 기뻐하셨을까요? 우리는 우리 자녀를 그렇게 기를 수는 없을까요?
우리는 오늘 어린이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린 아이들에게 어떤 선물을 해 주셨습니까? 어린이날이 아이들에게 선물해주고 같이 놀아주는 날일까요? 그러면 될까요?
어린 아이는 어떻게 대하면 될까요? 우선 그것부터 생각해봅시다.
어린이는 예쁘고 아름답습니다. 순수하기 때문이고, 어린이들은 비교적 착하고 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맑은 웃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린이들은 연약하고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어린이들을 귀여워하셨고 예뻐하셨고 사랑하셨습니다.
어린이는 가능성을 지닌 미완성품입니다. 어린이는 어떤 의미에서 천사가 될 가능성과 마귀가 될 가능성을 함께 지닌 미완성품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가인을 낳았을 때, 가인은 틀림없이 예쁘고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기의 이름을 "여호와로 말미암아 얻은 아들" 이라는 뜻으로 가인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둘째 아들 아벨을 낳았을 때 아벨도 틀림없이 예쁘고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기 이름을 생기 또는 목자란 뜻으로 아벨이라고 지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모두 예쁘고 아름다운 아기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한 아기 아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과 헌신의 사람이 되었고, 다른 아기 가인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불신앙과 반항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어린이는 주님께 드려져야 완성품이 됩니다. 어린이는 물론 부모의 손안에서 자라야 사람다운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어머니들 스스로는 어린아이들을 완성품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권위만으로는 어린이들을 감동시킬 수도 없고 복종시킬 수도 없고 헌신시킬 수도 없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권위보다 훨씬 높은 주님의 사랑과 권위 아래로 데려가야 어린이들이 감동을 받을 수도 있고 겸손해 질 수도 헌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어머니들이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어린이들은 아름답게 피어나야 하는 꽃 봉우리와 같습니다.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수도 있고 시들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햇빛이 되시고 단비가 되시는 하나님께로 데려와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수도 있고 아름다운 열매도 맺을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좋은 것 먹이고 좋은 구경 시켜주고, 좋은 선물을 주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연 이 아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길러야 할까요?
지난 금요일에 어떤 집사님이 “목사님도 내년 어린이날에는 손자 데리고 놀러 가셔야 하겠네요.”하는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 딸이 결혼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하기를 “그렇네요. 저도 금년 내년이 자유로운 때네요. 손자가 생기면 어린이날 애들에게 끌려 다니느라고 힘들겠지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린 자녀나 손자 손녀를 정말 사랑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어떤 선물을 줄까, 어떻게 즐겁게 해줄까 라는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를까, 그 아이가 오늘만 아니라 장래 평생토록 정말로 행복하고 유익한 삶을 살게 해주어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우리가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다윗처럼 키우자’ 라고 잡았습니다.
성경에 다윗이 처음 등장할 때는 15세 안팎의 소년이었습니다.
15세라면 아직 철부지 아이처럼 생각되지만, 다윗은 그때 벌써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고 장래의 이스라엘의 왕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는 남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에게 있는 남다른 특징은 무엇일까요?
다윗의 가장 뛰어난 특징은 강한사람 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양을 치는 목동이었는데, 그가 양을 칠 때 가끔 사자나 곰이 출몰하여 다윗의 양들을 물어갔습니다. 그러면 소년 다윗은 사자가 무서워 도망친 것이 아니라 그 맹수와 맞서 싸워서 양을 구해 냈다고 자기 입으로 증거 했습니다.
다윗은 두려움을 모르는 용감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짐승 중에서 가장 강한 맹수들을 맨몸으로 싸워 이겼으며, 사울 왕이 사단에게 붙잡혀 미친 듯이 날뛸 때에는 수금을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가 신령한 음악을 연주함으로 왕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으며, 불레셋의 침략을 받아서 이스라엘 온 군대가 골리앗 앞에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에는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나가서 하나님도 모르는 저 사람을 처치하겠다고 용감하게 나섰던 사람이고, 그 골리앗의 칼로 그의 목을 벤 대단히 무서운 힘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힘은 그의 어린 육체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돈이나 권력에서 나오는 정치적인 힘도 아니라 그 어린 소년의 영혼,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나온 영적인 힘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렸지만 그의 신앙은 어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육체는 아이였지만 그의 신앙은 그 어떤 어른도 능가하였습니다. 그 나라의 왕을 비롯한 모든 어른들이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지만 그는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 거대한 적장을 향해 돌멩이 몇 개 주워가지고 싸우러 나갔고, 하나님은 그가 믿는 믿음대로 도와주셔서, 적장의 목을 베게 해 주셨습니다. 다윗의 힘은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당신이 사용하실 사람으로 정해 놓으시고, 사무엘을 다윗의 집으로 보내시면서 그 집의 8형제 중에 내가 사용할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집에는 8형제가 있었는데 막내인 다윗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아버지 이새는 다윗이 너무 어리다고 집으로 부르지도 아니하고 들에서 양이나 지키게 했고 형들만 불러 사무엘을 만나게 했습니다.
사무엘은 그 집 장남 엘리압을 보고 외모에 반하여 기름을 부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의 보는 것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불러오게 하신 뒤에 “저 아이니, 저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안목에는 다윗만 들어왔습니다.
사무엘이 반했던 준수한 사람 엘리압은 전쟁터에 나가자 골리앗에게 겁을 먹고 벌벌 떨었지만, 하나님이 마음에 들어 하신 다윗은 나이가 어려서 징집되지도 않았으나,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갔다가 자기나라 군대 전체가 적장에게 주눅이 든 모습을 보고는 의분을 느껴 자기가 싸우겠다고 돌팔매를 들고 나가서 이스라엘 군대를 기죽게 한 그 적장 골리앗을 제거한 대장부였습니다. 다윗은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 가정의 자녀교육의 문제는, 아이들을 너무 약하게 키운다는 것입니다. 잘 먹이고 잘 길러서 신체는 우람하지만, 바퀴벌레만 보아도 기겁하는 겁장이로 키우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강하게 키워서 하나님께서 쓰시게 할 수 있을까요? 다윗을 통해 해답을 찾아봅시다.
1. 환경을 통해 훈련 받은 다윗
이스라엘은 장자를 중시하는 사회여서 막내는 별로 중요시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다윗의 가정은 아들이 여덟이나 되어서 막내는 별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일생에 가장 영광스러운 날을 맞아서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그 나라 전체를 다스리는 왕 같은 제사장인 사무엘이라는 분이 자기 집에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 아들 중에서 이 나라의 장래 왕이 될 사람을 간택하러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새는 제사드릴 소를 준비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아들들에게 사무엘을 만나게 하려고 새 옷을 입히고 난리 법석을 떨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막내라서 집안에는 얼씬도 못하고 저 멀리 들판에서 양들을 혼자 도맡아서 치고 있어야 했습니다. 가정에 최대 경사가 벌어졌는데도 다윗은 초대도 받지 못한 처지였습니다.
형들이 집으로 가고 혼자 거친 들판에서 양을 지키는데 사자가 어슬렁거리고 양을 향하여 걸어옵니다.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다윗은 자기 혼자서 맹수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자기가 강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생명을 잃게 될 것이고, 아버지의 양들을 다 잃게 되면 얼마나 혼나겠습니까? 그런 상황 속에서 자란 다윗은 어리광이나 부리고 남에게 의지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는데, 그러한 환경이 그를 더욱 강한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는 너무 지나치게 자녀를 보호하는 가정들을 봅니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부모가 다 해줌으로서 아이가 자기훈련의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는 극성스런 부모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무기력한 아이, 무능한 아이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아이가 잘못을 해도 잘못에 대하여 책망도 하지 않고 넘어감으로서, 자기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고사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력도 갖추지 못한 아이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의 사회의 문제는 불량 청소년들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이지만, 사실은 부모들이 그렇게 분별없이, 훈련 없이 키워내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윗은 나이가 어렸지만 보호막 속에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일 거리가 항상 주어졌고, 그 일에 대한 책임감이 주어졌으며, 위험에도 혼자 대처해야 하는 상황에서 길러졌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강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제가 할 일과, 그 일에 대한 책임과 그 일을 혼자의 힘으로 감당할 기회를 주어야 험한 세상을 이겨 낼 수 있는 강한아이로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과보호되지 않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기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거친 상황에서 자기 혼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합시다.
2. 성령으로 무장된 소년 다윗
다윗은 어려서 부터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그분의 선하심과,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의 축복에 대하여 배웠을 것입니다. 그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나갔다가 나라의 위기를 보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의 군대라고 하는 이스라엘 군대가 너무나 약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군대 전체가 골리앗에게 기가 죽어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 답답해서 자기가 적장과 싸우겠다고 나서면서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내가 양을 빼앗으려는 곰이나 사자도 쳐 죽였는데,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불레셋 사람을 치지 못하겠습니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어린 다윗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얼마나 담대합니까?
그는 그 적장을 향해 가면서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독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삼상17:45) 라고 외치며 달려가 돌을 날려 그 이마에 명중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혜와 용기는 어디서 난 것일까요?
삼상16:13에 보면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 되니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다윗이 한 말들은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성령은 기름부음을 받은 날부터 다윗을 강하게 만들었고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은 성령 받을 수 없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열 살도 채 되기 전에 성령에게 사로잡혀 큰 인물로 준비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폴리갑은 9세 때 성령충만을 받은 사람이었고, 미국의 가장 탁월한 지성으로 꼽히는 에드워드는 7세 때 성령충만을 받았고, 모라비안파의 창시자인 진센돌프는 4세 때 성령충만을 받았고, 유명한 주석가 메튜.헨리는 11세 때에 성령충만을 받았고, 세계적 설교자 스펄죤은 12세 때 성령충만을 체험 했다고 합니다. 눅2장에는 세례요한이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었을 때,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자기 집을 찾아오자 아이 세례요한이 어머니 뱃속에서 뛰어 놀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나이가 들어야 크고 철이 들지만 영혼은 어린아이의 영혼도 어른과 똑같이 하나님을 만납니다.
저는 성도의 가정을 심방 하다가 믿음이 좋은 가정을 만나면 그렇게 기쁩니다. 어느 가정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아이 둘을 기르고 있었는데, 그들의 기도 제목이 제 마음을 감사로 넘치게 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날마다 하고 있는 전도의 열매가 많이 맺히기를 원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초등학생인 두 자녀들이 성령충만을 받기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성령 충만케 하여 그들을 당신의 일꾼으로 쓰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요한일서 5:4에 “대저 하나님께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라고 하셨는데, 거듭나고 성령 충만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야만 험한 세상을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그 어떤 세상적인 힘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진정 강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어린 손자 손녀가 어려서부터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 이 험한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일을 크게 감당하는 강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고, 그렇게 믿음으로 기르시기 바랍니다.
3. 소명을 가지고 자란 다윗
다윗은 아직 어렸을 때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라고 기름부음을 받았던 사람이고, 그 뒤로는 더 바르게 자라고 잘 준비해야만 훌륭한 왕이 되어 이 나라 백성들을 바로 다스린다고 생각하면서 자란 사람입니다. 그런 소명이 그에게 더 강한 힘을 주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이스라엘을 책임졌어, 내가 약해지면 나라가 약해지고 내가 강해져야 나라가 강해져, 내가 바르게 서야 이스라엘이 바르게 서고, 내가 삐뚤어지면 나라가 흔들려, 나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도록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만 해” 이런 소명의식이 그를 강하게 하였습니다.
소명의식이 분명한 다윗은 삐뚤어질 수도 없었고, 나약해 질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그 사람의 소명은 그를 아주 강하고 올바른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모세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를 낳은 지 3개월 만에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로 유모가 되어 4년을 맡아 기를 수가 있었습니다. 그 4년 동안에 어머니는, 자식에게 제가 자라서 무엇을 해야 할 사람인가를 심어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젖을 먹이면서 날마다 기도하고, 순간마다 “너는 이런 사람이야, 너는 이런 일을 해야만 돼”라고 그가 할 일이 무엇인지 사명감을 심는데 주력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왕궁으로 돌아가서 40세가 되도록 애굽의 왕실자식으로 자랐지만 40이 되어 공부를 마치자마자 즉시 자기 동족을 구원하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모세의 승리는 그에게 사명감을 심어준 부모의 승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자녀의 가슴에 소명의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야, 세상 사람들에게 복을 끼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사람이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은 다른 사람들을 복되도록 도와주라고 주신 축복이야, 네가 남들에게 복이 되려면 네가 바르게 자라야 하고,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해야 해.”라고 자녀의 가슴에 하나님의 소명을 심어 길러야 합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힘과 지혜와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날이나 어린이 주일은 어린이가 왕이 되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철부지 어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를 둔 부모님들이 각성하는 날입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를 둔 부모들이 정신 차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어버이 주일, 어머니날에는 자식들이 부모를 잘 모셨는지, 그것을 반성하고 돌아보는 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 년 내내 자식들 섬기느라고 등골이 휜 부모가, 어린이날이면 자식의 더 큰 소원을 들어주는 날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의미 있는 선물도 주어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에 대한 신뢰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 그리고 그 아이의 사명을 심는 일을 우리가 잘 했는지 반성하고 새롭게 각오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들을 다윗처럼 강하게 키워서 하나님께서 쓰실 일군으로 준비시킵시다. 그들이 장차 무엇을 해야 할 사람인지를 알려주고 그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자라도록 강하게 기르도록 합시다.
아직은 어릴지라도 그들이 어려서부터 성령 충만함을 받기위해 기도합시다.
이것이 부모 된 사람들의 오늘의 의무이고 미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녀 되게 하려면
>성경본문|
행13장 21절 ~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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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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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이명규목사
>비 고|
>첨부파일|
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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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님이 쓸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에 붙들림을 받은 사람! 그런 사람을 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시편 89편 20절에 보면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으로 부었도다.”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드디어 하나님이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주셨던 제일 놀라운 호칭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호칭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2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 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다윗이 사무엘로부터 이 칭찬을 들었을 때 나이가 몇 살쯤 되었을 때입니까?
대략 15-16살의 소년 이였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한 것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어떤 무엇인가를 한 경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의 어떤 점을 보시고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하셨을까요?
이것을 보면서 우리 자녀들이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으로 합한 사람으로 양육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이 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오늘날 부모들은 자녀 양육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많습니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최대관심사입니다.
당신은 자녀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기를 원합니까?
어떻게 하면 다윗처럼 세상에서 위대한 일을 하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으로 키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녀가 되게 하려면)
1. 신실한 사람이 되도록 훈련해야 한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자기 일에 책임감 있는 신실한 사람 이였기 때문입니다. 시편78:70-72절 말씀입니다.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에 있는 성실함을 보셨던 것입니다.
지금 이새의 집에는 그의 아들들 중에서 이스라엘의 왕을 선택하여 기름 붓기 위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사무엘 선지자가 와 있습니다. 이새와 그 아들들을 성결케 하고 제사에 청하였습니다. 어떤 아들이 왕이 될 것인가 보기 위해 큰 아들 엘리압으로부터 일곱째 아들까지 다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고 아들을 보였습니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 다윗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제사에 함께 하지도 못하였고, 오히려 형들의 몫까지 양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새가 볼 때는 다윗은 왕이 될 만한 인물이나 나이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충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17장에서 골리앗과 싸움에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게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명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같이 되리이다.”
다윗은 자기에게 맡겨진 그 일이 비록 작은일 일찌라도 성실히 책임을 다하는 사람 이였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큰 것으로 네게 맡기리라.’
하나님은 충성된 사람, 맡겨진 그 일에 성실히 충성하는 사람에게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잠언 28:10절 말씀입니다. “성실한 자는 복을 얻느니라”
잠언28: 20절에는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성실하면서 또 그 하나님께 성실해야 합니다. 느혜미야 9:7-8절에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라고 증거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 마음이 성실했습니다. 그 성실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보든지 안보든지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고 성실해야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성실히 책임을 다하는 사람으로 양육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을 어떤 사람으로 키우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질 것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성실한 삶을 살도록 양육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잠언 28:10절입니다.
“신실한 자에게 내가 복을 주겠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녀가 되게 하려면)
2. 영감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훈련해야 한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영감 있는 믿음의 사람 이였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6:13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 되니라 ”
영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사울도 처음에는 똑 같이 영감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자기 욕심과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되면서 하나님의 영이 사울을 떠나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십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하나님의 영의 충만하였습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용감하게 던진 말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사무엘상17:45절입니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이와 같은 담대함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령의 뜨거운 감동을 받았던 그의 내면의 세계에서 나오는 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마음에 합당하게 여기셨고, 다윗을 통하여 위대한 일들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영감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폴리캅이라고 하는 위대한 순교자는 9세 때 성령의 영감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탁월한 지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죠나단 에드워드는 7세 때, 모라비안이라고 하는 선교단체를 가지고 기독교 사회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던 진센도르프도 4세 때 성령의 영감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연필을 들고 글을 배울 때에 “사랑하는 주님, 주님은 나의 것이요,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라는 뛰어난 문장을 쓸 수 있을 만큼 영감받은 아이였다고 합니다.
유명한 주석가 메튜헨리는 11세 때, 침례교의 유명한 설교자였던 로버트 홀은 12세 때, 세기적인 설교자였던 스펄젼도 12세 때 성령의 영감을 받은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자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영감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양육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교육과 성령의 영감을 통해서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그 말씀을 통해서 자라고, 그 말씀과 함께 성령의 영감을 받으면 우리 자녀들은 비록 나이가 어릴지라도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어떤 환경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골리앗과 같은 원수 앞에서도 뒤로 물러설 줄 모르는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미래는 부모의 무릎에 달려있습니다.
역대상 22:12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사 너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시고.........” 다윗은 솔로몬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구하는 다윗의 이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 왕이 죽고 그의 뒤를 이어 솔로몬이 왕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아들을 위해 드렸던 그 기도를 여전히 기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천번제를 드리는 솔로몬에게 무엇을 받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이 때 솔로몬은 역대하1:10절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여 솔로몬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셨습니다.
정말 다윗의 기도처럼 지혜와 명철을 얻게 되었습니다.
역대하1:12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제물과 존영도 주리니 너의 전의 왕들이 이 같음이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이 같음이 없으리라.”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지혜와 명철을 구하는 마음을 허락하사 그로 하여금 위대함을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었는데 솔로몬은 마침내 아버지 다윗이 드린 기도의 열매를 맺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드린 특별하고도 구체적인 기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성경의 예입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다윗처럼 영감 있는 믿음으로 사람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녀가 되도록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고 훈련하는 부모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성도들의 자녀들 중에서 많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든 자녀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영감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녀가 되게 하려면)
3. 소명 있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해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놀라운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 소명이 다윗을 강하게 만들었고, 위대하게 만들었고,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승리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사명을 깨닫고 준비하는 자만이 이 시대와 역사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시력은 있는데 사명이 없는 사람, 비전이 없는 사람이다.’
이 놀라운 소명을 어려서부터 자녀들의 가슴에 심어주어야 합니다.
“너는 하나님이 택한 자야, 장차 그 나라를 위해서 큰 일을 해야지,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바로 자라야 돼” 어릴 때부터 자녀의 마음에 이런 꿈과 소망을 심어주면 자녀들이 건전하고 바르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의 가슴에 소명을 심어주는 방법은 말보다도 행동입니다.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가 마치 돈을 위해서 사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든지, 아무 목적의식없이 그날 그 날 지쳐서 겨우 살아가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눈에 비친다면 자식이 부모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그 자녀가 나중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무슨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들의 자녀를 소명받은 자녀로 키웁시다. 앞으로 이 나라의 지도자가 예수 믿는 집안에서 나오게 합시다.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서 생명을 바칠 줄 아는 강한 힘을 가진 자녀들로 양육합시다.
오늘날 왜 많은 젊은이들이 술 취하고 방황하고 음란함 가운데 빠지고 있습니까?
자신의 비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 삶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몇일 전에 뉴스를 들었는데 우리나라가 이혼률이 세계 2위라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가정이 무너집니까?
내 삶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결혼을 해야 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 꿈을 꾸게 하고, 사명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모세가 애굽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말과 행사가 능통하였습니다. 모세의 나이가 40이 되었을 때 애굽사람이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보고 자기 백성을 돌아볼 생각이 났다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이런 사명의식을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요?
3달 동안 부모에게 양육을 받고 애굽의 왕궁에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양육 받았을 때 모세에게 젖을 먹이던 사람이 모세의 친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로부터 듣고 소명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들의 가정에 자녀를 맡겨주신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소명 있는 사람으로 양육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 주신 줄 믿습니다.
모세처럼,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가 되어 하나님의 일에 쓰입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소명있는 사람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들만이 이 마지막 때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가 있으면 시간 낭비할 여유가 없습니다. 사명을 아는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10대에 꿈을 꾸고, 20대에는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꿈과 비전을 주신 다음에 훈련시키십니다.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 왕으로 소명을 받고 난 후 실제 왕이 되기까지 14-15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긴 시간동안 다윗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까?
왕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훈련받았던 것입니다.
시편78:70-72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공교함이란 기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왕이 되어서 모든 것을 다스리고 왕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지식과 능력을 훈련받았다는 것입니다.
10대에 꿈을 꾸고 20대에 준비하여 30대에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한 가지는 꿈입니다.
다윗은 15-16살 때 소명을 받고 14-5년을 준비하여 왕이 될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왕이 될 수 있는 지도력을 배우고 30세에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것입니다.
자녀들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소명있는 사람으로 양육해야합니다. 그리고 소명을 이룰 수 있는 실력이 있는 사람으로 키워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자녀들을 어떤 사람으로 양육하시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도록 그리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첫째, 신실한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고,
둘째, 영감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고
셋째, 소명 있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는 부모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행 13장 21~23절 / 문기태목사
중국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당신이 기적같은 놀라운 선교를 할 수 있었던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프로그램도 아니고 전술 전략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그와 함께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뢰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를 붙들고 어떤 큰 일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위기에도, 절박함에도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은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나라 이스라엘이 전쟁에 지고 있어도 법궤를 빼앗겨도 가만히 계셨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이 망해도 개의치 않고 기다리셨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아도 같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일어나면 그를 붙잡고 큰 부흥의 바람을 일으켜 주십니다. 온 도시를 회개시키고 나라를 바로 세우며 성령의 강력한 역사와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하시고 위기를 순식간에 극복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다가도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다시 교회는 쇠퇴하고 맙니다. 지역사회안에서 교회의 영향력이 사라지고 교회가 있어도 그 사회는 다시 죄와 타락이 만연해집니다.
하나님은 돈이 없어도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얼마든지 일하시며 큰 비전을 성취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없으면 일하실 수 없습니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실 때 얼마나 마음에 들어 하실까요? '얘, 너야말로 내가 찾던 바로 그 사람이다.'라는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으로 돌아가서 함께 살펴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찾아가 우리도 왕을 세워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래서 세워진 인물이 이스라엘 초대왕인 사울왕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제 욕심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보다 앞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왕을 버리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왕을 세우려고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 하나님과 함께 일할 정결하고 순수한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때 하나님께 발견된 사람이 다윗입니다. 성경은 다윗을 가리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함께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갈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마음을 맞출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하나님은 오늘도 다윗에게 주신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다윗처럼 존귀하게 높여 주실 것입니다. 다윗처럼 사랑하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언제 어디서든지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과 마음이 맞아야만 합니다. 그러면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마음을 맞출 수 있습니까?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있었습니까?
1. 자신이 맡은 일에 성실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삼상17:34,35)
다윗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절대로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삼상 17장 34절에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양떼를 치면서 성실했습니다. 양을 먹이는 일과 양을 보호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양을 해치려는 맹수와 싸워서 지켜냈습니다. 그런 것들이 후에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담대함, 전술, 지략 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어 훈련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이미 사울왕의 무기를 드는 자로 선택을 받아 사울이 악령에게 시달리면 수금을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여 악령을 쫓아내는 중임을 감당하고 있었으면서도 양떼를 보살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삼상 16 장 15절에서도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그의 아버지의 양을 칠 때에' 나는 왕의 앞에서 왕을 섬기는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까짓 양 몇 마리에 신경 쓸 때는 지났다고 말하며 방치할 수도 있지만 다윗은 그 일이 자신의 일임을 알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은 맡은 일에 성실한 사람을 귀히 쓰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맡은 바 자기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부르셨지 빈둥빈둥 놀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너 할 일 없으면 나를 따라오너라" 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바다에서 열심히 그물던지며 물고기 잡는 어부들을 현장에서 부르셨습니다. 세관에서 세금을 거두며 성실하게 일하는 마태를 현장에서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시시해 보일지라도 자기의 맡은 일에 열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맡겨 주면 성실히 감당하게 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78:70에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라고 증거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눈에 들어 존귀하게 쓰임받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주어진 직업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시시한 일이라고 불평하지 말고 별로 돈도 되지 않는 일이라고 우습게 여기지 말고 성실히 일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찮게 여길지 몰라도 주님은 눈여겨 보십니다. 여러분이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일에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직장에서 성실한 직장인, 자기 사업을 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업가, 학교에서 성실하게 공부하는 학생, 가정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가족들을 위해 일하는 주부들 사이를 다니시며 다 낱낱이 살피며 일군을 찾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의 이름을 신뢰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삼상17:37)
다윗은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를 보고는 참지 못했습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려는 의협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려고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는 것을 들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을 보고도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조롱당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받는다면 막아서고자 일어나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나님의 영광을 의식주 문제보다 더 크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우리 인생의 사는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얼마 만큼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염두에 두고 말하며 행동하고 있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일어났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신뢰하고 골리앗에게로 나아갔습니다. 45절을 보면 골리앗에게 말하기를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골리앗의 칼과 창에 맞서는 다윗의 무기는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전쟁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찬송하고 기도만 하고 있겠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이 말씀은 골리앗은 자기의 힘과 무기를 믿고 까불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보호해주시고 하나님이 승리를 안겨주실 것을 확신하고 전쟁을 한다는 말입니다. 힘을 다하여 물맷돌을 던지지만 하나님께서 실수하지 않게 하시고 승리를 주실 것을 확신하고 나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니 골리앗의 칼이 무섭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의 갑옷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의 큰 군대도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사울왕이나 형들의 만류도 다윗을 주저앉히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세상이 위협하는 무서운 무기들앞에서 왜 두려움에 숨게되는지 아십니까? 세상이 자랑하는 온갖 막강한 힘앞에 점점 더 작아지며 주저앉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던 눈을 감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던 마음을 접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분의 강력한 무기임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세상이 돈을 자랑한다고 여러분도 같이 돈을 내세우려고 하면 안됩니다. 세상이 힘을 자랑한다고 여러분도 같이 힘을 내세우려고 하면 안됩니다. 세상이 지식을 자랑한다고 같이 지식으로 맞서려고 하면 안됩니다. 비록 우리가 돈이 없고 지식이 없고 힘이 달린다 해도 우리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승리를 확신하고 나아갑시다.
한 자폐아의 엄마가 자신의 아들을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새장에 갇힌 새처럼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세상과 소통을 거부하는 아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만 떠도는 아이. 마땅한 약도 특별한 치료법도 없이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 아이. 놀이터에서 노는가 하면 모래를 자기 눈에 비벼대고 깨진 유리 조각을 자기 얼굴에 뿌려대는 아이--" 이 아이의 엄마가 아파트 11층 베란다에서 아이와 함께 뛰어내릴 생각을 하던 어느 날 아파트 이웃들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주일 목사님의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설교를 듣고 집에 돌아와 이 엄마는 두장의 그림을 그립니다. 하나는, 온 가족이 아이와 함께 단란하게 식사하는 그림(그런 일이 없었기에), 또 한 장은 아이가 학교 교실에서 열심히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장의 그림을 거실 중앙에 붙여 놓고 이 엄마는 기도합니다. "제 아이가 그렇게 되게 해 주십시오. 더 이상 이 아이의 과거를 바라보지 않겠습니다. 제 아이가 짐이 되는 존재가 아닌 축복이 되는 존재로 살게 하여 주십시오. 이제 이 아이의 미래를 감사함으로 바라보며 다만 저를 축복하며 섬기겠습니다." 아 아이가 바로 작년 9월 첵코에서 열린 세계 장애인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19살의 나이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김진호라는 아이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진호 엄마(유현경)와 같은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병든 아이를 축복의 아이로 바꾸어내고 절망을 소망을 바꾸어내며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어내는 하나님의 이름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큰 능력이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삼상16:13)
다윗의 생애는 그가 가진 자질때문에, 교육때문에, 역량때문에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생애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그 다윗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어느날입니다. 이새의 집에 사무엘이라는 선지자가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이새 가문의 아들가운데서 왕을 세우신다는 놀라운 약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들 하나하나를 면접합니다.
그 날도 형들은 모두 아버지 집에 갔기 때문에 일손이 바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아버지가 오라는 전갈에 숨이 턱이 차도록 달려왔습니다. 다윗은 가난했지만 당당했던 아버지, 누구에게 머리 숙인 것을 본 적이 없었던 아버지가 수염이 허연 기품있는 노인 앞에서 몸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한쪽의 형들은 머쓱하게 이상하게 풀이죽어 있는 모습입니다. 이 소년은 맑은 눈으로 그 노인을 바라봅니다. 그때입니다. 나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 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바로 이 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미신이 하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돈이 많든지, 사회적인 역량이 있든지, 또 개인적인 기품이 있는데 예수 안믿는 사람을 소개할 적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분이 예수만 믿으면 큰 일을 할 사람입니다. 이것은 미신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데 큰 일을 합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내 뱉는 말 속에 하나님을 멸시하는 말을 쉽게 합니다. 여러분 그 사람이 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붙잡으시면 그 사람이 큰 일을 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잘 나고 그럴듯한 조건을 갖춘 다윗의 형들은 모두 하나님이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오히려 외적으로는 가장 작고 어린 그래서 부모들조차도 아무 기대도 하지 않은 다윗이 선택받았습니다.
주의 영이 여러분을 붙잡고 마음이 합하면 그 다음은 주님께서 그 생애를 붙잡으셔서 걸작으로 사용하시는 놀라운 은총을 경험할 것입니다. 일 하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합한 자를 통해서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펼치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헤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1:26) '하나님게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헤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라고 하십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시시의 성자 프랜시스에게 어느날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그리스도의 기적을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광을 나타내고, 선생님만 만나며 사람들이 변하는데 그 놀라운 능력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프랜시스가 대답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느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는 많은 사람들중에서 한 구석에 가장 연약하고 가장 무지하며 가장 미련한 한 사람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슴하시기를 '그래 저 사람이다. 저를 통해서 나의 강함과 나의 지혜로움과 나의 능력을 나타내리라.'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신 이유의 전부입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을 찾으실 때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존귀하게 쓰임받게 되고 그로 인해 행복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세운 사람
행 13장 21~23절 / 오창우목사
소아시아 성지 순례의 마지막 날 이스탄불에 있는 터키의 오스만제국의 돌체 궁전을 돌아 보았다. 지금은 왕이 살지 않고 관광객들을 위한 여러 가지 전시가 되어있습니다. 돌체 궁전에는 왕궁에서 쓰던 그릇전시관, 의복전시관, 보석전시관, 종교전시관 등이 있는데 그 중에 보석전시관에 가면 보석전시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86캐럿의 다이아 몬드>가 전시되어 있다. 이 86캐럿 다이아몬드는 오스만제국의 영화를 상징하는 것이라서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절대로 팔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진귀한 다이아몬드의 별명이..<스푼 다이어>이다. <스푼 다이어>의 별칭에는 우습지 않은 사연이 있다. 원래 이 다이아몬드는 고기를 잡는 어부가 바다에서 건져냈다고 한다. 어부는 진귀한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다이아몬드의 가치를 모르니까..그리 대단한 보석이락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물건을 사고파는 페르시아의 장사꾼이 귀한 보석임을 알아보고 이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기 위해 궁리 끝에 어부에게 제안하기를... “당신이 가지고 있는 이 돌은 귀한 것인데...당신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그것과 바꾸자”고 하자 어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에게 수저 3개를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페르시아 장사군은 이 다이아몬드를 스푼 3개와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86캐럿짜리 진귀한 보석의 별명이 <스푼다이아>라고 한다.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할 수 있다. 가치를 모르면...이렇듯 역사의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미국의 알라스카를 러시아로부터 구입한 것도 역시 러시아의 어리석음 때문에 얻게 되었다.
석유가 나오고 금이 나오는 광산으로..더 없이 가치 있는 땅 알라스카를 미국이 러시아에게 1에이커 당 2센트를 주고 720만 불을 주고 샀다.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보물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는 사람은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다.
오늘 성경본문은 사도바울이..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한 설교의 내용 중의 하나이다.
버가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타우루스 산을 넘어 북쪽으로 160km를 여행하여 비시디아 안디옥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이 곳 회당에서 바울사도는 회당장으로부터 백성들을 위해 권면의 말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저는 이번에 사도행전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버가에서 비시디아로라는 한 마디로 설명되어 있지만, 이 가는 길이 자그마치 160km입니다. 또한 타우루스 산이라는 것은 해발 3000m가 넘는 산입니다. 이런 높은 산을 사도바울이 걸어서 선교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성지순례에 참여한 모두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세워진 교회이고 이렇게 전해진 복음입니다.
바로 그 사도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가서 복음을 전한 내용 중의 하나가 오늘 성경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임금 다윗이 왕이 된 이유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다. 2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우시고 증언하셨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만나니...” 라고 하신다.
‘만나니..’라는 말은 영어성경에서 ‘found’ ‘발견했다’‘찾았다’는 뜻이다.
‘발견’이라는 말은 많은 것 중에 하나가 아니라...없는 것 가운데...숨겨진 것 중에 하나를 찾아 내셨다는 말이다. 보물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찾고 왕이 되는 자격까지 갖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다. 과연 다윗은 어떤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셨는지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다윗이 왕으로 세워진 이유는
첫째, <이새의 아들 다윗>이기 때문이다.(신앙교육)
22절상“..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이새의 아들을 찾으신 이유는..다윗이 이새의 신앙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새는 돈 많은 부자도 아니고 큰 권력자도 아니고 종교지도자도 아니다. 이새는 가난한 목축업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새의 아들 다윗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자기 마지막 유언에서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하노라.” 자신이 이새의 아들이라는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이새의 아들이라는 것은 “아버지 이새로부터 신앙의 교육을 잘 받은 다윗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새의 할머니는 우리가 잘 아는 룻기의 룻이다.
룻은 사사시대에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 땅에 와서 하나님을 믿었다. 사사시대는 영적 암흑시대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기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고..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을 자기 집의 노예정도로 여기며 살았던 악한 시대였다. 영적암흑시대에 룻은 하나님말씀대로 산 사람이다. 그리고 이 신앙을 자손들에게 전한 신앙교육을 중시여기는 가문이 바로 이새의 가문이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기를...“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날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도 다윗은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6절)고 기록하면서 이새의 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신앙의 교육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역시 어려서부터 신앙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다. 다소출신으로 가말리엘이라는 당대 최고의 랍비에게서 신앙교육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유학까지 온 사람이다.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교회의 지도자로 세운 이유 가운데 하나도.. 신실한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 부터 성경을 배우며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교회의 중직자가 될 사람의 자격 가운데 하나도...딤전3:4에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고 했다.
하나님은 부모로부터 신앙교육을 잘 받은 사람을 찾으시고 세우신다.
나는 소아시아 성지순례에서...안타까웠던 것은 성경에 나오는 교회는 거의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스탄불에 있는 성소피아성당은 오스만제국에 의해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박물관이 되고 말았다. 대부분의 교회건물들은 전쟁으로..지진으로 다 무너져 버리고 건물의 잔해로 추정되는 돌무더기 흔적만 남아있었다.
건물은 아무리 잘 지었어도 어떤 이유로든지 없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가는 곳마다..교회건물을 짓지 않고 기독교의 신앙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들은 교회의 지도자가 되게 했습니다.
소아시아 성지 순례는 건축물의 순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사도바울의 발자취를 따르는 순례이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은 신앙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우리는 어떤가?
계시록에 나오는 교회들과 사도바울이 세운 교회들로..초대교회에서는 대단한 영광을 누리던 교회이다. 그런데..지금은 다 사라지고 흔적만 남고 그 자리에는 이슬람이 차지하고 있다. 왜 그런가?
영국교회는 세계적으로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했던 교회이다. 우리나라의 초대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 역시 영국교회가 파송했다. 그렇게 선교에 열심있던 교회가 지금은 쇠락한 교회로 남아 있다.
한국교회 역시 크고 웅장한 예배당, 수많은 교인들...그리고 선교대국이 100년후에도 계속될까?
유대인들은...땅도 없이 수천 년을 지나고 독일의 히틀러에게 죽임을 당하면서도 살아남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유대인의 신앙교육 때문이다. 회당교육도 있지만 유대인의 신앙교육의 진정성은..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이새의 아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교육을 받은 자녀들을 이 시대의 지도자로 세우시길 원하십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자녀들 위에 이런 복이 풍성하시길 축복한다. 신앙의 교육만이 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신앙교육을 받은 사람을 이 시대의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우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도 신앙의 교육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특히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신앙의 교육을 잘 시킬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찾으시고 높이셔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십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기 위해서 부모된 우리들은,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잘 시키시기 바랍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이유?
둘째,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은혜)
22절중“..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말은 ‘하나님 마음을 닮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눅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잘 나타나 있다. 죄를 짓고 떠난 탕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다. 이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은 사람이 다윗이다. 요셉은 애굽의 노예로 팔리우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가운데서도...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영광을 누린 것이다.
지난 주일에는 에베소에 있는 이재한 선교사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터키 현지 사람들을 위한 교회로 중동선교의 모델이 되는 귀한 교회이다. 이재한, 박춘란 선교사는 제가 청년시절 지도했던 분들이다. 특히 이선교사는 폐병으로 심히 고통을 받았는데...이 부부가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주심을 믿고 충성할 때 하나님이 그 병을 고쳐 주시고 이슬람땅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세울 수가 있었다고 한다.
바울사도는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설교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주관하시되 은혜로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은혜의 하나님..부족함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세움을 받는다는 것이 사도바울의 신앙이요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일본작가가 쓴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의 소설은 한 해에 30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이다. 이 책의 내용은 우리가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와 삶의 목적을 상실한 사람들이 가는 길은 자살이다. 우리나라에서만 하루에 36명이 자살을 하고 있다. 초등학생이 자살을 하고 한 어머니가 세 명의 어린 자식을 아파트 14층에서 내던져 죽이고 자신도 뛰어내려 죽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상실의 시대이다.
이러한 상실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믿음이다. 상실의 아픔과 좌절이 넘쳐나는 시대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믿음, 바로 이 믿음이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할 것을 믿습니다.
한 자폐아의 엄마가 자신의 아들을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새장에 갇힌 새처럼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세상과 소통을 거부하는 아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만 떠도는 아이. 마땅한 약도 특별한 치료법도 없이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 아이. 놀이터에서 노는가 하면 모래를 자기 눈에 비벼대고 깨진 유리 조각을 자기 얼굴에 뿌려대는 아이--"
이 아이의 엄마가 아파트 11층 베란다에서 아이와 함께 뛰어내릴 생각을 하던 어느 날 아파트 이웃들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주일 목사님의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설교를 듣고 집에 돌아와 이 엄마는 두장의 그림을 그린다. 하나는, 온 가족이 아이와 함께 단란하게 식사하는 그림, 과거에는 단 한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또 한 장은 아이가 학교 교실에서 열심히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이 두 장의 그림을 거실 중앙에 붙여 놓고 이 엄마는 기도한다.
"하나님, 제 아이가 저렇게 되게 해 주십시오. 더 이상 이 아이의 과거를 바라보지 않겠습니다. 제 아이가 짐이 되는 존재가 아닌 축복이 되는 존재로 살게 하여 주십시오. 이제 이 아이의 미래를 감사함으로 바라보며 다만 저를 축복하며 섬기겠습니다."
하나님은 상실의 상황 속에서도 은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아 아이가 바로 첵코에서 열린 세계 장애인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19살의 나이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김진호 군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진호 엄마, 유현경 집사와 같은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병든 아이를 축복의 아이로 바꾸어내고 절망을 소망을 바꾸어내며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어내는 하나님의 이름을 온전히 신뢰하는 그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큰 능력이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외모를 본다는 것은 능력을 보는 것입니다. 조건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마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를 철저하게 의지하는 믿음이 있음을 보시고 왕으로 세우셨던 것이다.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나는 부족하지만, 나는 가진것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은혜주시면, 사랑 주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왕으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도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내 손에 든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든 것을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타우러스라는 해발삼천미터의 산을 넘어..안디옥에서..그리스까지..어떻게 그렇게 헌신할 수 있었을까요? 사도바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전도는 내가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된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더라.” 내가 능력이 있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때문에 복음도 증거 되고, 하나님의 교회도 세워지는 것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상실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은혜의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승리케 하실 줄을 믿습니다하는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세움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이룰 사람>이기 때문이다.(구원)
따라하겠습니다. 내 뜻을 이루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윗은 주변의 모든 족속을 멸하고 이스라엘의 기반을 세웠습니다. 예루살렘을 여부스 족속에게서 빼앗아 수도를 삼고, 그 곳에 성전을 지을 수 있는 터를 마련했습니다.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와서 나라의 중심을 하나님으로 삼았고 예배 의식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 나라의 기틀을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만드시고자하는 뜻을 이루어가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건축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사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신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예수님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바울 역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그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갔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있습니다.
영국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꼭 가는 곳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이 사원의 안내자는 역사도 이야기하고 교회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지 잘 이야기합니다. 이야기가 다 끝난 후 “혹시 질문할 것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 한 가지 하겠습니다. 최근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도, 한남제일교회도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을 섬기고, 상처로 얼룩진 이 땅을 찾아가 섬기는 이유도 하나님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한 것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갠솔러스라는 젊은 성직자가 시카고의 여러 신문에 광고를 냈다.
다가오는 일요일 아침에 ‘100만 달러가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광고를 육류포장 사업으로 거부가 된 필립D.아머가 보고는 겐솔러스 목사의 설교를 들어보기로 결심을 했다.
갠솔러스는 설교를 통해, 새로운 비전을 가진 대학 창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젊은이들에게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정신력과 사고력을 키워줌으로서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위대한 학교를 건설하는 것이 그의 꿈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100만 달러가 있다면 바로 그런 학교를 세우는 것이 갠솔러스목사의 꿈이라고 설교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설교를 들은 아머는 설교가 끝나자마자 설교 단상으로 가서는 갠솔러스 목사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말씀하신 모든 일을 목사님이 반드시 해내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내일 아침에 제 사무실로 오십시오. 필요한 100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미국에서 손꼽히는 명문 학교인 아머 공과대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아머 공과대학은 한 젊은 목사, 하나님 나라의 비전에서 탄생했던 것이다.
어제 신문을 보니 인천의 수종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이루어가는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이 교회 표어는 ‘이웃에게 복음을, 농어촌에는 선교비를, 온 세계에는 선교사를’입니다. 현재 18명의 선교사를 파견하고 17곳의 미자립교회를 돕는데 교회 예산의 절반을 선교비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귀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위해서 충성하고 헌신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제가 그리스 아테네에 갔을 때 안내하시는 분이 반갑다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아 한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2008년도에 우리교회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달 반동안 묵어가신 목사님이셨습니다. 이 목사님이 그리스에서 오셔서 거처할 곳이 없었을 때에 한남제일교회에서 기쁨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제공해주셔서 그 때 받았던 은혜를 잊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이루어가는 것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이 시대의 위대한 지도자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 왕으로 세우심을 받는 사람은
첫째, 이세의 아들 신앙교육을 중요시하는 사람
둘째,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은혜의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승리하게 될 줄로 믿는 사람입니다.
셋째,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애쓰고 수고하는 사람
하나님이 그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높이 들어 쓰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6.25 60주년을 맞이하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이 나라가 전쟁 없는 나라, 하나님의 축복받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이유를 기억하고 이 믿음으로 승리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 람
행 13장 22~23절 / 장경동목사
사람의 가치는 “누가 보느냐? 또는 어떻게 보느냐?” 에 따라 달라집니다. 인체를 분해해서 화학적 성분으로 가격을 매긴다면, 비누로는 약 5,000원 정도 라고 합니다. 요즘 시세로 한다면 한 10만원 정도입니다. 똑같은 인체를 장기이식 하는 의사의 눈으로 보면 “콩팥은 약 3,000만원, 눈(안구)는 얼마 ..”이런 식으로 해서 사람이 몇 십억원정도 된답니다. 원자핵 공학자의 눈으로 인간을 본다면 100조원 정도의 전기를 생성할 수 있는 가치로 봅니다. 그러나, 부모의 눈으로 자식을 봤을 때는 돈으로 계산이 안 됩니다. 내 생명보다 귀한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눈에 비치는 나는 얼마짜리인가? 계산이 안 됩니다.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 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목숨은 돈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공산주의의 유물론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구원하셔야 할 정도로 우리는 가치 있고 귀중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나를 사랑 하셨습니다. 나의 가치는 하나님 식으로 어머니 식으로 본다면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정말 귀중한 존재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도 마음도 말도 행동도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가치 있는 삶으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한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대칭의 이야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과 나쁜사람, 순종의 사람과 불순종의 사람, 훌륭한 사람과 훌륭하지 못한 사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세운사람과 폐한 사람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행13:21-22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은 같은데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다윗과 사울의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나,사람이 다릅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1. 훌륭한 사람과 훌륭하지 못한 사람을 구분해 보겠습니다. 사람됨은 본질이요 그 행동은 현상입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면 그 하는 일도 훌륭하게 됩니다.
훌륭한 사람
훌륭하지 못한 사람
1) 삶의 문제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고,
모든 원인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사람
1) 삶의 문제 원인을 남에게서 찾고, 모든
원인을 남 탓, 시대 탓으로 돌리는 사람
2) 장애를 극복해 가는 사람
2)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
3) 자기잘못을 시인하고 인정하는 사람
3) 자기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사람
4) 변화 되어가는 사람
4) 변질 되어가는 사람
5) 스스로 깨닫는 사람
5) 손에 쥐어줘도 모르는 사람
사람이 하는 말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앞말, 뒷말, 심언(양심의 소리,마음의 소리, 때로는 하나님의 소리) 앞말보다 중요한 것이 뒷말이요, 뒷말보다 중요한 것이 심언(心言) 입니다. 훌륭한 사람은 심언을 듣고 삽니다. 고전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 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말하기 전에 알아서 고쳐가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주님께 기도하고 결단하고 도전하고 변화되어, 주변에서부터 훌륭하다는 말을 들어 봅시다.
2.하나님이 세운사람과 하나님이 폐한 사람이 있습니다.
1)다윗과 사울은 똑같이 40년간 왕 노릇 했으나 다윗은 순종의 사람이었고 사울은 불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하나님이 세우는 사람입니다.
2)다윗은 헌신의 사람이었고, 사울은 사욕(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의 사람이었습니다. 대상29:2-3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나니 곧 가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며 또 마노와 박을 보석과 꾸밀 보석과 채석과 다른 보석들과 화반석이 매우 많으며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다윗은 자기 평생에 모았던 것을 하나님의 전 건축하는데,드렸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요? 대상29:28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반면, 사울은 하나님과 백성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다가 자살합니다. 삼상31:2-4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쫓아 미쳐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 그가 병기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행치 아니하는 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자살하기 직전 에 사울은 사람의 모욕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 할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삶의 의식과 초점이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3) 조그만 미움조차도 사람 죽이는데 쓰지 말고, 조그만 사랑이라도 사람을 살리는데 써야 합니다. 사울의 평생의 일과가 뭡니까? 다윗 죽이겠다고 쫓아다니는 거였어요.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세워 주시고, 사람 죽이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폐하십니다.
4)정직함(깨끗함)과 정직하지 못함(더러움)입니다. 대상29: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니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5) 겸손함과 교만함의 차이입니다. 말의 겸손은 알기 쉬우나, 삶의 겸손과 교만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3.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통해 그 뜻을 이루십니다.
행13: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것이 인간이 받아 누릴수 있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이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자손은 될 수 있습니다. 요1:12 ‘ 영접하는자 곧 그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러분 이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되지 않으시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