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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로 데오다토의 <카니발 홀로코스트>는 이들 영화의 최고봉이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페이크다큐멘터리의 금자탑으로서의 명성과 악명을 굳건하게 다지고 있다. 대다수의 관객은 <카니발…>에 대해서 얘기하기를 꺼려한다. 불쾌하고 혐오스럽고, 또 역겨운 장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까닭이다. 때문에 쓰레기라는 극단적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하나 이 영화에서 도입한 모든 것들은 이후 작품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싫든 좋든 <카니발…>의 흔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카니발…>의 이야기는 모범적이다. 아마존 밀림으로 떠난 네명의 젊은이들. 그들은 기록영화팀으로 아마존 곳곳의 풍경과 원주민들, 그들의 기괴한 풍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정글 속으로 들어간다. 얼마 뒤 이들은 실종되고, 수색 끝에 그들이 남긴 카메라만 발견된다. 그 필름 속에 찍혀 있는 것이 <카니발…>이다. 이야기의 특성상 “이 모든 것은 사실입니다”를 강조하기에 그만이다. 필름에 기록된 영상들은 진실 여부를 떠나서 일단 충격 그 자체다. 따라서 영화 홍보에 실화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고, 관객은 영화적으로 판단했을 때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폭력이 난무하는 것에 질색을 할 판인데 교묘하게 실화임을 강조 또 강조하는 방식에 휘말리면서 충격 효과를 더했다. 실제 사람이 식인종들에게 잡아먹혔다는 등 자극적인 홍보와 관객의 추측이 난무하면서, 이 저예산영화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카니발…>은 100% 연출된 영상만 기록한 것은 아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교묘한 연출로 이루어졌지만, 거북이를 잡아 난도질을 해대며 먹어치우는 것은 실제장면이다. 동물 학대에 대한 거센 항의에도 루게로 데오다토 감독이 “현지에선 모두 거북이를 먹고 있으며, 영화 촬영 뒤에도 잘 먹기만 했다”고 대답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카니발…>은 웬만큼 폭력에 둔감해진 지금 기준에도 그 쇼킹함은 여전하다. 뻔뻔스러운 상업영화의 표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은 음미의 가치가 있다. 카니발 영화들은 한결같다. 문명인이라고 자칭하는 인간들이 원주민의 생활과 풍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야만적 행위’임을 고발한다. 사실은 그 행위를 담는 자들이, 또 그것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영화 제작 관계자들이 야만적임을 우회적으로 묘사 혹은 해석된다.
<카니발…>을 DVD로 봐야 하는 이유는 국내 개봉 당시 무수한 가위질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뭐라 표현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폭력의 세계는 그 어떤 공포영화도 도달할 수 없었던 경지다. 80년대 영화 팬들의 욕구불만을 해소했던 삐짜 비디오 시절(사망창가라는 제목으로 유통되었다) 이슈가 되었던 <페이스…>(<카니발…>보다 제작연도는 빠르다) 또한 페이크다큐멘터리에서 빼놓을 수 없다. 한때 가수 전영록이 꼽은 가장 잔혹한 영화 가운데 하나였던 <페이스…>는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다루는 척하면서, 결국 자극적인 영상만을 줄줄줄 늘어놓은 질 떨어지는 영화다. 당시 이 영화를 본 관객은 허구가 아닌 사실로 받아들였다. 영화는 철저하게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고수했고, 시체 해부와 독특한 미각을 보여준다는 명목하에 동물의 진짜 죽음을 교묘하게 연출된 장면과 뒤섞어놓으면서 리얼리티를 확보했다. 특히 죽음을 무릅쓰고 사이비 종교의 살아 있는 인간을 재물로 바치는 의식의 현장을 간신히 찍을 수 있었다며 공개하는 인육 먹기와 집단 성교의 박력 넘치는 영상은 대단한 충격이었다.
<사형참극>의 제목으로 출시된 국내 비디오는 무수한 가위질로 장르 특유의 현장감을 완전히 상실했다. <카니발…>이 보여준 페이크다큐멘터리의 가공할 만한 위력은 <블레어 윗치>에서 재현된다. <블레어 윗치>는 탁월한 아이디어와 진실 여부를 떠난 영화 자체로서의 썩 괜찮은 완성도, 이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이슈 만들기라는 마케팅 전략에서 신기원을 달성했다. 관객을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가공의 이야기를 진실로 포장하는 기막힌 전략으로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극장에서는 본편 영화만 볼 수 있었지만 DVD에 수록된 <블레어 윗치의 저주>라는 부가영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가 허구가 아닌 진실임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페이크다큐멘터리인데 내용은 뻔하다.
<블레어 윗치>에서 다룬 마녀 이야기가 모두 진짜임을 가공의 역사를 만들어서 사기를 친다. 독립적으로도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본편 이전에 먼저 보면 효과가 더 좋다. <블레어 윗치>의 어마어마한 성공에 아류작들이 넘쳐났고 그 영향에 힘입어 일본의 경우 <노로이>라는 영화를 내놓았다. <링> <주온> 등을 제작한 명프로듀서 이치세 다카시게가 주도한 <노로이>는 일본 각 지역에서 일어난 괴기현상을 취재한 다큐멘터리다. 취재 과정과 함께 제작에 관련된 사람들이 의문을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시 영화의 내용이 모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라며 속보이는 홍보 전략을 펼쳤고, 이를 믿거나 말거나 <노로이>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흥미진진한 사건과 극적 구성으로 호평받았다. 연출된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는 것처럼 몇몇 사실적인 느낌의 장면들이 공포를 주었다. 즉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속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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