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사람이 애 데리고 처형내 놀러가서...
모처럼 '티니핑'이 아닌 영화를 TV 화면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맨 처음 고른 영화가 '오펜하이머'였습니다.
일전에 어떤 게시글에서 박평식 평론가의 한 줄 평
'지성, 야심, 윤리의 빅뱅 그리고 잔해'를
조롱한 적이 있었는데, 먼저 그분한테 사과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평론가의 겉멋 든 한 줄평인 줄 알았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 한줄 평이 이해가 되더군요.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편집이었습니다.
영화의 시각적 효과와 미장센은 당연히 좋을 줄 알고 있었으나
편집을 통해서 이렇게 강력하게 그것을 분출할 줄은 몰랐습니다.
'덩케르크'에서는 약간 핀트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는데...
'오펜하이머'에서는 여러 스토리가 겉도는듯 하다가
뒤로 갈 수록 융합하듯 응축되어 터집니다.
말 그대로 '지성, 야심, 윤리의 빅뱅'처럼..
또한 원작 책의 제목처럼
'프로메테우스'가 벌받는 과정이 연출이 되는데
왜 '오펜하이머' 가 그 거짓된 징벌의 수난을 견디는지...
뒤로 갈수록 이해가 됩니다.
무튼, 23년 좋은 영화로 마무리하여 쓸데없이 적어봤습니다~
참고로 출연진들이 워낙 빠방하여 그들의 역할과 연기의 합을 보는 재미도 있으며
물리학에서 획을 그은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등장하는지 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첫댓글 이 작품은 오펜하이머의 인생 이야기를 소재로 법정 드라마, 스릴러라는 장르적 형식을 갖고 있죠.
감독 본인은 전기영화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했고 재판 씬과 스릴러의
장르적 방식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데이빗 핀처의 걸작 ‘소셜 네트워크’와도 유사하지만
시간의 교차편집과 여러 영화적 형식 면에서
역시나 본질적으로 어쩔 수 없는 놀란의 영화입니다. (이하 스포 주의)
특히나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의 1편, ‘배트맨의 시작’편에서 배트맨의 탄생 배경이었던
어린 브루스 웨인이 추락했던(why do we fall, bruce?) 우물 낙상(fall) 트라우마를
배트맨 3편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단 한 명의 예외가 있었지만)
어떤 사람도 빠져나갈 수 없었던' 유사한 형태의 동굴 감옥에서
스스로 극한으로 몰아붙여 인간의 한계를 넘고
(1편의 감옥 속 옛스승, 후일 적으로 다시 만나는 헨리 듀커드의 대사였던
if you make yourself more than just a man,
if you devote yourself to an ideal, then you become something else entirely 처럼..)
상승(3편의 제목이자 테마 키워드인 바로 그 rise)해서 탈출하는 씬으로 연결지어 마무리했던
그 수미쌍관 방식을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가져오죠.
중절모를 쓴 오펜하이머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거대한 물 웅덩이를
이루는 것을 공포스럽게 쳐다보는 모습을 클로즈업하는
이 영화의 인트로 장면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반전 중 하나이자 결말이었던
오펜하이머: 알버트, 제가 예전에 말했던 계산 기억나세요? 파괴의 연쇄반응 말입니다.
@justcool 아인슈타인: 기억하고 있소. 그건 왜?
오펜하이머: 이미 시작된 것 같아서요(I believe we did).
이후의 상호확증파괴 원칙에 따른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멸망의 결말이라는 상상 장면과
정확히 수미쌍관을 이루며 마무리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도입부의 빗방울과 같이, 사람의 힘으로는 가리거나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으며,
일단 시작되면 물방울들이 퍼져 거대한 물웅덩이를 이루면서
'핵이라는 빗방울이 내리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
영화적 메타포이자 놀란의 작품이라는 인증으로서 작품 속에서 훌륭하게 기능하죠..
@justcool 디테일한 말씀 감사합니다 작은 이야기 요소가 계속 큐브처럼 짜맞춰지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말씀해주신 메타포가 이 영화의 가장 마지막 큐브인양 절묘하게 맞춰진 것도 전율이었습니다
제가 받을 수 있는 가장 고점의 감동을 이 영화를 통해서 얻게 되네요 하나 하나 기억 나는 씬이 많지만 지적해주신 메타포에 머리 한 방 맞았습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망이 연결될수록 사람이 없어져 가는 상황이 메타포로 느껴졌었는데
대기를 태우는 연쇄반응을 이렇게 사람들을 통해 은유한 것에 대해 놀라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