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1년 창업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이디야가 최근 980호점을 열어 1000호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213개를 오픈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매달 평균 20여 매장이 문을 열고 있다.
매장 크기 등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국내 매장 수가 스타벅스나 커피빈, 카페베네보다 많다. '커피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우후죽순 생겨나는 커피 전문점을 감안할 때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여주고 있다.
이디야의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 가격은 2500원이다. 스타벅스 등 외국계는 물론, 다른 국내 주요 브랜드에 비해서도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물론 값이 싸다고 해서 무조건 장사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 맛없는 커피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결국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
'값은 싸지만 맛있는 커피'라는 목표는, 반대 방향으로 뛰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 두 목표를 잡기 위해 이디야는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맛있는 커피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 반지'처럼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그런 다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가격대를 맞추기 위해 남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 거죠."
문창기 이디야 커피 대표는 "커피와 차는 가게 안에서 의자에 앉아 마셔야 한다는 통념, 매장을 온통 최고로 예쁘고 멋있게 가꿔야 손님이 온다는 생각을 버렸다"며 "오직 커피 그 자체가 스스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군더더기를 잘라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서브 스트리트 전략
이디야 전략의 요체는 상품의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많은 것을 버리는 '버림의 미학(美學)'이다. 커피를 제외한 다른 비용을 확 줄이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서브 스트리트' 전략이다. 사람 많이 다니는 큰길, 즉 메인 스트리트에 매장을 차리는 것은 모든 기업과 가게 주인의 희망이다. 하지만 이디야는 초기부터 메인 스트리트에서 한 블록 정도 뒷길에 매장을 연다는 전략을 택했다. 이를 통해 보증금과 임대료 등을 대폭 줄이겠다는 계산이었다. 커피 맛에 자신만 있다면 고객들은 알아서 찾아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문 대표는 "조금만 뒷골목으로 들어가도 부동산 비용이 약 30% 정도 저렴해진다"며 "이를 통해 이디야 커피는 강력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는 "이디야의 전략은 큰길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해도 콘텐츠만 좋다면 충분히 관객이나 소비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전형적 '오프 브로드웨이(Off-Broadway)'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금력과 인지도가 부족해 브로드웨이에 진출하지 못한 뮤지컬들이 한 블록 정도 뒷골목에 있고, 객석 수가 절반도 안 되는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자신만의 개성에 성패를 거는 전략과 의미가 통한다는 것이다.
서브 스트리트 전략에 매서움을 더하기 위해 이디야는 작은 매장을 추구했다. 경쟁 업체들이 도심에 수십평짜리 대규모 매장을 잇따라 열었지만, 이디야는 큰 매장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렸다. 흔들리지 않고 주로 15평 안팎의 매장을 여는 데 주력했다.
작은 매장으로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테이크 아웃 전문' 커피 전문점을 표방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2000년을 전후로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대형 커피 전문점 브랜드는 주로 앉아서 차나 커피를 마시는 '카페형'이 주력이었다. 전통적인 다방도 앉아서 마시는 방식은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탁자·의자를 놓아야 할 공간이 넓을 수밖에 없고, 이는 고정 비용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디야는 이런 공간을 되도록 줄이고 당시 막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한 '테이크 아웃' 문화를 받아들였다. 젊은 회사원과 대학생들 사이에 커피잔을 들고 다니며 마시는 모습이 신선한 유행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디야는 폭발적 성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창영 사업개발부장은 "예비 점주가 아무리 원해도 수익률을 맞출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큰 매장을 무리하게 욕심낸다고 판단하면 매장을 내주지 않는다"며 "20명 중 1명 정도는 이런 조건에 맞지 않아 가게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디야는 인테리어와 홍보·마케팅도 군살을 뺐다. 인테리어는 예쁘고 화려한 장식품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평당 비용이 대형 매장보다 30% 이상 싸다. 또 유명 탤런트·가수를 동원한 스타 마케팅이나 TV 광고를 하지 않는다. 대신 '소문 마케팅'에 힘을 쏟는다. 문 대표는 "가게가 작고 테이크아웃 형태로 운영하다 보니 매장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는 경우가 많은데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 '이디야는 장사가 잘돼'라고 말하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요즘 시대의 경쟁력은 '더하기'가 아닌 '빼기'에서 나온다"며 "구글이 복잡한 것을 모두 빼고 단순한 검색창으로 대성공을 거뒀고, 아이패드 등이 모니터와 자판으로 구성된 컴퓨터에서 자판을 버리고 아예 화면에 집어넣어 소비자의 사랑을 받은 것만 봐도 '빼기' 전략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투명한 가맹점 관리
이 업체의 가맹점 관리는 단순하고 투명한 데 초점을 둔다. 통상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매달 수입의 몇 %를 로열티로 내지만, 이디야는 이 비용을 어떤 매장이든 월 25만원으로 통일했다.
매출이 얼마인지에 관계없이 정해진 비용만 내기 때문에 매출이 커질수록 가맹점이 가져가는 수익은 더욱 많아진다. 이런 시스템은 가맹점과 본사의 신뢰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가맹점의 충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가맹점주 오동원씨는 "이디야의 월 25만원 로열티는 업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매달 본사에 얼마를 내야 할지 계산 할 필요도,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없다"고 말했다.
이디야는 또, 가맹점 계약 때 가맹점들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계약서 뒷면에 해당 가맹점의 영업 권역을 그려 넣은 지도를 붙이고 확인 도장을 찍는다. 한마디로 '여기는 내 땅'이라는 표시를 확실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가맹점이 내 영역에 침범하는 것 아니냐며 항의하는 식의 분쟁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각종 행사나 마케팅을 하는 경우 일반적으로는 본사와 가맹점이 절반씩 나눠서 부담하지만 이디야는 이 비용을 전액 본사가 부담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주효해 최근 5년간 개점한 500개 넘는 새 매장 중에서 개인 사정 등을 이유로 폐점한 매장은 1%가 되지 않는다고 문 대표가 말했다. 또 지난해 새로 문을 연 213개 매장 중에서 기존 가맹점주가 매장을 더 열거나 가족·친지에게 권해서 오픈한 경우가 100개에 달했다.
문 대표는 동화은행 원년 멤버로 일하다 IMF 때 실직자가 된 경험이 있고, 이후 삼성증권에서 일하다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가맹점이 100호점 안팎에 이른 이디야가 성장의 한계를 느끼고 사업을 매각해 달라고 의뢰하자, 문 대표는 미래 성장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해 이디야를 인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