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추석 달
한밤중 잠을 깨 날짜변경선을 넘기니 추석날이다. 책상머리로 다가가 새벽에 읽을 책으로 조용헌의 ‘봄여름가을겨울’을 골라놓고 시상을 다듬었다 “바다 밑 가시고기 암컷이 알을 슬면 / 수컷은 자리 지켜 앙상히 뼈만 남아 / 살점은 풀어 흩어져 치어들이 먹었다 // 풀밭의 사마귀는 짝짓기 끝낸 후희 / 암놈은 수놈 삼켜 볼록이 채운 뱃속 / 제 새끼 대를 잇도록 영양분이 되었다”
어제 다녀온 양곡에서 진해로 가는 마진터널 옛길을 걸으며 봤던 사마귀를 소재로 삼은 ‘부성애’라는 시조 전문이다. 날이 밝아오면 지기들에게 보낼 아침 시조로 남긴 작품이다. 함께 보내는 사진은 어제 산책 중 찍어둔 배가 볼록했던 그 사마귀다. 남향 창으로 고요와 적막에 깃든 아파트단지로 달빛이 비쳤다. 간밤 초저녁 동녘 하늘에 뜬 열나흘 달은 보름달이 되어 걸려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베란다로 나가 카메라로 이제 갓 자시를 넘긴 계묘년 추석 달을 사진에 담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남에서 서편으로 살짝 비킨 방향이라 서녘으로 가는 달이 중천에 걸려 있었다. 건너편 아파트 창은 대부분 불이 꺼진 채 외벽으로는 달빛이 비쳤다. 방으로 돌아와 한밤중 하늘에 걸린 보름달을 보며 유년기를 거쳐 중년에 이르도록 추석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봤다.
구월 초 선산의 벌초와 성묘를 다녀오면서 고향을 지키는 큰형님과는 추석을 잘 쇠십사는 인사를 나누었다. “객지로 흩어져서 생업에 부대껴도 / 피붙이 살붙이는 설레던 귀성 행렬 / 한가위 차례 앞두고 대가족이 모였다 // 코로나 명절 풍속 이전과 사뭇 달라 /줄어든 대면 접촉 잦아진 영상 통화 / 휘영청 솟아오를 달 기지국도 비출까” 날이 밝기 전 남긴 ‘추석 달’ 전문이다.
연전부터 고향 형님댁에서 설과 추석 아침에 지내던 차례는 줄였다. 돌아가신 부모님 기제를 윗대 조상님과 통합한 시제로 모시니 차례는 자연스레 생략되어도 명절 전후 형제 조카들과 안부를 나눔은 예전과 변함이 없다. 이번 추석에 연휴가 엿새였지만 서울 사는 두 아들네와는 먼 길을 오가는 번거로움은 줄이기로 했다. 서로가 제 위치 각자 건강을 지켜가며 열심히 살자고 했다.
날이 밝아오려면 아직 시간이 꽤 남았는지라 아까 챙겨둔 조용헌의 책을 펼쳤다, 저자는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제 나름 독특한 강호 동양학의 경지를 개척해 가고 있다. 그는 연구실에 갇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학자가 아니라 발품을 팔아 나선 현장에서 영감을 얻어 글쓰기와 강연에 임했다. 사진으로 본 외모는 도인의 모습이 아니었으나 서책에서 도사다운 풍모가 느껴졌다.
조용헌은 나라 안팎에 알려진 기도처는 샅샅이 다녀 바위에 얽힌 내력은 해박했다. 내 고향 의령 남강의 솥바위에 대해서도 ‘세 명의 재벌을 낳은 바위’라고 소개했다. 그 글로 미루어 정암루에 직접 올라가 보고 월촌으로 건너는 정암철교에서 솥바위를 내려다본 듯했다. 나는 십대 학창 시절 소풍 갔던 곳이고 지금도 고향 걸음을 할 때면 의령 관문을 지나면서 바라보는 솥바위다.
아침때가 되어 명절이라고 준비한 나물과 생선으로 식사를 마쳤다. 식사 전후 아들과 형제들에게 안부 전화와 문자가 오가고 지기들에게도 아침 시조를 사진과 같이 넘겼다. 평소는 밖으로 나서는 산책은 자제하고 베란다에 말리는 영지버섯을 갈무리했다. 여름 숲에서 따와 말린 영지는 형제와 지인들에게 보내고 일부는 남겨둔 상태다. 앞으로 인연이 닿는 어딘가로 보내지지 싶다.
점심때가 되어 추석 특식으로 쇠고기를 구워 먹었으나 반주를 곁들이지 않으니 몇 점 먹다 수저를 놓았다. 추석 명절이라고 모처럼 한가로움이 생겨 책상머리에서 보던 책을 침대에 누워 읽다가 스르르 낮잠이 들었다. 짧은 쪽잠이 아닌 낮잠치고는 모처럼 제대로 된 단잠을 자고 깨 머리맡 책을 마저 읽었다. 그 책에서 조용헌은 지리산의 세석평전과 반야봉과 청학동을 누벼 다녔다. 23.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