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3.2.10.금요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480-547) 축일
호세2,16.21-22 루카10,38-42
참된 영적 삶
-경청과 환대, 관상과 활동, 영적우정과 회개-
오늘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축일을 지냅니다.
대구 사수동 베네딕도 수녀원에서는 주보 축일이라 대축일로 지낼 것입니다.
무엇보다 베네딕도 오빠와의 오누이 관계가 신비롭습니다.
산같은 정주의 대가,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이자 유럽의 수호자 성 베네딕도 오빠와의 관계도 참 흥미롭습니다.
이들의 주님 안에서 영적우정은 얼마나 깊고 아름다웠는지 서로의 삶을 참으로 풍요롭게 했을 것입니다.
새롭게 확인한 사실은 생몰生沒연대가 똑같다는 것입니다.
바로 두분이 쌍둥이였고 두분 다 480년 같은 해에 태어나 547년 같은 해에 선종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성녀 사후 얼마 지난 그해에 돌아가셨던 듯 합니다.
그레고리오 대 교황의 베네딕도 전기에 두분의 영적우정(33장)과 성녀의 죽음(34장)이 참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성인의 몬테카시노 수도원 가까이 수녀원에서 살던 쌍둥이 여동생 스콜라스티카 수녀는
일년에 한 번, 오라버지 베네딕도를 만나 영적대화를 나누며 영적우정을 깊이했던 듯 합니다.
죽음을 예감한 성녀는 세상을 떠나던 해, 성인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셨으나 총총히 떠나려는
매몰찬 오라버니가 원망스러워 성녀는 간절히 기도하셨고 갑자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비로 인해
성 베네딕도는 수도원에 못 돌아가고 밤새 대화를 나눴다는 전설적인 내용이 베네딕도 전기 33장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거룩한 남매가 만난 삼일후 성녀는 세상을 떠났고, 이어지는 묘사가 아름다워 34장 대부분 그대로 인용합니다.
‘삼일후에 성인께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누이의 영혼이 육신에서 나와 비둘기의 형상으로
하늘에 신비롭게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분은 그처럼 영광스런 누이의 모습에 기뻐하시면서 찬송과 찬미가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형제들에게 누이의 임종을 알려 주었다.
그분은 즉시 형제들을 보내어 누이의 시신을 수도원에 모셔와서 당신 자신을 위해 마련해 둔 무덤에
안장하게 하셨다.
이렇게 함으로써 두분의 마음이 하느님 안에서 늘 하나였던 것처럼 그들의 육신도 무덤에서까지 갈라져 있지 않았다.’
얼마나 열린 수도생활에 주님 안에서 아름답고 깊은 영적우정을 나눈 오누이 관계였는지요!
지금은 잘 부르지 않지만 33장과 34장을 바탕한 복음전 라틴어 부속가도 참 아름답습니다.
오늘 시간되면 번역된 우리말 부속가를 한번 불러 보려합니다.
이런 성녀 축일을 배려한 오늘 말씀의 배치도 참 적절합니다.
저는 오늘 성녀 축일과 말씀들을 통해 참된 영적 삶의 세부분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경청과 환대, 관상과 활동, 영적우정과 회개입니다.
첫째, 경청과 환대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귀기울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는 경청입니다.
마리아가 주님께 칭찬을 받았던 것은 경청의 환대였습니다.
주님의 우선적인 바램이 바로 경청의 환대였습니다.
주님께서 베타니아 이들의 집에 들리셨을 때 주님의 마음을 알아챈 마리아는 주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환대합니다. 마르타의 항의를 일축하시며 마리아를 두둔하십니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오늘 화답송 후렴, “들어라, 딸아, 보고 네 귀를 기울여라”는 시편 말씀도 흡사 마르타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베네딕도 규칙 첫 마디 역시, “들어라, 내 아들아, 스승의 가르침을. 그리고 그 가르침에
네 마음의 귀를 기울여라.”
'들어라'로 시작되는 규칙서 첫 말마디입니다.
수도원 식탁에도 큰 산봉우리 셋을 배경한 그림의 천에 씌어있는 글자가 “들어라”입니다.
산같은 침묵과 경청의 정주 수도자가 되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묵묵히 침묵중에 바라보며 듣는
정주의 불암산은 말그대로 정주의 스승입니다.
새삼 참된 영적 삶에 경청의 환대가 얼마나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둘째, 관상과 활동입니다.
둘은 참된 영적 삶의 리듬입니다. 둘은 우열관계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관계입니다.
참으로 둘의 균형과 조화가 필수입니다.
그러나 우선적인 것은 관상의 경청입니다. “기도하고 일하라”, 베네딕도회의 모토가 둘간의
우선순위와 균형을 말해 줍니다.
저는 일컬어 목운동의 영성이라 합니다. 기도하고 일하고, 하늘 보고 땅 보고, 하느님 보고 사람 보고,
관상하고 활동하고, 이 우선순위를 절대 바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환대가 우선이고 음식의 환대는 다음입니다. 이래서 미사구조도 말씀전례에 이어 성찬전례입니다.
바로 이점을 마르타는 몰랐습니다.
마르타 역시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지요! 음식접대 사랑을 통해 주님을 환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실 공동체는 마리아 같은 관상가도, 마르타 같은 활동가도 필수입니다.
마리아만 있어도 안되고 마르타만 있어도 안됩니다.
두부류의 형제자매들의 균형과 조화가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둘은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밖으로는 활동가 마르타, 안으로는 관상가 마리아의
두 측면을 지니는 것이 이상적일 것입니다.
다음 주님의 죽비같은 말씀에 마르타는 크게 회개하여 깨닫고 배우며 우선순위를 바로 잡았을 것입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는 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셋째, 영적우정과 회개입니다.
영적우정에 끊임없는 회개는 필수입니다.
삶의 여정은 회개의 여정, 깨달음의 여정, 배움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회개와 더불어, 깨달음과 더불어, 배움과 더불어 마음은 순수해지고 겸손해지고 지혜로워질 것이니,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과의 영적우정도, 보이는 도반 형제들과의 영적우정도 날로 깊어질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호세아서 다음 말씀은 광야 인생 여정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으로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할 덕목들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파트너로, 협력자로 삼아 당신과의 영적우정을 깊이하겠다는 주님 말씀으로 들립니다.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 신의와 자비,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
참으로 우리가 주님과의 사이든지 형제간의 사이든지, 참된 영적우정을 위해 배우고 익혀야 할
필수적 덕목이, 정의와 공정, 신의와 자비, 진실임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의 경책 말씀의 가르침에 마리아는 경청의 중요성을 새롭게 깊이 깨달았을 것이며,
마르타도 활동을 자제하며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경청의 관상에 각별히 유의해야 함을 배웠을 것입니다.
오늘 앞서 소개한 베네딕도와 스콜라스티카의 영적우정은 얼마가 깊고 순수하고 아름다웠는지요!
마리아와 마르타도, 베네딕도와 스콜라스티카도 주님 안에서 수직적 차원에서 주님과의 영적우정을 깊이하며
더불어 상호간 수평적 차원의 우정도 깊이했음이 분명합니다.
참으로 참된 영적 삶을 위해 주님 안에서 주님과의 우정과 더불어 형제간의 우정도 함께 가야 함을 배웁니다.
오늘 우리는 참된 영적 삶을 위한 세요소를 공부했습니다.
경청과 환대, 관상과 활동, 영적우정과 회개입니다.
이런 참된 영적 삶의 중심에 이 거룩한 미사가 있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런 참된 영적 삶을 훈련, 습관화하여 우리 모두 참된 영적 삶을 살게 하십니다.
끝으로 어제 써놓은 참된 영적 삶을 위해 “외딴곳”이란 자작 깨달음의 잠언성 글을 나눕니다.
-“답은
내안에 있다
오늘 지금 여기가
내적초월의 자리 외딴곳이다
언제 어디서나
내적 깊이와 높이의
본질추구의
내적초월의 삶을 살자
주님 만나러
외딴곳 찾아나설 것 없다
언제 어디든
주님과 함께 있으면
초월적 거점의
내적공간이 형성되고
바로
거기가 주님을 만나는 외딴곳이 된다
참 겸손
은총의 열매다”-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