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올해 여러 인물 포스팅을 해왔지만 올해 안에 꼭 한번 포스팅을 하고 싶었던 인물이 있었습니다.
작년 우리나라 그림 최고가 금액을 달성한 '우주' 작품의 주인공 김환기 화백입니다.
김환기 화백에 대해 한번 포스팅을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건 그의 화려한 커리어도 있었지만 그뿐만은 아니었습니다.
워낙 유명 인사라 이미 많은 정보들이 있지만 김환기 화백과 김향안 여사님과 러브스토리는 2000년대 인소를 능가 합니다.
< 프롤로그 >
국내에선 김환기 화백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김환기라는 이름이 기억이 언뜻언뜻 난다면
그의 그림 가격 때문일 겁니다.
여기저기서 떠들썩하게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었죠
작년 이맘때쯤 김마태, 전재금 부부께서 소장하시고 계시던 '우주'를 크리스티 경매에 내놔 종전에 김환기 화백이 가지고 있던 국내 작품 최고가 85억을 갱신해 132억에 낙찰되었습니다.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말이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Universe 5-IV-71 #200) (1971)
작은 화면으로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크게 와닿지
않으실 수 있지만 실제 그림을 보면 그림이 살아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작년 3월에 환기미술관에 다녀올 기회가 있어 다녀왔었는데 전시를 보는 내내 그의 그림뿐만 아니라 그의 스타일에도 눈길이 갔습니다.
미술관에는 본관, 별관, 달관이 있는데 달관에 있는 수향 산방에서 그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비니와 샴브레이 셔츠조합
그림이지만 추측컨데 옥스퍼드 셔츠에 타이에 니트베스트와 뿔테안경의 조합 이 정도면 진리의 조합이네요.
(아쉽게도 촬영이 가능한 부분이 많지 않아 이 정도만...ㅠ)
김환기 화백과 김향안 여사님의 이야기는 한 포스팅으로 이야기하기엔 사실 너무나 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김환기 화백, 김향안 여사 부부
부분 부분 한 사람만의 시점으로 본다면 길지 않을 수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투머치 토커에겐 ^^;;; 숙명과도 같은 부분이라 이렇게 긴포스팅이 되었습니다. ㅎㅎ
하지만 자신 있게 이번 포스팅 한번 보신다면?
어디 가서 김환기 화백의 삶에 대해선 아는 척 정도는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도록 글을 썼습니다.
두 분의 서사시인 사랑 이야기 + 스타일 이야기를
이제 본격적으로 ~?! 시작해보겠습니다 ~!
<1장> 이상과 변동림 그리고 김환기와 향안.
갑자기 왜 이상 시인 이야기를 하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뭐 아실 분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김향안 여사의 전 남편 천재 시인 '이상'입니다.
( 좌 : 이상 / 중 : 박태원 / 우 : 김소운 )
(1920~30년대를 대표하던 모던보이 스타일 3인방)
이상의 아내였던 김향안 여사의 본명은 변동림입니다.
(이름이 김향안으로 바뀐 이유도 아주 로맨틱? 합니다. 그이야기는 잠시후 ~! 공개 ~!)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 시인이 일본으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 시인이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상의 초상 _ 구본웅 작품
슬픔으로 시간을 보내오던 변동림은 무명화가 김환기를
소개받습니다. 그런데 김환기는 이미 딸을 셋이나 둔 남자였기에 변동림이 마음에 들었지만 적극적인 구애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변동림은 재혼을 결심하는데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고 합니다.
지금 시대에도 이런 상황이라면 집안의 반대가 심할 텐데 이 반대를 무릅쓰고 가족과의 연을 끊고 김환기와 재혼을 합니다.
김환기의 성을 따라 김으로 바꾸고 김환기의 아호인
향안을 이름으로 개명하게 됩니다.
정말 대단한 사랑이라 할 수 있겠죠?
김환기 화백과 김향안 여사 결혼사진
<2장> 김환기의 영혼의 뮤즈 김향안
김환기 화백의 커리어는 정말 화려합니다.
* 14회의 국내외 개인 전시전
* 서울대 미술대학교수
* 홍대 미술학부 교수 / 학장
* 한국 미술협회 이사장 역임
등... 단순히 그림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커리어 또한
탄탄했던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기반은 그의 아내이자 뮤즈
김향안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대표적인 일화가 있는데 두 분의 대화 내용입니다.
김환기 : "도대체 내 예술이 어디(세계 수준)에 위치해 있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김향안 : "나가 봐!."김환기 : "어떻게?."김향안 : "내가 먼저 나가 볼게." 월하의 마음 중에서
김환기 : "도대체 내 예술이 어디(세계 수준)에 위치해 있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김향안 : "나가 봐!."
김환기 : "어떻게?."
김향안 : "내가 먼저 나가 볼게."
월하의 마음 중에서
김향안 여사는 프랑스로 나가고 싶어 했던 김환기를 위해
불어를 공부하고 먼저 프랑스로 떠나 기반을 다지고 미술에 관련된 책과 기사를 읽으며
김환기에게 번역을 하여 타이핑해 주고 공식 석상에선 통역사의 역할까지 해주었다고 합니다.
프랑스 시절의 사진들을 한번 살펴볼까요?
김환기 화백과 김향안 여사
김환기 부부와 나희균 프랑스 베즐레 앞.
이거시 파리지앵 파리지앵~!!!!
싱글 코트 스타일이며 살짝 여유 있는 스타일의 슈트핏
지금도 소화하기 힘든 베레모 스타일까지 ...
<3장> 뉴욕에서의 삶 그리고 마지막 불꽃
이후 국내외를 오가며 활동하던 김환기는 63년도에 참가한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회화 부분 명예상을 받지만 대상을 받은 아돌프 고틀리브의 작품을 보고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뉴욕으로 떠나길 마음먹습니다.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한 김환기
이번엔 혼자 먼저 작가로서 새로운 도전을 선택해 뉴욕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기다리는 동안 아내에게 부지런히 편지를 쓰고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위 책이 김향안 여사님을 기다리며 쓰고 그린 작품입니다.
뉴욕에 머무는 동안 김환기 화백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 시기에 탄생한 것이 점면화 작품들입니다. 대표작이 아래의 작품입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환기 작.
뉴욕 시절의 사진들을 보면 확실히 몇 가지 좋아하는 아이템이
확고하셨던 거 같은데 하나는 안경이고 하나는 모자였던 거 같습니다.
사진 보면 안경이 같은 거 같은데 오묘하게 다른 걸 보면
안경도 엄청 좋아하셨던 걸로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뉴욕에서 10년여간의 생활을 하며 목 디스크가 심해진 김환기 화백은 뉴욕 유나이티드 병원에 입원합니다.
수술을 앞둔 김환기 화백은 병상에서 '어서 내일이 오기를 기다린다'라고 일기에 썼는데 그것이 마지막 일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딱 62세였으며 김향안 여사와 30년이 된 해였다고 합니다.
<에필로그> 수화의 집 환기미술관 그리고 소감.
김환기 화백이 떠난 뒤 김향안 여사님께서 세계 곳곳에 알리고 전시하다 마지막에 기증을 생각했다가 남의 집에 수화의 그림을 전시할 것이 아니라 수화의 집,
우리 집에 전시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설립된 곳 이 환기미술관입니다.
우리나라 사설 개인 기념 미술관으로는 최초입니다.
미술관에서 김환기 화백에 대한 사랑을 미술관 곳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환기미술관 - 본관
이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느꼈던 감정은 참 따뜻했습니다.
포스팅을 하면서 이런저런 인물들을 이야기할 때 멋지고
쿨한데?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작성하면서 수없이 지우고 쓰고를 수없이 반복해 지금의 결과물이 나왔는데 포스팅을 봐주시는 분들께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느꼈던 그 따뜻함이 조금이나마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출처] 김환기 화백, 김향안 여사의 사랑+스타일 이야기.|작성자 모스콧
뉴욕시립 공원묘지에 있는 수화 김환기 화백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