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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업장 소멸과 공덕 쌓는 일곱 가지 [七支供養]
만약 복과 덕이 없으면 물기가 없는 씨앗과도 같아 싹을 틔울 수 없으니, 마땅히 공덕을 쌓고 업장을 소멸하게 하는 아래의 일곱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
1. 절하기
절은 비유하자면 밭을 개간하는 것과 같다. 불모지대에서 밭을 만들려면 나무뿌리, 자갈들과 바위같은 것을 골라낸 후 씨앗을 뿌리듯이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마음밭을 개간 하여 좋은 밭으로 만드는 가장 빠르고 좋은 길은 절을 하는 것이다.
기초수행으로 십만 배 절을 하는 수행이 있는데 숫자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기초가 닦이지 않은 상태에서 공덕을 쌓기 위한 방편이니, 십만 번을 한 후에도 절 수행은 끊임없이 해야 하는 수행으로 꼽힌다.
여유 있고 시간이 있을 때에 자주 절하는 것이 좋고, 그저 길을 갈 때에도 불상이나 탑을 보고서 절을 올리는 마음으로 합장을 한다면 이 또한 절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실천하는 방법을 안다면 자신의 모든 움직임이 절 수행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할 때 공덕은 계속 쌓여 큰 복을 받게 될 것이다.
2. 공양물 올리기
우리는 수확이 좋은 논밭에 일년만이라도 씨를 뿌리지 않고 놀리면 무척 아깝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그리 아까운 일이 아니다.
복전에 공양 올려 공덕의 씨앗을 뿌리지 못하는 것이 그보다 백천만 배나 아까운 일이다.
적어도 다음 생까지 생각하는 마음동기도 갖지 않고 공양을 올리면 이는 수행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비록 마음이 그에 완전하게 미치지 못하더라도, 복전에 계신 모든 불보살들에게 공양 올렸을 때 어느 정도의 공덕은 쌓을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좋은 논밭이지만 뿌린 씨가 썩 좋지 않고 뿌리는 방법도 완전하지 않을 때, 논밭이 워낙 좋기 때문에 열매가 열리는 것처럼, 복전福田 이라는 공양의 대상도 이와 같다.
공양물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향이나 꽃·초·공양수·과일·떡 등 물질적인 것을 올리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배워서 충분히 실천하여 남에게도 가르치며 봉사하는 모든 비물질적인 행위 그 자체를 말하며, 나아가 자기 마음으로 이 우주의 좋은 것이나 귀한 것을 만들어 올리는 것 또한 거룩한 공양물이 된다.
물질적인 공양물을 올릴 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나 명예 등으로 상을 내어 한다면, 이는 공양물을 올려서 오히려 망치는 일이니 올리지 않는 것만 못하다.
불보살들에게 올리는 최고의 공양물은 십계 등의 모든 계율을 잘 지키는 일인데, 계율은 잘 지키지 않으면서 공양물만 가득 올린다면, 불보살들은 재물을 탐내는 분들이 아니기 때문에 기뻐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3. 참회하기
우리가 마음에 깨우침이나 공덕이 생기지 않고, 비록 생기더라도 사그라 들게 되는 것은 모두가 업장 때문이며, 이번 생에 나쁜 일들이 생기는 것 또한 과거 생과 이번 생을 살면서 지은 죄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원하지 않는다면 지은 죄를 참회해야만 하는데 참회를 하게 되면 크나큰 죄도 소멸할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큰 죄를 지어도 그 과보가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은 작은 죄를 지어도 그 과보가 무겁다고 하는 것은 바로 참회할 줄을 알고 모르는 데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999명의 목숨을 빼앗은 ‘앙굴리말라’ 나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왕권을 차지했던 ‘아사세(阿?世)’ 왕 등은 크나큰 죄를 지었지만, 간절한 참회를 통해서 그들의 죄를 소멸시킬 수 있었다. 후에 ‘앙굴리말라’는 아라한의 경지에 올랐으며, ‘아사세’ 왕은 제1차 결집의 대후원자로 나서기도 했다.
이렇듯 확고한 대참회를 하게 되면 그가 지은 모든 죄업을 완전하게 소멸시킬 수 있으며, 만약 중간 정도로 참회를 하면 죄가 가벼워지고, 약하게 참회해도 죄과가 더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만약 참회하지 않는다면, 날마다 그 죄과는 두 배로 늘어나게 되어, 나중에는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만큼 큰 죄가 된다.
예를 들면 모기 한 마리를 죽이고서 즉시 참회하지 않고, 보름 정도 지나면 모기 16,384마리를 죽인 죄나 다름없으며, 이는 사람 한 명을 죽인 죄와 같아질 수 있다.
누군가 참회할 마음도 없고, 그런 죄를 짓는 데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인과를 믿지 않기 때문인데, 수행하는 자라면 비록 작은 죄라도 금해야 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잘 살펴보면, 일어나서부터 잠잘 때까지 마음과 말 등으로 남을 화나게 하고 교만을 부리거나 욕을 하는 등의 죄를 짓고 있으며, 죄 짓는 과정도 알 수가 있다. 더욱이 십계나 보살계 등을 받은 사람이라면, 하루에 얼마나 죄를 많이 짓고 파계하는지를 살펴야 하는데 그 실상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이는 안타까울 만큼 죄업이 많고 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날에 지은 죄는 아까워 말고 그날 바로 참회해야 하다. 다른 수행을 많이 하지 못하더라도 참회만 잘 하면서 일생을 보내면 이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보낸 것이 될 것이다.
이번 생이나 다음 생의 모든 고통의 근원인 죄를 참회하게 되면 고통이 사라지고 깨우침이 저절로 일어난다. 이번 생에 병에 걸려서 아플 때, 그 아픔의 원인 또한 지은 죄업 때문이다,
이런 경우 약을 먹거나 기도를 해서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만, 만약 그 죄가 여전히 남아 있다면 그 과보는 반드시 다음 생에 다시 받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참회하는 것만이 지은 죄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가장 확실한 명약이다.
어떤 경우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나, 효험이 없다고 해서 억지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밭에 콩을 심고서 후에 콩이 열매를 맺자, 마음이 변해 보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그 위에 다시 보리씨를 뿌린다고 해서 보리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지은 죄는 반드시 그 결과를 받아야만 한다. 따라서 열매가 열리기 전에 그 처음 씨앗을 없애고 필요한 다른 씨앗을 뿌리듯이 지은 죄를 가능하면 빨리 참회해야 한다.
죄의 과보로 다음 생에 지옥 등 삼악도에 떨어져야 되는 것을 이번 생의 참회를 통해 그 죄를 가볍게 할 수가 있으며, 이번 생에 병이 나서 아픈 것은 다음 생에 지옥에 가야 하는 큰 과보 대신에 몸이 아픈 것으로 가볍게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아픔이 업장을 소멸케 하는 것인 줄 알게 되면 진정한 참회가 될 것이다.
수행이나 좋은 일을 하면서도 이번 생에 좋지 않은 일들이 많이 생기는 경우도 간혹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다음 생에 받아야 할 무거운 과보를 이번 생에 앞당겨서 받는 것이니, 이는 그 수행자에게 아주 좋은 징조이다. 이번 생에 어떤 사람이 재산을 잃고 사기 당하고 도둑맞는 것도, 다음 생에 아귀로 태어날 과보를 이번 생에 앞당겨서 받는 경우이다.
참회하는 공덕은 화냄을 사그라들게 하는 것과, 그 죄업이 소멸되는 두 가지의 큰 이득이 있다. 그러므로 참회하기 위해서는 ‘죄업을 소멸 하는 네 가지 힘[四對治力]’을 길러야 한다.
*죄업을 소멸하는 네 가지 힘[四對治力]
①첫째, 참회할 대상을 아는 힘이다. 이는 우리가 죄를 짓게 되는 대상은 부처님과 중생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참회하는 대상으로 삼아야 함을 말한다.
②둘째, 자기가 쌓아온 죄를 알고 진절머리 치면서 후회하는 힘이다. 이런 마음이 생기면 다음에 죄를 다시 짓지 않겠다는 마음도 저절로 생긴다.
세 명이 독이 들어있는 음식을 같이 먹었으나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을 죽어가고 있으며, 나머지 한 사람은 증세가 없는 경우, 증세가 없는 사람은 비록 증세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크게 후회하면서 그 독약을 뽑아내는 데 온갖 방법을 다 찾을 것이며, 다음에 이런 음식을 절대로 먹지 않겠다고 결심할 것이다. 이렇게 독약을 먹은 경우처럼 중생들은 예전에 같은 죄를 지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벌써 지옥에 태어났고, 어떤 사람들은 탐욕·화냄·어리석음 등 번뇌의 삼독으로 괴로워하며 지옥에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의 업장도 이러한 죄와 별다른 차이가 없기에 후회하고 참회하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이 저절로 생긴다.
③셋째, 죄를 다시는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힘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참회하는 이득을 알고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확고하게 결심해야 한다. 일례로 우리가 남을 해치지 않겠다고 말만 하고 전혀 결심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다시 거짓말하는 죄까지 짓게 된다.
그렇다고 거짓말 하는 죄까지 지을까 두려워 확고한 결심을 하지 않으면, 진정한 참회는 이루어질 수 없다.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이라면 지키고, 그렇지 못하면 일년 혹은 한달 또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면 단 하루라도 죄를 짓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④넷째, 치료제가 되는 행을 하는 힘이다. 전에 죄를 지은 것을 후회하는 마음으로 완전하게 소멸되게 하는 방법은 주로 여섯 가지를 든다. 여래의 명호를 부르거나, 진언을 외우고, 경을 읽으며, 공성(空性)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공양물을 올리며, 불상 조성 등 불사하는 것들을 말한다.
진정한 참회를 위해서는 이러한 네 가지 힘인 사대치력을 반드시 갖추어야 하며, 절 등을 할 때에 참회하는 마음동기를 잘 지니고 서른다섯 분 참회불의 명호를 부르면서 절하는 것도 깊은 참회의 방법이 된다.
4. 수희(隨喜-함께 기뻐) 하기
수희는 단순하게 남의 행함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보석을 찾았을 때 아버지가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것과 같은 마음을 말한다.
이 행은 주로 보살들이 실천하는 것으로서 일반인들은 실천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것을 잘 행하면 공덕을 쌓는 데에 이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쫑카빠’ 대사께서는 몸을 움직이거나 말을 하지 않더라도, 편안하게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것이 수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한 일화를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쎄겔’ 이라는 왕이 석가모니 부처님과 성문들에게 대중공양을 크게 올렸는데 그 때 거지 ‘데빠’ 가 그것을 보고는 마음속 깊이, ‘이는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이렇게 많은 수행자들에게 공덕을 쌓는구나! 하고 질투 없는 진실한 마음으로 수희했다.
그 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공양 올린 왕에게,
“이번 공양에 대하여 누구의 이름으로 축원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왕은 본인이 공양을 올렸으므로 당연히 가장 큰 공덕을 쌓았을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가장 큰 공덕을 쌓은 사람의 이름으로 축원해 주십시오!” 하고 말씀 올렸다. 그러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거지 ‘데빠’ 의 이름으로 축원해 주셨다.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그 이유를 묻자, 부처님께서는 ‘데빠’ 가 전혀 질투심 없이 수희했으므로 그 공덕이 가장 크다고 말씀하셨다.
한편 왕은 석가모니 부처님께 자기처럼 왕으로 살면서 수행할 수 있는 방편은 무엇이냐고 여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수희하기, 보리심을 일으키기, 회향하기, 이 세 가지를 권하면서 덧붙이시기를, 질투하거나 비교하는 마음 없이 수희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공덕을 쌓는데도 이를 보고 수행하는 체한다거나 무슨 공덕이 있겠느냐며 질투심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어리석은 일이다.
만약 주변에서 수행하며 공덕 쌓는 것을 볼 때마다 늘 수희(함께 기뻐)하면 자기보다 공덕이 낮은 대상이라면 그 공덕은 두 배가 되고, 자기와 비슷한 대상이라면 비슷한 공덕이 되며, 자기보다 높은 대상이라면 그 공덕의 반을 쌓게 되므로 큰 이득이 아닐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절하거나 공양을 올리거나 선정을 닦거나 공부하며 봉사하는 등 많은 행을 볼 때마다 이에 대하여 진실로 수희하여야 한다.
이처럼 수희함이 공덕을 쌓는 이유는 남의 공덕을 질투하지 않고, 타인의 공덕을 자신이 하는 것처럼 진심으로 기뻐하기 때문이다고 ‘쫑카빠’ 대사께서는 말씀하셨다.
한편 불보살들이 전에 수행하였던 것을 지금 우리가 사유하여 수희한다면 십분의 일의 공덕을 쌓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평생을 통해 공덕 쌓는 일에 노력한다 해도 불보살들이 하루 동안 쌓은 공덕의 일부분에도 미칠 수가 없다.
그러나 수희하게 되면 큰 공덕을 쌓게 된다고 하니, 이는 공덕을 쌓는 중요한 방편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수희’를 사유하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기가 쌓아온 공덕을 수희하는 것과 남이 쌓는 공덕을 수희하는 것이다.
①첫째, 자기가 쌓아온 공덕을 수희하는 것에도 전생에 쌓았던 공덕을 살펴서 수희하는 것과 이번 생에 쌓고 있는 공덕을 수희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있다.
* 지금 좋은 생으로 태어난 것과 정법을 닦는 조건들을 갖춘 것은 전생에 자신이 계를 잘 지키고 보시·인욕·선정 등을 매우 중히 여겨 바르게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생에 쌓았던 공덕을 수희해야 한다.
* 이번 생에 스스로 기도하거나 보시 공양을 올리며 법문을 듣고 관상하며 계를 지키는 등을 행할 때, 교만하지 않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교만하면 공덕은 오히려 줄어든다.
우리는 금전적인 계산에만 관심이 많은데, 금전이 아무리 늘어날지라도 그것은 이번 생에만 주어지는 작은 행복일 뿐이다.
그렇지만 수희한 공덕을 계산하면 다음 생에 귀한 몸을 얻는 것에서부터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큰 도움이 된다.
죄를 지으면 지옥과 같은 삼악도에 떨어지게 되므로, 진실로 계산을 잘하고 싶으면 이런 것에 대한 계산을 잘해야 한다.
②둘째, 남이 쌓는 공덕을 수희한다함은 원수가 공덕을 쌓을 때와 좋아하는 이가 공덕을 쌓을 때, 그도 저도 아닌 이가 공덕을 쌓을 때의 세 가지를 수희하는 것이다.
또 불보살들의 생애를 읽고 그 분들이 한 것을 수희하면 자신에게 새로운 공덕이 생기게 되고, 자신이 공덕을 쌓은 것을 수희하면 공덕을 늘리는 것이 된다.
예전에 ‘궁탕’이라는 스승이 “누워서도 공덕을 쌓고 싶으면 수희하라.” 고 말한 것처럼, 우리도 마음동기만 바르다면 언제 어디서나 수희함으로써 큰 공덕을 쌓고 늘릴 수 있게 된다.
5. 부처님께 법륜 굴려 주시기를 권청(勸請)하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49일 동안 법륜을 굴리지 않으셨지만, 천상의 신 인드라와 브라만들이 부처님께 법륜을 굴려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한 요청 때문에 처음 다섯 비구에게 ‘사성제’를 설하신 것이니, 우리도 법을 청했던 브라만처럼 시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께 마음으로 법을 청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는 관상했던 ‘촉싱 [복전, 福田]’에 있는 부처님들께 끊임없이 법륜을 굴려달라고 마음으로 청해야 한다.
법계에 지금도 깨닫고 계신 부처님들께서 많이 계실 것이니, 우리가 비록 그것을 알지 못할지라도 항상 법륜을 굴려주실 것을 마음으로 청하면 큰 이득이 될 것이며,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큰 손해가 될 것이다.
6. 부처님께 오래도록 열반에 드시지 말 것을 권청하기
중생이 근기에 맞게 불법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응신(應身)으로서 우리 앞에 지금 나타나 계시는 부처님들께 열반에 드시지 말고 계속 가르침을 펴 달라고 권청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직전 아난다에게,
“여래는 사무소외(四無所畏)와 사신족(四神足)에 의지하여 금강과 같은 몸을 얻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몇 겁보다 더 많이 살 수 있다.”라고 하셨으나, 아난다는 마왕의 현혹으로 인해 그 뜻을 알지 못하여 부처님께 열반에 드시지 말라는 권청을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마왕이 부처님을 찾아 뵙고 열반에 드셔달라고 요청하였을 때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어찌할까를 물었다.
아난다는 마왕의 ‘현혹된 축복’으로 귀머거리 상태였다.
그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여 궁금했으나, 부처님께서는 늘 좋은 말씀만 하셨으니 지금도 그와 같을 거라고 여기고 그저 고개를 끄덕여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이 좋다는 의사를 표하게 되었다.
후에 아난다가 마법에 풀려 깊은 관상에 든 후에야 부처님의 물음이 무엇이었는지 뒤늦게야 깨닫고 부처님께 열반에 드시지 말아 달라고 다시 권청을 올렸지만, 이미 마왕의 부탁을 받아들이셨으므로 약속은 약속이니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시고는 82세에 열반에 드셨다.
우리는 이것을 항상 명심하고 부처님들께 법륜을 굴려 설법 해달라고 권청을 올리는 것과 오래도록 열반에 드시지 말아 달라고 권청하면서, 그 분들도 기꺼이 수락함을 관상해야 한다.
7. 회향(廻向)하기
수행을 시작하기 전의 마음동기와 마칠 때의 회향, 이 두 가지는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 된다. 회향은 쌓은 공덕이 없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자, 일체중생을 위해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회향할 때는 의지함이 없이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공(空)을 바탕으로 하여, 방편과 지혜를 마음에 함께 만들어서 회향해야 한다.
우리가 실천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실천하고자 한다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회향하신 덕분에 가르침이 풍부하게 있음을 새겨야 하며, 사리자가 지혜 제일이 된 것도 이러한 회향의 힘임을 알아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해서 사리자가 지혜 제일인지를 여쭙자 부처님께서는,
“사리자는 어느 전생에 여자로 태어났는데 그 오라버니가 출가자였다. 그 오라버니에게 어울리는 가사를 만든 사리자는 바느질하는 동안, 바늘처럼 날카로운 지혜와 실처럼 걸림 없는 능통한 자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회향했기 때문에 이번 생에서 지혜 제일의 사리자로 태어난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떤 수행을 하거나 공덕을 쌓고 봉사하면서 기도 관상하는 것들이 크게 진전이 있고 없는 것도 회향하는 자세에 달려 있다.
회향을 잘못하게 되면, 수행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나 몸을 받고 태어나는 원인이 된다. 기도하고 회향할 때에도 이번 생을 위해서만 회향하거나 다른 사람이 나쁘게 되면 좋겠다는 식으로 회향하면 당연히 자신이 그 나쁜 과보를 받게 된다.
회향하지 않으면 쌓았던 공덕이 화내는 마음으로 모두 다 타버린다. 자기보다 더 많이 깨우친 사람에게 화를 내게 되면 백 겁 동안 쌓아둔 공덕이 타버리게 된다고 한다.
화내는 마음으로 공덕을 태우지 않게 하는 방법은 회향하는 것이다.
일체중생이 바른 스승을 만나기 위해서, 일체중생들에게 보리심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일체중생이 사바세계에서 벗어나게 하도록 회향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일체중생들이 바른 스승을 만날 때까지, 일체 중생들에게 보리심이 일어날 때까지, 일체중생이 사바세계에서 벗어날 때까지 우리가 쌓은 공덕이 남아 있게 된다. ‘물 한 방울 바다에 떨어뜨리면 바닷물이 다 마를 때까지 그 물 한 방울이 남아 있다.’ 고 대장경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우리도 타인을 위해서 이와 같이 회향해야한다.
이렇게 위에서 설명한 대로 칠지공양(七支供養)을 행한다면, 절을 올림으로써 교만이 없어지고, 공양물을 올림으로써 아까워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참회함으로써 삼독(三毒)을 없애고, 수희함으로써 질투심이 없어지며, 법륜을 굴려달라고 권청함으로써 정법에 대하여 쌓았던 죄를 소멸한다.
열반에 들지 말아 달라고 권청함으로써 스승들에게 지은 죄를 소멸하며, 회향함으로써 화내는 마음의 치료제로 삼아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한편 절을 올리면 부처님의 살상투와 같은 삼십이상이 생기고, 공양물을 올리면 물질적인 부와 수행적인 부를 얻게 된다.
참회하면 번뇌장(煩惱障) 과 소지장(所知障)을 닦게 되고, 수희하면 누가 보아도 빠짐없는 완벽한 몸을 얻게 된다.
법륜을 굴려달라고 권청하면 감미로운 목소리를 얻게 되며, 열반에 드시지 말라고 권청하면 장수할 뿐 아니라 금강신(金剛身)을 얻게 된다. 또 회향함으로써 부처님의 모든 공덕들을 얻게 되는 이득이 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나무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