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밝은 낮이다. 점점 여름이 가까워 오는지라 날은 더워지고, 사람들의 옷감도 점점 얇아지고 있었다.
어느덧 녹음으로 변하는 한씨의 집. 봄에는 꽃이 만발하더니, 어느덧 그 집을 덮는것은 짙은 녹색이다.
"어인일인고. 이제야 여자 치마폭이 지겨워진게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강희의 표정이 꽤나 좋아보였다. 지향이 궁으로 간 뒤 참으로 오랫만에 지어보는
웃음이다. 그는 빨리 자신의 가문이 크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무촌강씨. 그들은
행여나 절대권력의 자리에서 비켜나갈라 전력을 다해 한비나, 상장군을 위협하고 있었고. 의외로
장기전으로 이어질 것만 같아. 고민이 많았다.
헌데, 그런 가운데 ..
"참으로 오랫만에 이 애비를 기쁘게 해주는구나. 그래, 무관쪽은 이 애비가 꽉 잡고 있으니
너는 무과만 보면 된다."
웃음이 지어지지 않을 리 없었다. 내심 포기하고 있었던 자신의 아들이 열 아홉 여름이 되자
드디어 정신을 차린 듯. 한씨의 가문 내력에 따라 무과를 보겠다며 아비에게 고한 것이다.
"지금껏 너무 어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운우의 쾌락에만 취하여 가문과 부모를 잊은채
살아왔던 나날들이 깊은곳에서 후회가 되옵니다."
싱긋 웃어보이는 무현. 여전이 예쁜 웃음이지만 전처럼 가볍운 맛이 보이지 않는것이 확실히
철이 들어보이기는 한다. 치장하기위해 항시 발랐던 은은한 향료도 느껴지지 않고.
정갈한 자세로 앉아 있는것이 어디 하나 한강희의 마음에 들지 않는것이 없었다.
'후후, 제 친애비를 따라가는것이 아닌가.. 어린시절의 총기가 사라진것이 아닌가. 수없이 고민
했거늘.. 이제야 내게 보람을 안겨 주는구나.'
무언가 의미심장한 웃음이다.
"그래, 무현아. 그럼 오늘부터 내 선생을 붙여주마. 왕께도 아뢰고. 한비마마에게도 전하여
백방으로 손을 쓸것이니. 무과라... 참으로 잘 선택하였느니. 너는 국자감에 있을때부터 활
솜씨나. 말타는것이 예사롭지 않았느니라."
"그저 아버님이 제 아버님이니 그리 보셨을 게지요."
"아니다. 너는 타고 난것이 장군이니라. 어릴때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남다른것을 내 다 알아
보았지. 하하, 그래 무현아. 아비의 술을 받아라."
한강희는 아들의 모습을 기특한듯 바라보았다. 그러다 안주상에 올려진 하얀빛 사기로 만들어진
술주전자를 들었고. 무현은 공손하게 잔을들어 따라지는 술을 받았다.
"오랫만에 부자가 같이 앉아 술을 마시는군요."
한층 기분좋은 목소리다. 하녀와 함께 한강희를 찾아다니던 최씨부인이 뒷뜰 연못 누각에 앉아
오랫만에 친한듯 서로 시간을 보내는 아들과 남편을 보고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었다.
푸른빛 옷을입고 장미향을 연신 풍기는 그녀는 자신을 향해 까닥 인사를 해보이는 아들을 보다
다시 남편에게 시선을 돌렸다.
"둘의 놀음에 내가 방해가 된게요?"
"아닐세. 헌데 어인일로 이곳까지 오셨는가."
"대감과 의논할게 있소."
"무현이가 들어선 안되는 것이오?"
"아니.. 꼭 그렇다기 보다는. 궁에 계시는 한비마마께 서신이 한통 왔는데.."
한비마마라는 이야기에 아무런 관심없이 화과를 집어먹던 무현의 눈초리가 사뭇 진지해졌다.
한강희는 시원스래 들고있던 술잔의 술을 모두 비웠고 최씨부인에게 손짓했다.
"들고와 보시오. 어찌 지내는지 내 통 가본지를 못한지라.."
최씨부인은 소매속에 넣어두었던 붉은 비단으로 쌓여진 서신을 자신의 하녀에게 건내었다.
짧은 다리를 건너는 하녀. 누각위에 올려만 두고는 다시 최씨부인에게로 돌아오고. 무현은
자신의 아버지가 들어올려 읽어 내려가는 그 서신에 지나칠만큼 집중했다.
"아버님, 한비마마께서 무어라 하십니까."
곧 한강희는 다 읽었다는듯 다시 바닥에 내려두었고. 마저 들던 화과를 집어먹었다.
그가 아무 말이 없자. 무현은 궁금함을 참지 못해 물었고. 대수롭지 않다는듯 한강희가 말했다
"자신을 괴롭히는 못된 쥐가 있으니 강한 쥐약을 보내달라는구나."
"이상하지요 대감? 궁에는 없을것이 없을것인데 어찌하여 쥐약을 보내달라 하는지.. 혹여
다른 뜻이 있을까. 대감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때 최씨부인이 그의 말을 이어 받았고. 장미향을 풍기며 그들이 있는 연못누각쪽으로 더욱 가까이
걸었다.
"...오호... 그러고보니 .. "
이제야 서신이 어딘가가 이상함을 눈치를 챈것인지 한강희는 다시 서신을 들어 읽어내렸고.
한참이나 무엇을 곰곰히 생각하던 무현이 약간 굳은 얼굴로 서신을 바라봤다.
쥐약이라.. 쥐약.. 자신을 괴롭히는 쥐..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새삼 무현은
한비의 간악한 생각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다 궁안에서 그녀를 괴롭히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이 들자 급히 걱정되는 그다. 물론 그것이 강비라는것을 그도 알고는 있지만.
"무현아. 너의 생각은 어떻느냐."
2
여름의 전장은 지옥과도 다를것이 없다. 조금만 잘못관리하면 음식은 썩어나고, 사람의 상처는
진액을 뿜으며 곪아온다. 더위는 하늘을 찌르고 입고있는 갑옷은 너무도 덥다. 그저 고향의 생각만이
간절하고 간절한진데,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않고. 점점 사기는 떨어지고만 있다.
"보초를 서지않고 무엇을 하는게냐!!"
순찰을 돌던 장사 김흥문이 쓰러지듯 누워있는 병사를 일으켜 새우며 군기를 잡았다. 하지만 이미
그 병사의 눈을 풀려있고. 언뜻보아도 깊은 병에 든것이 틀림없다.
힘아리없는 보초병을 다시 내려둔 김장사. 거친목소리로 말한다.
"점점 상황이 궁해져가고있소. 헌데 대왕께서 아무런 확답을 주지 않으시니 이 어인 일이란 말이오."
"천하 절색을 소후로 들이셨다는데. 치마폭에나 빠져 계시지 않는지 걱정이오."
장무장군 한흥복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또한 꾀죄죄한 몰골로 엄청난 더위에 땀을 연신 흐르고 있었고.
두 눈가는 충혈되어있는 붉은 선혈자국이 가득하다.
"약로마마께서도 절도사와 씨름만 하시고. 여진놈들은 점점 규합하여 규모가 커지질 않나.
걱정이오.. 내 걱정이오."
두 장군의 낮은 탄식. 피곤한 눈을 한 그들은 자연스럽게 막사 정 중앙에 있는 화려하고 금빛 깃발이
펄럭이는 천막을 바라보았다.
- 약로왕자의 막사
"내 그대의 얼굴은 보기싫다 일전에 말했을탠데. 그대는 나의 말이 말같지가 않단말인가"
차분하고 고고한 목소리다. 화가 절제되어있는 차가운 목소리는 흡사 건무왕을 연상시켰지만 건무왕이
표정의 변화가 없다면. 약로는 얼굴에서부터 화가난 태가 나는 사람이다. 형을 빼어닮은 매력적인
흑안으로 절도사 강재준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약로. 그런 그의 태도에도 강재준은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않는다는듯 오히려 평온한 얼굴이다.
"대해국의 백성들은 건무왕을 왕으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나라를 치고 내려오려는 여진족
들에게서 대해국을 지키는것은 오직 마마뿐이옵니다. 마마야말로 이 나라의 진정한 대왕이십니다.
어찌 그것을 부정하신단 말입니까."
"나를 속이려 들지 말라. 나의 눈에는 네놈들의 더러운 사리사욕이 보인다. 역겨운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내려있는 너희들의 야욕이 나의 눈엔 보인단 말이다!"
- 챙
칼을 빼는 소리가 들린다. 은빛 서늘한 건무왕에게서 하사받은 약로의 대도가 번쩍인다.
그의 칼은 굳은 표정의 강무천에게로 향해있고. 서늘한 칼이 자신의 목을 겨냥해도 그는 오직
고고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왕은 마마가 되어야하옵니다. 대왕은 허구언날 소후 한비의 처소에만 들락거린다고 합니다
마마는 천하 절색인 여우같은 계집보다도 뒷전입니다. 변방을 지키시는 마마를 뒷전으로 함은
대왕께서 백성을 뒤로한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강재준이 목청을 높혔다. 자신감에 가득찬 눈. 약로는 그런 그를 더욱더 표독스럽게 바라 볼 수밖에 없다.
왕의 형제인 그가. 태자의 숙부인 그가. 전장상황이 궁핍하단 이유로 세도가의 사병에 협박을
받고 있는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는것을 둘째치고 심상치않은 이들의 태도가
약로의 머릿속을 압박했다.
-스윽
약로는 칼을 거두었다. 은빛의 칼집이 서늘한 칼날을 먹었고. 차가운 눈으로 강재준을 바라보는 약로.
그의 표정이 좋지 않다.
"마마께서는 억울하시지도 않으시단 말이옵니까? 이리 힘들게 저들과 대치하여 싸우시는데
대왕께선 아무런 대답도 없으십니다. 어찌 그런 무책임한 행동에 대왕이라는 칭호를 쓸 수
있단 말이옵니까. 약로마마. 저희를 위해서라도. 우리 대해국의 백성을 위해서라도 왕이
되십시오. 건무왕을 몰아내십시오!! 수십의 병졸들이 쓰러져가고 있는데 수도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없습니다!! 이 어찌 대왕의 덕이라 할 수 있단말입니까!!"
열변. 정확히는 궤변을 늘어놓는 그 앞에서 약로는 심신이 더욱더 피곤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말도 틀린말은 아니었다. 건무왕은 무슨 꿍꿍이가 있는것인지 아무런 답을 주지 않는다. 사정없이
서신을 보내는데도 그 어떠한 확답은 없고. 점점 전장의 상황은 우울해져만 갈 뿐이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몇인가. 고향을 그리워해 탈주하는사람들이 몇이란 말인가. 약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가보시게. 내 그대하고는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네."
"저희의 사병을 받으시옵소서."
강재준은 자신을 무시하듯 등을 돌아 의자에 앉아버린 약로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며 인사를 했다.
그런그를 약로가 쳐다볼리 없다. 약로는 보기도 싫다는듯 눈을 질끈 감아버렸고. 곤한지 팔짱을
낀채 잠이 들어버린 것 처럼 아무말 없다.
조용한 막사를 사뿐이 걸어나오는 강재준. 곧 내리쬐는 태양아래 음흉한 미소가 지어진다.
'약로마마 소인 언제나 올것입니다. 언제나 현혹되기 쉬운말로 당신을 농락할 것 입니다..
..후후..그래야 절친한 두 사이가 갈라지고.. 우리의 말을 잘듣는 사람이 왕이 되는거지요...'
그때, 그의 심복인 에꾸눈 한명이 그림자처럼 그의 곁을 달라붙었다. 허리엔 얇은 칼을 차고 무엇인가
경계하는듯 여기저기 둘러보는 그. 강재준의 뒤를 따라 병자와 사기를 잃은 군인들로 가득한 전장안을
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오늘도 대왕에게서 온 서신을 말끔히 치웠나이다."
또다시 지어지는 음흉한 웃음. 허나, 강재준의 음흉한 웃음은 금새 사라지고. 자신의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 호위하는 에꾸눈에게 낮게 말했다.
"이제, 대왕에게서 오는 서신도 없앨것이 아니라. 약로에게서 보내지는 서신도 없어야할것이다.
내 말뜻. 잘 알겠느냐?"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에꾸눈의 사내. 그는 다시 그림자처럼 아무말없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자신의 말이 묶여있는 곳으로 대동한 하인들과 같이 향한다.
"거들먹 거리며 매번 오는 꼬라지가 그렇게 좋아보이지만은 않습니다."
그런 그를 순찰을 하며 바라보던 장사 김흥문이 말했다. 그러자, 이에 동조하는듯 옆에있던 장무장군
한흥복도 고개를 끄덕이고. 어딘가 의아한 마음에 그는 빨리 한강희에게 서신을 보내야한다고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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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bamfa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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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왔어요~~~ 유후~~~~ *-_-*
후후 엄청난 비축분으로 인하여 하루 한번 빠질일 절대 없을것같습니다.
반겨주세요 -_-*
잊어버리셨으면 슬퍼요..ㅜ..ㅜ
카페 게시글
BL소설
사 극
미인 (美人) # 28
우연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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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27 23:29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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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우연님 보고싶었사와요 ~♡으으으흐흐흐 ;;;; 저 기억은 하실런지~
당연하죠 > < 반가워요오~~
와!! 우연님 보고싶었어요 >_<!!.. 닉네임을 여러번바꾸고; 꼴말도 제대로 안올린지라.. 기억하실런지 ;ㅁ;.. 하하.. 저번에 쥐약을 강비한테 먹인다는건 줄알았는데, 이제보니까 강비를 죽일약을 달라고 한것 같군요.. ;ㅁ;.. 그냥 강비죽여버려요오!!... 약로가 변심하지 않았으면.. -_-....
꼬릿말은 하도 자주보니까 ㅋㅋ 저번 닉네임 말씀하시면 아마 기억할거에요 ㅎㅎ 헤헤 보고파해주셔서 감사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