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상처
박운현
(하)
보건직으로 전환하여 근무를 하고 싶어서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결과로 충청남도 보건직8급 공채시험에 응시하여 보기좋게 합격하였고, 근무지는 대전시 중구보건소에 발령이 난 것이다.
보건소에 배치되어 방역업무를 담당했다. 방역업무는 주로 소독을 하고 예방접종을 하는 부서다. 근무를 해보니 여름철 방역이 제일 큰 골칫거리였다.
취약지역의 파리 모기가 들끓어 민원이 수없이 발생하였다. 주민들의 욕구에 부응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럴 때일수록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고향에 가서 근무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고향 보건소에 가서 근무하는 게 여러 모로 좋을 것 같아서였다.
서슬퍼런 5공시절 정부합동민원실에 서한을 보내 고향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다행히 승낙이 되었고 그리하여 고향보건소로 발령이 났다. 늘 그리던 고향으로 내려오니 어머니 품 속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향 보건소에 배치되어 대전시에서 하던 방역업무를 맡았다. 이제는 이 직장이 나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독하게 마음을 먹고 업무에 임했다.
전임지에서 일한 바를 토대로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일한 보람은 그로부터 일 년 뒤에 나타났다. 7급 승진을 하였던 것이다. 군에서 열심히 일한 댓가를 알아 준 것 같아 기쁨은 더했다. 그러던 중 하수처리장으로 인사이동이 되어 자리를 옮겼다.
하수처리장은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다. 악취가 심하게 나고 파리 모기 응애 등 여러 가지 이름모를 곤충들이 들끓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외관상 보기에는 파란 잔디밭이 멋져 보였으나 내부적으로는 그만한 고생이 따랐다. 특히나 여름철에는 잡초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 낫으로, 예초기로 베기에는 감당하기 힘이 들었다.
직원들은 손쉬운 고독성농약 제초제를 뿌려서 제거했다. 제초제 농약을 살포하다 농약중독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제초제사용을 가급적 삼가토록 지시하였고, 하지만 직원들은 어쩔 수 없다고만 했다.
가끔 우리 농민들이 논․밭둑이나 과수원에 제초제 살포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심히 우려스럽다. 만약 농약사고라도 나면 현재로서는 의약적으로 처방할 약도 없고 달리 치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모두가 기피하는 이곳에 와서 내가 왜 근무를 해야 하나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몇 년을 근무하고 난 후,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 군에 보고하고 근무지를 바꿔주도록 요청하였던 것이다. 다행히도 그 결과는 6급 승진과 함께 보건소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보건소 초임으로 가족보건계장을 맡았다. 가족보건업무는 1980년대였으니 산아제한이 첫 번째 업무였다. 우리나라 국민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에 건강증진계장 예방의약계장 가족보건계장 진료계장 건강증진센터팀장을 거치면서 지역주민들을 위해 나름대로 업무에 열의를 갖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을 해왔다.
보건소 재직 중에는 그래도 공부에 미련이 남아 있어 야간대학을 진학하였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이었다. 근무를 마치고 학교에 가면 눈이 감기고 졸리고 피곤하고 여간 힘든 고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是)를 극복하고자 이(齒)를 악물고 공부를 계속하였다. 웬만하면 대학을 나오는 게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내 자신의 자가 충전에도 좋을 것 같아서였다.
남들은 퇴근을 하고서 가족들과 오손도손 얘기하며 하루를 끝낼 시간이었지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추우나 더우나 내 향학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대학생활을 뜻있고 보람있게 장식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싶어 나름 열심히 노력하였다. 공부는 물론이고 대폿잔도 기울이며 재미나는 대학생활을 지속하였다.
세월은 흐르는 물이라던가.
학업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대학생활을 마무리해야 하는 영광의 졸업을 맞이하게 되었다. 화려하게 장식한 졸업식장 분위기는 대학을 다닌 보람을 찾기에 충분하였다. 학과장님과 가족친지들의 축하 속에서 꽃다발과 감격의 졸업장을 받았다. ‘나도 대학졸업자다!’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직장생활도 이젠 얼마 남지 않은 내리막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던 중 보건소장이 정년으로 퇴임하여 결원이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보건소장을 임명하여야 했다.
나는 보건소장 승진후보자의 한사람으로 명단에 올랐다. 후보자는 승진서열 5위까지로 하고 그 중에서 군인사위원회심의를 거쳐 군수가 임명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승진한다는 보장은 없다. 승진대상에 오른 후보군 모두가 승진을 애타게 기다리는 입장이었으니….
군수의 보건소장 임명은 여러 가지를 참작하여 임용하는데 근무평정 점수, 지도자로서의 자질, 리더쉽, 전체 직원들의 다면평가 등이 그것이다.
승진후보자들은 이메일이나 전화, 대면 방식 등으로 자신을 알린다. 나도 후보자군의 한사람으로 오른 이상, 직원들의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해 짬짬이 시간을 내어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사무실을 누볐다. 인지활동의 방안으로 몇 가지를 채택했다.
후보자군 중에서는 나이가 제일 많은 연장자여서 나이를 말하고, 성실함을 말하고, 청렴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평가를 잘 부탁드린다고 호소하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모두가 다 그렇게 평가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고 볼 일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향이 대개가 직접 대면할 때는 반대를 못하고 당부를 하는 사람의 호소에 동조하거나 하는 척한다. 그래서 열 길 물속은 알 수 있지만,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열심히 뛰었지만 결과는 나에게 좋지가 않았다.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짓지 않고 외면하였던 것이다. 노력한 보람도 없이 물거품이 되었고 그만 탈락의 쓴 잔을 마시고만 것이다. 유력 후보자였던 P계장이 보건소장으로 낙점되었다.
불행히도 나의 사전엔 승진의 기회는 없었다. 내 인생의 운명이 여기까지인가 보다하고 체념하였다. 가슴에 응어리로 남았다. 그러던 중 세월은 말없이 흘러 나도 정년퇴임을 맞이하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세월을 붙잡을 수가 없는 것인가 보다.
정년퇴임을 하고 난 후 그 이듬해인 3년 전, 건강검진 시 대장에 용종이 생겨나서 떼어 내었다. 그것도 3개나. 다행히 암은 아니라서 마음은 놓였지만…. 용종은 ‘암의 씨앗’이라 한다. 3년 뒤에 다시 오라는 병원 측의 통보가 있었다.
금년이 3년째가 되는 해이다. 다시 가서 검사를 받아보았다. 혹시라도 재발이 나지 않았는지 우려가 되기 때문이었다. 지난 5월이 만 3년이 되었기에. 재검사를 받고서 또다시 용종 하나를 떼어내었다.
몸에 생겨난 옹이는 제거할 수 있어도, 마음에 든 옹이는 제거할 수가 없다. 그것이 문제로다. 내 인생에 박힌 두 가지 옹이 중 몸에 박힌 한 옹이는 도려내었지만 승진 탈락의 옹이는 제거하지 못했으니 언제쯤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정년퇴직을 하고 물러난 마당에 무슨 재주로 어떻게 한단 말이냐.
괜히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되니, 또 한 번의 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진한 아쉬움으로 남을 뿐인데.
첫댓글 일기를 옮겨오신듯 고백하시는 수필을 쓰셨군요.
마치 저의 과거를 비춰보는듯한 느낌을 갖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정년이란, 마감이 아니라 새 출발이다. 이건 제가 드리는 말입니다~~^^
방향을 잘 트시고 새롭게 태어나시기를 바랍니다^^남은 여생은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사신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군요. 마음의 옹이 내려놓으시고 이제 편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