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 버프나 이런거 없이 공평하게 픽을 나열해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아는 데로만 후보 추렸는데 없는 인물도 추천 받습니다.
대충 후보군은
충무공 이순신(대한민국)
도고 헤이하치로(일본)
어니스트 킹(미국)
체스터 니미츠(미국)
월리엄 홀시(미국)
월리엄 리히(미국)
미힐 더라위터르(네덜란드)
프랜시스 드레이크(영국)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스페인)
정도인데..
충무공 이순신
7년동안의 전쟁중 치렀던 23번의 전투 중 단 한번의 패배도 없었음
해군 최초로 학익진 도입
조정의 지원이 없었음에도 자급자족하며 싸움
또한 레이더 같은 기술 없이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을 치르며
끝까지 적을 추격, 섬멸하는데 성공함.
다만 시대적인 한계겠지만 공격자로서의 모습보단 연안 방어에 치중되어 있음(후에 언급할 후보군들에 비해)
도고 헤이하치로
당대 최강의 해군이라 평가받던 발틱 함대 격파(당시 일본과 러시아의 국력차도 컸음)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지 못하여 그로인해 러시아 해군은 아프리카로 빙 돌아와야 했음.
지칠대로 지친 발틱함대를 홈그라운드인 쓰시마 해협에서 상대함
어니스트 킹, 체스터 니미츠, 윌리엄 홀시/리히
미 해군에서 현재까지 단 4명만 배출된 원수계급
태평양 전쟁 당시 항공모함을 이용한 현대적 해전을 치렀음.
쇼미더머니 수준의 생산력과 물량을 자랑하는 미국의 지원아래 전쟁을 치렀음.
미힐 더라위터르
네덜란드의 해군 영웅으로 1~3차에 걸쳐 영-란 전쟁에 참여, 공을 세운 제독이였음.
프랜시스 드레이크
사략선(정부의 허가를 받은 약탈선)의 선장으로서 스페인 선박과 식민지를 약탈하며
수많은 재화를 노획하였고 대부분을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바침.
드레이크가 바친 재화의 양은 당시 영국 정부 1년 예산보다 많았다고 함.
이 공으로 명예 해군 제독으로 임명되었고
칼레해전에도 참전하여 무적함대를 격파하는데 공을 세우기도 함.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
스페인 해군이 무적함대라는 칭호를 얻게된 레판토 해전을 지휘한 스페인의 제독.
과연 10명의 해군 제독들을 데리고 드래프트를 한다고 생각했을때
과연 영예의 1순위는 누가 될까요?
그리고 여기에는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추천 할만한 해군 제독은 누가 또 있을까요?
첫댓글 여기 명단에 없는 호레이쇼 넬슨 추천합니다.
1순위 이순신
2순위 넬슨
요러케 가봅니다..
아! 넬슨 제독 잊고있었네요.. ㅜㅡㄴ
알럽이라 당연히 1순위 로빈슨 생각하고 들어왔다가 ..ㅋ
오우~ ㅋㅋㅋ
22222
@kirt2050 33333333
센터 - 데이빗 로빈슨
파포 - 사이타파 사바니
스포 - 제이 멧지어
슈가 - 황유하
포가 - 박수교
이상 해군 출신 농구선수들이었습니다.
사이타파 사바니는 세네갈 출신으로 최근까지도 좋은 활약을 보이다가 은퇴한 선수고, 제이 멧지어는 해사출신으로 50~60년대 때 뛰었던 선수입니다. 황유하는 '70년대 이충희'로 보시면 되고요, 박수교는 잘 아시다시피 김동광과 함께 70~80년대 한국농구를 이끈 대표적인 공격형 리딩 가드였습니다.
역시 박사님 ㄷㄷㄷ
넓고 깊은 지식에 감탄합니다.
박사님 지식에 또 다시 감탄하게 되네요 ㅎㄷㄷ
감탄드리고 갑니다
나산시잘 황감독님까지 소환하시다니 농구학자!!
@어떤이의 꿈 하하. 학자라서 아는게 아니고, 제가 좋아했던 선수여서요.
고려대 49연승을 이끈 명슈터였고, 국가대표팀에서도 박인규와 함께 중장거리 외곽포를 터뜨리던 주포였지만, 해군에서 2년 복무한 뒤 현대로 돌아왔을 땐, 이충희, 박수교, 이원우, 이 트리오에 밀려서 벤치를 지킬 수 밖에 없었죠. 연고대 출신에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현대와 삼성이 싹쓸이 해가던 당시 폐단의 희생양입니다.
요거 레딧에서 육해공으로 나눠서 진행했는데 이견없이 이순신 장군님이 1위였습니다.
추가로 역사상 최고의 함선도 1700년 이전에 건조된 배로는 유일하게 거북선이 10위 안에 들어갔고요
애초에 100척 이상의 전함이 겨루는 해전을 5회 이상 겪은 지휘관이 전무한데 그걸 다 이겨버리셨죠.
특히나 명량해전은...모르고 보면 누가봐도 소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