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일제가 우리 역사를 왜곡시켰다고들 얘기해 왔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일제가 왜곡시킨 것이 아니다. 역사 왜곡은 조선이 그렇게 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고 식민지로 삼은 후, 조선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역사적으로 조선 백성은 외세에 점령되어 살아온 것처럼 교육시키고, 고려와 조선의 북쪽 강역을 축소시켰지마는 지난 5,000년간의 역사를 왜곡시킨 당사자는 조선이었다.
그러나 울분을 토할 필요는 없다. 조선은 조선왕의 것으로 인식하고 살았던 시기가 아닌가?
조선왕과 신하가 일심동체로 나라를 다스렸다면, 감히 임진왜란(壬辰倭亂)이나 병자호란(丙子胡亂) 처럼 난(亂)이 일어날 수도 없었고, 일제에 강점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선왕이 혼자 모든 세력을 장악할 수도 없었고, 세력을 갖고 있던 중신들이 조선의 안녕과 미래를 전부 책임지려고 하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조선초에 역사왜곡이 이루어 졌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조선은 새로 건국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하여 나름 필요에 의해 그간의 역사를 왜곡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조선의 사관(史官)들이 어쩔 수 없이 역사책을 뜯어고쳐야 했겠지만, 조선의 사관(史官)들은 동방(東方)의 역사가 길이길이 전해지기를 간곡히 원했음을 알 수 있다. 그 근거는 『삼국유사』 발문(跋文)이다.
또 비록 조선의 사관(史官)들은 역사책을 외형적으로는 뜯어고쳤지마는 미래에 올 후손(後孫)들이 동방(東方)의 역사를 다시 복원시키기를 간절히 희구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즉, 동방(東方)의 역사를 알아챌 수 있는 힌트 또는 비밀코드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들을 사서(史書)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392년에 조선이 개국했으며, 1394년에 도읍지를 한양으로 천도하였다고 한다.
또 명(明)이 1421년에 도읍지를 남경에서 북경(현 베이징)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조선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마지막으로 재간행한 시기는 1512년이다. 즉, 명(明)이 옛 고려(高麗)의 땅을 차지하고 도읍지를 북경으로 옮기자 비로서 지명을 동북쪽으로 변이시킬 수 있었는데, 고대 지명들을 동북쪽으로 변이시키기 위하여 그간의 사서(史書)들을 뜯어고친 시기를 1421~1512년 기간 중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명(明)이 사서(史書)들을 뜯어고치자, 조선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조선초에 작성된 『고려사』를 뜯어 고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명을 변이시킨 것뿐만 아니라, 고대 국가들의 건국년도를 진·한(秦·漢)보다 뒤로 늦추고, 국가간의 위상을 바꿔치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간 고대 국가 주요 지명들의 본래 위치를 연구한 결과, 단군이 건국한 조선과 부여, 가야, 신라, 고구려, 백제, 대진국(발해) 등 고대 국가와 고려 등은 모두 현재의 산서성, 하북성,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 하남성, 요령성 등지에서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종주국이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불안해 할 필요도 없다. 우리 민족은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현 중화인민국의 동부지역에 살던 동이족과 현재의 한반도와 동북 3성에 살던 고대 민족이 함께 나라(조선)를 일구어왔음을 알아챌 수 있다.
과거의 국경선에 연연해 할 필요도 없다. 현재 각 지역은 각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터전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중화인민국 동부지역에 사는 인민들의 태반은 과거 고대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후손이 아니겠는가?
또 고려의 후손들이 아니겠는가?
바로 고려말 조선초에 헤어진 고대 친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외모상으로 꼭 닮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은 과거 역사를 모두 잃어버렸다. 뻥뛰기된 중화인민국의 가짜 역사를 배우고 그렇게 믿고 살고 있는 것이다. 즉, 『삼국사기』를 들고 있는 민족이 동아시아의 종주국이자, 장자였음을 알아챌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서울 한 중앙을 흐르고 있는 강의 이름이 한강(韓江)이 아니고 한강(漢江)이라는 것은 우리 민족이 현재의 중화인민국 동부지역의 종주국이자, 장자였음을 증명해 주는 근거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데, 아직도 현재의 산동성 태산에서 서쪽으로 흘러나와 시계 방향으로 돌아 현 황하와 연결되어 흐르는 강이 현대 지도상에 아직도 한수(漢水)라고 표기되어 있다.
동아시아의 종주국이자, 장자였다는 것은 문화(文化)의 본류였으며, 인류문명의 시원(始原)이었음을 의미한다. 고대를 거슬러 올라가 선사시대로 갈수록 아예 없애버린 역사들이 있지만,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기록들과 지난 100년간 현대적인 방법으로 발굴된 수 백 곳의 유적들이 사라진 옛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간 왜곡되어 있었던 역사는 [그림 1]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림 1] 국사교과서에 근거한 고대 국가의 도읍지 이동 경로
그러나 변이된 고대 지명들의 본래 위치를 찾은 결과, 실제 역사의 큰 줄기를 [그림 2]와 같이 알아챌 수 있었다. 이렇게 추정할 수 있게된 근거는 중국 25사와 『삼국사기』, 『삼국유사』, 그리고 『고려사』에 삽입되어 있는 위사(僞史)들을 솎아내고, 본래부터 기록되어 있었던 진사(眞史)들에 근거한 것이다. 즉, 각 사서(史書)에 뒤섞여있는 진사(眞史)와 위사(僞史)들을 하나하나 분별해 냄으로써 진사(眞史)들에 근거한 올바른 역사를 복원할 수 있었다.
[그림 2] 고대 지명의 위치를 확인한 결과 고대 국가 도읍지의 이동 추정경로
본래 역사의 대강을 찾아낼 수 있었지마는 더 구체적으로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유적과 유물들을 확인하고 동아시아 지역을 벗어나 인도, 이란, 이라크, 티벳, 신장 위구르, 카자흐스탄, 시베리아, 몽고 등 더 넓은 지역의 역사와 유적·유물들을 연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곧 통일될 것이다.
통일한국의 우리 민족이 동아시아의 역사를 주도하여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문명과 문화는 수준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지난 수천년전부터 우리 민족이 동아시아 문명의 주역이었듯이 21세기에도 동아시아 문명의 주역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Made in Korea"가 즉, '한류(韓流)'가 문명의 흐름을 의미하고 있지 않은가?
향후 통일한국이 강대하고 부유한 국가로 거듭나면서 인류문명의 시원지로 다시 거듭나게 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그러한 배경에는 조상님들의 사유세계(思惟世界)가 그리 살도록 가르쳐 준 것이 아니겠는가?
그 증거 중 하나를 아래와 같이 예를 들 수 있다.
즉, 『삼국유사』에 따르면, 단군이 최초로 건국한 조선이 백악산 아사달에 있었는데, 백악산 아사달의 위치를 [그림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재의 산동성 제남시 주변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림 3] 백악산 아사달 등 추정지역
그런데 단군조선의 도읍지 백악산 아사달이 현재의 산동성 제남시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신석기 및 청동기 시대 유적이 지난 100년간 수 백 곳에서 발굴되었는데, 그 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현재의 산동성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동 유적에 관하여 산동성 학자들이 소개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During the Neolithic Age, “Eastern Yi-barbarians”, the aboriginal inhabitants of Shandong Peninsula, created an uninterrupted lineage of cultures; Houli, Beixin, Dawenkou, and Longhsan. These innovative people made great achievements is technologies of stone tool manufacturing, jade working, pottery, metallurgy, textile, wine brewing, sculpture and inlaying, writing, divination, Bagua, calendar, and medicine. When they began to construct walled settlements during the Longshan period, they crossed the threshold of civilization and state. These early states took birds as their totems, and their leaders, such as Tai Hao, Chi You, Shao Hao, Da Shun, became the subject of heroic epics of later times."즉, 아래와 같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신석기시대에 '동이(東夷)족'이라고 불린 산동반도의 거주민들은 후이(後李, Houli), 북신(北辛, Beixin), 대문구(大汶口, Dawenkou) 및 용산(龙山, Longshan) 문화 등으로 이어지는 문화를 창조하였다.이들은 매우 혁신적이어서 석기제작, 옥기제작, 도기, 금속, 섬유, 술, 조각과 상감, 글자(陶文), 점(亀卜), 원시팔괘(八卦), 역법(曆法), 의술 등 분야에서 어마어마한 성과를 이루어내었다.이들은 용산문화 시기에 성곽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도시화와 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초기 국가들은 새를 토템으로 삼았으며, '태호(太昊, Tai Hao)', '치우(蚩尤, Chi You)', '소호(少昊, Shao Hao)', '대순(大舜, Da Shun)' 등과 같은 지도자들이 영웅적인 서사시의 주인공이 되었다."산동성박물관 전문가들의 연구결과가 올바르게 정리되었다면, 바로 '태호(太昊, Tai Hao)', '치우(蚩尤, Chi You)', '소호(少昊, Shao Hao)', '대순(大舜, Da Shun)' 등이 단군(檀君)이 아니겠는가?
통일 대한민국이 인류문명 진화(進化)의 견인차가 되기 위해서는 사유세계(思惟世界)의 기저가 되는 역사관을 올바르게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역사를 연구하고자 하는 연구원들에게 그간 연구한 것을 남김없이 알려줄 생각이다. 그래야 올바른 역사관를 바탕으로 올바른 지식들이 차곡차곡 축적되어서 학문적으로 깊이와 폭을 형성하고 인류문명 진화(進化)의 근간(根幹)이 되지 않겠는가? <끝>
출처:https://cafe.daum.net/asiahistoryreserch/DHst/543 동북아역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