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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베스트 드레서 원문보기 글쓴이: On Christmas에
밀착취재 |
베일 속에서 죽어간 연예 매니저 裵昺洙
연예계를 들개처럼
종횡한
한 프로승부사의
삶과 죽음
그는 언제나 일을 우선으로 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인간관계는 그 다음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을 위해서는 惡役도
마다하지 않았다.
李 昌 世 스포츠조선 연예부 차장대우
『세상 살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
『언젠가 민수가「형 죽으면 내가 무덤에 가서 소주 뿌려줄게」그랬어요. 그 얘길 진실이가 듣고「나는요 선생님 죽으면 양주를 뿌려줄게요」그러더라구요. 에이 나쁜 인간들… 죽고나면 아무도 없을 것 같아…. 민수도, 진실이도 아무도… 아무도 없을 것 같아. 인생이 그런 것 같다구…』
배병수씨는 지난해 3월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적이 있었다.
마치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예감이나 한 듯한 독백이었는데, 당시 함께 술자리를 같이 했던 독고영재와 허준호는 배씨의 빈소에서 이때의 얘기를 또한번 떠올렸다.
독고영재는『병수는 굉장히 외로웠던 친구』라고 했다. 자신과 함께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들어갈 때면 항상 밤하늘을 향해『세상 살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며 고함을 지르곤 했다는 것.
배씨를 모르는 사람은 연예가에 없었지만 정작 배씨는 굉장히 외로움을 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일을 우선으로 두었다. 인간관계는 그 다음이었다.
자신의 인간성이 매도되는 것을 개의치 않았으며, 악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연히 배씨의 주변에는 친구보다는 적이 많았다. 매니저로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다보니 질시와 모함도 끊이질 않았다. 그래도 배씨는 이런 걸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흔들림이 없었다.
배병수씨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알려진 것처럼 연예계의 마이다스로「손대서 안되는 일이 없는」당대 최고의 매니저였는가.
「좌민수 우진실」. 왼쪽에는 최민수, 오른쪽에는 최진실을 두고 국내 최고의 스타제조기로 군림하던 배병수씨는 이들 외에도 독고영재, 허준호, 엄정화 등과 함께「배병수 사단」을 형성하며 방송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력인사에 꼽혔던 인물.
당연히 연예가에서 배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배씨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 또한 거의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그만큼 배씨는 베일에 싸여진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
한때 배씨와 동고동락까지 하며 가깝게 지냈던 김학래를 비롯해 최진실, 최민수, 독고영재, 또는 연예계 종사자 등에 이르기까지 배병수의 나이가 몇 살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고향이 어디이며, 출신학교가 어디인지,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게 없을 만큼 철저하게 배씨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살았다.
오리무중의 學歷
심지어는 자신의 집 전화조차도 남의 이름으로 신청해 사용했을 정도로 주도면밀했으니, 일부러 뒷조사를 하지 않고서는 배씨의 신상에 대해서 알 수 없었던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밝혀진 것으로는 1958년 2월 13일, 직업군인이었던 배봉인씨(69)와 김금숙씨(64)의 2남2녀 중 둘째 아들로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어린 시절은 강원도에서 대부분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배씨의 손위 누이는『아버지를 따라서 어머니와 딸들은 시골에서 지냈고 오빠와 병수는 서울에서 공부했다』고 당시를 간략하게 설명하면서『워낙 어릴 때여서 어느 학교를 다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동대문 근처의 무슨 학교라고 했던 것 같다』고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배씨는 여권발급용 신원진술서나 이력서 등에서는 자신의 출신학교에 대해서 일관성을 유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어느 진술서에는 77년부터 83년까지 고려대학을 다닌 것으로 되어 있으며, 또 어느 곳에는 78년부터 82년까지 인천대학을 다니다 졸업한 것으로 기술돼 있다.
흥미있는 사실은 배씨의 진술에 의거해 고려대학교의 10년간 학적부와 인천대학의 10년간 학적부를 조회한 결과 배씨의 이름은 어디에서고 찾아 볼 수 없었다는 점. 특히 인천대학의 경우에는 첫 신입생이 79년부터 등록돼 있었으며, 인천대학과 학명이 흡사한 인천전문대학에서도 배씨의 이름은 나타나 있지 않았다.
그래도 배씨는 이러한 자신의 이력을 연예매니지먼트 비즈니스에서 유효적절하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명의 최진실을 영화「남부군」에 캐스팅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일 때, 배씨는「남부군」의 연출자 정지영 감독에게 자연스럽게『선배님, 진실이를 잘좀 부탁합니다』고 했다.
고려대 불문학과를 졸업한 정감독에게 자신이 대학 후배라는 사실을 은연중 시사하면서 끈끈한 학연을 강조했고,「남부군」의 캐스팅과 영화의 성공으로 최진실의 스타도약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배씨는「남부군」이 끝난 뒤에도 변함없이 꾸준하게「선배」인 정감독에게 충성심을 나타냈다. 배씨는 이런 행동으로 더욱 정감독의 신임과 사랑을 받았다.
「남부군」의 예상밖인 흥행성공으로 각 영화사마다 정감독에게 연출을 만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정감독은 뜻밖에도「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라는 불교영화에 매달렸다.
남녀 주인공이 모두 승려들이었으므로 모두 삭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노릇. 제법 이름깨나 있는 배우들은 삭발조건에 고개를 가로 저을 때, 배씨는 특유의 의리를 발휘했다. 직접 캐스팅디렉터처럼 나서서 신인을 찾아내는 데 앞장섰고, 최진실의 남동생 최진영을 정감독에게 소개하면서 삭발을 시켰다.
『장인정신 가진 분들이 진짜 칭송될 거예요』
MBC TV의 쇼프로그램의 간판 PD인 신종인 부장은 배씨를「프로다운 승부사」라며 무척 신뢰했다. 자신이 주관하는 쇼 프로그램의 출연자 섭외 때 배씨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으며, 실제로 배씨는 신부장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배씨도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신종인 부장이라고 있어요. 쇼 파트에서 대단한, 어떻게 보면 정신병자 같기도 하고, 어쨌든 대단히 집요한 분이에요. 아주 독선적이고,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따르죠. 제가「소원이 뭐예요」라고 물으니까「방 좀 넓은 데로 이사가는 거」래요. 방 쪼그만 데서 애들 둘하고 사세요. 그것도 나이가 드시면서의 변화고, 돈 관계없이 장인정신 갖고 살아오신 분이에요. 그런 분들은 진짜 칭송될 것 같아요』라면서 신부장에 대한 장인정신을 높이 평가한 적이 있다.
신부장도 배씨가 자신의 고등학교(경동) 후배인 줄로 알고 있었다.「프로다운 승부근성」이 마음에 드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후배이기까지 하니 신부장으로서는 배씨에 대한 호의와 애정을 남다르게 가질 법도 했다.
배씨가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배석봉이라는 가명으로 주산부기학원 강사를 지냈으며, 배씨의 강의가 명강의로 소문나면서 강사로 상당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재산으로 자신이 직접 주산부기학원을 차리고 원장과 강사를 겸했다는 사실은 그래도 비교적 연예가에 잘 알려진 이력이다.
제대로 알려진 게 없는 배씨와 비교적 가깝게 지내왔던, 그래서 누구보다도 배씨의 생활을 소상히 알고있는 사람은 군대 선후배였던 가수 김학래다. 두 사람이 軍에서 만나게 된 것은 80년 말쯤이었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주선으로 배씨는 보안사 대공과에 배속돼 있었고 김학래는 헌병대 조사계에 근무하고 있었다. 군입대 날짜로는 배씨가 김학래보다 10개월쯤 앞선「고참」이었는데, 대학가요제를 통해 노래하는 가수란 걸 아는 배씨가 김학래에게 먼저 아는 체를 해서 친하게 되었다.
얼굴 옆 귀밑에 큰 점이 있어서 배씨는 군시절「보안대 점박이」로 불렸다. 김학래의 회고에 의하면『성격이 좋은 데다 워낙 마당발이어서 부대가 있던 화천 언저리에서 배병수는 민간인들에게조차「보안대 배상사」란 별명을 얻어가질 정도였다』고 한다.
배씨에게 연예매니저를 처음 권한 이가 김학래였다. 당시 김학래가 소속돼 있던 아트랩(대표 안정대)에 김학래와 함께 찾아가 안정대씨에게 인사하고, 아트랩의 소속가수인 조태선의 로드매니저를 맡게 된 것이 그 시초였다.
그러나 배씨는 조태선의 매니저로서는 실패하고 말았다. 김학래도 조태선 매너지로서 실패한 배씨에게 공연히 매니저를 해보라고 권한 것을 후회하고,『그냥 주산부기학원의 원장으로 충실하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으나 배씨는 이상하게도 연예매니지먼트에 집착했다.
「불량한 매니저」
최민수와의 만남이 배씨의 매니저 인생을 바꾸어놓은 계기가 됐다. 87년 새해 첫날. 배씨는 김학래의 출연 때문에 KBS 신정특집쇼를 구경갔다가 점심시간에 최민수를 만났다.
당시 최민수는 이제 막 무명을 벗어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런데 최민수는 이날 다 찢어진 청바지에 헐렁한 점퍼 차림이었다. 신정특집쇼에 나갈 의상차림이라고는 도저히 봐줄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 느닷없이 배씨에게 키가 얼마냐고 물으면서 방송할 동안만 잠깐 옷을 바꿔입자고 요청했다. 배씨도 얼떨결에 옷을 벗어 주었고, 최민수도 별탈없이 방송을 마칠 수가 있었다.
이 인연으로 배씨는 최민수의 매니저 겸 친구로서 새로운 연예 생활에 빠져들게 됐다. 배씨는 조태선과 결별하고 본격적으로 최민수의 일을 거들었다.
최민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옷바꿔 입는 신세를 졌죠. 그후 우연히 몇 번 방송국에서 만났는데, 어느날 병수형이 내 매니저를 해주겠다고 그러더라구요. 수입을 나누자는 게 아니라 내 매니저를 하면서 방송국의 시스템과 연예계를 배우겠다는 거였죠』
처음에 배씨는 방송 관계자들에게 욕을 꽤 얻어먹었다. 귀 밑의 커다란 점을 감추느라고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다니는 것도 방송관계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특히 구두의 뒤축을 꺾어 신고 다니는 등의 태도 때문에「불량한 매니저」취급도 적잖게 받았다.
재미있는 점은 최민수 역시 이때만해도 언제나 찢어진 청바지에 티셔츠, 아니면 요란한 장식이 달려있는 롱부츠 등 록그룹의 로커 같은 차림이었던 터라 배씨와 최민수는 방송국에서 금새 유명해질 수밖에 없었다.
배씨에게는 역시 최진실을 발견한 것이 일급매니저로서의 항로에 접어들게 된 운명의 사건이었다.
88년 10월이었다. 배씨는 MBC로비에서 검은테의 안경을 쓰고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최진실을 발견했다. 늘상 그렇듯이 MBC 로비와 분장실에는 인기 탤런트들이 담소를 나누며 북적거리기 마련인데, 최진실은 홀로 한쪽 구석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말없이 앉아 있는 최진실의 첫인상에서 배씨는『어떤 영감같은 게 스쳐 지나갔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배씨는 최진실에게 다가가『너, 뭐하고 있냐?』고 물었고, 최진실은「한중록」에 출연하고 있다고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최진실에게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는데, 뜻밖에도『영화를 하고 싶다』는 대답을 들은 배씨는 눈에 불을 켜고 잘 알지도 못하는 충무로를 쏘다녔다. 때마침 최민수에게 영화출연 제의가 들어왔는데, 그것이「남부군」이었다.
『최진실에게 회초리를 들었다』
최민수와 함께 정지영 감독을 만났을 때, 배씨는 최민수의 캐스팅에 이어 최진실을 천거했다. 말이 천거지, 거의 떼를 쓰다시피 했다.
배씨는 한 달 가량 정지영 감독의「남부군」제작사무실을 출근하다시피 했으며, 어떤 때는 정감독의 반월아파트 근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정감독을 졸라 포장마차에서 애원하고 매달렸다.
결국「남부군」의 여주인공 박민자 역을 따냈다. 이때 배씨는 정감독으로부터 몇 가지 청탁조건을 들었다. 첫째 1년6개월 뒤에 영화개봉될 때쯤까지는 최진실이라는 배우를 세상에 알려 놓을 것, 둘째 영화촬영기간동안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는 출연하지 말 것 등이었다.
최민수는 이때 배씨로부터『최진실을 동생처럼 생각하고 잘 돌봐 달라』는 얘길 들었고, 실제로 배씨의 전농동 학원에서 최진실의「스타만들기」가 이루어졌다. 배씨는 최민수의 참관 아래 최진실의 방송대본을 들고 대사연습이며 연기훈련을 시켰고, 때로는『회초리를 들기도 했다』는 게 최민수의 회고다.
배씨가 전농동의 학원 한쪽 구석을 간이벽으로 막아「인트로 프로덕션」이라는 사무실 겸 숙소로 쓰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배씨는 최민수와 최진실의 매니지먼트를 펴나갔다.
특히 최민수와는 밤마다 소주를 마시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더러는 김학래도 끼었고, 최진실도 있었다. 이들의 공통된 화제는 당연히 연예계의 톱스타가 되기 위한 수많은 방법론에 관한 것들이었다.
최진실은 배씨를 처음 만났을 때, 매니저다운 믿음을 갖지 못했다고 회고한다.『어딘가 건들거리는 듯한 태도에다 처음부터 반말로 말을 걸어오는 것에 저항감을 느꼈다』는 게 최진실의 얘기다. 다만 자신감 넘치는 말투에서「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었다고 했다.
함께 일을 하기로 결정한 뒤, 최진실은 철저하게 배씨의 지시와 제안에 따랐다. 방송국에 함께 나타나면 선배연기자들이나 방송관계자들이『저 머리 묶은 놈이 누구냐, 그놈이 네 기둥서방이라도 되냐』면서 다그쳤고, 더러는『당장 그 친구하고 일을 그만두라』며 충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연기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니고, 빼어난 미모 역시 아니었는데도 배선생님이 내게「넌 된다」며 확신을 주었다』고 최진실은 당시를 회상한다. 그래서 최진실은 방송국에서 배씨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나 충고에 대해서 귀담아 듣질 않고 그냥 한 귀로 흘려버렸다.
모 라디오방송의 토크쇼에 출연하기 30분 전. 최진실은 배씨의 부름을 받아 방송국 1층의 구석진 곳에서 방송에 나갈 질문과 대답을 연습했다. 이렇게 1년여 동안 교육을 받아 가면서 최진실은 방송의 토크쇼 같은 프로그램의 출연을 겁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최진실 신드롬의 시작이었던『남편 사랑은 여자하기 나름이에요』의 전자제품 광고모델을 할 때부터, 영화「남부군」의 성공, 그리고 뒤늦게 밝혀진 최진실의 어려웠던 과거가「최진실의 솔직성」과「미담」으로 포장될 수 있었던 것들도 모두 이러한 배씨의 숨은 매니지먼트 덕분이었다.
로비의 鬼才
배씨의 매니지먼트 중 최고로 치는 것은「로비」였다. 배씨가 마음먹고 덤벼들어 성사시켜놓지 않은 드라마며 영화가 별로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로비의 귀재로 통할 만큼 배씨는 최진실과 최민수를「되겠다」싶은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시키는 데 귀신같은 솜씨를 발휘했다. 작가나 연출가의 집 앞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것은 물론이요, 최진실과 최민수를「끼워파는」방법, 심지어는 내부적으로 제작진들에 의해 출연이 확정된 캐스팅을 정연한 논리로 뒤집어 최진실이나 최미수를 대신 출연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인기를 제법 모았던 MBC 텔레비전 드라마「폭풍의 계절」에 최진실이 캐스팅됐을 때였다. 배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촬영현장이며 스튜디오를 따라 다녔다. 당시 이 드라마의 주역은 김희애와 최진실. 둘 다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펼쳐야하는 작품이었다.
방송사에서는 연일「폭풍의 계절」의 예고방송을 내보내면서 시청자의 관심을 끌었는데, 당시 예고방송 카피가「폭풍같은 여자 김희애, 별같은 여자 최진실」이었다.
여기에 배씨가 발끈했다. 예고 방송을 당장 중단하라고 제작진에게 요구했다. 드라마 제목이「폭풍의 계절」인데, 김희애를 폭풍같은 여자라고 한다면 최진실은 들러리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느냐는 게 그 이유였다.
결국 예고방송에서 앞의 카피는 삭제됐다. 배씨는 드라마 속에서의 촬영 분량에 대해서도 일일이 신경을 썼다. 김희애한테 클로즈업 샷이 한개 주어지면 최진실에게도 클로즈업 샷이 한 개 주어져야 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 성공은 몇 억이 보장되는데… 』
MBC 합창단이었던 엄정화를 설득해 솔로 앨범을 제작하기 전, 여러 영화와 TV드라마에 출연시킬 때도 배씨는 최진실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제작에 간여했다. KBS 텔레비전의 미니시리즈「폴리스」때 엄정화를 엄지역으로 밀어넣은 것도 배씨의 로비로 가능했던 일이다.
「폴리스」의 이현석PD에게 방송의 관행적인 캐스팅에서 벗어나 보다 영화적인 캐스팅을 하자고 주자하면서 주인공들을 모두 새 얼굴로 가져가자는 결론을 자연스럽게 끌어냈던 것. 엄지역은 엄정화가 맡았지만 그외의 여형사 홍미란역은 이승연, 송채환역은 오현경 등 신세대스타들이 줄지어 캐스팅됐다.
영화「결혼이야기」에 최민수와 더불어 엄정화를 끼워넣었고, 이른바 매스컴 플레이도 최민수보다는 엄정화에 포커스를 맞춰 펼쳤다. 영화 속에서는 겨우 4신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단역이었건만 배씨는 만나는 기자들마다『눈매가 강수연과 비슷하지 않느냐』면서 입에 거품을 물었다.
실제로 이때의 무리한 듯 보였던 배씨의 엄정화 만들기는 곧바로「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로 성공을 거두고 말았다. 제작자였던 유동훈씨(영화인협회장)는 최민수를 꼭 캐스팅해야 했고, 배씨는 이 점을 간파하고 여주인공으로 엄정화를 밀어넣었다. 물론 처음 유씨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배씨는 주인공뿐 아니라 조연, 단역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캐스팅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이름하여 캐스팅 디렉터. 배씨는 이 영화에 캐스팅 디렉터라는 역할로 따로 2천만원의 개런티를 챙기기까지 했다.
최민수가 MBC 텔레비전「고개숙인 남자」로 제법 인기를 얻게 되자 영화「하얀전쟁」(정지영 감독)의 변일병역 제의를 일찌감치 받아 놓았다. 그러나 배씨는 일대 용단을 내렸다. 그토록 충성을 다짐해오던 정감독과의 약속을 버리고 텔레비전 드라마「사랑이 뭐길래」를 택한 것이었다.
『김수현씨가 오랫만에 쓰는 드라만데, 죽여줄 것 같아서「하얀전쟁」대신「사랑이…」한다고 그랬다』면서 최민수에게 털어놓았다. 배씨의 성격은 이랬다.『「하얀전쟁」개런티 받아봐야 2∼3천만원이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 성공은 몇 억이 보장되는데…정감독에게 욕 한번 먹고 잘못을 빌자』
제작 스태프들은 싫어했다
배씨의 생각은 적중했다. 최민수의「대발이 선풍」은 한동안 장안의 화제였다. 최민수의 주가가 급상승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CF 등 광고모델 출연료도 억대로 뛰어올랐다.
배씨의 로비 방법은 끈질기다는 데 특징이 있다. 서울 변두리에 사는 어떤 연예기자가 있었다. 배씨는 그 기자와 겨우 인사를 나눈 정도였으나 밤늦게 그 기자가 사는 아파트를 찾아갔다.『요 근처 친구집에 왔다가 잠깐 들렀다』면서.
배씨는 그 기자집에 찾아가 대충의 가정환경을 파악했다. 아이는 몇이고, 가족의 취미는 무엇인지.
그후 배씨는 우연을 가장해 그 기자의 집을 들를 때마다 곰인형이나 과일상자를 안고 가거나 아니면 외국에서 갖고 들어온 레이저 디스크를 한 장 들고 가기도 했다. 물론 최진실 등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으나 배씨는 상당히 오랜기간 동안 그 가지의 집을 드나들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가 있었다.
배씨의 영향력은 93년 한 해 동안 방송연예계를 움직인 10대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힐 정도였으나 그만큼 욕도 많이 먹었다. 워낙 고집에 센데다가 드라마면 드라마, 영하면 영화, 오락프로면 오락프로마다 일일이 간섭을 하려 덤벼드니 제작 스태프들이 우선 좋아할 리가 없었다.
여기에다 최진실, 최민수, 엄정화 등 자기 식구들의 이익만 챙길 뿐, 다른 사람의 몫은 어찌돼도 상관하지 않으니 더욱 그러했다. 심한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몫을 가로채 자신의 식구들에게 돌려주기까지 했으니 반대파가 없을 수가 없었다.
특히 배씨는 최진실이나 최민수, 혹은 엄정화에게 돌아갈 비난까지 자신에게 돌리는 바람에「악명」을 날린 적도 적지 않았다. 지금은 결혼 날짜만 남겨놓은 최진실-변진섭 약혼 기사가 2년 전 스포츠신문에 실렸을 때, 배씨는 득달같이 달려가 거세게 항의한 적이 있었다.
배씨의 뒤를 이어 최진실도 신문사로 뛰어들어갔다. 평소의 밝고 명량한 얼굴은 온데 간데 없고 양미간을 찌푸린 채「씩씩」거리며 담당기자를 찾았다. 이때 배씨는 최진실을 신문사 바깥으로 밀어내고 자신 혼자서 신문사에서 항의를 계속했다.
CF개런티 액수 대폭 올려
『이렇게 확인도 안하고 약혼기사를 쓰면 앞으로 이 처녀총각들이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게 배씨의 항변이었다. 길길이 날뛰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배씨는 항의의 강도를 늦추지 않았고, 결국 이 스포츠신문은 이튿날 아침판에서 상당히 완화된 표현인「최진실과 변진섭은 오빠 동생 사이」라는 내용의 기사로 바뀌었다.
온몸으로 최진실과 변진섭의 약혼기사를 부인하며 항의한 결과였지만 이 때문에 배씨는 신문기자들로부터「안하무인격인 매니저」로 낙인찍혔다. 최진실과 최민수의 인기상종가와 더불어 배씨도 자주「매스컴을 타기」시작하면서 배씨에 대한 비난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MBC 텔레비전의「주병진쇼」나 SBS 텔레비전의「자니윤쇼」등에 출연했을 때, 다리를 꼬고 비스듬히 앉아 마치 스타처럼 인터뷰를했던 장면이 방영되자 연예관계자들은 물론 이를 본 시청자들에게조차「거들먹거리는 매니저」로 비쳐졌다. 특히 연예인과의 수입을 7대 3으로 나눈다면서 자신의 수입이 만만찮음을 시사, 위화감을 준 것도 더욱 역작용을 불러일으켰다.
배씨에 대한 비난은 비단 연예계에서뿐만 아니라 광고계에서도 대단했다. 최진실이나 최민수 등의 광고 모델 섭외시, 배씨는 자신이 제시한 개런티 액수에서 단 한푼도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액수가 광고계에서는 별로 지불해본 적이 없는 억대 단위를 훨씬 넘었으니, 그리고『싫으면 그만두라』는 식으로 버텼다. 욕을 안먹을 도리가 없었다.
당연히 이 바람에 최진실이나 최민수의 CF개런티는 상당히 높아졌고, 수입 또한 몇 배로 뛰었다.
아이러니컬한 점은 바로 이 광고모델의 개런티 문제로 나중에 최진실, 최민수 등과 결별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최민수는 광고모델 개런티로 받는 액수에서 세금이며 매니저 비용을 모두 배씨에게 지급했는데도 배씨가『최민수는 아무런 돈을 받지 않고 그냥 매니지먼트를 봐주는 것』이라며 얘기하고 돌아다녔다는 점에 배신감을 느껴「관계청산」을 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최진실의 경우도 마찬가지. 정확한 사정을 제시하길 꺼려하는 최진실의 경우에는 지난 93년 12월, 배씨와의 결별 선언이 바로 이러한 CF개런티에 얽힌 배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는 국내 연예계의 영향력있는 인사 10명에 들어가던 배씨는 최진실과의 결별 이후 급격하게 영향력을 잃어갔고 최민수, 독고영재, 허준호 등도 모두 그의 곁을 떠나갔다.
배씨의 죽음이후 밝혀진 베일 중의 하나는 그에게 14세된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줄곧 혼자 외롭게 살아온 것으로 알려진 배씨는 결혼에 실팼으며, 부인이었던 이모씨(35)와 협의이혼한 86년부터 줄곧 아들을 맡아온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배씨의 어머니인 김씨가 배씨의 아들을 맡아 키웠기 때문이었다.
이 비밀을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람은 바로 최민수. 최민수는 87년에 처음 배씨와 만나「형, 동생」하며 지내기 시작할 무렵 배씨로부터 아들이 있다는 소릴 들었으며, 주로 최민수가 아들을 데리고 놀아주었다.
배씨는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수수께끼를 남긴 채 미스터리 속의 인물로 남아 있다.『병수형은 지금도 어떤 사람인 줄 모르겠어요』최민수의 말이다.
첫댓글 이건 또 뭐지???왜 이런글들이 올라온거야?
최진실 자살시점에 어째서 배병수 얘기가 나오는건지 참 기분 알수없게 나쁜 1인
무슨 일인가요??
무개념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