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잘 쇠십시오~
저는 오늘 설 쇠러 부산 시댁에 갑니다.
정용식 할아버지. 누구실까요? 저의 시아버님입니다.
4남 3녀, 7남매의 둘째인 시아버님은, 형제의 가족 분이 모두 모이면 약 70명이 넘습니다.
생신 때면 온 형제가 모여 식사를 하고, 자녀의 대소사에 높은 관심과 도움을 주고 받습니다.
또 설이면 매년 형제의 집 한 곳으로 돌아가며 모이는데, 올해는 아버님댁에서 모입니다.
아침과 점심에 모이는 인원을 합하면 약 백 명은 되는지라,
식사를 대접하는 가정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나름대로 습관적으로 만들어진 규칙이 부담을 줄여주기도 합니다.
추석은 각자 가정에서 지낸다.
설 전날은 모임장소를 제공하는 형제의 집으로, 한 사람씩 파견하여 음식을 돕는다.
설 당일엔 가능한 아침만 먹고 헤어지고, 1세대 어르신 형제는 점심까지 대접한다.
1세대 어르신도 오후 2시쯤, 부모님 성묘를 위해 집을 나선다.
2세대 며느리는 점심 식사 후 친정 가족을 만나러 간다.
설것이는 어린 며느리 순서대로 하고, 음식 뒷처리는 집 주인과 나이 든 며느리 순으로 한다.
설 당일은 아침 8시 경이면 대부분 모입니다.
여기에도 습관적으로 만들어진 나름의 규칙이 있습니다.
작은 아버님 사회, 큰 아버님 설교, 아버님 기도로 하나님께 예배드린다.
예배 후 1세대 형제끼리 맞절, 2세대 아들과 딸, 2세대 며느리, 3세대 손주 손녀 순으로 세배한다.
큰 아버님은 5남매를 낳고, 아버님은 3남매, 작은 아버님은 4남매, 막내 아버님은 5남매 등
자녀가 결혼하여 손주까지 낳았으니, 2세대와 3세대는 각 소속된 1세대 별로 모여서 세배한다.
세배에 대한 순서 사회와 공지는 큰 아버님의 아들, 장손이 한다.
장손의 사회에 따라 세뱃돈은 1세대 어르신이 모아,
각 2세대는 건너뛰고 3세대와 4세대 에게 일정한 금액을 배분한다.
(각 가정에서 2세대가 1세대에게 세뱃돈으로 내시라고 미리 용돈을 드립니다.)
일년 동안 가족의 대소사를 공지하고, 축하와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새로 태어나거나 결혼한 가족은, 소속된 1세대를 알리고 이름과 뜻, 사는 곳을 알린다.
세배 후 신속한 상차림은 모두가 돕고, 어르신들은 한 방에 모여 담소 나눈다.
남자들은 상을 펴고, 음식 상차림은 신입 며느리가 한다.
식사 기도는 모이는 집의 1세대 가장이 한다.
식사 후 장손과 2세대 아들, 3세대 손주중에서 자원하는 자는,
세뱃돈은 모아 이웃의 어려운 곳에 기부하러 간다.
이 중에서 가족공동체가 가장 잘 되어 있는 부분은, 칠순과 팔순이 넘으신 1세대 어르신의 역활입니다.
며느리들이 설것이 하는 동안,
어르신들은 안방에 모여 식구들 중 승급한 자는 공개적으로 축하하고,
어려운 일을 당한 자는 조용히 안방으로 불러, 일의 진행과 원인을 묻고 지혜를 나눠주십니다.
아들은 질책할 경우도 있으나 며느리에겐 힘내라 다독입니다.
또 1세대 부모가 동그랗게 둘러앚고 이들을 가운데 앉히고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일정액을 모아 보태라고 위로금을 주기도 합니다.
저희 가정도 일찍부터 온 마음으로 준비한 인생의 목표를 접고 3년간 칩거할 때,
어르신들의 기도와 당부 말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3년의 침묵을 깨고 이주민쉼터를 기획할 때는,
작은 아버님 두 분이 각 천만원을 주셨고,
큰 아버님은 기도로, 장손인 아주버님은 부산에서 서울로,
직접 오셔서 힘을 보태셨습니다.
가족공동체의 역동성이 살아있는 것엔,
7남매 중 둘째인 저희 정용식 아버님의 힘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큰 아버님이 병약하실 때 군입대 영장이 나왔을 때,
아버님은 큰 아버님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으로 군대를 두 번 다녀오셨습니다.
또 공무원이셨던 큰 아버님이 갑자기 목회사역을 시작하시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중학생이던 동생들을 양육하여 결혼시켰습니다.
시어머니는 18세에 혼인하여 농사를 짓는 아버님을 도와 큰 살림을 꾸려오셨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어린 동생들이 사업을 하여 성공하여 터를 일궜을 때도,
아버님은 여전히 농사꾼으로 자신의 삶을 사셨습니다.
형제들은 모일 때 마다 아버님의 우직한 성품과 속깊은 정을 감사합니다.
독신하기를 원하였던 제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도,
기독교인으로서 농사꾼으로 평생을 사셨던 아버님 영향이 컷을 겁니다.
배우자 기도 목록에 '부모님이 기독교인 가정',
'농사를 짓거나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시는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가족공동체의 기능이 아주 잘 살아있는 시댁 어르신의 모습에서 많이 배웁니다.
저는 며느리이니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서 일하느라 힘들겠지만,
설 오후가 되면 나들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니 희망(!)을 갖습니다.
또 연세가 연로하신 시부모님을 생각하면 아마도...
살아계신 동안 마지막으로 자택에서 형제를 만나게 될 터이니, 열심히 힘내서 일해야겠지요.
가정복지, 잘 다녀오겠습니다.
여러분도 설 잘 쇠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첫댓글 복된 가정과 가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가정과 가문에 좋은 본이 되겠습니다. 귀한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설 명절 되세요!
최정호 선생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육일 동안 설 명절 잘 쇠고 돌아왔습니다.
아버님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사촌 동생 두 분도 함께 양육하셨는데,
지금 한 분은 미국에서 목회하시고, 자녀는 중국에서 의료선교사로 봉사하고 있어요.
어려움에 처한 이를 가족공동체에서 조금씩 도와 인생의 위기를 살짝 넘겨주면 큰 보탬이 되는 것 같아요.
이 모두를 사회적 비용으로 환산하면...과정의 비용도 크겠지만, 아마 결과도 많이 달라지겠지요.
이번 설에 가족모임이 너무 번거로우니 없애자는 회의가 있었는데,
다시 예전처럼 지내자는 의견으로 모아져서 다행이다 싶어요.
역시 한미경 선생님... 고맙습니다.
지금 여수에 있겠지요.
근무지인 강원도와 고향 부산, 참 멀지만 이곳 저곳 부지런히 발품 팔며 사는 모습 보기 좋아요.
원통 시골사회사업팀, 애쓰셨습니다.
원통1기 수료를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