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가 임도를 걸어
하늘은 파랗고 높아져 가을이 본색을 드러내는 시월 첫째 월요일이다. 추석 연휴에서 개천절 사이 센드위치 데이로 달력엔 표시되지 않은 임시 공휴일이다. 관공서는 물론 금융권과 회사들이 업무를 멈추었다. 정부에서 생산성 감소를 감수하고도 하루를 쉬게 함은 소비와 내수 진작을 통한 국내 경기 활성화다. 고속도로는 당연하고 민자 터널이나 교량 통행료도 면제시켜 준단다.
차를 몰거나 유명 행락지로 떠날 일은 없는 나는 나대로 덩달아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시내버스 정류소에서 마산으로 가는 101번을 탔다. 마산의료원을 지날 때 내려 원전 갯가로 가는 62번 농어촌버스로 갈아탔더니 낚시 장비를 챙긴 늙수레한 사내들이 더러 보였다. 오늘이 물때로 알맞은지 그들은 종점까지 가서 방파제나 낚싯배로 낚시를 할 사내들이었다.
댓거리에서 밤밭고개를 넘어간 현동에서 유산삼거리를 지나 수정을 거쳐 백령고개를 넘었다. 버스가 내포마을을 앞둔 옥계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인가가 없는 외진 삼거리에는 문을 닫은 모텔 한 채와 천주교 영성의 집이 보였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한 아주머니가 같이 내려 뒤따라왔다. 나는 옥계로 가는 산책길에 가끔 거기서 내렸는데 그때마다 마을 주민을 뵌 적 한 번도 없다.
마을과는 한참 떨어졌고 텃밭도 없는 곳이라 아주머니 정체가 궁금해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여쭈었더니 마산에서 나온 걸음이라고 했다. 장화를 신었고 챙이 큰 모자에 수건을 둘러써 도토리 주우러 나오셨냐고 되물으니 밤을 주우려 한다고 했다. 이맘때 야산에는 크기가 작긴 해도 알밤이 떨어져 있겠다 싶었다. 아주머니는 집게를 대신할 막대기로 옻나무 가지를 꺾어 만들었다.
나는 아주머니를 앞질러 산모롱이를 돌아가니 성산 이씨로 웅천 현감을 지낸 이의 무덤과 빗돌이 보였다. 야트막한 고갯길을 넘으니 해안가 마을로 공급하는 상수도 급수 저장탱크가 나왔다. 안녕마을로 가는 갈림길과 나뉜 옥계마을 가는 길로 걸었다. 합포만의 돝섬 바깥으로 진해만은 멀리 불모산 송신소와 시루봉 능선이 보이고 장복산 아래 군사 시설과 진해 시가지가 드러났다.
해안을 따라 포장된 길을 걸어 옥계마을에 닿았다. 포구에는 중년 부부가 어망을 손질하고 있었다. 여름에 통발로 잡는 장어는 철이 지났고 다른 어종을 겨냥할 어구인 듯해 무슨 고기를 잡는 그물인지 여쭈어봤다. 사내는 메기를 잡는 그물이라고 했는데 겨울철 대표 어종인 물메기를 잡는 그물이었다. 옥계 포구는 규모가 제법 큰 어촌으로 겨울철엔 대구와 물메기가 많이 잡혔다.
포구에는 조업을 나가지 않은 작은 어선이 여러 척 묶여 있었다, 방파제에는 외지에 찾아왔을 낚시꾼들이 더러 보였다. 외딴곳 횟집을 지나 봉화산 기슭으로 난 임도를 따라 걸으니 산중의 가을 운치를 느낄 수 있었다. 억새가 팬 이삭이 눈부시고 봄에는 산나물이 되기도 하는 뚝갈은 마타리꽃 모습으로 층층이 하얀 꽃을 피웠다. 참취는 혀처럼 생긴 여섯 장 꽃잎을 둥글게 펼쳤다.
임도가 끝난 산기슭에서 해안가로 내려서니 짧은 구간이지만 숲길에는 거미줄이 촘촘히 걸쳐져 삭정이를 하나 주워 막대로 삼아 걷으면서 지났다. 아까 만났던 아주머니는 옻나무를 꺾어 밤송이를 까려고 했지만 나는 옻 알레르기가 심해 잎사귀에 스치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내려갔다. 해안 갯바위에 닿으니 진해만 바깥에는 가덕도에서 거제로 건너는 거가대교 연륙교가 아스라했다.
갯바위에 앉았더니 만조로 채워진 밀물이 조금씩 낮아지는 물때였다. 배낭에 넣어간 고구마와 양파즙을 먹으며 윤슬로 반짝이는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바라왔다. 부표가 뜬 홍합 양식장에는 배를 멈춰 놓은 어부들이 뭔지 모를 일을 했다. 해안선을 따라 걸어 난포에 이르니 작은 조선소가 나오고 포구에는 어선이 몇 척 닻을 내려 있었다. 동구에서 원전을 출발해 오는 버스를 탔다. 23.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