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하시 호반에 떠오른 흉노의 달]
석 산 박 영 석
만년설 두메마다 사나운 바람이 무섭게 숨어있고, 잠시 햇살 아래 손바닥 평야가 구부러져 강물 따라 흘러가고. 아득히 높은 천산, 죽을힘을 다하여 넘어온 산등성이, 줄줄이 까마득하기만 한데, 이 높은 곳을 누가 천산이라 했을까! 힘들지 않았으면 누가 천산이라 부를까?
천산, 카라고람, 힌두쿠쉬 산맥이 줄지어 선 서남 행로, 창백한 모습을 보이는 흉노의 달은 천산의 눈녹은 물로 광대한 발하쉬 호에 홀로 떠 있고, 아무다리아 강 줄기 따라 이동하는 흉노족은, 시리다리아 강줄기로 분산하여 무고자르 구릉 지대를 지나간다. 아랄해를 목표로 이동하는 북향길은 아득하기만 하고, 드넓은 카스피해에 달빛이 비치면 왼쪽 산천이 시원해진다.
목적지를 상실한 훈(흉노)족의 고단한 행진은 아랄해 부근에서 일시적 막을 내리고 새로운 별천지, 낯선 땅에서 꿈속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코카서스 산맥 기슭을 만나게 되지만, 누군가 인생길은 가시밭길이라 했던가.사람은 항상 조심과 주의를 친구삼아 가시밭 길을 신중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리라.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알아보게되는 검은 바다 흑해 연안, 그 옛날 스키타이가 살았다고 했던 땅이 아닌가. 황금으로 치장하기를 좋아했다는 사람들 스키타이, 한없이 부럽기만 하구나! 하늘 아래 사는 사람이라면 누가 황금을 싫어하겠나! 흑해 연안과 볼가강변 비옥한 평야, 일찍부터 옥토를 알아보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탐내던 곳!
지나의 음흉한 인간들이 우리를 더럽게 미워하여 지어준 이름 흉노라니, 생각할수록 치사한 짐승같은 인간들이고, 두 번 다시 상종하고 싶지 않은 족속들,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다. 이웃들에게 좋은 이름 한번 지어주지 않는 지나족의 추악한 종족특성이 선명하게 들어난다.
바다가 검은색 물빛이면 어떠냐, 바다가 검어서 흑해라니. 여기가 항금 유물의 고향이라니...오히려 반가워하는 훈(흉노)족 사람들. 낯선 대륙은 점차 친숙해지고 훈족은 서둘러 둥지를 틀었다. 다른 무리는 또 신천지를 찾아서 길을 떠나고, 익숙한 이별도 이별이라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동족들을 떠나보내며 다시 쓸쓸함에 파묻혀 헤어나지 못하는 훈족의 무리.
그럴수록 천산을 넘어온 낯선 땅에서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음산 산맥 기련산 목초지, 기억이 불러일으키는 유쾌하지는 못하지만 아깝기도 하고 추억이 떠나지 않는 곳, 그립기도 한 목초지. 유년의 세월이 살았던 곳이라, 어찌 쉽사리 잊혀지기야 하겠는가. 떠오르는 주책스러운 그리움을 꾹 꾹 눌러 참으며 내일을 준비하는 훈족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