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품 11-39년차 로마교구 사제들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교황
교황, 로마교구 중견사제들 만남 “모든 이에게 환대의 폭을 넓히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이 몬테사크로 지역에 위치한 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에서 서품 11-39년차 중견사제들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번 만남은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 로마교구 사제 모두와 만나기 위해 마련한 만남 가운데 세 번째이자 마지막 만남이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번 만남에서도 노인 사목, 마약에 연루된 젊은이들, 독거 또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 있는 이들, 전쟁이나 정치적 무관심 등 오늘날 다양한 사목 현안에 대한 질문과 응답이 오갔다.
Salvatore Cernuzio
프란치스코 교황이 6월 11일 로마 몬테사크로 지역에 위치한 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에서 서품 11-39년차 로마교구 중견사제들을 만났다. 1시간30분가량 비공개로 진행된 이번 만남에서는 △무기·피임약·성형수술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 △끊임없는 전쟁 △정치적 무관심 시대에 좋은 정치를 위한 더 나은 마음가짐 △‘모든 이’를 환대해야 할 본당의 사명 △동성애 성향을 지닌 사람의 신학교 입학에 있어 현명한 식별 지침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뤄졌다. 교황은 이날 오후 4시경 살레시오 대학교에 도착해 로마교구 부총대리 발도 레이나 주교, 살레시오회 총장 앙헬 페르난데스 아르티메 추기경을 만나 함께 만남의 장소로 이동했다.
로마교구 사제 약 160명과의 만남
이날 교황과 로마교구 사제단의 만남은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 세 차례에 걸쳐 로마교구 전체 사제와 만나기로 계획한 프로그램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만남이다. 교황은 지난 5월 14일 트리온팔레 성 요셉 성당에서 40년차 이상의 교구 사제들과 첫 만남을, 5월 29일 스승 예수의 제자 수녀회 피정의 집에서 10년차 이하 교구 사제들과 두 번째 만남을 가진 바 있다. 이날 세 번째 만남은 본당 신부, 지구장, 원목 사제, 교구청 부서장 등의 소임을 맡고 있는 서품 11-39년차 중견사제들과의 만남으로, 교황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사제들이 질의한 다양한 주제에 답변했다. 교황청 공보실은 몇몇 사제들이 주일학교 여름행사를 진행하고 있어 이날 만남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밀라니 신부의 모범
로마교구 부제, 사제 및 수도자 생활 담당 미켈레 디 톨베 주교는 이날 만남의 자리를 여는 기도와 복음 봉독을 마친 뒤 자선활동, 학교, 교도소, 병원 등 다양한 자리에서 일하는 모든 이를 교구의 “기둥”이라고 표현하며 교황에게 이 자리에 모인 사제들을 간단히 소개했다. 이어 약 1시간30분가량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사제들은 △교구 관련 현안 △사제의 역할과 정체성 △사제로 살아가는 일의 아름다움 △세속화의 위험성 △본당의 환대를 ‘모든 이’로 확장해야 할 필요성 등 다양한 주제로 교황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교황은 특히 사제로 살아가는 일의 아름다움과 관련해 “이탈리아 사제들의 위대한 모범”인 밀라니 신부를 예로 들었다.
독거 노인, 곤경에 빠진 젊은이와 함께 걸으십시오
교황은 삶 속에서 고통을 겪는 이들에 대한 질문과 관련해 △친밀함 △연민 △온유한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세 가지 방식으로 동반하라며, 특히 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노인을 대하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황은 병원사목의 의미를 강조하고,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한 이들, 마약의 확산, 고독사의 비극,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을 겪는 많은 이들이 처한 상황 등 로마라는 도시가 안고 있는 몇몇 문제를 지적하며 역량 있는 여러 수도회가 관대함을 보여주길 초대했다. “사제의 삶에 있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치열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사제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일입니다. 예언자적 교회가 될지 성직자 중심의 교회가 될지 여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전쟁, 무기, 평화, 정치
대화의 주제는 유럽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현안으로 확대됐다. 교황은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미얀마와 콩고 등지의 전쟁을 언급했다. 또한 무기, 피임약, 반려동물, 성형수술 관련 산업에 막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이와 관련해 교회의 사회 교리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당부하며 공동선과 평화라는 사명에 더욱 헌신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가장 높은 형태의 사랑 실천”인 정치에 갈수록 무관심과 무감각으로 일관하는 시대에 우려를 표명했다.
동성애자의 신학교 입학
교황은 교회 내 여러 위험한 이념에 대해서도 경계하라고 당부했다. 특히 동성애 성향을 지닌 이들이 신학교에 입학하는 문제와 관련해 교회 안에서 그들을 환대하고 동반할 것을 강조하면서도 그들의 신학교 입학과 관련해서는 교황청 성직자부의 신중한 지침 안에서 바람직한 식별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데 도나티스 추기경에게 감사
교황은 지난 2017년부터 2024년 4월까지 로마교구 총대리 직무를 수행한 안젤로 데 도나티스 추기경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데 도나티스 추기경은 지난 4월부터 교황청 내사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교황은 이날 만남의 자리에 참석한 많은 사제들의 신학생 시절 영적 지도 신부였던 데 도나티스 추기경을 향해 “이해와 용서의 모범을 보여준 인물”이라고 감사를 전하는 한편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얼굴”을 드러내도록 부름받은 그의 새로운 직무 안에서 그의 모범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또 각자의 소임에 헌신하는 모든 사제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끊임없이 공동체적 식별과 사제들에게 다가오는 모든 이의 이야기를 경청해 나갈 것을 당부했다.
강인함과 온유함
디 톨베 주교는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교황이 여기 모인 사제들을 너그럽고, 헌신적이며, 연민 넘치고, 친밀함으로 함께하는 이들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제도권 안에서는 귀를 닫고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사람들 편에서 함께 하는 이들은 사제들이 유일합니다. (…) 교황님은 강인하되 온유한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또한 신자들이 본당을 언제나 옆집처럼 가깝고 내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통스러운 상황들
디 톨베 주교는 약 1시간30분가량 이어진 대화를 통해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많은 노인들과 병자들이 겪는 고립감과 외로움을 동일하게 겪는 몇몇 사제들의 나눔을 전해들으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고통의 상황을 나누며 감정에 북받쳐 목소리가 갈라졌죠. 교황님은 이들에게 공동체 안에서 시대의 표징에 귀를 기울이는 역량, 예언자적인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역량, 다시 말해 오늘날 진정한 의미에서 함께하는 역량을 강조하셨습니다.” 디 톨베 주교는 교황이 “오늘날 사회 안에서 느끼는 고립, 거리감, 소외, 사람 사이의 친밀함과 나눔이 점점 사라지고 말만 난무하는 사회 상황에 대항하는 사명”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디 톨베 주교는 사람은 누구나 종종 위험한 상황에 처하곤 한다며, 특히 로마의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마약 판매에 동원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학교도 그만두게 됩니다. 이는 그들 삶의 큰 비극입니다. 이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하기보다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문화와 상황 안에서 참으로 중요한 가치와 진리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인류 가족이 이렇게 해체되고 있는데 우리가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황의 인사
교황은 살레시오 대학교 대강당에 밖에서 돈 보스코 성인에게 봉헌된 노래를 부르며 교황을 기다리던 학교 관계자들, 교수, 학생,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예정시간보다 15분 정도 지나서야 사제들과의 모임이 진행된 대강당에 들어섰다. 교문 밖에는 교황을 환영하기 위해 모인 인근 주민들로 가득했다. 교황은 차를 타고 천천히 지나가며 이들에게 인사했다. 한 젊은이는 이렇게 외쳤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 교황님이 오셨네요!” 교황은 몇몇 기자들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는 6월 14일부터 시작될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할 것이라고 말하며 인공지능(AI) 기술 및 평화를 주제로 연설하고, 몇몇 지도자들과 양자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널리 알려진 교황 전용차에서 손을 내밀어 약 1시간에 걸쳐 입구에 서 있는 학생들과 한 사람 한 사람 인사를 나눈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온 젊은이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몇몇 수녀들과 사진을 찍기도 했다. 안뜰로 들어온 교황에게 아르티메 추기경은 몇몇 내빈을 소개했고, 몇 사람은 교황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어 인사했다. 프랑카 수녀 또한 교황에게 손을 내밀고 인사하며 몇 년 전 자신이 쓴 편지에 대한 교황의 답장에 감사를 전했다. 교황은 프랑카 수녀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수녀님은 몇 살이세요?” “80이 넘었습니다.” “저도 80이 넘었지요. 근데 80에 더 가까운가요, 90에 더 가까운가요?” “음…”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어 교황이 휠체어를 탄 글로리아라는 이름의 소녀를 축복하자 웃음은 침묵으로 바뀌었고, 사람들은 그녀가 매우 훌륭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황은 자리에 함께한 모든 이에게 묵주를 선물했다.
방명록 서명
교황은 사제들과의 만남을 마치면서 사제들에게도 이날에 대한 추억의 의미로 묵주를 선물했다. 사제들은 한 줄로 나와 교황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으며, 기도를 부탁하기도 하고, 본당 신자들이나 어린이들이 준비한 편지, 책, 선물을 전달하기도 했다. 교황은 특별히 로마교구에서 수년 동안 사목하고 있는 콜롬비아 출신 사제를 격려했다. 끝으로 교황은 대학 방명록에 다음과 같이 적고 서명했다. “신부님들과의 이 만남이 참으로 기뻤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형제애 안에서, 프란치스코”
번역 이재협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