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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13:1-20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내용분해 : A.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게 된 동기와 배경(1-3절)
1. 유월절 전에 자신의 때가 되었음을 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심(1절)
2. 마귀가 이미 가룻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음 (2절)
3. 저녁 식사 중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맡기신 것과
이제 다시 하나님께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생각하심 (3절)
B.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기기 시작하심 (4-5절)
1.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심 (4절)
2.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를 시작하심 (5절)
C.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과 만류하는 베드로 사이의 대화(6-11절)
1.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을 때 베드로가 놀라고 의아해하며
주께서 어찌하여 자기 발을 씻어 주시냐고 여쭘 (6절)
2. 예수님께서 자신이 발을 씻기시는 의미를 지금은 해하지 못하나
나중에는 이해할 것이라고 대답하심 (7절)
3. 베드로가 예수님의 발 씻어 주심을 완강히 거부함 (8a절)
4. 예수님께서 자신이 발을 씻기지 아니하면
그와 자신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심 (8b절)
5. 그러자 베드로가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함 (9절)
6. 예수님께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고 말씀하심 (10a절)
7. 이어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배반을 염두에 두시고
자신의 제자들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하심 (10b-11절)
D. 발을 씻기신 모범 이후에 주어진 겸손과 섬김의 교훈(12-17절)
1.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옷을 입으시고 다시 자리에 앉으심 (12a절)
2. 제자들에게 발을 씻기신 의미를 이해하겠는지 물으심 (12b절)
3. 자신이 주와 선생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겼으니
제자들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고 하심 (13-14절)
4. 자신이 행한 것처럼 제자들도 행하게 하려고 본을 보였다고 말씀하심 (15절)
5. 제자들에게 그들이 그들의 상전이시며 그들을 보낸 자이신
자신보다 크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모범을
이해하고 따라 행하면 복이 있을 것이라 약속하심 (16-17절)
E. 배반자가 있올 것에 대한 암시적 예고 및 예고를 주시는 이유(18-19절)
1. 시 41:9를 인용하여 제자들 중 하나가 자신을 배반할 것을 암시하심 (18절)
2. 제자들 중 하나의 배반을 암시하신 것은 실제 배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제자들이
자신이 그 고난을 모르고 당하신 것이 아니라
알고도 당해 주신 것임을 알고 자신을 메시야로
흔들림 없이 믿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심 (19절)
F. 피차 영접하고 섬길 것에 대한 교훈의 재강조(20절)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새 아침을 허락해 주시고 오늘도 우리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먼저 본을 보이시며, 우리에게 행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이런 주님이 가신 길을 우리도 그 본을 받아 따라 행하며, 그 길을 걸어가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다함께 이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십시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아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요한복음 13:1-20절 말씀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모범을 통한 겸손과 섬김에 관한 교훈 및 가룟 유다의 배반에 대한 암시적 예고에 대한 말씀입니다. 소위 ‘다락방 강화 (the Upper Room Discourse)’ 라고 불리는 13-17장은 예수님께서 인류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해 십자가 수난을 당하시기 전, 제자들과 가진 마지막 만찬 자리인 마가의 다락방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다락방 강화의 목적은 한마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과 부활 승천을 목전에 두신 상황에서, 이제 자신의 부재시에 세상에 남게될 제자들을 준비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사랑’, ‘위안과 평강’, ‘예수 안에 거함(Abiding in Jesus)’, 그리고 ‘세상에 대한 승리의 확신 (Conviction of Victory against the World) 등이 강화의 주제 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락방 강화의 내용 구조는 크게 세 부분, 즉 13장의 만찬석상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보도, 14-16 장의 주님의 고별 설교, 그리고 17장의 주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로 구성되었습니다. 이중 17장은 강화의 완결 (Consummation) 부분으로서, 다락방 강화의 일부에 속하지만, 그 내용의 특성상 독립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13-16장의 내용을 우선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3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1-20절), 가룟 유다의 배반과 이탈(21-30절), 예수님의 부활 승천에 대한 암시적 예고와 사랑의 새 계명 수여 (31-35절),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 예고 (36-38절) 등, 최후의 유월절 만찬석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중 가룟 유다의 배반과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 예고 기사는 사복음서 모두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 마가, 누가 등 공관복음서들이 최후의 유월절 만찬을 보도함에 있어서 신약의 중요한 2대 성례 중 하나인 성만찬 제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 달리, 요한복음은 성만찬 제정 부분을 모두 생략하고, 대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계속해서 ‘사랑의 새 계명’ 을 수여하신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뚜렷한 차별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은 요한복음만의 독특한 기사로서, 이후에 이어지는 긴 강화와 별개의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의 출발점을 이루고 있으며, 무엇보다 ‘몸으로 보이신 설교’ 라고 할 만큼, 이후의 강화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수난을 하루 앞둔 저녁, 예수님의 마음에는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셨을 것이고, 제자들을 향하여서도 남기고 싶으신 말씀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 전, 먼저 한 가지 행동을 보이심으로써, 제자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각인시키신 것입니다.
그 메시지란 우선 예수님께서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1절) .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일차적으로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정도가 어떠한지를 너무나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장차 제자들이 자신을 배반하게 될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팔 자인 가룟 유다의 발까지도 씻기셨다는 것은, 무조건적이고도 변함없는 그분의 초월적 사랑을 잘 보여 줍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의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여 주신 것이었습니다. 눅 22:24을 참조해 볼 때, 사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까지도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큰가 하는 문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제 곧 예수님께서 이루리라고 생각한 정치적 메시야 왕국에서 서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약 공동체의 모델이 되어야 할 제자들이, 자신의 사역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십자가 수난을 하루 앞둔 순간에까지 여전히 시기와 경쟁으로 분쟁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질책하기보다는 몸으로 그들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친히 모범으로 보여 주심으로써 교훈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주와 스승’ 이신 분으로서 제자들의 발 씻기시기를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제자들에게 새 계명 (New Commandment)’ 을 주시는데 (31-35절),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새로운’ 계명이란 시간적인 차원에서 옛것에 비해 새로운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며, 이는 질적인 면에 있어서 새로운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이미 구약의 율법에 주어졌으며(레 19:18), 또 구약 율법의 요약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눅10:27). 따라서 여기서 새로움이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즉, 옛계명이 이웃 사랑의 기준을 인간의 자기 사랑에 두고 있는 데 비해, 예수님의 새 계명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사랑에 기준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들과 더 나아가 신약의 교회 공동체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완전하고도 신적인 사랑을 모델 (Model)로 삼아,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새 계명은 우리로 하여금 이기적이고 조건적인 사랑의 실천자가 되지 말고, 예수님께서 몸소 보이신 대로 무조건적이고도 자기 희생적인 사랑의 실천자가 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14-16장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고 그 자리에서 주신 고별 설교 기사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 중 14장에서는 이제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도 여전히 세상에 남아 세상이 주는 각종 핍박을 감수하면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제자들과 나아가 전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용기를 주는 주님의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자신이 곧 떠나시지만, 그 떠나시는 목적이 곧 아버지 집에 제자들을 위한 처소를 예비하는 데 있음을 언급하시며 다시 오셔서, 그들을 자신이 계신 곳에 영접하여 인도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또한 자신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 (the Way, the Truth, the Life) 이라는 자기 선언을 하시며, 자신을 아는 것이 곧 성부 하나님을 아는 것임을 밝히십니다(1-7절). 이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빌립의 요청에 대해, 자신을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본 것이며, 더 나아가 자신이 아버지 안에 있으며 또 아버지는 자신 안에 계시다고 함으로써, 성부 하나님과 그 본질에 있어서 한 분이시라고 하는 단일성(Oneness)을 보다 명확히 계시하십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자신이 그것을 시행하실 것이며, 이로써 성부께서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고 밝히십니다 (8-15절) .
이어 14:16-31에서는 예수님께서 또 다른 보혜사(保惠師, the Counselor) 이신 성령을 보내실 것과 또 자신의 평안을 제자들에게 끼치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또 다른 보혜사’ 란 다름아닌 하나님의 영이시며, 예수님의 영이십니다(롬 8:9 ; 고전 12:3 ; 갈 4:6).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본질상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제자들에게 오신다는 것은 곧 예수께서 그의 영으로써 제자들과 함께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의미를 바로 깨닫는다면, 남겨진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이 오신다는 예수님의 약속보다 더 큰 위안과 격려가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예수께서 ‘몸으로는’ 제자들을 떠나시게 되지만, 제자들은 '성령 안에서' 여전히 예수님과 함께 있는 셈인 것입니다.
다음 15:1-11은 참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 예수 안에 거하는 것 (Abiding in Jesus)에 관해 교훈하십니다. 즉 제자들은 포도나무와 가지가 연합하듯이 그렇게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의 유기적인 연합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또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기도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안에 거하는 것’ 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 안에 거하는 방법이 곧 자신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심으로써(10절),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과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히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15:12-17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제자들을 사랑한 것같이 제자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의 준수를 재차 언급하며 촉구하십니다.
이어 15:18 이하 16:33 까지의 네 문단은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핍박을 받게 될 것을 예고하시며 세상에 대한 숭리의 확신을 가질 것을 권고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의 강림에 대해서와 성령이 오셔서 행하실 사역에 대해서 예언과 교훈을 주실 뿐 아니라, 자신의 죽음과 부활 및 승천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예고하십니다.
때가 되면 사람들이 제자들을 출회시키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정당화할 것입니다(16:2). 사실 핍박을 당해도 그것이 분명히 하나님을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면 견디고 이겨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핍박하는 자가 오히려 의의 편에 선 듯한 상황이 되면, 핍박을 받는 제자들은 두려울 뿐 아니라,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은 죄(罪), 의(義),, 심판(審判)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곧 죄, 의, 심판에 대한 세상의 잘못된 생각을 드러내시고 그들의 악함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실 것 입니다. 보혜사의 이러한 사역은 핍박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 위로와 격려를 주는 사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보혜사는 진리의 성령으로서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며, 성부와 성자께 속한 모든 영광의 비밀들을 알려주실 것입니다(16:13-15).
13장에서부터 이어져 온 긴 강화의 결미 부분에 가까이 이르게 되자, 드디어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자신의 죽음과 부활의 임박성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승천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진술해 주십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 모든 강화는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는 것에 있다고 그 목적을 밝히신 후, 세상에 대해 승리의 확신을 가지라고 권고하십니다(16:33).
물론 예수님의 이같은 심오한 강화를 제자들은 다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제 오늘 밤이 지나 내일 새벽이 되면 예수님은 체포되실 것이고, 제자들은 평소의 충성의 장담(마 26: 35) 과는 달리, 모두 뿔뿔이 흩어져 도망하고 말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끊임없는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미래에 대해 조금도 염려치 않으셨으며,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지상 사역의 종결(終結)이 곧 보혜사 성령 (the Counselor, the Holy Spirit) 의 강림이라는 새로운 시작(始作)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제자들은 결코 주님과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성령 안에서, 제자들은 상황을 초월하여 세상이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주지도 못하는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든 교훈을 바르게 깨닫고 상기하게 되며 담대하게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보혜사가 오심으로 해서, 예수님의 떠나심이 오히려 제자들에게는 진정 유익한 일이 되었던 것입니다(16:7).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건, "하나님의 섭리에는 인간의 지혜로 이해 못할 심오함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말씀합니다. 즉 마귀는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의 마음을 사냥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한 결정타로 삼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마귀가 얼마나 지혜롭고 간교한 존재인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배신한다면 예수님과 그의 복음이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웃음거리가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 천 명의 배신도 제자 한 사람의 배신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제자도 믿지 못하는 가르침을 누가 믿으려 하겠습니까? 자신의 제자가 엉터리라고 생각하고 팔아버린 사람의 말을 믿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을 사냥하여 그를 배신자로 만든 것은, 그가 지금까지 예수님을 훼방하고 핍박한 것 중에서 가장 큰 성과였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하나님께서 마귀로 하여금 가룟 유다의 마음을 사냥하도록 방치하신 것은 대단히 큰 실수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인류을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결정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마귀에게 사로잡힌 가룟 유다의 악한 마음조차도 자신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는 방편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룟 유다로 예수님을 배신케 함으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는 마귀의 생각은 큰 착각이고 오해였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통쾌한 승리였습니다. 마귀는 이 사건의 결과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여 자신에게 종 노릇하던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빼앗기게 되었으며, 또 장차는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의 심오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악한 행위를 통해서도 자신의 놀라운 일을 이루어 가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심오함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건 중의 하나는 유대인들의 복음의 배척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구약 선민인 유대인들이 복음을 배척하였다는 것은 인간의 합리적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유대인들은 종교적 편견으로 복음을 배척하였고, 그로 인해 복음은 온 세계에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유대인들이 복음을 배척하지 않았다면 복음은 유대인들만의 차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교만과 펀견이 복음을 배척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복음의 세계적 확산을 원하신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어찌 심오하다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섭리는 때로 모순되어 보이기도 하고, 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성도의 고난도 그러한 이해하기 어려운 섭리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섭리는 궁극적으로 선한 결과를 낳습니다(롬8:28). 곧 모순되어 보이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는 곧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롬 11:33.34) 라고 찬양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신앙의 길을 가다가 비록 우리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만나도 낙심하지 말고 선한 결과를 기대하며 끝까지 신앙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결단코 믿음의 끈을 놓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두란노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