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4, 비: 문제가 없는 화요일
인간관계라는 것은 해나가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해나간다’고 말할 게 아니라, ‘감당한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처리한다’? ‘대처한다’? 하여간 어려운 것 같다. 이 점은 인간관계라는 문제를, 보통의 문제에 대조시켜 생각해 보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의 문제에서는 나를 괴롭히는 상대가 인간이 아님에 비해 인간관계의 문제에서는 상대가 인간이다. 나와 똑같이 의도와 욕망을 가진 인간 말이다. 나는 며칠을 번민하였다. 그는 어째서 나하고 자꾸 싸우려고 하는 걸까? 그가 삐지는 것은, 자기가 나한테 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나한테 자꾸 이기려고 하는 것일까? ‘이긴다’-‘진다’거나 ‘잘났다’-‘못났다’, ‘이익이다’-‘손해다’는 말로부터 자유로운 인간관계는 없는 것일까?
보통의 문제도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나는 장마철에 대비하여 베란다에 부분 도색을 하였다. 물론 전문가를 불러서 했다. 페인트가 벗겨진 곳, 들뜬 곳 등등 대 여섯 군데를 보수해주는데 30만원. (삼례 노루표 페인트의 늙은 사장은 25만원을 불렀지만, 작업을 하는 당사자인 그 아들은, 자기는 부분 도색을 하러 나가지는 않는다면서 70만원 내고 전체 도색을 하라고 권유하였다.) 전주 ‘착한 페인트’의 강사장은 무난하게 일을 해주었다. 그러나 작업 끝낸 이틀 뒤 폭우가 쏟아지니 몇 군데는 벌써 벗겨지고 들떴다. 어떻게 하지? 생전 처음 실리콘을 쏴봤다. 소용없었다. 나는 그렇게 이틀을 번민하였다.
그러는 중에 화요일,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그래도 아점 밥은 먹어야 하니, 베란다의 바깥 창틀에서 똑똑 떨어지는 빗물을 받기 위해 바가지를 대놓고 우산을 들고 나왔다. 삼례 콩쥐팥쥐 분식. 지금 생각해 보니 이름을 참 잘 지은 것 같다. 콩국수(8천원)도 팔고, 팥칼국수(7천원)와 새알 팥죽(8천원)도 파니 말이다. 나는 ‘김치 수제비’(7천원)를 마다하고 ‘일반 수제비’(7천원)를 시켰다. 갑자기 한 아저씨가 일어나서 우산꽂이에 다가가더니 자기 우산이 없어졌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누가 내 우산을 가져간 것이여. 크고 좋은 거인디.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 아저씨는 일행에게 돌아가 먹던 칼국수(7천원)를 계속 먹었다.
그들이 나간지 2분쯤 지난 후 내 맞은편 테이블에서 혼자 식사를 하던 영감님이 웅얼웅얼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내었다. 주인이 다가와서 확인해보니, 그 영감님이 한 말은, 이거 너무 짜다, 너무 짜서 못먹겠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먹었는데, 더 이상은 도저히 참고 먹을 수 없었는지, 그렇게 나온 것이다. 제일 맛있을 것 같아서 제일 비싼 놈으로 시켰는디 왜 이렇게 엉터리냐라고도 말했다. 비빔냉면(8천원)이었다. (비오는 날 냉면 찾아먹는 이상한 사람들이 제법 많은 모양이다.) 주인 보고 당신이 한 젓가락 먹어보라고도 말했다.
주인은, 자기도 먹어보고 주방 아줌마에게도 먹여보았다. 자기들 입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모양이다. 다소간 날카롭게 대응하던 주인은 곧 평정을 되찾았다. 그러면 영감님 다른 메뉴를 선택하세요, 하나 새로 해드릴께요라고 말했다. 아니면 다른 데 가서 드시든지요, 돈 안 받을께요라고도 말했다. 영감님은 다른 메뉴쪽으로 결정을 하였고 주인은 콩국수를 권했다. 삼례터미널의 버스 출발 시간(1시 50분)에 맞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대두되었지만 시간은 충분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잠시 뒤에 걸죽한 검은콩 콩국수가 나왔으며, 노인은 만족스럽게 먹었다.
아까 그 아저씨의 우산 문제도 진작에 원만하게 해결되었다. 그 일행들이 우루루 나가면서 자기 우산을 하나씩 집어들자, 우산꽂이에는 간명하게도 딱 세 개의 우산만 남게 되었다. 주인이 나서서 확인해 보니, 그 중 하나는 짠 비빔냉면 시켰던 그 영감님의 것이고, 또 하나는 내 것이다. 그러면 남은 하나는? 그 우산은 주인이 없지 않은가? 나도 한 마디 거들고, 비빔냉면 영감님도 한 마디 거들었지만, 어떤 사람이 실수로 남의 우산을 가지고 나간 것이니, 아저씨는 남은 우산을 가지고 가면 된다. 아저씨도, 남은 이 우산이 원래 당신 것이 아니냐는 일행의 의심에는 강한 반발을 보였지만, 잃어버린 자기 우산이 남은 이 우산하고 비슷하게 생겼다는 점은 인정하였다.
나는 바지를 걷은 채 우산을 받고 집에 들어왔다. 낮잠 한 잠을 잘 자고 일어났다. 보통 한 30분 정도 누워있지만 그러고 나면 컨디션이 확실하게 좋아진다. 아까 그 인간관계 문제는 해결되었다. 어떻게 하여 해결되었는지, 그 연유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해결되었다. 해결된 게 맞냐고? 해결되었는지는 어떻게 아냐고? 번민이 없어졌으니 해결된 거 아닌가? 베란다의 페인트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한 줄기 서광이 비친다. 내 문제를 어떻게 알았는지, 인터넷을 켜기만 하면 ‘방수 스프레이’라는 것의 광고가 뜬다. 나는 쿠팡에 들어가 한 개(1만 5천원)를 주문했다. 그냥 뿌리기만 하면 된다고 하네.
낮잠 한 잠 잘 잤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3시밖에 안 됐네. 사람의 일생이란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긴 모양이다. 이제 뭘하지?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은 내 시간을 뭘로 채우지? 고민이네. 책이나 한 권 써볼까? 책을 쓰려면 제목부터 정해야 하는데...... ‘삼례천 강둑을 걸으며’? 혹은 ‘삼례천 강둑에서’? 아니 그런 것 말고, ‘어깨너머로 배우는 인문학’? ‘진짜 보수, 낭만 보수: 어깨너머로 배우는 정치학’? 아니 그것도 말고 ‘내가 학교다닐 때 궁금했던 것들 몇 가지’? 하 고민이네. 제목만 정하면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끝)
첫댓글 마냥 관계를 맺고 끊고를 반복하며 사는게 인생사... 사기 치는 놈, 제입에 안맞다고 승질내는 놈, 벼라별 인간들 다 만나며 살지만
한 세상 살아내는데 무슨 큰 문제가 있었나...................그래도 깊은 관계는 상처를 주고 받으니 그저 참으며 살아야제 ~ 무더위 영태교수님 건강 조심하세요 싸랑합니다 ㅎㅎ
성택성은 내가 '보수'를 자처하는 것에 불만인 모양이다. 그러나 진짜 보수는 그냥 보수와 아주 큰 차이가 난다. 선거를 할 때는 그냥 보수를 찍을지 진보를 찍을지 고민할 정도로. 성택성다운 독특한 독해로군. 나는 탐정으로서 관찰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문제가 발생하였으나 평화롭게 해결되었다는 사실과 그 사실이 암시하는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을 뿐. 이렇게 진지하게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니, 나도 감사. 이상하게 한 5, 6년전부터 반바지를 안입고 있어. 풍속을 해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이든 사람이 반바지를 입은 것을 보면 어쩐지...... 너무 허름하게 입은 것처럼 보인다고 할까......
책 제목은 수취거부! 택배가 와도 내가 부담스러우면 안 받으면 그만.
2023, 7, 11 비 : 문제가 없는 화요일(2)
교수님 글을 읽으면 그림을 보는 거 같아서 좋아
큰 재능이시니 책을 쓰시지요
제목은 먼저 정해 놓고 시작하면 중간 중간 바뀌어 가기도 할 테니
부담 없이 정허시되 그래도 많이 팔리면 좋으니
신문이던 광고든 유튜브던 요새 유행하는
낚시질 제목 으로
"아니이런 삼례에 나타난 반바지가 "
" 삼례천 강둑에 밤에 나타난 외계 "
" 어깨가 결릴때는 인문학을"
뭐 이따구로 해야 혹의심 유발 로 책이 팔릴 거여
ㅎ 아니 이런 삼례에 나타난 반바지가. 어깨가 결릴 때는 인문학을. ㅋ 재밌다. 수취거부? 뭔가 깊은 뜻이 있는 듯하고, 뚝심이 있는 듯도 하고.
후배 부인이 책을 냈다며 책한권을 보내왔다 제목이 "엄마는 묵상 중입니다"이다...
가족과의 소통 부재로 아들 딸 남편과 늘 다투기만 했던 가정에 가족예배를 통해 화합해 가는 과정..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다투지만 가족이 뭘까?라는 생각을 하겠되었다는...
필자 본인은 살아 오면서 제일 잘한 것 세 가지가 먼저 젊을 때 꿈을 이뤄 학생들을 가르친 것.
결혼해서 아이 낳고 키우며 인생을 깊고 넓게 살아본 것, 그리고 하나님을 믿어 그리스도인이 된 것..
친정식구나 주위 친구들조차 교회에 다니지 않는데 그리스도인이 되어 신앙 생활을 하게 된게 제일 기쁘다는...
나의 생각과 삶, 그 솔직한 민낯을 드러낸다는 것은 보통의 용기와 노력으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태교수님 힘 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