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는 '공부 못한' 천재다. 요즘의 서태지를 보는 내 마음은 기쁘고 즐겁다. 반면, 그 만큼의 무게로 다가오는 안타까움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감정이다.
이 나라의 어떤 정치인도, 교육자도 할 수 없는 일중의 하나를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3명의 젊은이가 해냈다.
1992년 들어 돌발적으로 나타난 하나의 '가요계 쿠테타'라고도 일컬어지는 '서태지 신드롬'은 기성인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음악성에서 비롯된다.
댄스 리듬과 헤비메탈이 섞이고 거기에 랩이 가미되어 무대를 열풍의 도가니로 만들기에 충분한 그들의 독특한 언어, 그것은 10대들의 생체리듬이기도 하다.
입시지옥의 틈바구니에서 분출될 기회만을 엿보고 있던 그들만의 언어, 그들만의 스트레스가 '서태지와 아이들'이 세상에 전달하려는 음악에 담겨져 있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어른들에게 따져 묻고, 애원하고, 설득한다. 그들의 열렬한 절규가 담긴 음악적 언어에는 10대들의 공통분모인 자유에의 갈망이 담겨져 있다.
그들은 꿈꾸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강요된 희망이 아닌 순수한 자아에의 열망, 그들은 스스로가 가고 싶고 도달하고 싶은 세계를 향한 때묻지 않은 꿈들을 어른들로부터 지켜 나가고싶은 것이다.
막연하지만 아름답고, 비틀거리지만 당당한 꿈이라고나 할까.
10대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들은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던 자신들만의 숨겨진 메시지를 전달하고 세상에 항변하는 10대들 스스로의 모습이다.
가히 폭풍과도 같은 이 열광의 회오리 속에서 10대들은 겹겹이 쌓인 스트레스를 일시에 해결해 주는 돌파구를 발견한 것이 아닐까.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 사회를 건강한 열정의 무대로 만들어 준 정말 예쁜소년들이다.
사람들은 이 신기하고 예쁜 소년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린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오늘날 찬란한 인기의 절정에 서기까지의 피나는 과정을 연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듯 여리고 순하게 생긴 '아이들'에게서 질풍노도와 같은 그 힘이 나오게 된 배경은 아마 행운이거나 우연이었거니 생각할 이도 많았을 터이다.
서태지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넘쳐나는 음악적 '끼'를 주체할 수 없어 무대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음악적 천재이다. 그는 다만 음악이 좋아서 치열한 적자생존의 현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연예계에 뛰어들었다.
그룹 '시나위'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면서 배고픈 설움도 많이 겪었고, 결국 경제적인 이유로 그 팀을 나오게 되었다.
노래뿐만 아니라 작곡 * 작사 * 편곡 * 연주 * 댄싱 등 토탈아티스트로서의 자질을 철철 넘치게 타고 났으면서도 그는 배고프고 외로운 예술가였다.
대중 음악 활성화의 필수요건이라 할 수 있는 그룹활동이 정작 그 수혜자인 대중들에겐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국내 음악계의 현실이다.
여건상 음악을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정열이 음악에 배고픈 서태지를 끈기로 불타오르게 했을 터이다.
그 열망과 절망의 한가운데서 서태지는 또 다른 자신의 두 얼굴, 양현석과 이주노를 만났다.
3명의 못 말리는 꾼들이 만나 서로의 타오르는 열정을 폭발시켰을 때 세상은동화 속에서 튀어나올 듯한 이 아이들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나 또한 기꺼이 그들이 손짓하는 강렬한 세계를 바라보고 느끼며 즐거운 도취감에 젖어들었다.
"천재들을 만찬에 초대하려거든 그들이 천재로 인정되지 않고, 고생하고 있을 때에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그들을 위해서는 보람있는 격려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천재가 세상에 인정된 후에초대하기 때문에, 그것은 단지 그들에게 소화불량을 일으킬 뿐이다."
(맨스필드)
요즘 방송가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서태지와 아이들' 출연정지 파동이니 계약위반 소송이니 하는 일들을 지켜 보면서 내가 우울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와 멀리서 눈빛만 마주쳐도 고운 미소를 지으며 꾸벅 인사하는 저 여리고 순수한 청년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이들은 불과 한두 달 만에 자신들이 감당해 내기에도 벅찬 인기를 얻었다. 어쩌면 '서태지와 아이들'은 뒤늦게 '천재들을 위한 만찬'에 초대되어 소화불량을 일으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검은손을 내밀며 악수하자고 덤벼드는 상업주의의 비정한 게임에서 이들은 상처 받기도 하고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정말 요즘 같아서는 음악활동도 그만두고 싶어요. 어른들이 싫어요."
어느 날부터인가 입버릇처럼 되어 버린 서태지의 서글픈 푸념.
마치 꿈만 꾸고도 살 것 같던 그의 곱상한 얼굴에서 풍겨져 나오는 짙은 회의가 나를 슬프게 한다.
그 회의조차도 스타라면 누구나 으레 겪어야 할 통과의례쯤으로 참고 넘어가기엔 그가 너무 어려보이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