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컬러와 원목이 잘 어우러진 거실. 해먹과 초록 잎의 화분을 놓아 캠핑장에 온 듯한 분위기를 살렸다.
아이가 태어나고 짐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이사를 결심했다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보라씨(36). 처음에는 아이가 자연과 함께할 수 있도록 마당이 있는 외곽 지역의 주택을 알아봤지만 관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아이를 위한 놀이터나 키즈 카페 등의 시설이 주변에 없어 생각을 바꿨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신혼살림을 꾸렸던 아파트가 아이와 함께 살기 좋은 환경이었다. 단지 내에 학교도 있고 차량도 다니지 않을 뿐 아니라 주변에 놀이공원과 키즈 카페 등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기 때문. 결국 단지 내에 평수가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계획하게 됐다.
집을 정하고 이사 날짜를 잡으려고 보니 손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전 주인이 수리를 잘못 한 탓에 섀시가 틀어져 있는 상태였고, 인테리어 또한 평소 모던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박보라씨의 취향과는 전혀 다른 파벽돌과 화려한 패턴의 벽지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집을 꾸미기로 결심하고 콘셉트부터 새로 잡기 시작했다.
문짝 디자인 하나까지도 박보라씨의 취향을 반영해 멋스럽게 완성했다.
“인테리어 시공 전 콘셉트를 잡는 데만 3개월 정도가 걸렸어요. 오래 살 공간이다 보니 더욱 신중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스타일로 정해도 금방 질리고 후회할 것 같아 한 가지 분위기로 정하기보다는 최대한 심플하게 연출하자고 결심했죠.”
콘셉트를 정하고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구를 점검하는 것. 가구와 집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가구들이 원목 소재나 블랙 컬러였고 소품들도 많았기 때문에 베이스 컬러를 블랙&화이트로 정해 깔끔하게 연출하기로 결정했다.
거실과 아이 방이 연결된 통로. 계단을 좋아하는 딸 태연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집주인의 취향을 반영한 모던 하우스
인테리어 공사를 2개월에 걸쳐 진행할 만큼 집 안 모든 곳에 박보라씨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았다. 현관에서 집으로 들어서는 곳에는 중문을 설치했는데 모던한 블랙 철제 프레임을 넣어 집 안 전경이 액자 속 풍경처럼 느껴지도록 한 것이 특징. 현관은 미끄럽지 않으면서 우아해 보이도록 마블 헤링본 타일을 유광과 무광을 섞어 배치해 포인트를 살렸다. 복도 양면에는 중문 프레임과 동일한 블랙 컬러로 길게 신발장을 제작해 수납공간을 확보하고 현관과 대비되게 꾸몄다.
부부의 침실은 블랙&화이트 컬러로 꾸며 모던한 분위기를 살렸다.
입구부터 시작하는 집 안의 모든 바닥도 교체했다. 기존에는 체리 컬러의 원목 바닥이 깔려 있었는데, 그녀가 계획한 집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곳곳에 손상된 부분이 있어 바닥을 모두 들어내고 자연스러운 색상의 오크 원목 바닥으로 바꿨다.
금색 메탈 소재 조명으로 멋스러운 포인트를 살린 주방.
부부 침실은 블랙&화이트 콘셉트가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곳. 침대 머리맡 위에는 블랙 컬러의 선반을 달아 사진과 디퓨저 등으로 장식했다. 이곳에는 숨겨진 특별한 장소가 있는데 바로 침대 옆에 위치한 남편의 서재다. 한 평 남짓한 창고 공간이었던 곳에 문을 떼고 책상과 선반을 놓아 미니 서재로 꾸몄다. 좁지만 아늑한 공간으로 재탄생한 서재에서 남편은 컴퓨터 작업도 하고 책도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침실 한편을 서재로 만들어 자투리 공간을 실용적으로 활용했다.
박보라씨는 지금의 집을 설계하기 전 스스로에게 두 가지의 미션을 줬다. 첫 번째는 좁은 주방을 효율적으로 재탄생시키는 것. 주방은 설계를 다섯 번이나 바꿨을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쓴 공간이다. ㄷ자 구조에서 ㅁ자 구조로 바꿔 효율성을 높인 것이 특징. 아일랜드를 설치하고 그 위에 인덕션을 놓아 평수에 비해 좁은 주방의 수납공간을 확보했고, 싱크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수납장으로 만들어 그릇을 비롯한 전자제품을 넣어 항상 깔끔하게 유지하도록 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식탁이 오크와 월넛 투톤 컬러라 아일랜드의 한 면과 천장의 후드를 월넛 컬러로 선택해 통일성을 줬다. 아일랜드를 제작하면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상판을 천연 대리석으로 만들고 싶어 어울리는 색을 찾다가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지 못해 석재시장에 가서 직접 구매해 완성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차가운 느낌의 대리석과 시크한 미디엄 그레이 컬러, 원목의 따스함이 조화를 이루는 멋스러운 공간으로 탄생했다.
집주인인 박보라씨가 가장 많이 공을 들인 주방. 그레이, 화이트, 내추럴 우드 등이 조화를 이루며 모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두 번째 미션은 집 전체를 딸 태연이를 위한 공간으로 꾸미는 것이다. 이사를 하게 된 이유가 아이 때문이라 아이가 놀기도 좋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그런 이유로 가장 넓은 안방을 아이 방으로 꾸몄다.
다른 공간과는 다르게 페일 블루 컬러로 포인트를 살린 게스트룸. 블루 컬러의 벽은 붙박이장으로 설계해 실용성을 높였다.
“제일 큰 안방을 아이 방으로 선택한 것은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거예요. 엄마, 아빠는 거실, 주방 등 집 안의 모든 곳을 사용하잖아요. 그곳에 있는 물건들 대부분이 부모의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이를 위한 공간은 아이 방밖에 없어요. 또 안방을 부부 침실로 꾸미면 잠자는 공간으로만 활용하지만 아이는 방에서 놀이도 즐기고 많은 활동을 하잖아요? 그래서 제일 큰 방을 아이 방으로 정했죠.”
드레스룸과 붙어 있는 욕실은 크기가 작은 탓에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문이 있는 수납장은 배치하지 않았다.
아이 방에는 원래 테라스가 있었는데 중문을 없애고 화단 높이만큼 단을 만들어 놀이방으로 만들었다. 아이가 쉽게 책을 만지고 읽을 수 있도록 TV장 위에 책을 진열한 것이 포인트. 또 기존에 테라스와 거실을 연결하는 통로 중간에 투명한 유리문을 달고 그 앞에는 박보라씨의 작업 테이블을 놓아 일하면서도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마주 보고 있는 부부 침실과 아이 방 사이의 자투리 공간에는 결혼할 때 친정 어머니께서 사주신 나비장을 두었다. 나비장 위에는 평소 모아둔 전통적인 분위기의 소품을 올려 모던한 집 안 분위기와 대비되는 색다른 공간으로 연출한 것이 특징.
안방을 아이 방으로 정하면서 또 하나 바뀐 것이 바로 거실이다. 아이 방과 맞닿아 있는 거실 벽이 원래 TV를 놓는 곳이었는데 아이의 침대가 있는 쪽이라 전기 공사까지 감행하며 구조를 반대로 바꿨다. 또 거실 옆에 위치한 아이 방과 부부 침실로 향하는 통로에는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방음에 신경 썼다. 외부의 소음 때문에 아이가 잠을 깨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 슬라이딩 도어는 블랙 칠판 페인트로 마감해 아이를 위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했다. 최근에는 큰 고래를 그려놨는데 덕분에 아직 엄마, 아빠라는 단어밖에 말하지 못하는 태연이는 고래라는 단어도 말하게 됐다고. 또 거실에서 현관으로 이어지는 복도 벽에는 얕은 폭의 선반으로 책장을 만들어 아이가 책과 친숙해지도록 좋아하는 책들을 올려놨다. 그 옆 벽에는 철제 벽면을 세우고 그 위에 칠판 페인트를 칠해 위쪽에는 가족사진으로 장식하고 아래에는 태연이가 자석놀이를 즐길 수 있게 꾸몄다. 한쪽에는 박보라씨가 직접 키 재기 줄자를 그려넣어 태연이의 커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복도에 설치한 칠판은 가족의 게시판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저 또한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모든 것이 아이 위주가 됐어요. 아이가 커서 이 집을 회상할 때 포근한 느낌을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인테리어를 마치고 이사 온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앞으로 이곳에서 남편과 아이와 좋은 추억을 많이 쌓고 싶어요.”
아이 방답게 아기자기하면서도 심플하게 연출했다. 풍선 모양의 조명과 침대 헤드에 장식한 갈런드가 포인트.
작은 것 하나까지도 자신의 취향을 담아 집을 꾸민 박보라씨. 그녀의 바람대로 딸 태연이에게 이 집은 구석구석 엄마의 손길이 닿은 포근하고 안락한 공간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