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여행은 일동여행사 강완구 고문의 특별한 배려로 이루어 졌다.
나의 생질인 강 고문이 외삼촌 병원 검사결과 통보 전 지루한 시간을 집에서 보내느니보다 바람이나 쏘이면서 세상을 잠시 잊고 돌아오시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의와 함께 계절적으로 다소 남쪽이라 덥기는 하겠지만 호텔분위기도 좋고 온천수의 수질도 좋은 곳이라 추천한다면서 일방적으로 내자와 함께 한 왕복항공권과 체재비 일체를 선불한 티켓을 전해왔다.
뜻밖의 호의에 당황도 되었으나 그렇다고 거절할 입장도 되지 않고 너무나 간곡한 청이라 내자와 함께 건강상태가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성의를 받아들여서 며칠을 잊어버리고 일본의 九州 鹿兒島<Kagoshima>를 다녀오기로 하였다.
출국일 아침 비행기라 이른 새벽 동현 군이 공항까지 수고를 하여 주었고 도착지에서는 미리 지불된 택시가 피켓을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있어 편안하게 호텔에 도착하였으며 호텔에는 한국어를 구사하는 교포 직원이 안내를 맡아 일체 안내며 일정에 대한 협의에 조언을 주어 일본어를 구사할 줄 모르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출국 전부터 주위의 친지와 가족들로부터 잘 쉬고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여행을 즐기고 오라는 주문도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도 특별한 목적이 없는 여행이어서 먹고 쉬는 것이 큰 목적이 되고 말았다.
실은 이곳 가고시마는 7년전에 나의 환갑을 기념하여 매형내외와 함께 하여 Fukuoka(福岡) - Beppe(別府) - Miyajagi(宮奇) - Kagoshima(鹿兒島)를 일주하는 여행을 할 적에 들려서 명승지를 모두 섭렵한 곳이라 특별히 갈곳도 없는 형편이었다.
도착과 동시에 따뜻한 온천에 몸을 풀고 낮잠으로 오후를 보내고 저녁나절 주변을 산책하면서 바다에서 불어오는 맑은 공기에 깊은 쉼 호홉을 하니 가슴이 다 열리는 것 같았다.
도착후 생선초밥으로 요기를 한 끝이라 호텔내의 중국관에서 저녁을 간단히 하고 목욕을 한번 더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은 날이 좋으면 정동렬 고문이 추천하는 ‘가고시마’에서 1시간30정도 떨어진 ‘이부즈끼’란 검은 모래찜질로 유명한 온천지를 방문하여 찜질도 하여보고 기차도 타보고 하려던 것이 날씨가 흐리고 비가 간간이 내리는 바람에 햇빛이 없는 해변가의 찜질은 의미가 없다고 하여 이를 포기하고 시내 관광 길에 나섰다.
쇼핑에서 노인들이 우선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본인들의 잡품이 아니라 손자손녀의 기호품을 찾는 것인가 보다. 어린이 코-너에 가서 우섭군과 지연이가 좋아할 옷들을 만지작거리면서 얼마 남지 않은 추석걱정과 계절의 변화 그리고 크기를 어떤 사이즈로 할지가 큰 관심사항이 되고있었다.
코너를 돌고 가계를 기웃거려 영어와 일본말이 혼용되는 구매자와 점원간의 오랜 신경전 끝에 급기야는 우섭군의 秋夕용 상하 그리고 지연이 T-shirt를 집어들고 나섰다. 나중에 보니 역시 손자가 우선인지 산 물건 중에 우섭이 것에 치른 값이 제일 비싼 것이 집안에서 그 서열이 어디쯤인지 알 것 같았다.
#@# 일본의 선진시민: <호텔 - 1등 경영, 1등 종업원, 1등 고객>
호텔의 종업원들의 친절이란 정평이 나있는 것으로 어떤 분야에서 근무를 하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세계 제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경영자의 숨결이 배어있는 호텔의 분위기 또한 아늑하고 정원이며 실내장식 등 기념품점의 품질과 정리는 사치하다는 것이 아니라 고품격과 투숙고객에게 적당한 가격의 표시가 잘 조화를 이룬 것 같다.
고객 또한 어린이나 어른모두가 복도에서 만나면 목례를 하고 승강기에서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식당에서는 조용한 대화와 남기지 않는 접시가 아름답게 보였으며, 목욕탕의 매너 또한 본인이 사용한 물 푸는 바가지며 의자들을 예외 없이 원위치하고 깔끔하게 뒷정리를 하고 떠나는 모습은 서울의 특급호텔 사우나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들은 가정교육에서나 학교교육에서 모두가 몸을 단정히 하고 예의를 바르게 하는 법도를 어릴 적부터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상식적으로 익힌 결과가 선진시민으로서의 모습으로 자란 것이리라. 일본어에는 躾(미 - 시스께)란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그들이 만든 단어로 身+美=躾 즉 몸을 아름답게 한다는 뜻으로 이는 학교에서 수신시간에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자기 집을 방문한 손님의 신발을 현관에서 어떻게 정리하여 놓을 것인지, 화장실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테이불 매너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실체적 경험을 통하여 배운다고 한다.
서울의 아이들 더러 신발을 정리하라고 한다면 그 부모가 그런 일을 왜 나의 자식에게 시키느냐고 하는 항의가 먼저 나오지 않을까. 현금의 세태가 젊은 부부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있는 생각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이들에게 잘못을 지적하면 ‘아이 기죽인다’고 항의하는 세상이니 언제부터인지 무엇이라 말하기도 힘든 곳이 서울이 되어버렸다.
10여년전에 내가 읽은 US News & World Report란 잡지에 게재된 기사를 하나 소개하면, 당시 미국사회도 대학캠퍼스의 自由奔忙한 분위기가 그들의 새로운 취업직장까지 이어져서
어느 대형 Law Firm에서는 신입변호사들이 멋대로의 행동으로 고정 고객을 잃어버리는 사태가지 발생하게 되니 다음에 졸업한 후배들이 선배의 뒤를 이어 취업이 되지 않는 사태까지 발생하여 학교에서 이를 원인규명을 하게되었고 그 결과로 고삐가 뚫리지 않은 망아지 같은 선배들을 학교에서 Re-call하여 테이불 매너부터 재교육을 하여 보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이렇듯 개개인의 몸가짐이란 중요한 것이며, 이는 국내에서 뿐 아니고 요즈음 같이 좁아진 지구촌에서 한국인 하나 하나가 밖에 나가서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행동이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 질지 걱정스럽다고 한다면 기우일까?
#@# 일본의 두 얼굴
일본 사람들이라고 다 문화시민일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 %가 얼마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내자와 나는 가고시마 관광지도에서 메밀국수를 잘한다고 선전광고가 나온 집을 찾아가서 점심을 하기로 하고 백화점에서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지도를 꺼내들고 핀 포인트를 한 屋號를 대니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그 근처가 일방통행이라 접근하기가 어려우나 근처에 하차를 하면 안내를 하여 주겠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리고 보니 가고시마 중앙시장 한복판인데 하여간 기본요금으로 도착하여 차량의 통행이 금지된 곳의 거리를 가리키면서 그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원하는 식당이 있다고 하였다.
한 150여 미터를 걸어서 안으로 들어가도 우리가 찾는 음식점의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오면서 그 집을 놓친 것은 아닌가하여 되 집어서 나오는 중간에 우동가게에서 주방 옷을 입은 사나이가 나오 길래 붙들고 예의 소바(Soba) 집을 지도를 보이며 물어보니 처음에는 저의 집 우동은 어떠냐고 하면서 지도를 들여다보고 한참 지난 다음 잘 모르겠다는 시늉을 하고 뒷문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할 수 없어 택시를 내렸던 지점으로 돌아와서 그 반대쪽이 아닌지 싶어 몇 골목을 올라가다가 어떤 음식점 앞에 서있는 중년에게 물었더니 점포 안의 영어를 구사하는 종업원을(오끼나와 출신) 내보내어서 안내를 부탁한다. 그 여종업원이 지적하여 준 바대로 다시 길을 돌아서 먼저 갔던 지점에 도착하여 보니 그 소바 집은 바로 모르겠다고 하면서 우동을 권하던 집 바로 옆에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메밀국수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 우동집 종업원의 괘씸한 행동에 울분을 터뜨렸지만 경쟁업소에서 물어보니 순간적으로 옆집이라 말하기에는 너무 배가 아팠던 것이 아닌가 한편 이해도 되었다.
역시 소문대로 메밀국수 집은 오후 한시가 넘은 시점인데도 사람들이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고있었으며 자리에 앉아 메밀을 주문하여 그 양념소스를 먹어보니 지난 ‘70년대 삼성본관
지하에서 먹어본 ’국향‘집과 비슷하게 맛이 출중하였다. 음식이란 맛이 좋으면 선전이 필요 없는 법인 것, 입 소문이 선전이 아닌가 생각된다. 옆집 우동가계의 젊은이의 괘씸한 생각보다 어렵게 찾은 메밀집의 국수가 마음에 들어 그런 대로 위로가 되었다.
다음날 우리는 가고시마에서 유명하다는 黑牛, 黑豚의 샤브샤브를 시식하기 위해 중심가 華蓮(Karen)이란 음식점으로 호텔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하였다. 도착한 음식점은 1.2층은 젊은이들을 위한 간이 식당이었고, 3.4층이 華蓮이란 전통 다다미를 깔고 신을 벗고 들어가는 식당이었다. 문제는 예약을 안한 것이었다. 보통 서울 생각으로 방도 있고 대중적 홀도 있는 식당으로 생각하였는데 이곳은 홀이 없는 곳이며 철저하게 100% 예약에 의하여 영업을 하기 때문에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두 사람인데 자리하나 못 만드느냐고 사정을 하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주 안타까운 표정을 하면서 자리를 마련할 수 없어 미안하다 고한다. 지배인, 데스크 종업원까지 모두가 동원이 되어 그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표하면서 연신 미안하다고만 하니 달리 방법이 없어 내가 제안하기를 “그러면 이 점포와 같은 맛을 내는 다름 음식점을 소개하여 줄 수는 없겠느냐”고 하니, 두 사람이 상의 끝에 어디인지를 전화를 하고 하는 말이 “여기에서 택시로 한 10분정도 걸리는 곳에 점포가 있는데 그곳이라도 가겠는가”라고 의향을 타진한다.
더 이상의 최선의 방법이 없기에 “그리하겠다”고 답을 하니 지배인은 전표를 한 장 써서 종업원 편에 들려서 아래층 도로변으로 내려보낸다. 지배인도 따라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말려서 바쁜 일에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고 하여 올려보내고 우리는 택시를 기다렸다.
이것은 지나가는 택시가 아니라 콜택시를 부른 모양으로 몇 대의 빈 택시가 지난 다음 하나의 택시가 와서 서면서 문을 열고 華蓮의 종업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일행을 탑승시키고 나서 그 전표 같은 쪽지를 가지고 출발한다. 너무나 친절한 안내에 외국인으로서 받은 환대는 도를 넘은 듯하였다. 몇 골목을 지나고 큰길을 건너 도착한곳은 旧가고시마 시청청사 자리에 아래층은 기념관이고 2층에 華蓮 jr.가있었다.
지배인이 도착시간에 맞추어 도로변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내가 요금을 지불하려고 하니 업소에서 이미 요금이 지불된 택시라며 운전기사가 받지를 아니한다.
지배인을 따라 식당에 들어가서 수인사를 하고 예의 黑牛 샤브샤브를 주문하고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니 이미 본점의 지배인으로부터 익히 들었다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준비된 음식을 직접 설명과 함께 제공한다.
담백한 맛이 서울에서 먹어본 샤브샤브 와는 질이 다른 것을 느꼈으며 역시 그들이 자신 있게 내놓는 자랑스런 가고시마 명물임에 틀림없었다. 음식을 거의 다 먹어갈 무렵 지배인이 또 하나의 黑豚 샤브샤브 고기를 들고 와서 “이것은 지배인 자신의 서비스”라고 하면서 맛을 보기를 권한다. 그러나 량이 2인분은 되어서 소고기를 먹고 난 다음이라 그 성의를 다 받을 수가 없어 “정히 그런 것이라면 반만 가지고 시식을 하였으면 좋겠다”고 하니 그렇게 하겠다고 하여 반을 받아 시식을 하여 보니 참으로 희한하게 잡 냄새도 없이 고기는 더 연하고 맛이 소고기 보다 더 좋은 것 같았다.
푸딩에 꿀 시럽을 올리고 그 위에 아이스크림을 얹어 단맛을 낸 후식은 과식에 소화를 돕는데 도움이 되었다. 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지배인은 다른 손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와서 먹는 법이며 음식점의 연혁이며 기타 관심사항을 짧은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면서 내자와 대화가 계속되어 정말로 오랜만에 귀빈대접을 받는 기분으로 즐거운 저녁시간을 이국의 시골 도시에서 즐기고 있었다. 여기에 답례(response)가 없다면 귀빈이라 말할 수 없는 법이라 특별한 대접에 지배인에 전한 봉사료가 내 마음을 더욱 흡족하게 하였다.
이것이 또 하나의 일본의 얼굴이라면, 우리는 그래도 지금 많이 개선된 서비스라고 하지만 진정 마음으로부터의 봉사인지 직업상하는 봉사인지 받아본 사람들은 알고있기 때문이다.
좁아진 지구촌에서 우리는 무한경쟁 속에 살아가고 있다. 3만불의 국민소득을 올리고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엔 많은 복병이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진정한 마음으로부터의 신용을 쌓아 신뢰할 수 있는 기업과 기업인이 되어야 21c의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겠기에 짧은 여행에서 얻은 경험을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