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가 보다 / 목천
김형
날씨가 무서워 피신을 했습니다
계곡물 철철 흐르는 깊은 산골도
파도소리 바람결에 오는 바닷가도 아닌
그 예전 먹고살기 위해 다 떠나간
이러지 저러지 못한 눌러 붙어사는 텅 빈 마을은
예전 멱 감던 시냇물 강둑처럼
어미 소 송아지 찾는 울음이나
강아지 쫄랑쫄랑 따라가는 틈 사이
수탁이 한 바탕 홰를 치는 고요함은
옛날의 아련한 전설입니다
잘 익은 수박이
하얀 이를 들 내어 웃는 여름을
맞이할 기대는 깡그리 잊었습니다
들볶는 짓이 어찌나 흉포한지
지칠 대로 지친 가로수 그늘이
제 한 몸 거천하기 힘들어 반기지 않습니다
태풍이 오다 곳에 따라 비를 뿌린다지만
한두 번 속는 일이 아니어서 생각지 않았는데
마창 대교를 지날 쯤 순간 자동차 브러쉬는 쉴 새 없고
차들은 거북이걸음을 합니다
어쩐 일인지 산 고개를 넘어 작은 소로에 이르러
길은 뽀얗고 빗방울 흔적이 없습니다
인심이 야박한 곳은 비 뿌리지 않는다 하기에 걱정입니다
더운 것은 매 한 가지라 잠을 이룰 수가 없는데
하룻밤 지나고 또 한밤을 보내니 웬 일입니까
엄두도 못 냈던 바람이
쥐꼬리만큼 짧아진 해와 조석으로 같이 오고
별들은 밤을 초롱초롱 지키고 있습니다
제철 만난 풀벌레는 찌르륵 됩니다
어제그제 설치던 폭염이 오늘 저녁에는 얇은 이불을 청합니다
자연은 속고 속이는 일이 없어
못 살게 굴 듯 하지만 기다림 끝에는 베품이 있습니다
가을이 내 곁에 살짝 다가와 어루만집니다
나만 아닌 고루 나누는 일이라 다행입니다
텃밭 고추는 저들끼리 웃고
가을이 가져온 꾸러미를
찬찬히 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