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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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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게시판 스크랩 아시아가 왜 조선인가 (중원을 찾아서 本記 : 대풍가와 조선태조 其 一)
현상태 추천 0 조회 398 12.01.13 15:34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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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1.13 17:22

    첫댓글 리성계 집안의 발흥점이 함흥(서역?)인데...그 본관을 전주(全州)라 함은 이런 이유같습니다.
    조상인 이안사 등이 내내 몽골의 다루가치집안입니다.
    고려 쌍성총관 접수때 원나라를 버리고 공을 세우기도 합니다.
    이는 몽골제국의 신흥패자인 명(무굴,모글리스탄한국)에 붙었단 얘기이기도 하고...
    그가 고려내에서 활약한 쌍성총관은...고려(송나라)와 원나라의 국경지대가 아닌...고려(송나라) 남부 깊숙한 무한(한양)일대 전주(全州)이기 때문이며...
    함흥보단 전주를 더 선호했던 이유는,..
    여진족이라기 보단...고려&한(漢,韓)족임을 표방키 위해서였다 여겨집니다.

  • 작성자 12.01.13 19:49

    여진이 고려아닌가요? 조선태조가 나하추를 이기고 쌍성을 접수하자, 원이 중원을 잃습니다. 당시 고려는 피난 정부였구요. 무굴, 모굴리스탄, 몽골, 무쿠리, 다 고려라는 뜻이지요. 몽골제국이 무너졌고, 당시 정황으로 보아 신흥패자는 리성계가 유일합니다. 쌍성총관부는 원의 수도 대도이거나, 그에 가까운 지역이라는 얘기지요. 태조의 집안은 함흥일대의 호족이였읍니다. 그 지방 제후라는 것이지요. 전주는 함흥을 벗어날 수 없다 생각됩니다. 봉지는 아무대나 가져다 놓을 수 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한이 한양이라면, 말도 엄청나게 많아야 되고, 겹겹히 산과 강으로 둘러쌓인 곳이 어야 합니다.

  • 12.01.13 21:46

    자신들의 수도(도성)에 속국의 총관부를 둘 이유가 없습니다.
    더하자면 국경지대에도 둘 필요가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왜정시대에 조선총독부를 열도와 한반도사이인 대마도에 둘 이유가 없는 식입니다.
    총독부는...속국의 제일 깊고 요지인 곡창지대와 군사적 급소에 설치해야 하는 경우니...
    북송(탕구트)이 고려라하면...국경에서 바로 통제가 가능하니...그 남쪽 남송(신라자리)에서 발흥하지 못하게...
    깊은 지점에다 총독부를 둬야 제격이란 제 생각에 쌍성총관은 현 중원의 시싼반납지(운남일대)의 차무역을 통제하기도 하고...북송(고려)의 남방 망명정부 시도를 근원차단하는 역할도 하고...
    여러모로 필요한 위치였다 보입니다

  • 12.01.13 21:45

    고지도를 보면...현 호북성 무안 북쪽에...전주(全州)란 지명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몽골 다루가치를 하던 타타르족(여진족)이성계 집안은...고려의 남쪽인 옛 신라자리인 남송과 북송(고려)의 연계를 끊는 자리인 호북성과 운남성 일대에 총독부(쌍성총관)을 둔 것이며...쌍성이라 함도...시싼반납지의 약자에 기인한다 전 봅니다...당대 아주 귀중품인 차무역과...남부 토왜(동남아왜)들 단속에 중요한 요지이기도 했겠고여...
    오일라트의 영토로 표기돼는 신장성과 티벳을 잇는 지도상의 중가르 영토가 동남아까지 연결돼는 이유이고...
    그 선상으로 이동하여 동남아 토왜들과 남송을 단속했다 보입니다.

  • 12.01.13 21:55

    현상태님의 붓 끝이 날까롭게 변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백 퍼센트 동감은 아니더라도 아주 좋은 내용입니다.
    조선사의 진실을 찾는데, 무엇이 문제되겠습니까.
    좋은 글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건강하시구요.

  • 작성자 12.01.14 01:19

    문무님의 넓으신 도량에 다시 한번 머리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선생님도 비록 바쁘시더라도 건강은 챙기시길 바랍니다. 살다보니 건강이 최고더라구요.

  • 12.01.14 11:05

    제가 실수한듯 합니다.
    쌍성총관은 틀림없이 함길도에 있다 세종실록에도 나오는군요...너무 성급하게 추정한점 사과합니다.
    변명하자면 청나라가 중원에 설치한 차무역 거점이 운남의 시싼반납지의 도호부였기에...그 싼(雙)자에 제가 너무 연연했었습니다.
    그러나 전주는 분명 함길도가 아닌 호북성이 맞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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