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영주(왼쪽), 장한나(오른쪽) | |
클래식 음악의 마지막 위대한 작곡가로 불리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가 태어난 지 내년이면 100년.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의 두 젊은 여성 연주자가 먼저 기념작업에 나섰다. 장영주(바이올린)와 장한나(첼로)는 지금 유럽서 쇼스타코비치의 협주곡 공연과 음반을 녹음 중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25)는 9월 독일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지휘 사이먼 래틀)과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3차례 협연한 뒤, 10월에는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성남아트센터에서 같은 곡을 연주한다. 베를린 필과의 협연은 쇼스타코비치 100주년을 맞아 내년 초 음반으로도 출시된다.
장영주는 지금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베를린 필과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했고, 9월에도 3차례 공연 일정이 잡혀있다. “3년째 협연을 하고 있지만 베를린 필은 매일 밤 연주가 다를 만큼 활력 있고 변화무쌍한 오케스트라”라고 말했다.
“쇼스타코비치는 드라마틱하고 파워풀하면서도 고통스럽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스탈린(1879~1953) 시절인 1940년대에 썼지만 그가 죽고 난 다음 1955년에야 발표됐어요. 길고, 악장도 많고, 혼자 카덴차(독주 부분)도 10분을 해야 하는 정말 무거운 곡이죠. 그 시대의 억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지도 몰라요.”
장영주는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지적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의 쇼스타코비치 녹음을 들으며 혼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천재 소녀’라는 수식어가 붙던 장영주도 어느새 20대 중반. 1990년 뉴욕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통해 자신을 세계에 알린 지휘자 주빈 메타, 현재 협연 중인 래틀과 마주어와의 인간적인 교류가 스스로를 지탱하는 든든한 힘이 된다고 장영주는 말했다.
“주빈 메타가 제게 신(神)과 같은 존재라면, 래틀은 시적이고 예쁘고 어딘가 여성적이면서도 섬세한 분이죠. 래틀은 제가 연주 중에 그 악단의 악장과 눈 맞추는 것조차 싫어해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지휘자만 봐달라’고 할 정도죠.”
장한나(23)를 만난 곳은 영국 런던의 한 스튜디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안토니오 파파노)와 함께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1번 녹음에 한창이다. 영화 ‘주홍글씨’에서 첼리스트 역을 맡았던 엄지원의 연주 장면에 나온 곡. 녹음 스케줄이 없을 때면 하루 2차례 1시간씩 러닝 머신에서 뛰고 있다는 장한나의 야윈 얼굴에서 성숙미가 훌쩍 묻어나왔다.
장한나에게 쇼스타코비치는 각별하다. 쇼스타코비치는 첼로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를 위해 많은 첼로 곡을 썼고, 로스트로포비치는 1994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파리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당시 12세 소녀 장한나를 발굴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외국에서 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가 뭔지 알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잘못 웃기만 해도 한밤중에 가족이 사라질 수 있는 상황. 그렇기 때문에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겉으로 보기엔 잔잔하지만, 내면엔 불이 있어 속으로는 화산처럼 뜨겁고 드라마틱하죠.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열쇠는 여기 있다고 생각해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3주간, ‘안나 카레니나’와 ‘크로이처 소나타’는 1~2주간 읽으며 혁명 전 러시아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해석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현재 미 하버드대(철학) 휴학 중인 장한나는 “내년 상반기 연주 일정이 거의 유럽에서 잡혀있기 때문에 졸업은 서두르지 않으려고 한다”며 “독일 뮌헨에서 반년간 머물며 음악하는 데 필요한 독일어를 배우겠다”고 말했다.
장한나의 쇼스타코비치 음반은 오는 11월쯤 출시될 예정. 다음달 16~20일에는 서울·대전·대구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 등 17명으로 구성된 ‘베를린 필 신포니에타’와 함께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C장조’ 등을 협연한다.
공연문의 (02)751-9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