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
2. 사도 바울이 자기의 목회적 직무에 대한 한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목회적 직무에 대해 한 말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는 "은혜의 선물을 따라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복음 전하는 자의 특권을 내게 주셨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직무를 받았다." 사도 바울이 말한 목회적 직무에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은 물론, 성례의 집행까지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이 자신의 직무를 언급하는 이 부분에서 끊임없이 마음에 두었던 생각은, 신약 시대 목회자의 주된 일이 설교자, 복음 전도자, 하나님의 대사, 하나님의 사자,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 또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고전1:17).
신약성경이 사제의 목회나 희생 제사를 드리는 사제를 지지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사도 바울은 한번도 이런 주장의 근거가 될만한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사도행전이나 교회에 보낸 여러 서신들에 이런 개념을 지지할 만한 말은 단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의 서신 어디에도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사제요" 하는 말은 없습니다(고전12:28). 만약 사도가 그런 말을 했다면, 디모데서나 디도서 같은 목회서신에서는 당연히 찾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목회서신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딛1:3),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로 세우심을 입었노라"(딤후1:11),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로 세움을 입은 것은"(딤전2:7),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딤후4:17) 같은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바울 자신이 세운 교회를 디모데에게 맡기면서 하는 마지막 부탁은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이었습니다(딤후4:2). 요컨대, 사도 바울은, 목사가 해야 할 일이 아무리 다양해도 그의 최우선적인 과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설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수신자들이 깨닫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적 근거가 없는 사제직을 거절하는 것이 마땅하다해도, 이로 인해 목사가 가지는 직무까지 경시하는 또 다른 극단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또 다른 위험입니다. 아무리 로마 가톨릭과 사제가 하는 일이 싫더라도, 목회에 대한 확고한 원리는 굳게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원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사제 제도라는 비천한 우상숭배와 직무 무용론이라는 양극단 사이에는 분명한 중간지점이 있습니다. 목회와 관련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교황주의자와 같은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 곧 퀘이커 교도(Quakers)나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결코 이런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1) 우선, 목사는 성경이 정한 직무입니다.
성경적 근거를 장황하게 인용하지는 않겠습니다. 디모데서와 디도서를 잘 읽어 보십시오. 만약 이 서신들이 목회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제 말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가장 똑똑하고, 정직하고, 공정하고, 편견 없는 사람 열둘을 배심원으로 세워, 신약성경을 주면서 이 물음에 대답해 보도록 하십시오. "목회는 성경이 말하는 직무인가?" 그들이 어떤 평결을 내릴지는 분명합니다.
(2) 목사의 직무는 가장 지혜롭고 유용한 하나님의 성직 서임 가운데 하나입니다.
목사의 직무를 통해 그리스도가 제정하신 규례와 은혜의 방편이 일상적으로 시행됩니다. 목회는 또한 죄인을 깨닫게 하고, 성도를 세우는 일을 끊임없이 도모합니다. 우리의 경험이 증거하듯이, 모두의 일은 곧 누구의 일도 아닌 것이 됩니다. 이 말이 맞다면 신앙의 문제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목사직에 임명함으로써 정하신 방편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빈둥거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항상 기적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를 기대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한 사람을 목사직에 임명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일에 온전히 헌신할 일꾼으로 세우는 것이야말로, 중단 없는 말씀 선포와 성례의 시행을 위해 가장 실효성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목사의 직무는 영예로운 특권입니다.
왕의 대사가 되는 것은 얼마나 영예로운 일입니까? 한 나라에서 대사직을 맡은 사람은 존경받을 뿐 아니라, 합법적으로 구별됩니다. 트라팔가르(Trafalgar) 해전과 워털루 전투의 승전보를 전하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전보가 발명되기 전에 이런 직무를 맡은 사람은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의 대사가 되어서 갈보리에서 이룬 승리의 소식을 선포하는 일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습니까! 주님을 직접 섬기고, 주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하나님이 복 주시기만 하면 이 일이 영원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참으로 큰 특권입니다. 다른 수고와 노력은 하나같이 썩어 없어질 면류관을 위한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목사들은 썩지 않는 것을 위해 일합니다. 신앙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편벽한 사역으로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는 곳이야말로 가장 몹쓸 상태에 있는 땅입니다. 말라기 말씀은 참으로 두렵습니다.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했으므로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했느니라"(말2:9). 하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든 못하든, 신실한 대사는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 아흔 여섯을 일기로 생을 마감한 한 선교사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이런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목사의 직무에 대한 주제를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 당부를 드립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목사들을 위한 기도와 간구와 중보를 결코 잊지 마십시오. 국내에서나 선교지에서나 그들의 필요가 채워지고, 그들이 온전한 믿음과 성결한 삶을 지켜 가고, 자신의 가르침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살피도록 기도해야 합니다(딤전4:16).
목사의 직무가 존귀하고, 유익하고, 성경적인 것이 분명하지만, 고통스럽고 깊은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목사는 심판 날에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깨어 영혼들을 살펴야 합니다(히13:17). 만약 목사의 불성실함으로 영혼들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피값을 그 목사가 물게 하실 것입니다. 예배를 인도하고, 성례를 집행하고, 가운을 입고, 일련의 예식을 진행하고, 외적인 제스처와 몸가짐에 신경 쓰는 것이 목사의 일이라면, 그래도 그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과 주님의 메시지를 남김없이 다 전해야 합니다. 진리를 조금이라고 가감하여 전한다면, 이는 불멸하는 영혼을 영원한 파멸에 이르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생명과 사망이 설교자의 혀에 달려 있습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 같은 목사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 일을 하기에 충분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 조상들이 오래전에 한 말을 좀 들어 보십시오. "목사만큼 영적으로 위험한 사람도 없다." 목사의 허물을 지적하고 비난하기는 쉽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에 보배를 가졌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졌고, 허물이 많습니다. 유혹이 많고 시험이 많은 시대에, 교회마다 믿음에 견고하고, 사자같이 담대하고,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한 감독과 목사와 집사가 부족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마10:16). "나에게 복음 전하는 은혜가 주어졌다"고 말한 바로 그 사람이,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퍼진 것 같이 속히 퍼져서 영광을 받게 되고, 또 우리가 심술궂고 악한 자들로부터 구출받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사람마다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살후3:1-2, 새번역).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