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를 통한 깨달음. 군위 사유원
평일 입장료가 1인 5만원, 주말에는 1인 6만9천원이다. 디너 포함 가격은 1인 25만 원. 거기다 현장에 매표소가 없어 당일 근처를 지나가다가 들려도 소용없다. 최소 이틀 전에 홈페이지에 예약한 사람에 한 해 입장할 수 있다. 그 넓은 곳에 하루 200명밖에 받지 않는다. 엄격히 인원을 통제해 주말에는 예약이 꽉 차 보고 싶어도 그림의 떡이다.
대체 무슨 심보로 이렇게 비싼 입장료를 받고 불편한 시스템을 고수하는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이곳을 찾았다. 찾는 이유도 참 독특하다.
그런데 이 정원을 다 둘러보고 정문인 치허문을 나올 때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축구장 45개 규모의 크기에 꽃과 나무가 춤추듯 피어났고 또 알바로 시자, 승효상, 웨이량 등 세계적인 예술가의 손길, 거기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종교와 철학까지 담아낸 그야말로 명품 수목원이다. 대한민국에도 이렇게 의미있고 장쾌한 공간이 있다는 것에 무한 자부심이 느낀다.
되도록 혼자 가는 것을 권한다. 입장료도 비싼 것도 있지만 자신을 되돌아보기에 딱 좋은 장소다. 자연과 건축을 통한 사색과 여유, 그리고 고요함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유원지만큼이나 북적거렸다면 소소한 행복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 비용까지 내가 부담했다고 생각하면 맘이 편하다.
아무래도 가성비를 따진다면 호불호가 갈린다. 이는 자연과 건축물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롤렉스가 비싸다고 불평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명품이니까. 이곳이 그런 곳이다. 전부 둘러보려면 최소 4시간 이상 필요하다. 생각도 해야지. 작가는 이런 의도를 가졌을거야. 끊임없이 자문자답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털썩 주저앉아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을 감상하며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다.
9시에 개장하니 오전에 가는 것이 권한다. 5시에 문을 닫으니 시간을 잘 안배해야 한다. 거의 등산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운동화를 신고 편한 복장에 배낭이 유리하다. 음식물 반입을 할 수 없으니 들어가기 전에 배를 든든히 채워라. 심미안은 체력에서 나온다.
물론 가방 검사는 하지 않는다. 알아서 눈치것
이 멋진 공간을 만든 이는 대구에서 철강업을 하는 유재성사장. 1989년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밀반출되는 모과나무 4그루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웃돈을 주고 전량 매입해 자신의 땅에 심은 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적송, 소사나무, 배롱나무 등 귀한 나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꽃과 나무는 수목원의 기본. 이곳이 가치가 있는 것은 창의적인 예술건축물. 여기에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건축물이 3점이나 있다. 원래 스페인 마드리드의 게르니카 전시공모전에 당선되었는데 게르니카 작품유치가 힘들다는 소식에 ‘피카소 뮤지엄’ 계획이 취소되었다. 이에 유재성 회장의 각고의 노력 끝에 추가 설계를 거쳐 이 첩첩산중 군위에 그 작품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고요와 사색의 공간인 소호헌이다. 참 파주 출판단지의 미메시스 아트뮤지엄, 안양예술공원의 파빌리온도 시자의 작품.
또 한 분. 승효상 건축가는 수목원 전체를 설계했다. 꽃과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유와 명상의 정원을 만들자고 유재성 대표와 의기투합했다. 그래서 자연을 끌어들이는 한국적 정원양식과 기발한 착상과 아이디어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건축물은 제 잘 났다고 뽐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끌어 들이는 보조 역할을 한다. 입장료의 20%는 팔공산에 떼어줘야 할 정도로 절경을 보여준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곳곳에 놓여있는 화장실이다. 독락사(獨樂舍), 세욕소(洗慾所), 망아정(忘我亭), 귀락와(歸樂窩), 망우정(忘憂亭). 더블류시까지 화장실에 의미심장한 현판까지 달았다.
가장 원초적 자세로 팔공산을 마주하며 배설의 기쁨을 만끽하라.
첫댓글 입장료 값어치를 하는 수목원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