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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땅끝 전망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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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설립 년도 : 2002년 1 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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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1158-5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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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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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지면적 : 2,560㎡ - 건축면적 : 385.27㎡ - 규모 : 지하1층, 지상9층 - (최고높이 : 39.5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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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 : 3,440백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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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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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개인 |
단체 |
어른 |
1,000 |
700 |
군인&청소년 |
700 |
500 |
어린이 |
500 |
300 |
망원경 |
1회 2분 500원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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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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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의 땅끝도 아니고 우리 국토의 땅끝도 아닌 세계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땅끝은 우리나라 국토 육지의 최남단으로써 많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21세기의 장을 여는 현 시점에서 우리의 땅끝에서 새 희망과 새 출발을 의미하는 새로운 장을 갖추고 여기에 조국의 통일을 기원하고 대양을 향한 새로운 출발을 담고자 하는 것이다. 서남해안권 문화관광벨트의 중요한 핵으로 발전하여 지역 문화발전과 국민의 정서 함양에 기여하고자 하는 바램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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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기본방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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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 념 성 : 국민의식의 구심적 역할과 기념성 - 상 징 성 : 한반도 시작점 땅끝의 상징적 의미 부각과 조국 수호의 등불을 형상화 - 환경보호 : 자연환경을 최대한 고려하고 환경친화적 소재 사용 - 세 계 화 : 대륙과 대양의 연계와 결정점의 기능 - 전 통 성 : 주변 관광루트의 집합점으로 서남해안 관광의 구심적 역할수행 - 개 방 성 : 열린 공간의 구성으로 미래지향적 개방적 시야 확보 - 기 능 성 : 각 공간의 합리적 구성과 효율적 기능 분배 - 지 역 성 : 해안지역에 퍼져 있는 소리춤 강강술래의 이미지 적극 도입 황토의 이미지를 구체화시키고 새싹의 이미지 형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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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대지 현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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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최남단 [땅끝]이라는 지리적 특수성으로 지역관광의 중심지로 주변의 수많은 수목과 기암괴석이 이루는 천혜의 자연적 경관과 더불어 남해안 관광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하여왔다. 우항리 공룡화석지, 두륜산 대둔사 등과 더불어 해남의 주요한 관광명소로 인근의 송호해수욕장과 연계되어 관광지로서의 최적의 위치로 노령산맥의 줄기가 내뻗은 마지막 봉우리인 해발156.2m의 갈두산 사자봉 정상에 위치한다. 22km에 달하는 해안 관광도로가 연계되어 있어 다도해의 절경을 이루며 대지의 북으로는 우거진 송림이 있고 동남서로는 시야의 막힘이 없는 드넓고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남으로는 드넓은 대양의 시점으로서 흑일도, 백일도, 보길도, 노화도 등 다도해 섬들을 바라볼 수 있으며, 날씨가 쾌청한 날에는 추자도 및 제주도를 바라볼 수 있다. 또한 일출과 일몰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한반도 전역에서 유일한 곳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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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의 의도와 상징성에따른 형태계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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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오르는 횃불의 형상화 - 새천년을 밝히며 타오르는 불기둥을 형상화 - 통일을 염원하는 횃불 · 조국 수호와 통일을 염원하는 횃불을 감싸고도는 강강술래하는 여인들의 역동적 움직임을 형상화 · 전통건축의 기단 도입(전망탑 진입부) · 국토를 지키는 등대와 조국 수호의 눈 · 떠오르는 태양과 햇살을 건축적 어휘로 표현 · 다양한 이미지 형상 내포(횃불, 공룡, 새싹, 출항, 등대, 성화)
백두에서 내달린 우리 국토는 이곳에서 멈춘다. 땅끝이다. 육지의 최남단의 땅끝은 육지의 끝이라는 강한 상징성과 함께 대양으로의 향수와 새출발을 의미한다. 또한 천혜의 자연경관과 함께 유물을 보유한 서남해안권 문화관광벨트의 중심이기도 하다. 이는 상징조형물을 건립하는데 있어서 중심을 이루는 기본바탕이었다. 더불어 전망대로서의 기능성과 함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산의 정상에 위치한 부지의 특수성을 건축물 및 조형물로 담아내야 했다.
땅끝 상징조형물의 최대의 숙제는 조형물의 상징성을 표현할 수 있는 형태계획에 있었다. 수 차례의 발전을 통해 최종적으로 완성된 형태는 〈동방의 등불〉이라는 초기 주제를 발전시킨 것이다.
그 등불이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빛이 되리라. 21세기의 단초에 세워지는 조형물이기에 지난 백여 년 질곡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앞으로 열린 천년의 역사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갔다. 통일의 횃불을 밝히고 무한한 해양대국으로서 길을 밝히는 등불로서의 상징성은 형태를 강하게 결정짓게 하였다.
초기안인 단일횃불모양의 조형물은 설계과정에서 2개 내지 3개의 횃불이 감싸도는 형태, 구조를 노출시킨 형태, 역동적인 자유곡선의 형태 등으로 발전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간결하고 강한 형태미와 보조적 균형감을 확보할 수 있는 요소의 필요성 및 전망을 위한 명쾌한 시계의 확보, 휴게시설의 필요성에 따라 최종안은 결정되었다. 주전망대와 휴게시설동 그리고 봉화대의 이미지를 통일시킴과 동시에 상호 조화로운 구성이 되도록 한 것이다. 주 외장재는 티타늄아연판을 사용하여 빛의 변화가 시각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는 원거리에서의 실루엣에 빛을 더하여 등대의 이미지를 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조형물은 바다로의 방향을 가지고 있도록 하였다. 이는 바다를 향해 열린 위치적 특성이나 상징적인 측면에서 볼 때 자연스러운 것이다. 크게는 백두에서 시작하여 태평양으로 뻗어 가는 북남축, 작게는 사자봉에서 보길도 앞바다를 향한 전망축이 하나의 맥락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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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산책로를 따라 조형물로 인도되는 공간은 레벨차에 따라 다양한 시계차가 펼쳐지도록 조성하였다, 또한 일출을 볼 수 있는 명소로서 많은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 광장의 필요성에 의해서도 충분히 넓은 전망공간은 요구되었다. 높이 40m에 달하는 조형물의 안전감을 위한 기단의 조성은 저층부의 전망대 및 광장으로서의 역할을 겸할 수 있도록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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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기존의 봉화대 복원과 성곽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석축은 역사성 및 지형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이다.
1층 홀은 안내 및 홍보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타원형의 기하학적 구조로 조형물의 자유곡선과 어우러지도록 하였으며, 전망대층으로 진입하는 도입부로써 효과를 극대화시키도록 하였다. 2층에 위치한 옥외전망대는 가장 넓게 트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전망대로 다수의 관람인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3층의 휴게시설건물은 조형물과 분리하여 브리지를 통해 연결된다. 주전망대의 수직적 매스감을 보조해 주는 역할로써 수평으로 측면에 배치한 것이다. 기둥의 형태를 불꽃모양의 판으로 구성하여 주전망대의 횃불이미지와 통일감이 들도록 하였다.
주구조의 역할을 하는 엘리베이터실과 계단은 소망새기기판을 설치하여 관람객이 참여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관광수입 측면에서도 기여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각층의 계단참을 이용해 상승적 전망공간 체험을 유도하였으며, 커튼윌로 처리한 매스의 틈은 야간의 실내조명 외부반사로 횃불의 기둥역할이 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전망대층은 키모양으로 형태를 구성하여 조형성과 상징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넓은 각도의 연속된 전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전망타워의 획일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상징적인 형태의 조형성을 찾고자 한 시도와 다양한 전망공간의 제공과 같은 기술적인 의미가 땅끝 풍광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길 바랄 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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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모노레일카는 땅끝을 찾는 관광객에게 국토순례 시발지인 땅끝의 아름다움을 더욱 생동감 있게 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장애인, 노약자 등이 땅끝 전망대까지 갈 수 없었던 많은 불편함을 해소 하고자 해남군과 한국모노레일(주)은 상호간 공동투자로 운영하는 모노레일운송사업인 땅끝모노레일카 설치 사업을 마무리하여 2005년 12월19일 오후2시에 개통식을 갖고 운행을 시작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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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모노레일카 사업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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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 : 땅끝마을~전망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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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길이 : L=395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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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차인원 : 40명(20인승 2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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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속도 : 60m/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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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왕복 주행소요시간 : 약13분(시간당 4회 왕복), 수송인원 : 160명/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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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능력 : 1일 1,600명(1일 10시간 기준), 연간 560,000명/년(1년350일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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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업 비 : 3,140백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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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착공 : 2005. 1.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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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통식 : 2005. 12. 1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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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료 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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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이용권(모노레일카 및 전망대, 문의: 땅끝모노레일카 061-533-4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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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분 |
어 른 |
청소년(군경) |
어린이 |
왕 복 |
개 인 |
4,000원 |
3,000원 |
2,000원 |
단 체 |
3,500원 |
2,500원 |
1,500원 |
편 도 |
개 인 |
2,000원 |
1,500원 |
1,000원 |
단 체 |
2,000원 |
1,500원 |
1,000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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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체 30인 이상, 땅끝 전망대 입장료 별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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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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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절기(주중 8:30 ~ 17:30, 주말 07:00 ~ 17:30) - 문의 : 땅끝모노레일카 061-533-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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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이용권 : 기존과 동일 (※문의전화 : 관광개발담당 061-530-5224)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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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육지의 최남단 갈두산(葛頭山,해발156.2m) 정상에 위치한 봉수대(烽燧臺)이다. 갈두산 봉수는 광무(光武) 10년(1906) 영암군(靈巖郡)에 속하였던 송지면(松旨面)이 해 남군(海南郡)에 이속(移屬)됨에 따라 편입된 지역이다. 이곳 갈두산 봉수대는『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與地志)』에 “동쪽으로 강진현(康津縣) 좌곡산(佐谷山, 현 북일 면 봉태산), 서쪽으로 해진군(海珍郡) 화산(花山, 현 해남 화산면 관두산(館頭山))에 준하여 설치”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조선초에 설치되어 고종(高宗)때 폐지(廢止)된 것으로 보인다.
봉수제도는 삼국시대(三國時代)부터 시작되어 조선시대(朝鮮時代) 세종(世宗)의 4군6진 개척과 더불어 확립되었다. 봉수는 낮에는 연기(煙氣), 밤에는 횃불로써 국가의 급한 소식을 왕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해당지역에도 알려 적(賊)의 침략(侵略)에 대비했던 군사통신방법(軍事通信方法)으로 그 수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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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평상시에는 1개의 홰, 적이 나타나면 2홰, 경계에 접근하면 3홰, 경계를 범하면 4홰, 접전하면 5홰를 올리도록 했다. 그러나 만약에 적이 침입했을 때 안개·구름·비바람으로 인하여 봉수가 전달되지 않을 경우에는 화포(火咆)나 각성(角聲) 또는 기(旗)로써 알리거나 봉 수군(烽燧軍)이 직접 달려가 알리도록 했다. 갈두산 봉수대는 당초 원형을 알아볼 수 없도록 파괴되어 있었던 것을 복원한 것으로 자연석을 이용하여 막돌로 쌓았으며 봉수의 직경은 4.5m내외이다. 봉수대의 하부는 바윗돌을 사용하고 상부로 올라갈수록 작은 돌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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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끝탑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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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우리나라 맨 끝의 땅 갈두리 사자봉 땅 끝에 서서 길손이여 땅끝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먼 선 자락 아스란 백령도, 흑일도, 당인도 장구도, 보길도, 노화도, 한라산까지
수묵처럼 스며가는 정 한 가슴 벅찬 마음 먼 발치로 백두에서 땅끝까지 손을 흔들게 수천년 지켜온 땅 끝에 서서 수만년 지켜갈 땅 끝에 서서 꽃밭에 바람일 듯 손을 흔들게 마음에 묻힌 생각 하늘에 바람에 띄워 보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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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땅끝 탑비 멋있네요~~